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숭정제)

명나라 마지막황제의 후궁생활

중은우시 2015. 2. 12. 08:49

글: 양청균(楊淸筠)

 

후궁을 얘기하자면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견환전>, <미인심계>들일 것이다. 확실히 영화드라마작품 가운데 '후궁'이 나오는 빈도가 높다. 이들 이야기에서 후비들의 구심투각(勾心鬪角), 권력과 지위에 대한 몸부림, 우여곡절이 많은 스토리는 황제황후의 사생활, 황궁의 뒷면이 신비한 영역에 대하여 강렬한 호기심을 일게 만든다. 진정한 역사에서, 황제의 후궁생활은 어떠했을까? 대명의 몰락과정에서 우리는 나머지 무겁고 복잡한 우환은 차치하고, 숭정제의 일상적인 개인생활을 살펴보기로 하자.

 

후궁을 얘기하자면 여인을 얘기해야 한다. 명말의 몇몇 황제들은 이 방면에서 아주 난잡했다. 가정제는 여색에 빠져서, 문무백관들조차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연이어 "양성궁(養聖躬, 몸을 신경쓰라)"고 간언했다. 만력제에 이르러, 19세때 충동적으로 일으킨 사건이 수십년의 국본지쟁으로 이어진다. 다시 태창제에 이르러서는 최고조에 이른다. 자주 "밤에 연이어 7명의 여인과 자다"와 같은 전설을 남긴다. 결국 그는 1개월도 못되어 정력이 고갈되어 사망한다. 이런 유전학원리나 관성법칙으로 보자면, 숭정제도 이 여인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숭정제는 그러지 않았다. 17세에 즉위하여34세에 자살할 때까지, 격정적으로 보냈던 십여년은 바로 그로서는 혈기방장한 젊은이였다. 후궁생활은 그러나 그의 선배황제들처럼 풍부하고 다채롭지 않았다.  그는 근검절약하며 욕먕을 억제하는 이념을 진지하게 견지한다. 이런 엄격함은 모든 면에 삼투되어 있었다. 그는 정력을 모조리 국가를 다스리는데 쏟는다. 집정수준이 어떠했는지는 차치하고, 이런 정신은 실로 존경할만하다.

 

숭정제의 황후 주씨(周氏)는 평민출신이다. 어려서 가정이 빈한하여 일찌감치 집안일을 책임져야 했다. 일찌기 집안일을 한 철이 든 여자라 할 수 있었다. 천계연간, 아직 신왕(信王)으로 있던 주유검(朱由檢)의 왕비를 뽑게 되었는데, 주씨는 온화하고 단정하여 거기에 참가하게 된다. 비록 여러 여자들 가운데 그녀가 출중한 것은 아니지만, 왕비를 뽑는 책임을 지고 있던 의안황후는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단번에 주씨를 선택하고 그녀를 신왕비로 삼는다. 위충현은 당시에 세력이 방대하고, 정치는 암흑기여서, 주씨가 주유검과  신왕부에서 오랫동안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생활한다. 비록 황친이지만, 그녀는 보통집안의 여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장 위험할 때는 외인들이 신왕을 해칠까봐 우려하여, 신왕은 주씨가 친히 만들어준 음식만을 먹었다. 이런 생활을 1년간 지속한 후, 마침내 주유검은 성공적으로 황제에 등극한다. 주씨도 순조롭게 주황후가 된다.

 

황제가 된 주유검은 정치에 힘을 쓰기로 결심한다. 첫째로 한 일은 후궁에 근검절약하고 검소하게 지내라는 것이었다. 주황후도 남편의 대업에 협조하여, 꽃을 수놓은 옷을 입지 않고, 사치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직접 베틀을 돌리고, 옷을 세탁하고, 농부의 부인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이 기록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숭정년간에는 돈이 부족했다. 어떤 때는 부득이 조공물품을 바깥에 팔아서 부족한 돈을 해결해야 했다. 황제 자신의 내탕금마저 군비로 내놓아야 했다. 궁안에서도 편안하게 지내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여자를 숭정제는 당연히 아꼈고, 황제와 황후의 감정은 아주 좋았다. 역사상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올 정도이다.

 

당연히, 부부간에 가끔 싸울 때는 있었다. 이때는 어떻게 했을까? 한번은 사소한 일로 두 사람은 교태전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주황후는 감히 황제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원망할 수는 없어서 큰 소리로 "신왕, 신왕"하고 불렀다. 첫째는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욕은 시원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부간에 오래된 정분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기억하는가. <견환전>내의 나이든 후궁들이 항상 왕부시절에 어떻고 저떻고 얘기하던 것을. 이것은 일종의 자본이다. 당시 숭정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주황후를 밀어 땅바닥에 쓰러지게 만들었다. 황후는 아주 억울하여, 화가 난 나머지 곡기를 끊고 만다. 숭정제는 사후에 후회막급이었고, 주황후가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을 보자, 즉시 친히 찾아가서 사과하고 위로한다. 황후가 밥을 먹기 시작할 때까지. 황제와 황후의 사이에도 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황후낭낭은 결국 황제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다. 아, 기실 이 숭정제는 좋은 남자였던 것이다.

