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곽찬금(郭燦金)
정상적인 논리로 보면 홍문연은 불가사의하다.
항백은 왜 멍청하게 적인 유방에게 알려주었을까? 자신의 조카인 항우가 어찌되든 신경쓰지 않으면서. 범증은 "일찌기 기계(奇計)를 잘 세웠다" 그런데 왜 범증의 '기계'를 항우가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항우는 왜 유방을 보내주었을까? 결국 자신이 일패도지하고 만회할 수 없게 되는데....여러가지 의문점은 홍문연에 대하여 여러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만들어냈다. 여러 수수께끼들은 후인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어찌 항우는 그렇게 멍청했단 말인가, 삶은 오리가 하늘을 날아가도록 놔두었단 말인가?
그래서 '총명한 사람'은 이런 연회가 존재했다는 것을 정색을 하고 부인한다. 그들은 홍문연을 "이야기로 보고, 역사로 읽지 말라"고 한다. 어느 역사학자는 <통사간편>을 쓸 때 홍문연은 아예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더욱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홍문연은 의미가 중대한 연회라고 말한다. 단지 이 연회에서 항우의 판단은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항우의 의지가 더욱 굳건했다면, 의사결정이 더욱 영명했다면, 조치를 더욱 과감하게 했더라면, 일처리가 더욱 성숙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홍문연 이전에 아무런 망설임없이 유방을 죽였을 것이다. 혹은 홍문연중에 살수를 시켜 일거에 유방을 사지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유방이 천하통일하는 장면이 나올 수 있었을까? 역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그는 바로 항백(項伯)이다. 왜냐하면 항백은 도미노패의 첫번째 패이다. 그가 정보를 누설해서, 나중에 항우가 패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정말 그러했을까? 홍문연 이전에 항백은 왜 기밀을 누설했을까? 홍문연에서 항백은 왜 앞장서서 유방을 보호했을까? 항백은 정말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대의를 잊은 천고의 죄인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적의 먼지를 넘어, 특정한 역사환경으로 돌아가서, 초한상쟁의 역사사실을 새로 살펴보면서 그 이천여년전의 연회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역사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하여 우리는 아래의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유방과 항우는 왜 관중지구에서 만났을까?
함양시는 진왕조의 수도이다. 함양은 관중평원에 있다. 유방과 항우는 왜 관중에 모였을까? 이것은 당시에 모두 알고 있던 하나의 약정때문이다: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자가 왕이 된다(先入關中者爲王)"
이 약정은 당시 항진의군(抗秦義軍)의 맹주인 초회왕(楚懷王)이 제기한 것이다. 당시 그는 의군을 이끌고 강소, 안휘 일대를 전전했다. 확실히 관중으로 들어가려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직선으로 가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다. 이 점을 안다면, 우리는 다시 초회왕의 안배를 보자: 그는 항우의 서쪽으로 가려는 강렬한 요구를 무시하고, 직접 항우에게 북방으로 가도록 한다. 북으로 진군하여 진나라군대와 싸워서 조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이뿐아니라, 북방으로 보내어진 항우는 직무가 겨우 차장(次將)이었다. 주장(主將)인 송의(宋義)의 절제(節制)를 받아야 했다. 동시에 초회왕은 유방을 직접 서쪽으로 진군하게 한다. 당시 진나라의 주력군은 북방에 있었다. 진나라와 치열하게 싸우는 곳도 당연히 북방이다. 항우와 진나라군대의 주력이 맞부닥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전쟁의 과정에서 이미 돌아가는 길을 가야했던 항우가 관중으로 들어가는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방은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원래 진군한 길은 직선이다. 그러나 북방에는 항우가 진나라군대의 주력을 견제하고 있다. 항우와 진군의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유방의 서진 길은 평탄하다. 관중에 들어가는 속도는 자연히 더욱 빠를 수밖에 없었다.
항우의 북상은 일파삼절(一波三折)이라 할 만하다. 먼저 항우는 분노하여 주장인 송의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상장군에 봉한다. 그후 진군과 결전을 벌인다. 결국, 진군의 대장 장한(章邯)이 투항하고 항우는 승리를 거둔다. 원래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던 제후군들은 마침내 항우와 함께 관중으로 서진하게 된다.
다만 이때, 항우는 일찌감치 관중으로 들어간지 2달이 되었다. 기괴한 일은 일찌기 왕을 칭할 수도 있었떤 그는 여전히 파란불경(波瀾不驚), 무성무식(無聲無息)하며 여전이 이전과 같은 궁색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관중에서 함께 만난다.
둘째, 관중에서 만나기 전에, 유방과 항우는 어떤 정치적 관계인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두 사람은 서로 우군(友軍)이었다. 두 사람은 일찌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를 했던 경력이 있다. 깊지도 얕지도 않으며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혁명우의를 건립했다. 이때 유방은 서로군이고, 항우는 북로군이다. 두 사람은 같은 반진의군진영이고 같은 초회왕의 부하였다.
