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이보국(李輔國): 환관으로 재상에 오른 인물

중은우시 2015. 1. 1. 19:15

글: 사종의(史宗義)


중국역사상, 환관의 신분으로 재상에 오른 인물은 딱 2명이다. 한 명은 지록위마의 조고(趙高)이고 다른 한명은 이보국(李輔國)이다. 조고는 음흠하고 독랄하여 역사에 악명을 남겼다. 이보국은 조고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는 아부를 잘하여, 배우지 않고도 잘 했다; 그는 번운복우, 낙정하석등 안한 짓이 없다. 그는 동료를 모함하고, 반대파를 죽이는데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의 악명은 자연히 조고에 비하여 못하지 않다.


환관에서 공신으로


이보국의 본명은 이정충(李靜忠)이다. 무측천이 집권하고 있던 장안3년(703년)에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명문거족이 아니고 비교적 가난한 일반 시민가정에 속했다. 생계때문에 그는 환관이 되어 궁중으로 들어간다.


이정충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말 한 마리와 관련이 있다. 그 말은 바로 태자 이형(李亨)의 보마였다. 처음에, 이정충은 황실의 마굿간에서 일했다. 더럽고 힘들었으며, 누가 부르면 달려가야 했다. 황실의 동물들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그는 서당을 조금 다닌 적이 있어서, 약간의 학식이 있었다. 머리도 기민하여 얼마후 그는 마굿간의 기장원(記帳員)이 된다. 이정충은 장부를정리하면서, 황실의 그 말을 튼튼하게 키웠다. 그의 상사는 그를 인재로 여기고, 태자 이형에게 추천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형의 그 보마를 맡아서 기르게 된다. 이정충은 태자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 말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고, 매일 그 말을 깨끗이 씻기고 빗질을 했다. 그리하여 말은 건장하게 자라고 모양도 아주 멋있었다. 태자 이형은 아주 기뻐하며, 이정충을 동궁으로 데려가서 자신의 좌우를 따르면서 자신의 외출과 일정을 관리하도록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정충은 점점 더 태자 이형과 태자비 장량제(張良娣)의 신임을 얻게 된다.


당현종 천보14년(755년) 십일월, "안사의 난'이 발발한 후, 당현종은 다음해 육월 장안을 빠져나가 파촉으로 피난을 간다. 태자 이형은 클아들 광평왕 이숙(李俶, 나중에 李豫로 개명하며 당대종이 된다), 셋째아들 건녕왕 이담(李倓), 그리고 이정충등의 이끌고 삭방(朔方)으로 북상한다. 최종적으로 영무(靈武, 지금의 감숙성 영무현)에 도착한다. 이정충은 당시 전쟁의 형세에 따라 태자에게 즉위한 후 위기국면을 돌파할 것을 적극 건의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태자비 장양제에게 얘기한다. 태자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이때 따르던 대신들도 계속 상소를 올려 태자에게 황제위에 올라 군민을 이끌고 반군을 소멸시키고 토지를 수복할 것을 권한다.   다만, 태자 이형은 죽어라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부친이 멀리 파촉에 있는데, 자신이 어찌 황제에 오른단 말인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곁에 서 있던 이정충은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지도 않고 이형에게 말한다: "전하, 인심이 향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입니다. 황상은 경성에서 나간 후로 대사를 당신에게 위임했습니다. 마외파이래 전하는 전공이 혁혁하여 이미 중망(衆望)을 얻고 있습니다. 천하에서는 모두 전하가 하는대로 따릅니다. 태자전하께서는 국사를 중히 여기고, 사직을 생각하십시오. 실지를 수복하고 반적을 평정하고 나서 다시 황상을 경성으로 모시면 됩니다."


