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양기(梁冀): 동한(東漢)의 무법자부부

by 중은우시 2014. 8. 26.

글: 진사황(秦四晃)

 

양기는 요즘 말로 하자면, 절대로 대단한 한 마리의 "호랑이"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처인 손수(孫壽)도 남편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건귁불양수미(巾幗不讓鬚眉)했다. 천생 한 쌍의 자웅반려이고 탐욕이 많았다.

 

양기는 동한의 명문집안 출신이다. 부친 양상(梁商)은 한순제(漢順帝)때 대장군을 지냈고, 여동생은 황후이다. 이런 가정배경이니 처음부터 양기는 관직이 수도부근의 최고행정장관인 하남윤(河南尹)을 맡는다.

 

부친 양상이 죽고 아직 매장되기도 전에 대장군의 인수(印綬)는 양기의 손에 넘어온다. 그후 수십년간, 동한은 거의 양씨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순제 유보(劉保)가 죽자, 아직 강보에 쌓인 한충제(漢沖帝) 유병(劉炳)을 황제에 올린다. 반년만에 유충이 붕어하고, 양기는 8살된 유찬(劉纘)을 황제에 올린다. 그가 한질제(漢質帝)이다. 그러나 유찬은 나이가 어렸지만 강단이 있었다. 양기의 전횡과 독단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를 "발호장군"이라고 부른다. 양기는 어린아이가 감히 자신에 맞서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좌우를 시켜 독약을 전병에 넣고 끓여서 황제에게 올려, 황제는 바로 죽는다" 독양이 든 전병으로 황제를 저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양기가 새로 찾은 황제는 유지(劉志)이다. 그가 한환제(漢桓帝)이다. 이제 양기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권력이 무한히 커졌고, 그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었다. 탐(貪), 사(奢), 색(色), 광(狂), 폭(暴). 횡횅무기(橫行无忌)했다.

 

부인은 남편이 귀해지면 따라서 귀해진다. 양기의 부인 손수는 남편때문에 한환제의 의하여 파격적으로 양성군(襄城君)에 봉해진다. 그리고 양적(陽翟)의 조(租)를 식읍으로 주었다. 이는 호북에 자리잡고 앉아서 하남까지 관장하는 셈이다. 의복이나 나들이의 규격은 황제의 자매와 동등했다.

 

이 부부는 얼마나 탐욕스럽고, 얼마나 호화사치했으며 음탕했을까?

 

첫째, 강탈(强奪). 부풍(扶風) 사람 사손분(士孫奮)은 대부호였다. 다만 성격이 아주 구두쇠였다. 양기는 일부러 사손분에게 5천만을 빌려달라고 한다. 사손분은 양기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개에게 고기만두를 던져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잘 알았다. 돌려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빌려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이를 악물고 3천만을 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양기는 그 말을 듣고 그가 감히 자기와 흥정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여 지방관리에게 밀명을 내려, 사손분의 모친이 주보(珠寶)를 훔쳤다고 모함하게 한다. 이를 빌미로 사손분의 일가족을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는다. 사손분은 감옥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 후에 사손분의 재산 1억7천여만은 모조리 양기의 차지가 된다.

 

둘째, 침탄(侵呑). 조정에서 쓰는 돈은 각지에서 온다. 매년 명절이 되면 또한 공물을 바친다. 그러나 각지에서 경성으로 운송하는 물자와 진공하는 예물은 모조리 양기의 장원에 먼저 펼쳐놓는다. 그가 먼저 좋은 것을 고르고 나서, 다시 황제와 군신들에게 보낸다.

 

셋째, 수뢰. 권세가 커지면 아부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 양기는 오는 사람을 막지 않았다. 그에게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으려는 자들이 집앞 도로에 줄을 늘어섰다. 수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왔지만 양기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양기집안의 문지기에게 돈을 가져다 주어야 했다. "손님이 문을 들어갈 수 없었다. 모두 문지기에게 돈을 주고서야 들어갔다. 문지기가 모은 돈이 천금에 이른다." 그외에 관리의 승진에도 모두 양기의 집에 감사인사를 돈으로 해야 했다. 그 후에야 상서성에 가서 인사명령장을 받는다. 나중에 양기가 쫓겨나면서 그의 집에서 재물을 몰수했는데, 개략 계산해도, "합계 삽십여억, .... 전국연간세수의 절반이었다."

 

넷째, 호화사치. 양기부부의 호화사치가 어떠했는지 제대로 느끼려면 <후한서>의 원문을 보면 된다. "양기는 저택을 크게 공사했고, 손수도 도로를 막고 공사를 했다.....침실은 모두 음양오실이 있고, 방을 연결시켰다. 기둥에는 조각을 하고, 구리로 칠했다. 창문은 모두 비단으로 만들고 운기선령(雲氣仙靈)을 그려넣었다. 대각(臺閣)은 두루 통하도 서로 마주보았다. 금옥주보는 방안에 가득했다. 한혈보마를 두었다. 넓게 정원을 만들고, 흙으로 산을 쌓았다. 십리구판(十里九坂)에 이효산(二崤山)와 닮았다. 숲은 깊고, 시내가 흐르며 자연스러웠고, 기금이수가 그 사이에서 살았다." 이것은 양씨부부의 부동산이다. 두 사람이 평소에 타던 가마와 장면을 보면: "양기와 손수는 모두 연거(輦車)를 탔는데 우개(羽蓋)를 펼쳤고, 금은으로 장식했다. 집안을 유람하며 구경할 때, 창기가 여럿 따르면서 음악을 연주했다. 밤낮으로 계속하여 놀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사냥장도 가지고 있었다.

