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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리텐이 사건

멍거(夢鴿)의 특수한 가정교육 - 한 모친의 기형적인 사랑

by 중은우시 2013. 12. 3.

작자: 미상

 

베이징시 하이덴구의 모 주택단지는 "장군" 일가의 주소이고, 리텐이(李天一)의 열행(劣行)이 드러난 시작점이다. 단지의 직원들의 눈에, 리텐이의 모친 멍거는 최근 들어 아주 저자세이다. 말이 적고, 선글라스를 끼고 시시때때로 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멍거에 대한 뉴스는 그렇지가 않다. 이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모친은 금방 변호사를 쫓아보냈다. 그녀는 리텐이를 위하여 무죄변호를 해줄 변호사를 억지로 구하고 있다.

 

뉴스로 돌아가면, 멍거의 특수한 교육은 리텐이사건에서 시종일관되어 있다. 그녀는 미성년 아들에게 BMW차량을 사주었고, 그 결과 얼마후 구타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녀는 아들이 노벨상을 받기를 기대하여 해외로 보내어 공부시켰지만, 아들이 공공장소에서 충돌이 발생하게 종용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좋은 옷과 음식을 주었지만, 동시에 몸소 "무슨 일이건 돈과 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법률을 무시한 것이 리텐이사건의 잠재적 원인이다. 교육자로서의 멍거는 이 비극에서 가장 특수한 막후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 사실진상을 존중할 것; 2. 법률을 준수할 것; 3. 변호사업무규정을 준수할 것"

 

이것은 7월 1일 쉐쩐위안(薛振源) 변호사가 웨이보에 발표한 말이다. 바로 3일전, 그는 막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그는 이미 리텐이의 윤간사건의 변호사에서 사임했다고. 이 거동에 대하여 쉐쩐위안은 처음에 "사건정황의 필요에 따라" "쌍방이 합의한 결과이고, 어떤 원인은 말하는 것이 불편하고 말하기 쉽지 않다"고 하였다.

 

그후, 소식통에 따르면, 쉐쩐위안이 사임한 것은 "압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너무 크다는 압력은 바로 리텐이의 모친 멍거에게서 나온 것이다. "멍거는 요구하는게 너무 많았다. 그녀는 쉐쩐위안에게 공고문을 쓰게 했다. 리텐이는 윤간사건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쉐쩐위안은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보니 압력이 너무 컸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리텐이등 5명은 사건에 너무 깊이 관련되어 있다. 게다가 멍거가 요구하는 아들을 위한 변호는 난이도가 비교적 높다. 그래서, 쉐쩐위안은 변호업무를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금년 3월 19일, 멍거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쉐쩐위안을 아들의 변호사로 선임한다. 변호를 시작할 때, 쉐쩐위안의 태도는 아주 전문적이었다. 그는 멍거의 위임을 받아, 변호사성명을 발표한다.

 

성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부 매체와 네티즌들은 충분한 증거가 없는 상황하에서, "리텐이가 76명의 변호사단을 구성했다", "리틴에사건의 여주인공이 고발을 철회했고, 피해자는 엄청난 물질적 보상을 받았다."는 등의 부정확한 보도와 전파가 있고, "계속 와전시키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는" 행위는 심각하게 무책임한 것이다."

 

3개월 후, 그는 양심의 견책과 직업적 윤리로 고민하다가 결국 사임하고 떠난다. 금방, 멍거는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해서 맡긴다.

 

변호사가 사임햇다는 사실이 매체에 보도된 후, 일시에 여론이 비등한다. 심지어 어떤 매체는 "리틴이 어머니의 요구조건이 높다"('어머니의' 중국어인 '타마더'는 욕이기도 하다)는 뉴스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공중의 관심촛점은 멍거에게로 돌려진다. 이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여인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멍거 부부가 거주하는 주택단지의 직원 리거(李戈)는 이렇게 말한다: 멍거가 최근 바뀌었다. 

 

그의 인상 속에서 멍거는 아주 고자세인 여인이었다. 주택단지의 직원들과 얘기할 때 그녀는 습관적으로 책망하는 어투로 말했다.

 

리거는 이렇게 기억한다. 리쐉장 집은 주택단지내에 2개의 주차 자리가 있다. 다만 멍거는 자주 차를 차고로 들어가는 길이나 도로에 주차해 놓는다. 이유는 이렇게 해야 그녀의 집과 거리가 비교적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니, 그녀의 차는 주택단지내의 모든 주요도로를 가로막는 꼴이 되었다. 한번은, 이웃 사람이 보안에게 가서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멍거로부터 받은 대답은: "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너는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이냐?"였다.