만일 두 사람의 정치적 지위에서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를 따진다면, 항우의 지위가 유방보다 높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반진무장의 최고권력상징은 초회왕이고, 초회왕은 송의를 최고군사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항우를 데리고 북상하게 시킨다. 북정과정에서, 항우는 임의로 송의를 죽였지만, 초회왕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항우가 송의를 이어 최고군사장관의 지위를 가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이론적으로는, 항우가 유방의 상사가 되었다.
셋째, 관중에서 만나기 전에, 유방은 무엇을 했는가? 항우는 또 무엇을 했는가?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어갔지만, 군중들로부터 바늘하나 실하나 빼앗지 않았다. 그리고 현지백성에게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내놓는다: "살인자는 죽인다,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훔친 자는 죄를 묻는다." 그리하여 관중인민들의 사랑과 옹호를 받았다. 관중인민은 유방이 순조롭게 왕을 칭하기 기대했다.
항우는? 관중에 들어오기 전에, 진나라장수 장한, 사마흔(司馬欣)등은 진나라군대를 이끌고 항우에 투항한다. 얼마후, 항우는 20만의 투항한 병사를 갱살시킨다. 이 20만의 항병(降兵)이 어디 사람인가? 역사에 명확히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병사는 진나라의 대본영인 관중지구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폭력수단으로 20만 항병을 갱살한 관우를 관중인민들은 살인마귀로 보았을 것이고, 포학의 대명사가 되었을 것이다.
유방과 항우를 대비하면, 관중백성이 유방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넷째, 관중에서 만났을 때, 유방, 항우 두 사람의 실력대비는 어떠한가?
이때, 유방의 실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10만의 인마가 있는데, 20만이라고 불렀다; 항우는 40만인마가 있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유방의 10만인마는 기본적으로 청일색(淸一色)의 유가군(劉家軍)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방의 인마는 이미 관중에서 2달간 쉬었다. 그러나 항우의 40만대군 중에서 상당히 많은 비율은 각로제후군이다. 그들은 비록 항우의 지휘를 받지만, 언제든지 항우를 떠날 수 있었다. 거록지전때, 각로제후군은 일찌기 작벽상관(作壁上觀)한 선례가 있다. 이 40만의 잡패군은 장거리를 이동해서 왔으므로, 전투력이 좋은 상태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실들을 이해하고나면 우리는 알 수 있다. 모사 범증이 항우에게 유방을 공격하라고 건의한 것이 얼마나 성급한 행위였는지. 그러나, 항우는 범증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내일 아침에 병사들을 잘 먹이고, 패공(유방)의 군대를 격파하게 한다"(旦日饗士卒, 爲擊破沛公軍).
정치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그 위험성을 눈치채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유방을 죽이지 말아야할 4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 반진진영에 있어서 유방은 큰 공을 세웠다. 유방을 죽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
유방은 명을 받아 서정에 나섰고, 진나라의 폭정을 무너뜨리는데 제일 큰 공을 세웠다. 약정에 따르면,유방이 왕을 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그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유방은 저자세를 보이고, 왕을 칭하지도 않는다. 정치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이때 항우가 유방의 군대를 공격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동실조과(同室操戈)이다. 초화왕의 약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니 정치적 위험이 아주 크다.
둘째 이유, 유방은 관중을 안정시키는데 큰 가치가 있다. 유방을 죽이면 민심의 기초가 사라진다.
진왕조의 통치는 와해되었다. 이때 관중지구는 권력의 진공기이다. 관중인들의 마음은 안정과 평온을 원한다. 이 모든 것은 유방의 약법삼장에서 약속받았다. 그러므로, 먼저 관중에 들어간 유방은 관중인의 마음 속에 이미 무면지왕(無冕之王)이다. 이때, 만일 누군가 유방을 해친다면 관중인민의 신뢰와 옹호를 받기 어렵다. 하물며 항우는 이미 관중인들에게 20만의 목숨을 빚지고 있음에야.
셋째 이유, 유방은 지수주이다. 유방의 운명은 다른 각로제후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
항우를 따르는 각로제후군이 보기에, 이때의 유방은 바로 지수주이다. 유방의 운명은 바로 그들 미래의 운명과 직접 관련이 있다. 만일 유방이 피살되면, 각로제후도 항우의 일처리방식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그들의 장래 항우와의 협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각로제후군은 모두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지에서 방휼상쟁(蚌鷸相爭)을 기다리고 있다.
넷째 이유, 유방의 부대는 이일대로(以逸待勞)하여 유방을 죽이는 것은 현실적인 리스크가 있다.
유방의 인마는 비록 적지만, 자신의 적계이다. 항우는 인마가 비록 많지만, 오합지졸의 혐의가 있다. 게다가 유방의 부대는 이미 2달간 쉬면서 정비했다. 체력과 전투력이 모두 항우의 부대보다 뛰어났다. 이때 유방을 공격한다면, 항우는 승리를 자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범증의 건의를 생각해봐야 한다. 기실 그의 건의는 일시적으로 흥분해서 한 말이다. 유방은 절대로 도마위의 물고기여서 언제든지 항우가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거대한 리스크를 항우는 보지 못했다. 항우는 범증의 화언교어(花言巧語)에 눈이 가려졌다. 그리하여 힘든 싸움이 눈앞에 다가왔고 아주 절박하게 되었다.
