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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증국번)

증국번은 어떻게 '범인"이 "초인"으로 바뀌었는가?

by 중은우시 2013. 11. 24.

글: 장굉걸(張宏杰) 

 

서른 살은 증국번 일생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다.

증국번이 후세인들에게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그는 자신의 실천으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한 범인(凡人)이 '도야변화(陶冶變化)'를 통하여, 초인(超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꾸어말해서, 만일 한 사람이 진정으로 자아완성에 투입하면, 그의 재주는 10배로 늘어나고, 견식은 10내나 고명해지고, 흉금은 10배나 넓어지고, 기질은 10배나 순정해진다. 우둔한 사람이 자아연마를 통하여 꿰뚫어 볼 수 있고, 똑바로 설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고, 일을 해낼 수 있다. 경박한 사람도 청풍명월같이 종용징정(從容澄靜)할 수 있고, 편집적인 사람도 흉금이 넓고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서른 살, 증국번의 관료로서의 시작이기도 하면서 그 일생의 자아완성의 중요한 시작점이기도 하다.

바로 서른 살 이 해에 증국번은 "학작성인(學作聖人)"이 되기로 뜻을 세운다.

 

도광22년 십월 초하루, 입지자신(立志自新)한 날부터, 증국번은 자신에 대한 전방위적인 개조를 시작한다. 그의 방법은 "일과(日課)"이다. 그는 매일 침상에서 잠이 깬 때로부터, 먹고 마시고 싸고 잠자는 것을 모조리 스스로 감독한다. 성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했다.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일거일동을 감독,검사했다. 그는 매일 모두 정교한 해서로 진지하게 일기를 썼다. 자신의 하룻동안의 모든 언행을 자세하게 회고하고 검색했다. 그중의 어느 것이 성인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지, 구별해내고, 기록하고, 심각하게 반성했다.

 

증국번은 자신에게 아래와 같은 기본학습일정을 규정한다: 매일 해서로 일기를 쓴다, 매일 사서 10페이지를 읽는다, 매일 차여우담(茶餘偶談)을 하나 적는다. 이것은 반드시 완정해야할 과정의 최소한이다. 이외에, 그는 매일 <주역>을 읽었고, 작문을 연습하여, 전체 학습의 효율을 대거 끌어올렸다.

 

다만, 한 사람이 한꺼번에 오랫동안 형성된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증국번은 사람됨이 교유범위가 넓었다. 그리고 사교생활을 아주 즐겼다. 그러므로 뜻을 세웠지만, 교유로 학습에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해 십월 십칠일, 증국번은 일찍 일어나서 <주역>을 다 읽고, 집을 나서서 손님을 만난다. 그리고 두란계(杜蘭溪)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들 혼례에 참석한다. 혼례를 마친 후, 오후에 원래 집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그날이 친구 하자경(何子敬)의 생일인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가는 길에 하씨집안에 들러 생일을 축하한다. 식사후 다시 하자경의 열정적인 만류로 남아서 곤곡을 듣는다. '초경'때가 되어서, 비로소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저녁, 그는 일기에서 자신이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한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성한다: 하자경의 생일은 기실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갔다. 이것은 자신의 뜻이 굳건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동이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면서 '계지(戒之)'하기로 결심한다.

 

십일월 초구일, 그는 오전이 진대운(陳垈雲)이 집에서 진대운의 모친의 생일을 축하한다. 식사후 원래 집으로 돌아가서 공부하려 했는데, 친구의 권유에 같이 하자정(何子貞)의 집으로 가서 놀게 된다. 거기에서 다른 사람과 바둑을 한 판 둔다. 이어서 한 판을 구경한다. 다른 사람의 바둑을 볼 때, 내심으로 격렬한 '천인교전(天人交戰)"이 벌어진다. 한편으로 한번쯤 놀게 놔두자는 것으로 하루정도 통쾌하게 놀아도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한 여러가지 약속을 떠올린다. 마침내 한판의 관전이 끝나고 그는 자신을 이기고, "급히 몸을 빼어 집으로 돌아가서 태괘(兌卦)를 공부한다."

 

징축(徵逐, 친구와 너무 많이 사귀며 놀다)의 습관은 천천히 고쳐갈 수 있지만, 성격이 불같은 것은 바로 고쳐야 했다. 증국번이 수신(修身)하기로 할 때 또 다른 착안점은 자신의 불같은 성격이었다.

 

대다수의 사회에 처음 나온 청년들과 같이, 막 북경에 도착한 증국번도 사람을 대하는 것이 천진하고 직설적이며 딱딱했다. 일단 친구가 되면, 심장이나 간도 빼줄 것같았지만, 동시에 상대방에게도 그에게 아무런 틈이 없을 것을 요구했다. 사람간의 사귐에서 필수적인 거리감과 분촌감(分寸感)이 없었다.

 

유학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 충돌할 때 먼저 자신의 몸에서 원인을 찾도록 요구한다. 정소산(鄭小珊)과의 충돌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 증국번은 즉시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잘못을 인정한다. 정소산과는 "옛날처럼 웃으며, 이전의 나빴던 일은 전부 버렸다."

 

자신이 가장 잘 범하는 "언불유충(言不由衷, 마음에 없는 말을 하다)", "허위(虛僞)", "부과(浮夸)" 를 그는 고도로 경계했고, 시시때때로 자신을 감독하다. 일단 범하면 자신을 통렬하게 질책하고, 절대로 가볍게 용서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진대운의 집에 갔는데, "그와 시를 이야기하다가 있는 것 없는 것 다 꺼내서 말이 끝이 없어서, 자시초경에야 돌아왔다." 그날 저녁에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비판한다: "스스로는 남에게 충성스러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적을 자식으로 삼은 것임을 모르는가. 매일 시문에만 빠져있으면서, 계율을 지키면서 삼가하고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망칠 뿐아니라, 남도 망치는 일이다."

 

계색(戒色)에 대하여는 그는 확실히 많은 심리적 역량을 소모했다. 일단 자신에게 색심이 움직이고, 어느 아름다운 여인을 한번 더 보았다면, 그는 집에 돌아온 후에 반드시 기록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통열학 비난한다. 부부간의 사랑에 대하여도, 그는 자신에게 참을 수 있으면 참고,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안하도록 요구한다. 그는 결심을 하여 "일일자고(日日自苦)"하기로 하고, 매일 근면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생각한다. 거기에 정력을 모조리 쏟는다. "나무를 심을 때에는 나무를 다 자르고 난 후에 소나 양을 풀어서 길러서는 안되고; 등불을 켤 때는 기름이 거의 닳아갈 때, 바람이 불어들어오게 해서는 안된다." '한가해지면 음탕한 생각을 한다'는 것에 이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성인의 표준은 실제로 너무나 높다. 그는 매 시간 자연적인 본성을 말살했다. 그것은 침침견혈(針針見血)이고, 도도완심(刀刀剜心)이다. 금욕주의자로서 그는 많은 인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