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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북위(北魏): 효문제와 풍황후

by 중은우시 2013. 12. 24.

글: 우좌(于左)

 

 

 

북위 효문제(孝文帝) 원굉(元宏)은 자주 각지를 순행(巡行)하거나 혹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그럴때면 풍황후(馮皇后)는 궁중을 지키고 있었다. 적막함을 참지 못하여 태감 고보살(高菩薩)과 사통을 하게 된다.

 

나중에 효문제는 여남(汝南)에서 중병에 걸린다. 풍황후는 그 말을 들은 후, 행위가 더욱 대담하고 거리낌이 없어졌다. 자신과 고보살의 관계를 전혀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병석의 효문제가 이 소식을 들은 후의 반응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극도로 놀라면서도, 믿지 않으려 했다.

 

풍황후는 자신의 방탕한 행위에 대하여 우려하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이 한 일을 효문제가 알게 되면 자신의 지위와 목숨은 지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밖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효문제의 몸이 약간 호전되어, 이미 예주(豫州)에서 북으로 출발했으며 곧 업성(鄴城)에 도착한다고 했다. 풍황후는 더욱 당황했다. 효문제가 낙양(洛陽)으로 돌아오면, 분명 일을 추궁할 것이고,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었다.

 

풍황후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 급히 명을 내려, 궁중의 모든 태감들에게 그녀의 거처로 문안안사를 하도록 부른다. 그리고 만날 때, 풍황후는 모든 사람에게 의복을 선물하고, 동시에 극력 당부한다. 황제의 앞에서 함부로 혀를 놀리지 말아달라고.

 

그러나, 많은 입을 다 막기는 어렵다(衆口難防), 궁중의 일부 태감은 효문제를 맞이하러 갔는데, 그중에 소흥수(蘇興壽)라는 어린 태감의 궁중에서 그동안 발생한 일을 꼬치꼬치 효문제에게 말해버렸다. 효분제는 소흥수에게 비밀을 지키고, 함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하지 말라고 하고, 효문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낙양으로 돌아온다.

 

효문제는 우선 보살과 쌍몽(雙蒙)등 6명을 불러서, 그 동안의 궁중의 일을 묻는다. 이때, 사람들은 일이 이미 발각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의 죄를 감경시키고자 애썼다. 그래서 서로 고발을 한다. 이렇게 하여 구체적인 모든 사정을 효문제에게 말하게 된다.

 

믿기를 원하든 아니든, 사정은 이미 분명하게 효문제의 면전에 드러났다. 그의 그 후 반응이 아주 재미있다. 그날 밤, 효문제는 함온실(含溫室)에 누워 있었고, 보살등은 문밖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풍황후를 부른다. 문을 들어서기 전에, 효문제는 태감에게 몸을 수색하게 시킨다. 황후의 몸에서 도검이라도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처결하도록 하였다.

 

몸수색후, 풍황후는 함온실로 모셔졌다. 그녀는 곡을 하며 효문제에게 절을 한다. 효문제는 자리에 앉으라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단지 동영(東楹)의 아래쪽에 있는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다. 자신이 누워있는 곳과는 이장여(二丈餘) 떨어져 있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조치는 효문제가 이 때 이미 풍황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효문제는 보살등을 불러들이고 그 자리에서 그들이 이전에 했던 진술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 다음 효문제는 풍황후를 책문하기 시작한다. "너의 모친은 궁중에서도 무슨 요술(妖術)을 사용했다. 너는 지금 나에게 모든 것을 분명히 말해라."

 

풍황후는 현재 대전내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하기 불편하다고 말한다. 효문제는 주위의 사람들을 물린 다음 장추경(長秋卿) 백정(白整) 1 명만을 남긴다. 손에는 강도를 꽉 쥐고 곁에 서 있었다. 풍황후는 그래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어진 사태는 아주 재미있다. 효문제는 비단조각을 두 개 꺼내어 자신의 손으로 백정의 두 귀를 막고 자신의 낮은 목소리로 백정을 몇번 부르나, 백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귀가 완전히 막힌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풍황후에게 말을 하라고 한다.

 

풍황후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효문제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풍황후의 말이 끝나자 효문제는 팽성왕(彭城王) 원협(元勰)과 북해왕(北海王) 원양(元洋)을 불러들인다. 두 사람은 풍황후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효문제가 말한다: "그녀는 과거에 너희의 형수이지만, 지금은 이미 아니다. 너희가 회피할 필요가 없으니, 들어와라."