태자 이형은 총명한 사람이다. 비록 효자였지만, 그는 공을 세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는 몇번 사양한 후 그해 팔월에 정식으로 등극하여 순조롭게 황제에 오른다. 멀리 파촉에 있던 당현종은 태상황을 모신다. 이정충은 졸지에 당숙종의 '옹립공신'이 된 것이다. 막후에 있다가 당당하게 무대앞으로 나선 것이다. 대신들과 같은 예우를 받았고 심지어 대신들보다 더한 예우를 받았다.


구월, 당숙종은 이필(李泌)의 건의를 받아, 광평왕 이숙을 천하병마대원수로 삼아 병력을 이끌고 동정하게 한다. 이정충은 판원수부행군사마사가 되어 군정대권을 그가 모두 장악한다. 이정충이 옹립해준 공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하여 이형은 특별히 이정충에게 "호국(護國)"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사방에서 올라오는 상소문, 어전인감관리, 군령반포는 모조리 이정충이 담당하게 된다.


이정충은 비록 영무까지 모시고 가고, 숙종을 옹립한 공로가 있어, 태자가령, 판원수부행군사마사, 태자첨사의 직을 받아, 하루종일 당숙종의 좌우를 따르고, 조서의 초안, 군령의 선포하는 특권을 가졌지만, 그는 스스로 세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심복이 부족하고, 뒷배경이 튼튼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일처리를 비교적 조심스럽게 하고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더욱 튼튼한 배경을 얻기 위하여 그는 장양제에게 극력 아부하여 마침내 그녀의 신임을 얻어낸다. 그들은 한 명은 조정에서 한 명은 후궁에서 이익공동체를 결성한 것이다.


이필을 배척하고, 숙종의 아들 이담을 독살하다.


이필은 당숙종이 어렸을 때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그는 당현종의 인정을 받았고, 태자 이형의 존경을 받았다. 나중에 이필은 양국충의 박해를 받게 되어 경성을 쫓겨나 영양에 은거한다. 이형이 황제에 오른 후, 사람을 천리멀리 보내어 이필을 모셔온다. 이필은 정을 생각해 영무까지 온다.


당숙종은 이필과 함께 먹고 함께 갔고, 서로 마주보고 잠을 자며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어 정의가 예전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모든 군국대사, 전쟁결정, 장상의 임명은 항상 이필과 상의했다. 당숙종은 이필을 우승상으로 삼고자 하다. 그러나 이필을 고사하고 받지 않는다. 당숙종은 그의 성격을 잘 알아서 억지로 더 권하지 않는다.


이필의 출현으로 당숙종과 이정충간의 원래 양호했던 관계는 타파된다. 즉, 이정충의 위치는 완전히 이필로 대체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정충은 실망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필에 대하여 극도의 질투심을 갖게 된다.


당숙종이 영무에서 즉위하였다는 소식이 서촉에 전해진다. 당현종은 바로 사신을 영무로 보내어, 장양제에게 칠보마안(七寶馬鞍)을 하사한다. 마안(말안장)에는 많은 기진이보가 상감되어 있어, 장양제가 아주 좋아했다. 이 일을 이필이 알게 된다. 이필은 당숙종이 당현종의 전철을 밟아 국가를 쇠락하게 만들까 우려했고, 그리하여 당숙종에게 칠보마안을 국고에 넣어 전쟁에 대비하자고 했고, 당숙종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이정충은 이 일을 장양제에게 말한다. 장양제는 이필에게 큰 불만을 품는다. 그녀는 이정충과 협의하여, 이필을 당숙종의 곁에서 쫓아내기로 결심한다. 이정충은 다시 장양제를 종용하여 당숙종의 앞에서 눈물로 호소하여 그녀를 황후로 세우도록 해달라고 하게 한다. 당숙종도 마음이 움직여 이필과 상의한다. 이필은 국가대계를 생각하여 잠시 황후를 책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정력을 장안수복에 집중하고, 대국을 안정시키자는 것이다. 당숙종은 이해관계를 따져본 후에 그의 의견을 따른다. 장양제가 이 일을 알게 되자 더욱 이필을 미워하게 된다. 그녀는 이정충과 결탁하여, 모든 방면에서 이필을 힘들게 만들고, 온갖 수완을 써서 이필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필로 하여금 떠날 수도 없고, 남을 수도 없는 아주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만든다.


