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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과 일본

2차대전후 중일관계는 왜 악화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14. 8. 27.

글: 정동(丁咚)

 

오늘은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하여 투항한지 69주년되는 기념일이다.

전후 초기에 일본의 지역을 나누어 점령한 국가에는 중국(당시에는 중화민국이 대표했다), 미국, 소련, 영국등 4개국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의 피와 포화속에 형성된 국제질서는 현실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고, 신속하게 와해되고 각각 소련을 우두머리로 하는 바르샤바조약진영과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나토조약진영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이렇게 하여 깊은 영향을 미친 냉전이 전개된다. 5개의 당사국의 운명도 이에 따라 거대한 변화가 발생한다. 연합군가운데 소련과 중국은 이데올로기가 같아서 이 냉전의 한편이 된다. 미국, 영국, 일본은 또 다른 한편이 된다. 일찌기 일본의 격렬한 저항을 포기시키고 패전결과를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핵심역할을 한 미국과 소련의 두 나라는 수십년간의 냉전을 거친 다음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패권국가로 굴기하고, 소련은 일찌감치 붕괴된다.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중소는 동맹을 맺었다가 반목하여 원수가 되고, 변방에서 백만병력을 두고 서로 대항하게 된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원수국가는 강철같은 동맹국가가 되어 서로 지지하고 버팀목이 되어 준다. 상호적대에서 동주공진(同舟共進)하는 국제관계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 역사의 전행과정에서, 글로벌정치판도와 지연정치국면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다만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서방체제가 점차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것이 역사의 추세였고, 냉전의 종말은 더더욱 가장 관건적인 장애를 제거해주었다.

 

패전국인 일본에 있어서, 져도 미국, 이겨도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없으면 일본은 그렇게 빨리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강성한 일본도 없었을 것이다. 전자에 있어서,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여 일본 조야의 심리적인 방어선을 붕괴시켰고, 직접적으로 일본 히로히토 천황이 <종전조서>를 발표하게 만들었다; 후자로 말하자면 전후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미국은 일방적으로 일본을 점령하는 지위를 차지한다. 이로부터 자신의 모델에 따라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대하여 전면적인 개혁을 진행시킬 기회를 갖는다. 일본에 민주체제를 성립시키고, <평화헌법>을 만들게 하여, 자신의 군사적보호하에 두게 된다. 일본은 이를 통하여 군국체제를 폐지하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발전을 도모하여 경제에 있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한대 전세계 2위국가가 된다. 이와 동시에, 일본도 "삼변위원회(三邊委員會)"의 협조하에 점차 서방체제에 흢되고 G7에 들어간 것은 바로 그 중요한 표지이다.

 

전후초기, 중화민국은 일찌기 전승국의 하나로서 일본에 대한 군사점령에 참가한다; 냉전후, 중국대륙과 일본은 각각 양대진영에 속하여 적대관계가 된다. 미중관계가 완화되는 배경하에서, 일본은 비교적 일찌기 중국과 정식외교관계를 체결한다. 중국은 스스로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요구를 포기하고, 개혁개방과정에서 일본의 원조를 받는다. 중일은 밀월기를 보냈다.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일본은 서방체제의 일원으로서 중국을 제재하는 행열에 참가한다. 중일의 밀월관계는 이로써 끝이 난다. 그러나, 중일간의 경제무역, 정치, 문화교류는 여전히 밀접했고, 쌍방은 서로간에 중요한 무역파트너였다. 각 층면의 정치, 문화교류도 아주 빈번했다.

 

역사가 21세기에 접어든 후, 중일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바뀐다. 쌍방은 역사인식, 영토, 주권과 지연정치의 여러 방면의 요소로 갈수록 다양하고 갈수록 심각한 이견, 갈등 마찰 내지 충돌이 발생한다. 그것은 아베 신조의 제2기임기를 맞이하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일부 중국인들이 보기에 패전한 일본은 마치 전쟁이 중국에 끼친 상처를 잊어버린 것같고, 중국의 발전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을 느껴진다. 역사, 영토, 주권등 문제에서 중국과 맞서고 중국과 지역정치에서 패권을 다투고자 하는 것같다.

 

중일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중요한 배경은 냉전이 끝난 후, 중국은 서방의 눈에 소련을 대신하여 서방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잠재적인 국가라고 인식되었으며, 이질적인 중국의 발전은 서방의 전체적인 이이게 관련되고, 국제관계의 안정에 관련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은 서방체제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반드시 서방과 일치된 입장을 취하여야 한다. 특히 미국과는 일치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또 다른 배경은 중국의 여러해동안 고속발전한 후 규모가 더욱 방대해져서 경제의 총량이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2위로 도약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가이익은 전통적인 내륙에서 해양으로 뻗어갔고, 지역정치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자신의 국가이익을 보호하는 동시에,지역정치에서 더 많은 발언권과 게임규칙제정권을 갖고자 했다. 이것은 역내의 기존 전략적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지역내 많은 국가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여기에는 일본의 이익 및 현존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미국과 서방의 이익이 포함된다. 외부에서는 중국이익의 확장이 나중에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축소 내지 침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긴다. 중국이 주관적으로 그런 의도를 지녔든 아니든 간에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역내의 많은 국가는 불안을 느낀다. 미국의 역내존재를 강화해줄 것을 강력하게 바라는 것이다.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월남등 여러 나라들은 일찌기 공개적으로 이런 뜻을 표명했다. 이는 중국이 역내에서 심각한 동일성위기에 부닥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과 중국의 겨루기는 많은 의미에서 역내전략균형에 대한 고려가 담겨 있다. 이는 일본, 미국 및 역내 다수국가의 이익수요에 맞아떨어진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은 시기를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중국과 '맞설 수 있는" 바탕이다. 최근 아세안국가는 극력 협조하고 타협하여 외교부장관회담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중국에 함축적인 비판을 담았고, 은연중 중국에 국제규칙을 따르도록 요구하였는데, 바로 그러한 것이 나타난 것이다.

 

댜오위다오 주권분쟁, 역사인식문제는 모두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여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주권을 얘기하자면, 미국은 일본에 대량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일본을 군사적으로 보호한다. 주권의 각도에서 보자면, 일본은 주권이 없는 국가이거나 혹은 주권이 불충분한 국가이다. 이런 국가가 중국과 주권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역사인식으로 말하자면 전승국의 하나로서, 일본정치청사진의 설계자 및 일본현재의 실제보호국인 미국은 중국보다 더욱 신경써야할 나라이다. 미국은 그런데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같다. 이것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