 

리텐이윤간사건후, 멍거는 주택단지 직원들과 얘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예전같은 고자세를 볼 수가 없었다.

 

리거는 말한다. 최근 멍거는 주택단지 안에서 대부분은 선글라스를 끼고 고개를 숙이고 걸어다닌다. "그녀는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40여세의 사람이 아직도 아주 진하게 화장을 하고 다닌다. 며칠 전, 내가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았다. 눈이 부어 있었다. 얼굴이 화장도 모두 번져 있었다."

 

문직소장(文職少將)으로서, 리쐉장의 집안에서는 자주 각종 특수한 차량번호판을 단 손님들을 접대한다. 리거의 회고에 따르면, 리텐이윤간사건이 발생한 초기에 방문한 특수번호판 차퍙이 최고조를 이루었고, 그후에 점차 줄어들었으며, 최근에는 거의 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주택단지의 주민 장추(張楚)는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 하나를 확인해주었다: 한 네티즌은 리텐이 이웃이라는 신분으로 리틴이가 교횡발호(驕橫跋扈)한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했다: "리텐이가 고등학교때 차고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하키를 했다. 나는 마침 차를 몰고 차고를 내려가고 있었는데, 공이 내 차의 곁을 지나갔다. 나느 보안에게 그를 제지해달라고 얘기했다. 리텐이는 아이스하키채를 들고 보안을 추격하여 온 차고를 뛰어다녔다. 보인이 그의 집 보모를 부르자, 리텐이는 아이스하키채로 자기집 보모를 쫓아가며 때렸다."

 

리거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를 포함하여, 리텐이는 여러번 이웃과 충돌을 일으킨다. 멍거가 소식을 듣고 달려오면, 첫번째 반응은 왕왕 아들을 안아서, 아들이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살펴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어 자식이 벌인 일을 해결한다.

 

2011년 2월, 멍거와 리쐉장은 <루위유약(魯豫有約)>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프로그램에서, 리쫭장은 TV모티터를 향하여 웃으며 이런 말을 던졌다: "처는 아들에게 비교적 심하게 대한다." 멍거도 거들었다: "나는 (리텐이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후, 멍거 부부가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던 리텐이는 교통분쟁으로 부부를 구타한다. 당시 리텐이는 겨우 15살때였고, 무면허운전이었고, 번호판도 없는 BMW를 몰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멍거는 말을 바꾼다: "나는 그를 과도하게 사랑한 것같다."

 

14살때, 리텐이는 BMW를 소유하게 되는데, 이 BMW 차량을 사준 사람은 바로 모친 멍거이다. 미성년자는 운전면허시험을 칠 수 없다. 더더구나 무면허운전을 해서는 안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멍거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이런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친의 몸소 가르침하에 리텐이는 서서히 자란다. 그의 가치관은 점점 왜곡되고 변형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의식주에 걱정이 없고, 부모가 지나치게 사랑해준다. "돈과 신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인생 모토가 되었다.

 

2011년의 <루위유약>은 멍거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드시 노벨상을 따야 하며, 대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개성이 있다. 그는 아직 모난데도 많다. 그래서 아이가 아닌가. 그래서 네가 그를 말 잘듣게 만들고, 규칙을 지키게 만들고, 나의 의지래도 하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멍거는 확실히 아이가 많은 분야에 흥미를 보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리텐이의 올림피아드수학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모두 멍거를 두 번 보았는데, 선글라스를 낀 멍거는 아주 급했다. 처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돈 여기 있다.내 아들이 올림피아드수학을 배울 것이다." 두번째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안배우겠다. 내일 아들을 데리고 브라질에 간다."

 

아들이 13살때, 그녀는 리텐이를 미국에 공부하러 보낸다. 그리고 그에게 외국에서 배운 아이스하키를 취미로 계속하도록 격려했고, 리텐이가 주택단지 주차장에서 아이스하키를 하도록 종용했다.

 

이 모든 것은 리텐이의 행운이면서, 그의 불행이다. 미성년인 그가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한도가 있다는 것을 알기도 전이었다.

 

2011년 초, 리텐이는 모친의 BMW를 자동차튜닝센터로 보내어, 애차를 전면적으로 개조한다. 사용한 것은 모두 최고급제품이었다. 전체 차량의 튜닝가격은 20여만위안에 달했다.