이정충과 장양제의 행위는 건녕왕 이담의 큰 불만을 사게 된다. 이담은 성격이 직선적이고, 불공정한 일을 보면 참지 못했다. 그는 이정충과 장양제가 결탁하여 이필을 온갖 방법으로 배척하는 행위를 부황에게 고하고, 부황에게 두 사람을 처리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당숙종은 금방 응락하지 않고, 이담에게 그냥 물러가라고 한다.


장양제와 이정충은 이담이 숙종의 면전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밀고한 것을 알았고, 이담에게 보복하고자 생각한다.


하루는, 전선에서 전해온 승리소식으로 이숙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쁜 나머지 술에 대취한다. 한밤중에, 그는 잠에서 깨는데 침상앞에 한 그림자가 검을 들고 자신을 찔러오는 것을 느낀다. 그는 급히 한 팔로 막았으며, 칼날이 어깨를 파고 들었다. 자객은 급히 도망친다. 이숙은 이로 인하여 피를 많이 흘려 혼절하게 된다.


당숙종이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밤을 새워 아들을 보러 간다. 그리고 이정충에게 반드시 자객을 잡으라고 지시한다. 금방 이정충은 한 복면을 쓴 인물을 숙종의 앞에 데려온다. 숙종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바로 보검을 들어 그 자객을 찔러간다. 놀란 자객은 연신 살려다랄고 애원한다: "황상 소인의 죄가 아닙니다. 건녕왕이 소인을 보내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건녕왕은 광평왕을 죽이지 않으면 소인의 목숨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숙종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았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형에게 손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한다. 곁에 있던 이정충이 고의로 그의 신경을 긁는다: "황상,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숙종의 눈에 흉광이 일었다: "죽여라. 왕이 법을 어기면 서민과 같은 죄로 처벌해야 한다."


멀리 군대내에 있던 이담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전혀 몰랐다. 돌연 부황이 사람을 보내와서 성지와 독주를 내렸다. 그는 부황에게 호소할 여유도 없이 이정충의 심복에 의하여 강제로 독주를 마시게 된다.


광평왕 이숙이 깨어난 후, 소식을 듣고 군대에서 급히 돌아온 이필을 만나게 된다. 이필은 이 일은 분명 이정충과 장양제가 벌인 것이라고 여기고 마음 속으로 비통해 한다. 황자마저도 그들이 감히 죽이는데, 하물며 자신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필은 적당한 시기에 이 시비의 땅을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숙은 내막을 알고 난 후 동생의 복수를 위하여, 두 악인을 제거하겠다고 결심한다.   


757년 구월, 당군이 장안을 수복한 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반란은 기본적으로 평정되었으므로, 이필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기 형산(衡山)으로 수도를 하러 떠난다. 이필이 떠나자, 이정충은 마침내 마음의 병을 없앤 듯했다. 


가짜 성지로 핍박하여 숙종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다.


이 때, 당숙종은 대규모로 동쪽에 토벌군을 보내지 않고, 황궁에 깊이 틀어박혀 공신들에게 작위를 봉한다. 십일월, 이숙을 초왕으로 고쳐 봉하고, 장양제를 숙비(淑妃)로 삼는다. 그리고 이정충은 전중감(殿中監)이 되어 궁중의 대권을 장악한다. 십이월 당숙종은 성도에 있던 당현종을 모셔와서 장안성 남쪽의 흥경궁에 거주하도록 조치한다.


건원원년(758년) 이월, 당숙종은 다시 이정충은 태복경(太僕卿)에 임명한다. 3월에는 이초를 성왕(成王)으로 다시 고쳐 봉하고, 장숙비를 황후로 삼는다. 이정충은 당숙종에게 상소를 올려, 자신의 이름을 이보국(李輔國)으로 고치게 해달라고 청하고, 당숙종은 동의한다. 이때부터 이정충은 이보국이라 불리게 된다.