 

다섯째, 음일(淫逸). 하나의 예를 들면 모든 것이 설명될 것이다. 양기는 황제의 여자까지도 건드렸다. 그의 부친은 한순제에게 우통기(友通期)라는 미인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는 작은 잘못을 저질러 황궁에서 쫓겨난다. 양기는 몰래 그녀를 데려와서 성의 서쪽에 집을 짓고 살게 해주었다. 양기가 가는 곳이면 수하를 시켜 노래와 춤을 잘하는 미녀들에게 모시게 하였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처를 빼앗아서 즐기기도 하였다. 만일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일가족을 몰살시켰다.

 

여섯째, 잔폭(殘暴). 양기의 탐욕, 수뢰, 교만, 사치는 정직한 인사들의 미움을 산다. 그러나 대다수는 화는 나지만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양기는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이다. 오수(吳樹)라는 현령이 있었는데, 양기가 그 현에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을 돌봐달라고 하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서, 원한으로 기억했다가. 오수가 경주자사로 가면서 양기에게 인사를 할 때, 양기는 주연을 베풀어 대접하면서 술 속에 독을 탄다. 오수는 양기의 집을 나서서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자신의 가마에 쓰러져 즉사한다. 요동태수 후맹(侯猛)은 승진하고서도 양기에게 배알하는 것을 잊었다. 그후에 핑계를 잡아서, 그를 요참어시(腰斬於市)당한다. 19살에 처음 세상에 나온 낭중 원저(袁著)는 양기의 흉악한 모습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상소를 올려 탄핵한다. 그러나 양기가 비밀리에 그를 추포한다. 원저는 어쩔 수 없이 성과 이름을 바꾸고 사방으로 도망다녔다. 결국 마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양기에게 붙잡혀 채찍에 맞아 죽는다.

 

양씨부부의 탐욕, 사치, 음일, 잔폭은 어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가? 말하자면 실로 우습기 그지없다.

 

이 부부는 용모나 행동거지가 남달랐다. 먼저, 양기를 보자, 그는 매처럼 높이 솟은 어깨를 지니고, 두 눈은 승냥이같았다. 눈빛은 날카로웠고, 말은 웅얼웅얼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만일 양기의 이런 특색은 천성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의 부인인 손수의 특이한 점은 꾸며서 만들어낸 것이다. 손수는 용모가 예쁘고 교태를 잘 부폈다.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는 것같이 화장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한쪽으로 모아서 틀기도 하고, 길을 걸을 때 허리를 흔들고, 웃는 것은 이빨이 아픈 것같았다. 이렇게 하여 남자들을 홀렸다.

 

이 두 부부는 서로 부를 경쟁했다. 양기가 토목공사를 대거 벌여서 저택을 짓자, 손수는 남편이 집을 짓는 건너편에 부지를 구해서, 역시 저택을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보다도 더 기백이 있었다. 공사를 순조롭게 하기 위하여 아예 도로를 막아버린다.

 

이 두 부부는 서로 자신의 즐거움을 찾았다. 양기는 바깥에서는 위풍당당했지만, 집안에서는 공처가였다. 그가 성서에 우통기를 몰래 감춰두고 있다가 부인에게 발각된다. 하루는 양기가 집을 나서는데, 손수가 한 무리의 사람을 데리고 성서의 우통기의 집으로 몰려가서 우통기를 붙잡아 집으로 끌고 온다. 그녀의 머리칼을 뽑고 얼굴을 망가뜨리고, 채찍으로 그녀를 심하게 때린다. 양기는 그 소식을 듣고도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급히 장인의 집으로 가서 장모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노인네가 가서 딸을 말려주도록 간청한다. 손기는 양기와 우통기의 사이에 사생아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백옥(伯玉)이라는 말을 듣고, 사방으로 그 사생아를 찾아다닌다. 놀라서 양기는 백옥을 벽 사이에 숨겨둔다.

 

더욱 웃기는 일은 손수가 나중에는 남편 양기가 바깥에서 여색을 밝히는데 대하여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나도 피우겠다는 것이다. 손수도 밖에 애인을 만들어서 몰래 즐겼다. 손수의 애인이 누구일까? 바로 양기가 가장 신임하는 감노(監奴)로 이름은 진궁(秦宮)이었다. 이제 서로 자기가 즐기기에 바쁘니 상대방에 신경쓰지 않게 된 것이다. 손수는 시간만 나면 진궁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노비들을 내보냈다. 말로는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대낮에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상의'를 했다. 진궁도 부자집 마나님 손수와 지내면서 몸값이 오른다. 자사와 같은 조정관리들까지도 그에게 잘보이려 아부했다.

 

두 부부가 죽자 조정이 난리가 난다. 한환제 유지가 친히 지휘하여 양기라는 암을 제거한다. 이 부부는 권력자로서 평소에 조정에 자신의 심복을 모조리 심어놓았다. 양기 부부가 자결했다는 말을 듣자, 동한의 조정에는 듣도보도 못한 기이한 광경이 벌어진다. 조정관리들 중에서 양기부부의 심복으로 자살한 사람이 수십명이고, 쫓겨난 사람이 삼백명에 이르렀다. 그래서 조정이 텅 비었다. 일시에 조정에는 겨우 3명만이 남는다. 고금중외에 이런 경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양기는 이십여년간 권력을 장악"하면서 백관들이 그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고, 천자도 허수아비가 된다. 그들 둘이 자결하고나자 양씨, 손씨 두 가족과 일족은 모조리 감옥에 붙잡혀 들어간다. 얼마후에 노소를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참형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