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문화

용봉정상(龍鳳呈祥)

중은우시 2015. 1. 14. 00:57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전해지는 바로는 자희릉(慈禧陵)의 월대망주(月臺望柱)에 한쌍한쌍의 '봉인룡(鳳引龍)'의 도안을 조각했다. 전체 조란(雕欄)에 모두 240마리의 봉(鳳)과 308마리의 용(龍)을 조각했다. 이같은 우의를 지닌 조각은 세상에 보기 드물고 감히 일절(一絶)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황실에서 나온 유일무이한 "일봉압양룡(一鳳壓兩龍)"의 조형은 전통적인 용과 봉이 나란히 두는 국면을 타파했고, 새롭고 독특한 '봉재상용재하(鳳在上龍在下)'도안을 드러낸다. 지고무상의 황권의 성별을 강조하는 것이 극치에 달했다. 다만, 서태후는 아무 큰 성별 착오를 일으켰다. 그녀는 '봉'이 숫놈 동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서태후의 착오는 그녀가 천년이래 전해져 내려온 "용봉정상"의 뜻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용봉정상"은 <공총자.기문>에 나온다: "천자포덕(天子布德), 장치태평(將致太平), 즉인봉귀룡선위지정상(則麟鳳龜龍先爲之呈祥)" 전통적인 우의로 말하자면 용은 물을 좋아하고(喜水), 날기를 좋아하며(好飛), 하늘에 통하고(通天), 잘 변화하며(善變), 영이(靈異), 정서(征瑞), 조화(兆禍), 위력을 보이는(示威)등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다. 봉은 불을 좋아하고(喜火), 해를 향하며(向陽), 덕을 지니고(秉德), 상서로움을 나타내며(兆瑞), 숭고(崇高), 상결(尙潔), 아름다움을 보이고(示美), 정을 나타내는(喩情)등의 신성을 지니고 있다. 신성이 상호보완되고 대응되니 용과 봉을 함께 두면; 하나는 뭇 짐승들의 왕이고, 하나는 백가지 새의 왕이다. 하나는 변화하고 비등하는 영이이고, 하나는 고아하고 선미한 상서이다. 양자간에는 아름다운 상호협력관계를 건립하는 것이어서 '용봉정상'이 되는 것이다. '용봉정상'의 뜻은 상화지기(祥和之氣)를 나타낸다.


"용봉정상"의 내력은 더욱 신기하다. 전설에 따르면 우순(虞舜) 즉, 우(禹)임금이 즉위한 후, 널리 의견을 듣고 현명한 자들을 구해서 정무를 본다.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널리 교육을 보급하며 예의를 창도하고, 개선한다. 기(夔)를 악관(樂官)으로 임명하여, 곡을 만들고 악을 제정하게 했다. 3년후,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기도 <구초(九招)라는 곡을 만들어 바친다. 우순은 크게 기뻐하며, 백관을 모아서 친히 연주한다. 구초를 연주할 때, 금룡채봉(金龍彩鳳)이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일찌기 당요의 노신 창서(蒼舒)가 흥분하여 소리친다: 이것은 용봉정상이다. 용이 오면 비바람이 순조로워지고, 오곡이 풍성해지며, 봉이 오면 국가가 아정되고 만민에게 복을 내린다. 반고가 천지개벽할 이래로 용비봉무(龍飛鳳舞)는 역대이래로 소문이 있었다. 다만 용과 봉이 함께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를 보면, 용봉정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국가안녕, 만민유복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후세인들이 '용봉정상'을 남녀의 혼인문화에 끌어들인다. 남녀가 결혼할 때 '용봉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서 부창부수, 길상여의, 백년호합을 표시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경극에 "용봉정상"이라는 극명이 있다. 오랫동안 불리지만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 내용은 유비가 형주를 빌린 후 돌려주지 않자, 노숙이 여러번 달라고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바로 이 때, 유비의 처인 감부인이 사망한다. 그래서 주유는 미인계를 쓰기로 하고, 거짓으로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을 유비에게 처로 주기로 한다. 그렇게 유비를 동오로 와서 결혼하도록 부른다. 유비가 오면 다시 유비를 붙잡아 형주와 맞바꿀 생각이었다. 공명은 그 계책을 눈치채고 장계취계로 주유의 장인 교국노에게 손권이 모친 오태후에게 얘기하게 한다. 오태후는 감로사에서 유비를 보고, 아주 만족한다. 그래서 정말 유비를 사위로 맞이한다. 이렇게 하여 유비와 손상향은 화촉동방을 보내고 부부가 된다. 이 농가성진(弄假成眞)의 미인계에 관한 극은 사람들의 마음에 '용봉정상'이라는 뜻을 잘못 이해하도록 더욱 강화시킨다. 


의문의 여지없이, "용봉정상"은 천년간 오인된 말이다. 봉은 처음에 초(楚)나라사람의 원시토템이다. 지진(至眞), 지선(至善), 지미(至美)의 상징이고, 사람의 영혼을 "비등구천(飛登九天), 주유팔극(周遊八極)"의 화신이다. 토템숭배로서, 봉은 원래 성별이 없는 것이다. 후인들은 봉을 황(凰)과 조합하여 '봉황'으로 부르며 자웅을 구분했다. 황은 암컷이고 봉은 수컷이 된다.


고대중국에서 사람들이 숭배하는 동물은 주로 새(鳥), 용(龍), 견(犬), 호(虎)의 네종류이다. 조령(鳥靈)은 남방의 도작(稻作)문화를 대표한다, 용령(龍靈)은 북방초원의 유목문화를 대표한다. 견령(犬靈)은 산지의 순양(馴養)문화를 대표한다. 호령(虎靈)은 산지의 수렵문화를 대표한다.  사대동물령 중에서 특히 조령과 용령이 가장 두드러진다. 최종적으로 남북의 양대토템이 된다. 즉 소위 "용등봉저(龍騰鳳翥)"이다. 북방은 용을 받들고, 이를 용등이라 하고, 남방은 봉을 숭상하고 이를 봉저라고 한다. 상당히 긴 기간동안 남북의 양대토템인 '용봉정상'은 화하대지에서 나란히 유행했고, 일종의 상서의 기운을 나타낸다. 이것이 원래의 '용봉정상'의 본뜻이다.


고대 남방제국이 점차 쇠락하고 결국에 멸망하면서, 북방이 정치 및 문화의 중심이 된다. 용은 유아독존이 되고, 황권의 상징이 된다. 봉은 그저 용에 종속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사극에서 용포를 입고 용상에 앉은 황제를 보고, 머리에 봉관을 쓴 황후를 보게 되는 것이다. 봉은 용의 부속이 되고, 점차 황후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리저리하여 여성의 대명사가 된다. 음양이 전도되고, 자웅이 불분명하게 수천년간 이어온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 딸을 낳으면 이름을 '봉아(鳳兒)', '소봉(小鳳)'같은 아명을 붙이곤 한다. 고대명저 <홍루몽>에 나오는 가부의 사람중에 '봉저(鳳姐)'라고 불리는 왕희봉(王熙鳳)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보면 문학대가 조설근도 서태후와 같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