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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숭정제)

원귀비(袁貴妃): 명나라 망국후에 유일하게 생존한 숭정제의 비빈

by 중은우시 2017. 4. 10.

글: 진영신(陳令申)


명나라는  270여년의 역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숭정제때 멸망한다. 비록 숭정제가 재위할 당시에 근검절약을 제창하고 정사에 근면했으며 전심전력을 다하여 통치에 힘쓰며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잡아 명나라를 다시 회복시키고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당시 숭정제가 직면한 것은 내우외환의 왕조였다. 안으로는 이자성의 농민반란이 있었고, 밖으로는 금나라 누르차히의 빈번한 공격이 있었다. 숭정재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여러번의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결국 기울어가는 나라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숭정제는 망국에 즈음하여 딸과 비빈들이 외적에게 치욕을 당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리하여 전후로 주황후(周皇后), 원귀비(袁貴妃)와 장황후(張皇后)에게 자진을 명한다. 그리고 검을 뽑아서 장평공주(長平公主)에게 상처를 입히고, 소인공주(昭仁公主)와 비빈 몇 사람은 죽인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원귀비는 살아남아서, 천수를 다한다.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는 당시의 역사배경을 종합하여 그 원인를 알아보도록 하자:


숭저17년(1644년) 삼월 십팔일, 이자성은 농민군을 이끌고 북경성을 대거 포위공격한다. 이때, 숭정제는 망국이 이이 피할 수 없는 사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대세는 이미 기운 것이다. 그리하여 주황후, 원귀비와 태자 주자랑(朱慈烺), 영왕(英王) 주자소(朱慈炤) 및 정왕(定王) 주자형(朱慈炯)의 5명을 궁으로 불어들여 후사를 안배한다. 심복태감을 시켜 태자 주자랑, 영왕 주자소 및 정왕 주자형 3명을 보통백성으로 분장시켜 비밀리에 황궁을 빠져나가 몸을 숨기도록 한다.


이때의 황궁은 더 이상 옛날같지가 않았다. 사병과 궁녀들 그리고 문무대신들은 도망갈 사람은 도망가고, 항복할 사람은 항복하여, 나라가 더이상 나라가 아니었다. 전체 황궁은 암울했고, 처량한 기운만 돌았다. 숭정제는 이런 상황을 당하자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영나라의 망국은 이미 바꿀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자신도 이전에 만인의 숭배를 받던 그 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때의 숭정제가 하려고 한 한 가지 중요한 일은 황실의 여인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외적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명왕조의 존엄과 명성을 보호하고자 했다.


숭정제는 침통한 마음으로 그리고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심정으로 먼저 주황후와 원귀비에게 자살을 명한다. 그 후에 친히 검을 들어 장평공주의 왼팔을 베어, 혼절하게 만든다. 숭정제는 장평공주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장평공주는 죽지 않았고, 나중에 사람들이 구해준다. 그리고 청왕조로부터 우대를 받으며, 원래 정혼했던 부마 주현(周顯)에게 시집가나 얼마후 병사한다). 이어서, 숭정제는 다시 소인공주를 칼로 베어 죽인다. 이때의 숭정제는 미친 것같았다. 다시 비빈 몇 명을 칼로 베어 죽인다. 그리고 장황후에게 자진을 명한다. 이제 황실의 여인은 모두 숭정제에 의해 죽은 것이다.


숭정제가 황실여인들을 죽이는 동안에, 하나의 의외의 사건이 벌어진다. 원귀비가 숭정제의 명을 받들어 자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친다. 그리고 나중에 살아남아 천수를 누린다. 이는 역사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정의 경위는 이러하다. 망국즈음에 숭정제는 원귀비에게 자살을 명하고, 원귀비는 명을 받은 후 궁으로 돌아와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결한다. 그런데 끈이 언제인지 모르게 끊어져 버리고, 원귀비는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참을 혼절해 있다가 나중에 깨어난다. 나중에 숭정제는 원귀비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검을 들어 원귀비를 몇번 내려친다. 원귀비는 그 자리에서 핏물 속에 혼절한다. 숭정제는 원귀비가 죽었다고 여기도 다시 검을 내려치지 않고 몸을 돌려 가버린다. 실제로, 숭정제는 원귀비의 급소를 내려치지 못했고, 몇 번 칼을 맞았지만, 그녀는 어깨와 팔만 다친다. 아마도 이것이 하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귀비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는 다시 원귀비에게 명하여 자결하게 한다. 끈이 끊어져 한참 후에 깨어난다. 황제는 검을 뽑아서 어깨를 내려친다. 그리고 비빈 몇 사람을 칼로 내려친다. 원비는 혼절했으나 죽지 않았다."


나중에 청나라 순치제가 북경으로 진입한 후, 숭정제의 이 비빈을 불쌍히 여겨서, 그녀가 살 곳을 하사하고, 천수를 마칠 때까지 돌봐준다.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세조장황제(순치제)는... 원비가 거처할 집을 하사하고, 죽을 때까지 봉양한다." 그러나, 숭정제는 그녀만큼 운이 좋지 못했고, 결국 매산에서 목을 매어 죽는다. 이렇게 하여 명왕조 270년의 통치는 끝이 난다.


만일 숭정제가 하늘에서 이를 보았다면, 아마도 자신이 총애하던 원귀비가 자신의 검아래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고, 외적으로부터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청왕조로부터 후대를 받고 천수를 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숭정제는 기뻐했을까 아니면 슬퍼했을까? 윈귀비는 이렇게 하여 명왕조 망국후에 유일하게 세상에 살아남은 비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