장안으로 돌아온 후 이보국은 황궁총관일 뿐아니라 금군까지도 장악한다. 그는 황궁에 깊이 들어앉아 매일 당숙종의 좌우에서 모시면서, 당숙종이 반포하는 군정조령은 반드시 그의 서명을 거쳐야 시행되었다. 정식 조회때, 평상시에 재상이나 백관이 조정에서 업무를 주청드리면, 당숙종은 일반적으로 조회에 참석하지 않고, 모두 이보국이 대신 주청을 받고, 명을 발한다. 이보국은 대권을 장악했다. 황제가 아니지만, 황제보다 더 했다. 바로 황궁 깊은 곳에 있는 환관들도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그를 '오랑(五郞)'이라고 존칭했다.


장황후에게는 이소(李佋)라는 아들이 있었다. 나이 겨우 몇 살때 흥왕(興王)에 봉해진다. 그녀는 장래 황태후에 오르기 위해 이보국과 결탁하여 당숙종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들 이소를 태자로 앉히도록 핍박한다. 당숙종은 대신 이규(李揆)의 의견을 듣기 이하여 이규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왕 이숙은 짐을 따라 생사를 같이 했고 공로가 아주 크니, 짐은 그를 태자로 앉히려 하는데, 경의 뜻은 어떠한가?"


이규는 즉시 꿇어앉으며 두 손으로 읍을 했다: "폐하의 이번 결정은 실로 사직의 복입니다. 폐하 경하드립니다."


당숙종은 다시 이필이 떠날 때의 당부를 떠올리고, 기뻐하며 말하다: "나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다.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당숙종은 장황후와 이보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금방 성왕 이숙을 태자로 세우고, 이름을 이예로 바꾸게 한다.


장황후는 이예를 더욱 미워했고, 그를 해치려 한다. 그러나 태자에게서는 어떤 약점도 잡아낼 수가 없었다.


당현종은 당숙종에 의해 장안으로 돌아온 후에 흥경궁에 거주하고, 하루종일 술로 지내며, 즐긴다. 태상황의 위풍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는 자주 장경루에서 연회를 베풀어 일부 장군들과 대신들을 잘 대접했다. 당현종은 일찌기 당숙종에게 이보국을 중용하지 말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이보국은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당현종에 대하여 원한을 품는다. 그래서 숙종의 앞에서 거짓말을 만들어 비방한다: "태상황이 밖에 거주하면서 외인들과 많이 연락합니다. 그들이 폐하에게 손을 쓸까봐 걱정됩니다. 차라리 태상황을 황궁안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당숙종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는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보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지를 가짜로 만들어 태상황을 태극궁의 연회에 참가하도록 초청한다. 실제로는 당현종을 강제로 태극궁으로 옮겨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현종이 태극궁으로 옮겨온 다음 날, 당숙종은 비로소 사정의 진상을 알게 된다. 그는 대노하여, 즉시 이보국을 불러서 혼을 내주려 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보국은 육군(六軍)총사령관과 각 대장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왔다.


당숙종이 말한다: "너희는 죄를 아는가?"


이보국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말한다: "황상께 아룁니다. 신은 어쩔 수 없이 이런 하책을 쓴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황상의 지위를 보전할 수 없고, 육군도 불안합니다."


당숙종은 마외파 병변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까 우려하여,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말한다: "좋다. 너희는 모두 돌아가서 쉬어라."


이보국은 이제 완전히 당숙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완전히 황제를 대신하여 조정대사를 결정하는 권력을 장악했다. 이때부터, 당숙종은 이보국에 대하여 예전처럼 신임하지 않고 오히려 원한을 품게 된다.


황후를 죽이고 당대종을 옹립하다.


상원2년(761년) 팔월, 이보국은 병부상서가 되어 병권을 장악한다. 다만 이 관직으로도 그의 무한한 탐욕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는 당숙종에게 더욱 가혹한 요구를 한다. 재상의 자리를 달라고 한 것이다.


