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누소군(婁昭君)은 어떻게 북제 4명황제의 모친이 되었는가?

중은우시 2013. 11. 24. 00:21

글: 노군후(老軍猴)

 

누소군은 누태후이고 북제 대군 평성 사람이다. 선비족이며, 북위때 사도 누내간(婁內干)의 딸이며, 북제 신무제 고환의 황후이다. 6남2녀를 낳았으며, 그중 제8자 고육(高淯)이 어려서 죽고, 제12자 고제(高濟)가 선종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장남 고징(高澄), 차남 고양(高洋), 육남 고연(高演), 구남 고담(高湛)이 모두 북제황제가 된다(고징은 황제로 추존됨). 네 황제는 모두 누태후의 소생이다. 한 여인이 네명의 황제를 낳다니, 이것은 기사이고 역사상 절대로 없었던 일이다. 그녀는 어떻게 네 황제의 모친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태후는 고씨집안에 은혜가 깊었다. 고씨가족 구성원 내에서 위망이 아주 높았다.

 

선비족 여자 누소군은 한족인 고환과 결혼한다. 이것은 누태후가 첫눈에 반하고, 고환이 마침 감로를 만난 결과이다. 고환은 하북 경현 사람이며, 나중에 회삭진(지금의 내몽골 고양)으로 이주해 선비족화한 한족이다. 그는 한족과 호족의 관계를 조화시키려 노력했으며, 선비족과 한족에 의존하여 정치세력을 확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부친이 살아있을 때 고씨집안은 몰락한다. 그리하여, 고환의 소년시절은 아주 어려운 환경하에서 지낸다. 누소군은 전혀 반대였다. 그녀는 전형적인 선비족 귀족가문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총명했고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고환이 부하를 이끌고 누씨의 고향 평성을 공격할 때, 누씨는 그의 용모가 괴오한 것을 보고는 놀라서 소리친다: "이 자야 말로 진짜 나의 낭군이다." 고환에게 첫눈에 반한다. 여러번 개인적으로 재물을 보내고, 시집을 가고 싶다고 한다. 누씨의 부모는 어쩔 수 없어서 허락한다. 고환은 누씨가 가져온 혼수예물을 가지고, 말을 사서 변진의 대주가 된다. 기회를 얻어 각양각색의 인물과 교류하고, 점점 관직이 올라간다. 누씨는 고환과 부창부수하여 영웅호걸과 사귀면서 계책을 논의한다. 누씨의 도움으로, 고환은 북제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누씨의 공로는 대단했다. 고환이 죽은 후, 누씨는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고, 위신은 조금도 줄지 않았으며, 존중을 받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누소군이 없었더라면, 고환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둘째, 누태후의 네 아들이 황제를 칭한 구체적 상황을 보면, 그녀가 '아들'을 중심으로 대통을 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태후의 아들중 황제가 된 네명은 출생한 연도로 볼 때, 고징은 고양보다 8살이 많고, 고양은 고연보다 6살이 많으며, 고연은 고담보다 2살이 많다. 고징과 고담은 16년의 차이가 있다. 북제조정은 황제가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고환의 정비이며 비교적 강세인 누태후에 있어서, 이 16년간 노력을 통하여 자식을 보호하며, 황제의 위치를 순조롭게 자신의 네 아들이 승계하도록 하였다.

 

하물며 고씨 4형제는 재위기간이 모두 길지 않았다. 고양이 가장 길어서 9년이고, 고연과 고담은 각각 1년에 불과하다. 장남 고징은 암살된 후, 동생 고양에 의하여 추존되었다. 만일 고양이 병사한 후, 아들 고은(高殷)이 세습한 1년을 포함하면, 5황제의 재위기간은 겨우 12년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황제들 중 고징은 암살되고, 고양은 병사하고, 고연은 놀라서 죽었으며, 고담은 양위했다. 고양의 아들 고은은 쫓겨났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모두 황제가 되었지만, 재위기간은 모두 아주 짧았다.

