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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한헌제)

조비는 왜 한헌제를 죽이지 않았을까?

by 중은우시 2014. 2. 15.

글: 이치아(李治亞) 

 

조비는 한헌제를 몰아내고 한나라로부터 정권을 찬탈했다. 그리고 국호를 위(魏)로 고친다. 그러나 망국지군인 한헌제에 대하여 조비는 비교적 관용하게 대해주었다. 한헌제에게 잘먹고, 잘살게 해주었을 뿐아니라, 산양공(山陽公)에 봉한다. '공'은 당시의 작위인데,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중에서 공이 첫번째이다. 조비는 왜 한헌제를 죽이지 않았을까? 그는 한헌제의 사회부연(死灰復燃)이 두렵지 않았을까?

 

역사자료들을 살펴보고 얻어낸 결론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비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첫째, 조비가 건립한 조위는 기실 창업자가 조조이다. 조조는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했다. 정벌전투를 통하여 계속하여 유비, 손권이외의 군벌을 제거한다.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헌제는 조씨부자의 천하에서 아무런 실권도 없었다. 일찌감치 병졸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한헌제를 죽인다면 자신의 잔인함을 증명하는 외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둘째, 조비의 위나라는 선양의 형식으로 황위를 찬탈했다. 소위 선양이라는 것은 고대제왕이 황위를 성이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기(伊祁)성의 요(堯)가 요(姚)성의 순(舜)에게 왕위를 넘긴 것이나, 순이 사(姒)성의 우(禹)에게 왕위를 넘긴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부자상계, 형종제급(父子相繼, 兄終弟及)"의 왕위세습제와 다른 것이다. 역사상 순은 요의 왕위를 넘겨받았고, 우는 순의 왕위를 넘겨받았는데, 모두 노황제를 잘 보살펴 주었다. 이런 예절에 비추어보면 조비는 한헌제를 잘 보살펴야 마땅했다.

 

셋째, 전임황제를 죽이게 되면 그의 명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의 통치에 불리하다. 한헌제를 내심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그의 목숨을 거두는 것보다 낫다. 한헌제를 죽이면, 한헌제가 아무리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를 따르는 충신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한헌제가 무고하게 살륙당하는 것을 보게 되면 내심에서 파란이 일게 될 것이다.

 

넷째, 한헌제를 통하여 일부 사람과 일들을 견제할 수 있다. 즉, 한헌제는 이용가치가 아직 있었다. 어쨌든 당시 익주의 유비, 동오의 손권은 자신에 불리한 말들을 퍼트리고 있었다. 한헌제를 죽인다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자신의 적수만 늘이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한헌제는 일찌기 신황제 조비에게 자신의 두 딸을 준 바 있다. 이렇게 하여, 한헌제는 조비의 장인이 된다. 한 집안 식구가 된 것이다. 굳이 참초제근할 필요가 없다.

 

여섯째, 당시 조조는 한헌제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리고 한헌제를 감시하기 위하여, 자신의 세 딸을 한헌제에게 준 바 있다. 그중 한 딸이 황후가 된다. 이렇게 조비는 한헌제에게 처남이 된다. 조비가 한헌제를 죽이게 되면 자신의 세 여동생은 과부가 되고 만다.

 

보라. 황제의 집안에서는 배분을 따질 수 없다. 어지럽기 그지없다. 당연히 이것은 우리가 우려하는 바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조비가 한헌제를 죽이지 않은 것은, 한헌제가 그의 황위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제 않았다면 어떡하든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로 유혈참극을 막은 것은 나중에 서진이 조위를 대체하는데 좋은 기반이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유혈전이 언제나 끝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