당숙종은 이보국의 무리한 요구에 아주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바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웃으면서 완곡하게 말한다: "너의 공로라면 무슨 관직이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무백관이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보국은 거절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암중으로 활동하여 조정신하들을 회유하여 백관들이 상소를 올려 자신을 추천하게 한다. 당숙종은 이보국의 음모를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암중으로 재상 소화(蕭華)를 부른다. 그리고 소화에게 말한다: "이보국이 재상이 되고 싶어하는데, 만일 백관이 추천하는 상소를 올린다면 부득이 그를 재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소화는 당숙종의 고충을 잘 알았다. 그래서 복야(僕射) 배면(裴冕)에게 연락하여 이보국을 추천하지 못하도록 한다. 배면의 당숙종의 구신으로 아주 정직했다. 그는 말한다: "이보국이 나를 찾아왔었다. 나보고 그를 재상에 추천해달라고 했으나, 나는 응락하지 않았다. 지금 나의 두 팔을 자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재상에 추천하지 않겠다."


당숙종에게는 소화, 배면과 같은 대신들의 지지가 있어, 이보국이 재상에 오르려는 꿈은 철저리 깨져버린다. 이때부터 이보국은 소화와 배면을 뼛속까지 미워하고 기회를 보아 복수하고자 한다.


당숙종 보응원년(762년) 삼월, 재상이 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이보국은 먼저 재상 소화에 대하여 보복을 한다. 그는 여러번 당숙종의 앞에서 소화가 권력을 전횡한다고 모함하며 그의 재상직위를 파면할 것을 청한다. 당숙종은 이보국이 소화에게 보복하려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응락하지 않는다. 이보국이 소화의 파면을 계속 주장하자, 연약한 당숙종은 더 방법이 없어 결국 소화를 재상에서 면직시키고 예부상서로 강등시킨다. 그리고 이보국의 심복인 원재(元載)로 하여금 재상에 오르게 한다. 사월, 이보국은 다시 원재와 결탁하여, 소화를 모함한다. 그리하여 소화는 다시 협주사공으로 좌천되어, 경사에서 쫓겨난다. 이어서 이보국은 같은 수단으로, 배면을 면주자사로 보내어 경사에서 쫓아낸다. 이렇게 하자 이보국은 더더욱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된다.


보응원년 사월, 당숙종은 병이 위중하여 조회에 나갈 수가 없게 된다. 군국대권을 황태자 이예에게 넘기고 그에게 '감국'하게 한다. 장황후는 원래 당숙종을 핍박하여 자신의 아들 이소를 태자로 삼으려 했지만, 당숙종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예를 태자로 앉혔다. 나중에 그녀의 아들은 불행히 요절했지만,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숙종의 둘째아들 월왕 이계를 태자로 삼게 할 생각을 가졌다. 이예를 쫓아내고 이계를 세우려는 것이다. 숙종의 병이 위중해지자 장황후는 이예를 쫓아내려는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한다.


이보국이 권력을 잡은 데는 장황후가 암중으로 도와준 것과 큰 관계가 있다. 장황후와 이보국은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이용했고, 서로 결탁했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잘 지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당숙종의 병이 위중해지자 이보국이 권력을 전횡하며 발호했고, 장황후에게도 그전처럼 공손하지 않았다. 장황후는 수렴청정을 하고자 했고, 이보국은 천하를 독패하고자 했다. 두 사람간의 모순이 격화되고, 결국은 서로 빙탄불상용의 지경에 이른다.


이예를 쫓아내려면 이보국을 먼저 쫓아내야 했다. 장황후는 차도살인의 수단을 쓴다. 그녀는 이예를 이용하여 이보국을 죽이고자 한다. 그녀는 이예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보국의 죄상을 낱낱이고하며 이예에게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재촉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예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놀라서 울어버린다. 장황후는 이예로는 대사를 이룰 수 없다고 여기고 다시 숙종의 둘째아들 이계를 찾아간다. 황태자가 되고자하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던 월왕 이계는 그 자리에서 응락한다. 그는 환관 이백여명을 뽑아서, 장생전에 매복시키 후, 이예가 궁으로 당숙종을 보러갈 때 병변을 일으켜 이예를 죽이고자 한다.