 

두 친왕이 재삼 사양하였으나, 효문제의 태도는 아주 굳건했다.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들어온다. 효문제는 풍황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할망구는 칼을 들어 내 가슴을 찔렀다. 오늘 너희가 그녀의 앞에서 직접 내 뒤에서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보라. 너희는 대담하게 추궁해도 된다. 거리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쨌든 두 부부사이의 사적인 일이므로, 두 친왕이 어찌 감히 입을 열어 풍황후를 추궁할 수 있겠는가? 결국 효문제 한 사람만이 거기서 말을 했다. 그는 격동했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두 동생에게 사죄한다. 그후에 말한다: "너희는 내가 이 여자에게 아직도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전에 나는 이미 풍씨집안의 여자를 한번 폐위시킨 바 있다. 이번에 다시 그녀를 폐위시키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녀가 궁중에 남아있도록 해줘라. 만일 그녀에게 약간의 염치가 있다면, 그녀 스스로 죽을 것이다."

 

풍씨는 문명황태후(文明皇太后)의 가까운 친척이다. 효문제는 이로 인하여 차마 한 번더 폐위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두 친왕이 떠난 후, 효문제는 풍황후에게도 나가라고 명한다. 풍황후는 잘 알았다. 이번에 헤어지면, 두 사람은 이제 영원히 이별인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비처럼 흘리면서, 효문제에게 마지막으로 절을 하며 인사했다.

 

풍황후는 부금의 방에 거주하도록 안치된다. 그녀는 개성이 있는 여인이다. 다음에 효문제가 태감을 보내어 물어보자, 풍황후는 태감에게 욕을 해댄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황제의 여인이다. 무슨 말이 있으면 내가 항제에게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할 것이다. 내가 와서 말을 전할 필요는 없다."

 

태감이 돌아가서 말을 전하자 효문제는 화를 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풍황후의 모친 상씨(常氏)를 궁으로 불러들여, 황후의 여러가지 악행을 하나하나 지적한 후, 상씨에게 자신의 딸을 교육시키라고 명한다. 풍황후는 황제는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의 명령이니, 상씨는 풍황후를 백대나 때린다. 사서에는 그녀가 어떻게 때렸는지는 쓰지 않았다. 몽둥이로 때렸는지, 채찍으로 때렸는지. 다만 무엇을 썼든지간에 분명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린 후에, 풍씨의 황후지위는 그래도 유지된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황후는 후궁의 주인이기 때문에, 황제가 그녀를 무시할 수는 있지만, 후궁의 비빈, 태감과 궁녀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제든지 황제가 마음을 바꿀 수 있는데, 누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그후, 효문제는 병력을 이끌고 경성을 떠나서, 남하하여 전투에 참가한다. 도중에 효문제는 다시 병이 도진다. 이번에는 병세가 아주 심각했다. 그는 자신이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예감하고, 팽성왕 원협에게 말한다: "후궁 풍씨는 부덕을 계속 지키지 않았고, 스스로 망친 것이다. 추가로 처리하지 않으면, 장래 황족에 위해를 가할 것이다. 내가 죽으면, 그녀를 자진시켜라 그 후에 황후의 예로 장례식을 치르라. 그녀의 잘못을 크게 떠들 것은 없다. 풍씨집안의 체면은 세워주어라."

 

효문제가 죽자, 유체를 비밀리에 경성으로 운구한다. 경성의 변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양(魯陽)까지 행진했을 때, 모두 효문제의 유언을 집행하기로 결정한다. 북해왕 원양은 조서를 들도 급히 돌아간다. 그 자리에서 풍황후에게 조서를 읽어주고, 다시 장추경 백정등이 독약을 가지고 와서 풍황후에게 마시도록 강제한다. 풍황후는 말을 듣지 않았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황제가 나에게 이렇게 무정할 리는 절대 없다. 분명히 여러 친왕들이 나를 해치려는 것이다."

 

풍황후는 한편으로 소리치며 사방으로 도망다녔다. 백정등이 그녀를 붙잡아 강제로 독약을 먹여서 독살시킨다. 그리고 황후의 예로 매장한다. 소식이 전해지자, 함양왕(咸陽王) 원희(元禧)등은 이렇게 말했다: 황제가 그 유조를 남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녀를 죽였을 것이다. 그녀가 황태후의 위치에 앉아서, 우리 형제를 해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풍황후는 장릉에 안장되고 시호는 유황후(幽皇后)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