 

리텐이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리텐이는 튜닝후의 엔진굉음을 좋아했다. "광란의 질주"는 그들의 큰 취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위험한 행동에 댓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 같은 수준의 집안이라면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있고, 과속 혹은 불법운전으로 법률의 제재를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법률에 대한 무시는 선명한 가족특징이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멍거는 사건발생후, 다시 특수한 신분을 이용하여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정서는 계속 확장되고, 그녀로 하여금 변호사에게 리텐이는 '윤간행위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무죄변호를 하도록  억지로 요구하게 되었다.

 

평론가의 글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천하의 부모중 누가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멍거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미 통상적인 범주를 벗어났다."

 

멍거부부는 리텐이를 특별히 사랑했다 그것은 아마도 "노래득자(老來得子)"의 쉽지 않게 얻은 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네티즌들이 리텐이 사건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멍거의 혼인에 관한 옛날 일들이 하나하나 폭로되었다.

 

리쐉장은 1939년생이고 멍거보다 27살이 많다. 1963년, 그는 중앙음악학원을 졸업했는데, 아직 멍거가 태어나기 3년전의 일이다.

 

1970년대, 리쐉장은 <섬섬적홍성>의 주제곡 <소소죽배향동류>를 불러 일거에 인기를 끈다. 이때 멍거는 아직 10살도 되지 않았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 리쐉장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기 위하여 멍거는 유산을 한 적도 있다. 공식자료에 따르면, 1996년 리텐이가 출생할 때 리쐉장은 이미 58살의 고령이었다.

 

리쐉장에게 시집가기 전에, 멍거는 약간 명성이 있는 민족음악 가수였다. 그녀는 1996년 호북 사시에서 출생했고, 1984년 북경으로 공부하러 온다. 중앙사회음악학원 무도과와 중국음악학원 성악과를 졸업하고, 일찌기 저명한 음악가 진테린(金鐵霖)을 스승으로 모신 바 있다.

 

멍거의 회고에 따르면, 1984년, 북경으로 왔을 때, 그녀와 몇몇 친구는 교외지구에 낡은 평방(平房, 단층주택)을 빌렸고, 생활은 아주 곤란했다. 그녀는 매일 거처와 음악학원을 오갔는데, 이동에만 4시간이 걸렸다.

 

1988년, 멍거는 리쐉장을 알게 된다. 멍거의 회고에 따르면, 그해 CCTV 춘만(春晩, 설날 저녁 특별프로그램)에서 리쐉장은 <중국룡>을 불렀다. 그녀는 그의 노래를 들은 후,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은, 리쐉장의 학생이 멍거를 리쐉장이 강의하는 수업에 데리고 간다. 수업때 멍거는 적극적으로 "리쐉장 선생"에게 노래 한곡을 부르겠다고 한다. 리쐉장은 그녀에게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한다.

 

여러해 전의 보도에 따르면, 멍거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녀는 그때 아직 미혼이고 남자친구도 없었다. 그러나 리쐉장은 막 이혼한 때였다. 그녀가 리쐉장을 좋게 본 것은 듣기에 리쐉장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울렸고, 몸매도 곧아서 가장 노간부같은 모습이었다고 하였다.

 

1989년 50세의 이쐉장은 멍거에게 아주 특별하게  '프로포즈'한다. 한번은 관광을 가서, 산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리쐉장은 돌연 멈춰섰다. 멍거는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는 두 손을 내밀고, 파란 하늘을 향헤 고함을 질렀다: 하늘이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나는 멍거를 처로 삼겠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계속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다음 해, 두 사람은 북경우의빈관에서 성대한 혼례를 올린다.

 

부인할 수 없는 점은, 리쐉장과 알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리쐉장은 당시 춘만의 음악총감독이었다. 리쐉장을 알게 된 그 해, 멍거는 CCTV 춘만에 참가한다. 그후 그녀는 여러번 춘만에서 공연한다. 그리고 여러번 각종 예술단에 참가하여 해외를 방문한다.

 

1994년초, 멍거는 총정가무단(總政歌舞團)에 들어간다. 다음 해, 중앙음악학원 연구생에 합격한다. 이때부터 중국의 인기가수가 되었다.

 

2009년, 멍거는 인민망의 인터뷰때 이렇게 아들을 묘사한다: "우리 둘은 이런 아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로 아주 행복하다. 아이의 성장은 아주 순조로웠다. 그가 얼마나 우수한지, 그는 음악을 아주 사랑하고, 생활을 아주 사랑하는 아이이다. 그리고 정취가 있는 아이이다."

 

2년후, 리텐이의 열적(劣迹)이 드러나고, 4년후, 리텐이는 악행으로 구속된다. 아들은 멍거가 기대하는 것처럼 자랑으로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특수한 교육하의 실패작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