장황후의 음모는 생각지도 못하게 이보국의 심복인 정원진(程元振)에게 들통난다. 그는 즉시 이 일을 이보국에게 보고한다. 이보국은 과감하게 행동을 취하여, 궁중의 모든 문을 봉쇄하고, 이예가 입궁하지 못하게 저지한다. 장황후는 일이 들통난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말도 할 수 없는 당숙종의 앞에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다.


저녁에 이보국과 정원진은 우림군을 이끌고 황제의 침궁을 포위한다. 그들은 보이는대로 죽였고,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집어갔다. 그리고 직접 당숙종의 침실로 뛰어들어 장황후를 붙잡는다. 당숙종은 이런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놀라서 죽는다. 향년 52세였다.


당숙종이 죽자, 이보국의 담량은 더욱 커진다. 그는 명을 내려, 장황후, 월왕 이계등을 모조리 참수시킨다. 연루된 백여명도 모조리 죽이고 구족을 멸한다. 


다음 날, 이보국은 이예에게 효복을 입게 하고, 대신들과 만나게 한다. 이보국의 옹립하에 이예는 당숙종의 영전에서 즉위한다. 그가 바로 당대종이다.


이보국피살의 수수께끼


이예가 즉위한 후, 비록 이보국의 권력전횡에 불만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황제로 옹립해준 공이 있어서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보응원년 오월, 당대종은 이보국을 사공 겸 중서령으로 봉한다. 이보국은 당나라때 처음으로 환관신분에 재상에 오른 인물이 된다. 그는 여러 해동안 꿈꾸었던 재상의 꿈을 이룬 것이다.


이뿐 아니라, 당대종은 이보국을 '상부(尙父)'로 칭하고 식읍 팔백호를 내린다. 그러나, 이보국은 여전히 만족할 줄 몰랐다. 그는 이전보다 더욱 발호하며, 심지어 공공연히 당대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가(大家, 당나라때 환관은 황제를 대가라고 불렀다)는 그저 궁중에 앉아만 계시면 됩니다. 바깥의 일은 모두 노노(老奴)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기세가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당대종은 비록 불쾌했지만, 이보국의 권세가 두렵고, 자신은 금방 황제위에 올라 정국이 불안정하여 그저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보국의 권력전횡은 마침내 한 사람의 불만을 부른다. 그는 바로 이보국의 심복인 정원진이다. 정원진은 스스로 이보국에게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여 현재의 직위에 불만이 있었다. 그의 야심은 이보국의 자리를 차지하여 정치적 핵심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원진은 당대종의 앞에서 이보국의 죄상을 열거하고 당대종에게 제재할 것을 간청한다. 당대종은 원래 이보국에게 불만이 있었다. 현재 정원진이 그를 지지해주자, 그의 말을 따르게 된다. 정원인이라는 환관을 이용하여 이보국이라는 환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해 육월, 당대종은 온화한 얼굴로 이보국에게 말한다: "이공공, 당신은 삼조의 노신이다. 우리 대당왕조에 큰 공로를 세웠다. 짐은 그대의 공이 높고 노고가 많으며 나이도 많은 점을 고려하여, 이제 휴식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군무가 너무 번잡하니 정공공에게 넘기는 것이 어떻겠는가. 당신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 몇년동안 너무 고생이 많았다."