'아부(亞父)'의 부추김에 항우도 같이 놀아났다. 그저 내일 유방의 머리를 벨 생각만 했다. 그로 인한 위기가 사방에 잠복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항백은 초조해져서 식은 땀이 흘렀다. 위기가 닥친 것이다. 항씨의 반진대업이 잘못하면 바로 끝장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백의 자구행동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항씨가족의 위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돌연, 한 사람의 모습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장량.
장량은 이때 유방의 진영에 있었다. 그와 장량간의 교분은 아주 깊었다. 바로 이러한 때, 항씨대업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왜 장량이 최선의 선택인가?
확실히, 항우계획의 악전을 철저히 해소시키려면, 항우라는 회유책은 들어도 강경책은 통하지 않는 인물에게 단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유방으로 하여금 와서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유방으로 하여금 와서 잘못을 인정하게 하려면, 반드시 유방이 직면할 위기를 사실대로 전해주어야 한다. 유방으로 하여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유방은 성격이 궤이하다. 유방에게 이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에게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관건적인 점은 이 사람이 반드시 항백과 상당한 교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조건으로 생각해보면 유방의 군영내에서 오로지 장량 한 사람만이 이 중임을 담당할 수 있다. 첫째, 그와 항백은 생사지교를 맺었다 항백의 이름을 구해준 적이 있다; 둘째, 장량은 유방의 진영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유방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라. 만일 장량이라는 최선의 교량이 없었다면, 항백이 어떻게 유방에게 접근할 수 있었겠는가? 설사 유방에게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항백은 어떤 증거로 유방이 자신의 말이 선의에 기한 것이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할 수 있겠는가? 천하는 넓지만, 항씨를 구할 사람은 장량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태는 항백이 사전에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다. 유방은 과연 장량과 항백이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다. 이것은 유방이 의심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유방은 전면적으로 정보의 정확성을 분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그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동시에 유방의 이 질문은 바로 항백이 찾은 장량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항백은 말을 달려, 장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항백의 처리는 아주 예술적이었다. 그는 단지 "장량과 함께 가고자 했고" "함께 죽고자 하지 않았다." 항백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장량에 대한 판단은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장량은 충분한 모략과 담량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의리와 충성도 있다. 그는 반드시 유방 한 사람을 사지에 버리고 혼자서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장량도 충분한 이유를 찾았다: "신은 한왕이 패공에게 보낸 사람이다; 패공이 지금 일이 급하니, 떠나는 것은 불의한 일이다.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장량은 항우가 곧 병력을 일으켜 유방을 칠 것이라는 중대한 군사기밀을 바로 유방에 통보한다. 모든 것은 항백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생각해보라 전체 유방의 군영내에 장량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같은가?
장량의 요청으로 그를 따라 유방의 군장으로 들어간 순간, 항백은 자신의 마음 속에 놓여 있던 돌맹이를 내려놓은 것같이 느꼈다. 내일 곧 재난이 닥친다는 말을 듣고 유방은 아주 놀라서 당황했다. 평소에 욕을 잘하고, 오만하던 유방이 이때는 몸을 낮추어 공손하게 형님을 대하는 예절로 항백을 대했다. 자신의 성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해서 항백과 서로 자녀를 결혼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항백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었다. 그는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유방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유방을 구함으로써 항우와 항씨가족을 구하려 한 것이다. 유방이 이렇게까지 감격하고, 고마워할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아야, 우리는 항백이 항우에 대하여 사심없는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래야 장량의 항백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내간(內奸)"이나 "반란"은 아니다. 무슨 주인을 팔아서 부귀영화를 구하거나 멍청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완전히 항백의 항우에 대한 최대의 사랑과 도움이다. 항백의 항씨집단의 반진사업에 대한 최대의 공헌이다. 수천년간 욕을 얻어 먹겠지만, 항백은 이미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대충약간(大忠若奸)"이다. 후인들이 역사를 잘 읽기 못하여, 항백을 소인이라고 오인했다. 정말 "곤곤장강동서수(滾滾長江東逝水), 낭화도진영웅(浪花淘盡英雄)"이다(도도한 장강은 동으로 흘러가고, 물보라 속에 얼마나 많은 영웅이 나타났다 사라졌는가라는 정도의 의미로 삼국연의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홍문연은 단지 급히 마련된 연회일 뿐이다. 불속지객(不速之客,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아무런 준비없는 주인간의 작은 모임이다. 항백은 항씨의 반진대업을 보전하기 위하여 한 사심없는 노력이고 항백이 외부의 힘을 빌어 범증에 대항하는 대담한 시험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연회에서, 항장이 칼춤을 추면서 패공(유방)을 노리고 있을 때, 항백은 자주 몸을 일으켜 나간 것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시비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반드시 유방을 보호해야 했다. 이때, 유방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항우를 보호하는 것이다. 바로 항씨집단의 실제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의 두 눈은 왕왕 역사의 겉모습에 속고 만다.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세지말절(細枝末節)을 통하여, 역사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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