 

황후를 제외하고 황제가 가장 총애한 여인으로 전귀비(田貴妃)가 있었다. 전귀비는 미모에 총명했고, 몸매도 예뻤다. 그녀의 모친은 일찌기 민간의 배우였고, 그녀에게 가무의 재주를 전수했다. 그녀의 재능과 용모를 칭찬하는 이런 시도 있다: "풍용성전고무쌍(豊容盛鬋固無雙), 축국탄기부제일(蹴鞠彈棋復第一)" 만일 오늘날이라면 뭐든지 잘하는 전능의 여신이었을 것이다. 이런 우물을 숭정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예쁜 아가씨는 그 표준적인 홍안화수(紅顔禍水)는 아니었다. 한편으로 숭정제는 후궁생활에서 스스로 기율을 지키고 조심하며 엄격했고, 주황후의 현숙한 덕도 좋은 모범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전귀비도 비교적 사리에 밝은 여인이어서, 그녀의 친정 사람들이 그녀의 위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할 때, 그녀는 친히 자신의 친정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경고한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자살하겠다고. 전귀비는 주황후와도 잘 어울렸다. 황후는 포용력이 있었고, 전귀비는 공손했다. 그래서 숭정제의 조정은 아무리 엉망진창이었더라도, 후궁은 조용했으며 가화만사성이었다.

 

이렇게 서로 존중하는 황궁생활은 역대이래의 왕조에서 바라마지않던 광경이사. 그런데 숭정제라는 망국의 황제가 이를 실현한 것이다.

 

이렇게 모범적인 후궁은 실로 보기 드물다. 이는 이 젊은 황제의 의지력이 강함을 보여줄 뿐아니라, 사리분별에 밝은 여인들의 공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망국의 운명이고, 말세의 시대였다. 숭정의 후궁은 끝이 좋을 수 없는 국면이었다. 다만 만일 그녀들의 '죽음'이 비극의 전부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불충분하다. 사실상, 그녀들은 더욱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애절해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일을 한다. 그녀들은 남다른 용기와 힘으로 역사에 농후한 필묵을 남긴다.

 

먼저 주황후를 얘기해보자. 농민군이 북경성을 함락시킨 후, 숭정제는 기절과 정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남으로 도망치는 것을 거절하고, 순국하고자 한다. 다만 그는 자결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먼저 자결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결발지처(結髮之妻)인 주황후에게 애통하게 말한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 주황후는 통곡하며 대답한다. 신첩은 폐하를 십팔년간 모셨는데, 이제 사직을 위하여 죽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아무 말이 없이 눈물만 흘린다.그후 주황후는 담담하게 자녀들과 작별하고, 숭정제가 자결을 명한 조서를 받아든다. 이 현숙한 황후는 아무런 두려움없이 곤녕궁의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결한다. 봉의천하(鳳儀天下)의 옹용한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서. 일국의 국모로서 순국할 결심을 품고, 그녀의 국모로서의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장열하게 죽은 것이다. 실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황후(전귀비는 이전에 이미 사망했다) 이외에, 나머지 후궁들도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다. 위(魏)씨성의 궁녀는 후비공주들이 속속 자결하는 것을 보고, 반란군에 더럽혀지지 않기 위하여 어수하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그녀를 따라 자살한 사람이 백명이 넘었다.

 

또 한명의 비(費)씨성의 궁녀는 원래 우물에 몸을 던졌으나, 반란군의 병사들에 의하여 건져올려진다. 이들 사병은 비씨의 자색이 출중한 것을 보고 모두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 위급한 순간에, 비씨는 기지를 발휘하여 "내가 장공주(長公主)이다"라고 소리친다. 반란군들은 공주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가 없어서, 감히 그녀를 범하지 못하고 그녀를 이자성에게 보낸다. 이자성은 몇몇 투항한 자들을 시켜 확인해보니, 그녀는 공주가 아니라 하급 궁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용모가 뛰어나서 이자성이 그녀를 자신의 한 장수에게 하사한다. 비씨는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쨌든 궁에서 나온 여자이다. 장군은 예절을 갖추어 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이 장수는 그녀의 미모를 보고 기뻐하며 예를 갖추어 정식으로 맞이한다. 비씨는 그 장수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품고 있던 비수로 그를 죽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약한 여자이지만, 그래도 적의 장수 하나를 죽엿으니, 대명과 황상에 면목을 세울 수 있겠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그어 자결한다. 이 충성스러운 여자아이는 그때 겨우 16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