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학/삼국연의

<삼국연의>는 "존유폄조(尊劉貶曹)"인가?

중은우시 2014. 5. 30. 09:21

글: 조종국(曹宗國)

 

역대이래로 논자들은 <삼국연의>에 '존유폄조'의 경향이 있다고 말해왔다. 필자는 기실 이것은 나관중을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관중은 확실히 유씨 한왕조의 정통관념을 떠받들었다. 다만 유비를 정통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짜정통의 전형으로 썼다. <삼국연의>는 기실 난세에 영웅으로 등장하여 쟁패하는 3가지 대표적 인물을 보여준다; 첫째는 간웅 조조이고, 둘째는 가짜정통 유비이며, 셋째는 군벌 손권이다. 나관중은 이 세 가지 대표인물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각자 '천추'가 있다고 적었지, 어느 하나를 떠받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독자들은 소설이 '존류폄조'라고 느끼는가? 그것은 조조의 간웅은 외향적이어서 그는 무슨 추악하고 악독한 일도 감히 말하고 감히 행했다. 친구를 죽이고 여자를 빼앗고...때리고 죽이고 전혀 가리는 법이 없었다. 희노애락을 그대로 들어낸다. 그러나 유비의 가짜정통은 허위적이다. '희노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말을 하고 행하는 것이 가인가의(假仁假義)이다. 진실한 추악함을 뼛속에 감추고 있다. 그래서 무수한 천애과객들을 속여넘긴 것이다. 일반독자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노신은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중국소설사략>에서 <삼국연의>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유비의 장후이사위(長厚而似僞)를 들어내고자 했다. 기실 나관중이 원래 쓰려고 한 것은 그의 '위(僞)'이다.

 

유비의 가짜정통은 그의 일관되게 입으로 떠드는 인의도덕이나 그가 베푸는 작은 은혜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가 정치적으로 처한 극복할 수 없는 모순 가운데 있다. 첫째, 유비는 내력이 불분명하다. 신분이 의심스럽다. 짚신을 삼던 자가 황숙을 칭하는 것 자체가 가짜라는 것이다. 그와 무슨 중산정왕은 조그만치도 관계가 없다. 이런 위조된 족보로 명인의 후예를 사칭하는 것은 현재에도 성행하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유비의 정치적 구호가 한황실의 종친으로 한나라의 정통을 보호하는 것이고, 인의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필생사업은 진정한 한황실 종실인 유표, 유장의 손에서 형주, 서천을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칭왕칭제한다. 그 자체는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첨예한 모순이고 날카로운 풍자이다.

 

그렇다면, 가짜황숙이 진정한 한황실을 찬찰하였는데, 유비와 조조의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과는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손권의 할거칭패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무슨 인의를 얘기할 게 있는가? 조조의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은 바로 영웅을 논한 것인가? 그는 분명히 말했다. 유비야, 너도 더 이상 가장하지 말라. 우리 둘은 같은 사람이다. 모두 꼬리가 긴 늑대이다. 이런 인생궤적과 이야기구조는 바로 유비의 가짜정통, 가짜인의의 대표인물이라는 속성을 확실히 한다. <삼국연의>는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유비의 일생을 묘사했다. 그를 자체 모순되는 석쇠 외에 올려놓았다. 이것을 '존류'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삼국연의>는 또한 유비가 이처럼 자체모순되는 정치적행위에서 여러가지 사기, 허위 내지 난감하고 비열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유비가 유표의 손에서 형주를 탈취할 때, 유표의 한실정종 내지 지방세족의 명망은 실로 너무나 컸다. 그는 부득이 조심스럽게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신야에서 유표를 대신하여 조조를 막고, 유표가 죽고나서도 감히 대리인을 맡겠다고 하지 못한다. 다만 나관중은 이 자가 부주의하게 마각을 드러내게 하였다. 한번은 유표와 한담하면서 조조와 자주논영웅한 이야기를 꺼낸다. 거기서 한 마디를 한다. "흥...나에게 한 조각의 땅만 주어진다면...." 유표는 그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자는 자신이 실언한 것을 알고는 급히 화장실로 도망쳐 버린다. 이것은 그가 유표의 앞에서 가짜정통행세를 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은 기량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경과오를 저지른다. 이를 위하여 유비는 조조에게 들개처럼 쫓김을 당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또한 동오의 앞에서도 유표를 빌어 한황실정통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오히려 위곡구전(委曲求全)하게 손권ㅇ이라는 이 토호에게 '형주를 빌린다". 심지어 손씨집안의 사위가 되기까지 한다. 생각해보라. 만일 그 유비가 진짜 황숙이라면, 이렇게 해야 했을까?