 

셋째, 누태후는 세습의 습속을 버리고, 아들이 황제가 되는데 주력했고, 황손이 대통을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누태후는 부군 고환에게 충정을 다하였을 뿐아니라, 친아들을 깊이 사랑하고, 수시로 보호해주며 극력 아들이 황제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

 

(1) 누태후는 고징의 세자지위를 극력 보호했다. 고환이 진양에 있을 때 시비가 밀고하여, 세자 고징이 서모 정대거(鄭大車)와 난륜을 맺은 것을 알게 된다. 대노하여, 비첩 대이주씨의 아들 고유(고환의 여섯째아들)을 태자로 삼고, 고징을 폐출하려 했다. 고징은 급히 부친 고환과 오래전부터 사귀어온 사마자여에게 구해달라고 청한다. 사마자여는 누비를 불렀고, 고환에게 누비의 앞에서 고징이 서모 정대거과 간음한 사실을 얘기한다. 사마자여는 또한 고환에게 말한다: "누비는 왕와 조강지처이다. 항상 친가의 재물을 가지고 왕을 도왔다. 왕이 회삭진에 있을 때, 진의 사령관에게 분노를 사서 곤장을 맞아 등이 다쳤을 때, 누비는 밤새워 간호했고, 잠도 자지 않았다. 낮ㅇ에 갈적을 피해 같이 병주로 가고, 가는 길에 고생이 심했으며 하루종일 걸었다. 비는 또한 친히 말똥에 불을 붙여 신발을 대신했다. 이런 은의는 너는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즉, 너 고환은 원래 몰락한 집안의 자제인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반이상이 누비의 도움때문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너와 누비는 잘 지냈고 더더구나 부인(정대거) 한 명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상처받아서는 안된다. 사마자여의 이 말은 고환이 세자 고징을 유폐시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누비는 고징의 친모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사마자여가 감추고 누비가 비호하여, 고징과 서모 정씨의 난륜사건은 그냥 지나가게된다. 결국 고환은 고징을 폐출시키지 않는다. 고징이 세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누태후가 그 안에서 한 역할이 아주 컸다.

 

고환이 죽은 후, 동위의 황제 원선견은 세자 고징을 상국으로 삼고, 제왕에 봉한다. 고환은 순조롭게 동위의 정권을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킨 장수 후경(侯景)을 물리치고 고씨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동위에서 북제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아쉽게도 고징이 찬탈을 밀모하고 있을 때, 음모가 드러나서, 동위황제 원선견이 선노(膳奴) 난경(蘭京)을 시켜, 고징이 식사를 하는 기회에 그를 암살해버린다. 동생 고양이 동위로부터 황위를 찬탈하여 북제를 건립한 후, 형인 고징을 문양황제로 추존한다.

 

(2) 누태후는 차남 고양이 황제가 되도록 힘을 쓴다. 장남 고징이 암살당한 후, 동생 고양이 동위의 대권을 장악한다. 그가 권력을 잡은 날로부터 동위를 대체하여 황제자리를 찬탈하고자 한다. 누태후는 동위와 서위, 남량간의 삼국간 세력을 예민하게 분석한 후, 서위는 군사력이 강대하고, 동,서위의 실력을 비교하면, 동위가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후경이 건강을 함락시키고 양무제 소연을 죽게 만든다; 이미 남량의 실질적인 국군이 된다. 만일 후경이 이전에 동위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고 한다면, 서위를 이용하여 동위를 북벌할 것이다. 그러면 동위는 삼면에서 협공을 받게 되어, 위기일발의 처지에 놓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누태후는 고양에게 이렇게 권한다: "너의 부친은 용과 같았고, 형은 호랑이와 같았다. 천자의 지위를 함부로 차지하지 않고, 평생 북면(신하로 살다)했다. 누가, 순,우의 일을 행할 것인가?" 누씨의 이 말은 고양의 급소를 찔렀다. 부인할 수 없다.고양에게 잠재적인 작용을 크게 한다. 비록 그후 누태후가 저지해도 소용이 없었다. 고양은 끝까지 황제위를 찬탈하고자 했고, 북제왕조를 건립하고 문선제가 된다. 다만 모친의 이 정치적인 장기적 안목이 있는 충고는 고양이 나중에 나라를 세우는데 무형의 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는 9년간 황제로 지낸다. 4형제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다.

