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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명나라조정에 동시에 두 명의 합법적인 황제가 존재하다

by 중은우시 2013. 12. 24.

글: 동리채국(東籬採菊)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고(天不能有二日)

나라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國不能有二主)

 

하나의 국가에 동시에 두 합법적인 황제가 존재한다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사 작은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이 서로 가장이 되려고 싸우면, 이 가정은 분명히 싸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명왕조때, 한동안의 황당한 시기에 조정에 두 명의 합법적인 황제가 존재한 적이 있다.

 

명나라때, 주변의 소국은 모두 조정이 조공을 바쳤다.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이 몇 명이든지간에, 대명황제는 모든 사신들에게 하사금을 내렸다. 한 사람당 얼마씩, 몇 명이 오든지간에 모두에게 주었다.

 

이 해에 와랄(瓦剌)인들이 진공을 하러 왔다. 이 와랄인은 몽골의 한 갈래이다. 명나라사람들이 서부몽골인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이 와랄인들은 사신단으로 너무 많이 데리고 왔다. 수천명이 따라온 것이다! 그러자 명나라황제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은 짜증이 났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사금을 내리는데, 이렇게 사람을 많이 데리고 오면 도대체 어떻게 다 준단 말인가. 그러나 일단 왔으니 관례에 따라 하사금을 내리긴 해야 했다. 

 

태감 왕진(王振)은 황제의 생각을 잘 읽었다. 그래서 자신이 나서 일을 처리한다. 와랄 사신단의 매 1명에게 하사금을 조금만 넣어서 나눠준다. 와랄 사신단은 돌아가는 길에 내려준 하사금봉투를 열어본다. 그런데, 내용물을 보니,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건 우리를 가지고 논 것이 아닌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우리를 사람취급도 안하는군!"

 

사신들이 돌아간 뒤 주군에게 살을 덧붙여서 보고를 한다. 좋다! 와랄인들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화모삼장(火冒三丈)했다. 그래서 금방 명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내리고, 금방 출병한다.

 

명영종 주기진이 와랄인들의 침범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이미 장가구(張家口)까지 와 있었다.

 

어쩔 것인가? 병력을 모아서 항적하자. 이 순간에, 태감 왕진이 다시 아이디어를 낸다. 그는 황제가 친히 어가를 이끌고 친정할 것을 극력 주장한다. 이때의 황제 주기진은 23살된 어린아이였다. "아직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았고, 일처리가 노련하지 못했다" 태감 왕진의 말을 듣고, 금방 친히 갑옷을 입고 출전하기로 결정내린다. 황제의 친정은 작은 일이 아니다. 병력과 사람을 대거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황제는 팔대대교(八擡大轎)를 타고, 여러 조정신하들을 데려갔다. 요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발은 어떻게 할 것이며, 접시를 들고 따라오는 자, 항아리를 들고 따라오는자, 세숫대야를 들고 따라오는 자....이런 시종인원만 해도 엄청난 인원이었다.

 

명나라의 대군이 장가구의 남쪽에 있는 토목보(土木堡)에 도착했을 때, 와랄의 대군과 만나자마자 교전을 벌인다.

 

그 결과 명군은 대패한다. 명영종 주기진은 포로가 된다.

 

소식이 경성에까지 전해진다. 조정의 상하는 대곡소도(大哭小啕)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게 된다. 어떡할 것인가? 황제가 적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나라에 하루라도 임금이 없을 수는 없다. 급히 새로운 황제를 옹립해야 했다.

 

이렇게 하여, 조정신하들은 주기진의 동생인 주기옥(朱祁鈺)을 황제에 옹립한다. 와랄인들은 주기진을 구금시키고, 주기진은 23살때 태상황이 된다.

 

와랄군은 경성을 포위공격하기 시작한다. 명나라는 우겸(于謙)의 지휘하에 와랄군대를 겨우 격파할 수 있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뒤, 패퇴한 와랄인들은 주기진을 풀어준다. 주기옥은 황제에 올라 있었으므로 황위를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간단한 의식을 거행하여 주기진을 태상황으로 올리고, 남궁(南宮)으로 보낸다. 남궁에서 사실상 연금상태가 된다. 여러가지 말들이 있는데, 실제는 연금보다 훨씬 심했다고 한다. 주기옥은 사람을 보내어 남궁의 대문을 폐쇄시키고, 작은 창문 하나만을 남겨두고, 안으로 먹고 마실 것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이 음식을 어떤 때는 줄여버리기도 했다. 명영종의 본부인인 전황후(錢皇后)는 부득이 자신이 바느질도 하고, 사람을 시켜 자신의 금은악세사리를 팔게 해서 그 돈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주기옥은 누군가 명영종과 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남궁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외부인과 연락하는 것까지 막으려 했다. 명영종 주기진은 공포와 기아 속에서 7년의 연금생활을 보낸다. 황권의 쟁탈은 너무나 잔혹하다. 친형제간에 황위를 놓고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 주기옥도 명이 좋지는 못했다. 7년간 황제로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린다.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주기옥에게는 아들도 없었다. 어떡할 것인가? 조정신하들은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황제가 죽으면, 누가 대통을 승계할 것인가? 대신 서유정(徐有貞)과 석형(石亨)등은 명영종 주기진의 복위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보내어 남궁의 대문을 열고, 주기진을 불러온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기진을 모시고 금란전으로 간다. 보초를 서던 위병들이 창을 겨누며 소리친다: "오는 자는 누구인가?" 주기진이 답한다: "내가 태상황이다!" 위병들은 그 소리를 듣자 바로 한켠에 비켜서서 길을 내준다. 석형은 조정대신을 이끌고 주기진을 황제의 보좌에 억지로 앉힌다. 이어서 한 대신이 미리 준비한 "복위조서(復位詔書)"를 읽는다. 그후 신하들은 모조리 무릎을 꾾으며, "황제 만세,만세, 만만세"를 외친다.

 

주기진은 이렇게 하여 다시 황제에 오른다. 주기진이 복위하여 황제가 된 것은 당연히 흥분할 일이다. 하루종일 일리만기로 조정의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잊고 있었다. 병이든 동생 주기옥은 아직도 명목상으로는 황제였다. 이렇게 하여, 명나라에는 동시에 두 황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주기진은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즉시 조서를 만들어 주기옥을 황제에서 폐출시킨다.

 

폐출된 주기옥은 서원(西苑)에 연금되고, 1개월여후에 사망하니, 향년 30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