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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

모택동의 댄스파트너인 3명의 여공군

by 중은우시 2014. 4. 6.

글: 봉황역사

 

 

진혜민(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 장옥봉(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모택동의 댄스파트너(舞伴)중에서 3명은 공군의 여전사이다. 그녀들은 각각 진혜민(陳惠敏), 유소원(劉素媛) 및 맹금운(孟錦雲)이다. 그녀들은 모두 공정문공단(空政文工團) 소속의 전사이다. 춤을 잘 추어서 중남해로 들어간 것이다. 그중 진혜민은 모주석의 댄스파트너중에서 유일한 간부자녀이다. 진혜민은 일명 진로문(陳露文)이라고도 하는데, 부친인 진옥생(陳玉生)은 일찌기 강소성 정협부주석을 지냈다. 진옥생은 일찌기 유격대를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하여 존경을 받았다. 국민당의 군대에 편제된 후, 신사군을 맞이하여 소북(蘇北)근거지를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리항 신사군(3야)제3종대사령관이 된다. 부사령관은 섭비(葉飛), 장애평(張愛萍)이다.

 

진혜민은 소학교만을 졸업했는데, 남경군구자제소학(衛崗小學)에서 공부한다. 유백승의 딸, 허세우의 딸과 동창사이이다. 1962년, 진혜민은 14살의 나이로 공정문공단의 무용배우가 된다. 그때 그녀는 1미터68의 키에 예뻤을 뿐아니라 몸매도 좋았다.

 

당시는 3년곤란시기이므로, 먹는 것이 충분치 않았다. 진혜민의 회고에 의하면, 중남해로 가서 춤을 추게 되면 그녀들에게는 좋은 점이 있었다. 저녁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밖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들이 참가하는 댄스파티는 공정, 공안문공단이 주최했고, 모택동, 유소기, 주덕등 수장을 위하여 전문적으로 여는 것이었다. 댄스장에는 백여명이 있다. 악대가 반주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일렬로 한쪽에 서서 수장들이 등장히기를 기다렸다.

 

1990년대에, 진혜민은 미국으로 이민간다.

 

 

유소원(오른쪽은 공군사령원 유아루)

 

유소원은 모택동의 공군 댄스파트너중 한 명이다. 요녕성 심양시 서부교외 대청촌 사람이다. 먼저 심양군구 공군문공단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공정문공단 총단과 합쳐지면서 공정문공단 총단에 들어가서, 가극단 배우가 된다. 일부 가극에서 무명의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1958년에 중남해로 가서 춤을 추었다. 당시 나이 18살이다. 이때부터 모택동과 특수한 관계름 맺게 된다. 이후 특히 문혁때 일부 사건에서 모택동에게 말을 전하고 일을 처리하는데 일정한 작용을 한다. 현재 일부 문학작품과 회고글에서 이 일을 언급할 때 혹은 많게 혹은 적게 그녀를 언급하고 있다.

 

1964년 9월 공정가무단은 가극 <강저(江姐)>를 공연한다. 문공단의 영도는 유소원으로 하여금 모택동을 초청하여 관람하게 한다. 연출을 본 다음 날, 모택동은 서재에서 유소원을 단독으로 만나, 극본을 수정하라고 지시한다. '쌍쌍노태파'로 하여금 '특무두목 심양재를 '체포'하도록 고치라는 것이다.

 

1964년 10월 22일, 공정문공단은 남경에서 가극 <강저>를 공연하기 시작한다. 당시 남경에서 군사회의를 주재하던 공군사령관 유아루(劉亞樓)는 공연을 볼 때 특별히 유소원을 자신의 곁에 앉게 한다. 다음 날, 유아루는 다시 유소원이 전달하는 모택동의 가극 <공저>에 관한 몇번의 담화내용을 듣는다.

 

 

 

맹금운은 모택동의 마지막 댄스파트너이다.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북사람이고 1948년생이다. 12살때 공정문공단에 들어갔으며, 무용배우가 된다. 1963년 4월, 15살도 되기 전에 맹금운은 중낰해로 가서 중앙수장의 댄스파트너가 되는 임무를 맡는다. 이때 모택동과 알게 되고, 모택동의 전문 댄스파트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