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공자)

공자의 학교운영경비는 어떻게 조달했는가?

by 중은우시 2015. 1. 22.

글: 이치아(李治亞)

 

공자가 민간교육의 비조(鼻祖)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공자의 학교운영경비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공자의 집안환경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부친은 어려서 돌아가시고, 공자의 모친은 부친의 정실부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하에서 공자의 학교운영경비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첫째, 정부관리의 찬조금이다. 공자는 비록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지만, 공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공자의 명성은 아주 높었다. 최소한 노나라의 수도인 곡부에서는 모두 공자를 알고 있었다. 국군도 알았다. 공자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공자는 명성이 높다보니, 일부 관리들이 자신의 아이를 공자의 학교에 보낸다. 처음에 공자는 돈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일깨워주어서 그들이 주는 돈이나 물건을 받게 된다. 나중에 인원이 많아지자, 모두 공자가 학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게 된다. 그것이 오래 지나다보니 찬조를 해주는 것이 습관화되어 버린다.

 

둘째, 학생이 납부하는 학비이다. 공자의 학교는 민영이었다. 전문적으로 귀족자제를 가르쳤다. 이들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었다. 비교적 가난한 학댕들도 대체로 학비는 냈다. 공자 자신이 이렇게 말한다: "자행속수이상(自行束脩以上), 오미상무회의(吾未嘗無悔矣)" 그 뜻은 네가 제때 학비를 내기만 하면 나는 열심히 너를 교육시키겠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해석에서 속은 일속(一束), 십조(十條)이고, 수(脩)는 말린고기이다. 조나라때는 신선한 고기를 처리하여 썩지 않도록 하는데 대체로 세 가지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소금으로 뿌리는는 것이고, 둘째는 소금을 뿌리고 생강가루와 파가루를 뿌리는 것이며, 셋째는 거기에 다시 굽는 것이다. 소위 말린 고기라 함은 유사한 방식이다. 소위 '속수'는 학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공자의 학생이 많을 때는 3천제자라고 하니, 학비만 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우수한 제자의 거액지원. 공자에게는 학생이 아주 많았다. 안회와 같이 품행이 고결하고 가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특히 돈이 많고 지위도 높은 학생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남궁경숙(南宮敬叔)의 부친은 노나라 대부이고, 형도 노나라대부이다. 공자가 경도 낙양으로 교육시찰을 떠날 때, 남궁경숙은 국군에게 거마와 식사등을 요청한다. 남궁경숙이 말한다: 나의 스승인 공부자가 이번에 낙양으로 갑니다. 주나라초기에 흥성한 원인을 탐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 노나라에 크게 이로울 것입니다. 그러니 과제연구자금을 지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노나라국군은 한꺼번에 그에게 마차 1대, 2필의 준마, 말을 모는 마부까지 제공해주고 오가는 길에 먹고 마시는 것도 국가에서 모조리 해결해준다. 그 결과 공자는 순조롭게 노자, 장홍등의 명사를 방문하고 돌아온다. 또한 일부 명승고적도 구경했다.

 

그러므로, 공자의 학교운영경비는 비교적 모자라지 않은 편이었다. 모자라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여 돈이 남을 정도였다. 공자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그의 제자 공서적(公西赤)이 명을 받들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공서적은 자신이 떠난 후 집안의 노모가 먹고 사는 것이 걱정되었다. 공서적은 그리하여 자신의 사형이자 공자의 집안살림을 맡아서 하던 염유(冉有)에게 부탁하여 공자에게 양식을 빌려달라고 하게 된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공자는 염유의 말을 듣고 바로 말한다: "그럼 그에게 200근의 소미를 빌려주어라." "공서적이 이번에 가면 시간이 아주 오래될 것같습니다. 스승님께서 좀 더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그녀에게 7,8십근을 더 빌려주어라"

 

나중에 민간학교를 더 이상 하지 않고 공립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당시의 연봉은 속육만(粟六萬)이었다. 양식으로 환산하면 2천석이다. 이는 당시 제후의 급여에 상당한다. 우리는 교사의 급여가 공무원보다 적지 않다고 말하는데, 당시에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