 

(3) 누해투는 황손 고은을 폐위시키고 여섯째 아들 고연을 황제로 앉힌다. 누태후의 차남 고양이 동위의 황제 효정제 원선견을 독살한 후, 동위를 대신하여 북제를 건립한다. 고양은 효정제의 황후 고씨(누태후의 차녀 태원공주)를 상서령 양음(楊愔)에게 하사한다. 고양이 병사하고 장례를 지낼 때, 조정에서는 '누가 황위를 계승하는가'에 대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양음은 고양이 태원공주를 하사한 은혜를 잊지 않고, 고양의 아들 고은이 황제에 즉위하도록 적극 추천한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누태후는 적손의 황위에도 불구하고, 고연이 황위를 잇도록 적극 민다. 고은이 부친의 자리를 잇기를 원치 않은 것이다. 아마도 누태후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비록 여러번 고연이 황제에 오르도록 추천했지만, 양음은 조정을 독단하여 그 뜻에 따르지 않고, 태자 고은이 즉위하도록 한다. 그리고 황태후 누씨를 태황태후로 올린다.

 

계승다툼에서 누태후는 실패한다. 양음은 스스로 공로가 있다고 여기고 권세에 의지하여 하고싶은대로 한다. 고연, 고담 형제를 죽이려고 한고, 누태후를 해치려 한다. 이것은 누태후로 하여금 깊은 원한을 품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로써 포기하지 않고, 고연, 고담과 함께, 모자 3명이 힘을 합쳐서 양음을 주살한다. 고은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간다. 이렇게 하여 즉위 1년이 된 고은은 누태후의 명으로 제남왕으로 강등되고, 별궁으로 옮겨간다. 누태후는 여섯째아들 고연에게 대통을 잇게 한다. 즉 북제 효소제이다.

 

(4) 고연은 누태후의 아들이 황제에 오르게 하려는 바램을 알고, 유조로 '아들을 버리고 동생을 세운다" 고연이 즉위한 후, 이전에 조카 고은과 상서령 양음을 주살한 일이 자주 생각나고 마음의 병이 된다. 외출하거나 사냥할 때면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넘어져 상처를 입기도 한다. 병세가 악화되고 꿈에 놀라서 죽느다. 임종전에, 그는 아들 고소덕(高紹德)이 즉위하도록 하지 않고, 동생 고담(누태우의 아홉째 아들)이 대통을 잇도록 한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당부한다. 아들을 좋은 곳에 보내주어, 이전 사람을 배우지 못하도록 하게 한다. 이를 보면, 고연은 모친의 '친아들을 사랑하는' 심정을 잘 이해하였다. 누태후가 적손이 승계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황위도 모친의 힘으로 황손 고은을 폐위시키고 얻은 것이다. 모친의 마음에 영합하기 위하여, 고연은 할 수 없이 모친의 방식을 본떠 유서를 남겨 누태후의 아들 고담(고연의 친동생)에게 대통을 잇게 했다. 고연이 죽은 후, 누태후는 즉시 조서를 내려, 고담을 무성제로 삼는다. 얼마후 누태후는 사망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처럼, 고씨 4형제가 북제의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누태후가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아들을 황제로 올리려는 생각이 주도적인 지위를 점했다. 그녀는 네 아들을 황제로 만드는데 가장 크 막후배후자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누태후가 없었더라면, 고징, 고양, 고연, 고담의 네 황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