 

나중에 유장에게서 서천을 빼앗을 때, 유비는 이 교훈을 이미 익혔다. 그래서 정통의 기치를 내걸고 반정통의 음모궤계를 멋지게 성사시킨다. 취서천은 원래 제갈량이 기획한 것이고 유비의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는 야심이다. 또한 이를 위하여 유장의 곁에 있는 장송과 법정을 매수한다. 다만 그는 그래도 유장이 적극적으로 '원천항조(援川抗曹)"를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 자신은 형제라는 신분으로 병력을 이끌고 사천에 들어간다.

 

유장은 친히 멀리까지 마중을 나오고, 방통은 홍문연을 펼칠 것을 건의하지만, 유비는 단연코 거절한다. 그리고 가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인의를 잃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나오면서, 반드시 조조와 반대되는 식으로 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조조는 폭력으로 나는 관대함으로, 조조는 이익으로 나는 의리로, 조조는 조급함으로 나는 느긋함으로, 그래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그가 실제로 고려한 것은 "처음에 다른 나라로 들어가서, 은혜와 신의가 아직 두드러지지 않은데, 그렇게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여서는 인심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제둘은 서로 관직을 봉하고, 장로를 친다는 명분으로 유장이 영지와 군수를 대량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유비의 군대가 북상하여 면양과 양평관의 사이에 있는 가맹(葭萌)(지금의 사천성 광원 경내)에서 멈추고 이때부터 대거 인심을 얻으며 자신의 대오를 발전시킨다.

 

유비가 어디 장로를 치러 갔는가? 그는 유장을 칠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통인의라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도록, 유비는 시기를 기다린다. 유장이 불인불의의 죄명을 뒤집어쓰도록기량을 쓴다. 212년, 조조가 제2차로 남정하여 손권을 친다. 손권은 자신의 매부이자 맹우인 유비에게 긴급구원을 청한다. 유비는 기실 손권을 구하러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장에게 서신을 써서, 자신은 현재 구원하러 가지 않으면 조조가 반드시 형주를 취할 것이므로 급히 돌아가서 본거지를 방어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의로 사자대기구(獅子大開口)하여 유장에게 1만군대와 상응한 군수물자의 지원을 요청한다. 유장은 원래 이미 유비가 장로를 치는 것을 계속하여 늦추는데 불만이 있었고, 그의 진실한 의도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물자를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형제의 체면을 봐서 그에게 4천명과 절반의 양초를 준다. 그리하여 유비는 이를 핑계로 추궁을 하여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당시 방통조차도 유비의 허위를 간파하지 못한다. 그래서 묻는다: "너는 형제는 인의를 강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유비는 화를 벌컥내며 방통을 물러가라고 한다.

 

<삼국연의>에 비록 방통의 사망이 유비를 노하게 만들었다고 적었지만, 유비의 진면목을 진정으로 드러내게 된 것은, 기실 장송의 형인 장숙이 유장에게 장송과 법정이 일찌감치 유비에게 의탁했고 서천을 취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죄행을 고했을 때이다. 그리하여 유비의 가면은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의 가짜정통은 실재로 더 이상 끌고갈 수 없게 된다. 깡패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번 나쁜 짓을 하면 끝까지 해버리는 것이다. 유방이 투항하여 성을 바칠 때까지. 그리하여 서천을 점거하고 촉한을 세우고 황제에 오른다. 조조가 생전에 감히 하지 못했언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비가 서천을 취득한 것은 기실 가짜정통이 그대로 폭로된 것이고, 유비의 허위와 악독함이 소설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당연히 <삼국연의>에 핵심스토리에서 유비를 가짜정통으로 묘사하는 외에, 여러가지 재미있는 장면들도 그의 허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그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고귀한 혈통을 사칭하여 관우, 장비, 조운의 존경을 얻어낸다. 그는 한실종친이라고 거짓말하여 조조, 원소, 유표등 혁혁한 귀족의 주목과 인정을 받는다. 심지어 한헌제까지 그를 황숙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유비가 등장할 때 요란하게 떠들던 것과 나중에 황실종실에게서 영토를 빼앗아 황제를 칭하는 것은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는 그의 가짜정통과 가짜인의를 더더욱 잘 드러내준다. 나관중은 유비라는 가짜정통의 인물이미지는 이처럼 진위를 구분하기 어렵게 썼다. 이처럼 고금의 여러 독자들이 미혹되게 적었다. 이것은 작자의 예술수법의 성공이며 역사상 이런 류의 인물 자체가 아주 큰 사기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특히 봉건통치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고의로 대거 선전했고, 봉건정통관념은 다시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게되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아마도, 봉건정통은 그 자체가 모조리 가짜인지 모르겠다. 진위를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삼국연의>가 '존유'라는 오해를 하는 것은 기실 역사에 대한 일종의 오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