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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보로(保路)"운동의 역사진상

by 중은우시 2014. 11. 1.

글: 풍학영(馮學榮)

 

 

 

 

우리는 모두 거의 알고 있다: 1911년 여름, 사천 성도에서 '보로운동'이 발생한다. 이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예전의 견해는 이렇다: 무능한 청왕조가 '천한철로(川漢鐵路)'를 제국주의 열강에 팔아먹었고, 용감한 사천인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항하여, 결과적으로 만악의 청왕조는 인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사실상, 이 사건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 일의 내막을 얘기하자면 아주 우습기 그지없다.

 

사정의 내막은 기실 이러하다:

 

천한철로는 민영회사이다. 원래 주식1400만냥은자를 모집하였고, 그중 700만냥의 은자는 이미 철로건설에 투입되었다. 나머지 700만냥중 400만냥은 아직 장부에 남아 있었는데, 300만냥은 회사의 '시전장(施典章)'이라는 경리가 횡령하여 상해로 가서 주식에 투자했다 그리고 모조리 날려버린다.

 

이 장부를 자세히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700만냥: 이미 철로건설에 투입됨

400만냥: 아직 장부에 남아 있음

300만냥: 회사경리 시전장이 횡령하여 상해에서 주식투기하다가 날려버림.

 

회사자본금을 횡령하여 300만냥이 사라진 것이다. 어떡할 것인가? 주주들에게는 뭐라고 할 것인가? 회사경영진들은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모두 이 일은 입을 다물었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쉬쉬했다.

 

마침 이러한 때, 청정부가 강제로 이 '천한철로'를 매입하여 국유화하려고 하였다.

 

청정부는 왜 그렇게 하였을까?

 

왜냐하면 창정부는 당시에 열강에게 돈을 빌려야 했는데, 열강은 저당물을 요구한다. 청정부는 그래서 '천한철로'를 국유화시킨 다음, 이를 담보로 열강에 제공하고, 열강으로부터 돈을 빌리고자 하였다.

 

청정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확실히 '인민의 사유재산을 침해한 것'이었다.

 

철로회사는 민영기업인데, 국유화하고 싶다고 바로 국유화할 수 있겠는가.

 

다만, 청정부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철로사업은 천연적으로 독점성이 있다. 원래 정부가 경영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때, 천한철로의 경영진은 정부가 이 철로를 매입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이 기회에 정부의 돈을 받아 챙기려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300만냥의 구멍을 메우려 한 것이다. 그래서 경영진은 정부에 가격을 제시한다: 정부에서 매입하려면 좋다. 1400만냥을 내놓아라.

 

청정부는 천한철로의 장부를 조사한 후, 아래와 같은 보상방안을 마련한다:

700만냥: 청정부가 주식으로 보상한다.

400만냥: 청정부가 주식으로 보상한다.

300만냥: 이 부분은 정부와 관련이 없어, 정부가 보상하지 않는다.

 

청정부의 뜻은 명확하다: 너희 회사의 경리가 스스로 300만냥의 돈을 횡령하여 날려버렸는데, 우리와 무슨 관계인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나는 보상해줄 수 없다. 투기하여 돈을 손해본 사람에게 가서 책임을 물어라.

 

이렇게 되자 천한철로의 경영진은 당황한다: 이 보상방안대로라면, 주식투기로 날린 300만냥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주주들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 사천의 많은 주주는 강호의 흑사회(조직폭력단)세력인 "포가(袍哥)"와 관련이 있었다. 경영진이 그들의 돈 300만냥을 횡령했는데, 만일 주주들이 안다면, 포가가 나서서 목을 베지 않는게 이상할 것이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경영진은 계책을 하나 마련한다. 그래서 아예 '반제애국(反帝愛國)'의 구호를 내건다. "정부가 천한철로를 열강에 담보로 제공하려 한다. 그것은 매국행위이다" 아예 주주와 인민대중을 선동하여, 기세가 대단한 시위와 행진을 벌이게 된다. 이렇게 정부에 압력을 가한 것이다. 청정부가 원래의 국유화계획을 백지화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그 결과 '사천보로동지회'가 성립되고, 사방에서 파업, 파시(罷市)를 벌인다. 사천당국은 그중 몇몇 우두머리를 체포한다.

 

이렇게 되자 사건이 커진다. 인민대중이 사천총독부로 몰려간다.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한다. 수천의 새카만 사람들의 머리가 총독부로 향하게 된 것이다.

 

총독부는 당연히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었다. 총독부의 관리들은 이들 '조민(刁民)'들이 이렇게 '야만'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이렇게 '이치를 따지지 않으니' 부하들에게 사격을 명령한다.

 

펑,펑,펑,펑.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총독부의 문앞에, 그리고 길거리에 32구의 시체가 널부러진다.

 

청정부의 생각도 고집스러웠다: 너희 회사의 경리가 주식투기하다가 300만을 날렸는데, 너희가 그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해야지 왜 우리에게 달라고 하느냐. 너희는 뻔히 사실을 알면서 깡패처럼 구는 것이 아니냐. 이는 군중을 모아서 반란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다만 실제로청정부는 당시에 아마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공민의 사유재산은 신성불가침이라는 것을. 정부에서 강제로 민영회사를 매수하려는 것 자체가 원래 문제였다는 것을.

 

즉, 비록 천한철로의 경영진이 요구한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강제로 매수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비록 철거민이 엄청난 높은 가격의 보상을 요구하더라도, 어쨌든 그의 재산이고. 그는 원래 팔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비싸면 안사면 될 게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당연히, 철로사업은 확실히 자연적인 독점사업이다. 정부에서 국유화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업무처리에서는 잘 처리해야 하는 것이고, 예술적으로 하여야 한다. 협상을 위주로 하고 인민군중의 돈의 득실에 관련되면 더더욱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이 이치는 조금만 행정업무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얘기하자면 이 사건에서 진정 불쌍한 사람은 그 32명의 죽은 사람들이다. 기실 이들은 내막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300만주식투기실패'의 내막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기실 천한철로의 경영진들의 선동에 속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역사는 피의 교훈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참가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사실의 진상,내막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보로운동'이 발발한 후, 청군은 명을 받아 무창에서 출발한다. 급히 사천으로 가서 난을 진압한다. 그리하여 무창의 병력은 비게 된다. 그리하여 무창에 남아서 지키고 있던 신군의 일부는 이 기회를 틈타 '무창의거'를 일으켰고, 이어서 청정부는 무너지게 되었다.

 

300만주식투기실패가 청정부의 멸망을 몰고온 도미노패였다.

 

역사는 이렇게 아이러니하고, 가소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