이렇게 하여 이보국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원수행군사마와 병부상서의 직위를 빼앗기게 되고 정원진이 그 직위를 넘겨받는다. 그리고 그에게 황궁에서 나가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보국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정원진을 보았으나, 정원진은 눈빛을 피했다. 백성들은 이보국이 파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서로에게 전하여, 장안성이 환호성에 휩싸인다. 이보국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거국상하가 모두 그를 욕하게 되니, 할 수 없이 상소를 올려 사직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대종은 바라마지 않던 것이어서 그 기회에 그의 중서령의 직위를 파면시키고 그를 박륙왕(博陸王)에 봉하고, 그에게 북경으로 들어와 조배(朝拜)할 수 있도록 윤허한다. 이보국은 정말 꿀먹은 벙어리처럼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보국이 중서령에서 파면된 후, 마지막으로 중서성에 가서 사표(謝表)를 쓰고자 한다. 그가 막 중서성의 문턱을 들어섰을 때, 당직관리는 큰 소리로 야단친다: "당신은 이미 재상에서 파면되었으니, 이 문으로 들어올 수 없다." 이보국은 방법이 없었다. 화가나서 당대종이 면전으로 달려가서, "이 늙은 신하는 당신을 더 이상 모실 수 없을 것같습니다. 이제 구천지하로 가서 노황제를 모셔야겠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당대종은 그가 마음 속으로 원한을 품고 있는 거을 알았고, 할 수 없이 조서를 내려 그를 안위시키고 그를 장안에서 내보낼 준비를 한다.


이보국이 장안을 떠나려고 할 때, 보응원년 십월 십팔일 저녁, 한 자객이 담장을 넘어 이보국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들어있는 이보국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의 머리와 오른팔을 잘라서 떠난다. 불의를 많이 저지른 이보국은 마침내 이렇게 죄많은 일생을 마쳤다. 당시 나이 59세였다.


이보국이 죽은 후,당대종은 관련부서에 명하여 자객을 추포하라고 한다. 그리고 나무로 머리를 만들어, 이보국의 머리없는 시신을 매장한다. 그리고 그를 태부(太傅)에 추서한다.


이보국은 어떻게 하여 돌연 피살된 것일까? 역대이래로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사학계에는 3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 견해, 당대종이 태자로 있을 때, 이보국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다. 일찌감치 원한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복수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게다가 이보국은 이담도 죽였다. 성지를 거짓으로 만들어 당현종을 태극궁으로 옮기게 하기도 했고, 황궁을 둘러싸서 당숙종이 놀사서 죽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당대종에게는 원한에 원한이 쌓인 것이니 이보국을 없애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신의 부황과 동생을 위하여 복수한 것이다. 다만, 이보국은 당대종이 황제가 되는데 옹립한 공로가 크다. 당대종이 드러내놓고 손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암중으로 이보국을 암살한 것이다. 밤에 그의 머리와 팔을 태릉으로 보내어 죽은 자에게 제사지내고 다시 자객을 죽여서 살인멸구했다.


둘째 견해, 정원진은 이보국과 틈이 있었다. 그의 수하로 고생을 많이 했다. 나중에 관직이 올랐지만 여전히 이보국으로부터 멸시당한다. 정원진은 이보국의 뒤를 이어 원수행군사마와 병부상서의 직위에 올랐다. 비록 이보국이 병력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보국의 옛 부하들이다. 그래서 복종을 받아내기 어려웠다. 정원진은 일을 하려면 철저히 끝까지 하려고 생각했고, 이보국을 죽여버렸다. 그렇게 하여 이보국의 옛 부하들을 겁주려 한 것이다.


셋째 견해, 이는 민간의 자객이 이보국을 암살했다는 설이다. 모든 직위를 빼앗긴 것은 그저 이보국의 정치생명이 끝난 것을 말하지, 그가 범한 죄행은 만번을 죽여도 백성들의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민간의 협객이 이보국의 집으로 들어가, 그를 죽여버렸다. 어떤 사람은 항주에서 일찌기 용모가 특이한 무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무사는 아문에서 일을 했다. 한번은 술을 마신 후 실언을 했는데, 그가 이보국을 죽인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비록 이보국의 죽음은 천고의 수수께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첫째 견해가 비교적 믿을만하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