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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협기(俠妓)"로 만들어된 소봉선(小鳳仙)

by 중은우시 2013. 11. 10.

글: 장명(張鳴)

 

 

 

한 풍류적인 개세의 영웅이 있었다. 그는 마음 속에 나라와 세상을 구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우연히 대의를 아는 풍진여자를 만난다. 영웅을 엄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가 운남으로 돌아가서 원세개를 토벌하는 호국전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여자는 자신의 몸을 던져 감옥에 들어간다. 결국 원세개를 토벌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영웅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영웅과 미녀는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만나지도 못했다.

 

이것이 바로 채악(蔡鍔)과 소봉선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전설일 뿐이다.

 

진실산 상황은 이렇다. 당초 채악이 북경에 있을 때, 확실히 소봉선과 가깝게 지낸 적은 있다. 소봉선은 유명한 소주기생이다. 재색을 겸비하였으며, 가까이 지낸 사람이 채악만은 아니다.

 

그리고 홍헌칭제기간에 원세개는 채악을 의심하고 경계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확실히 누군가 그의 행동을 감시한다. 어쨌든 운남의 군대는 북양의 적계가 아니고, 실제로도 반독립상태에 처해 있었다. 채악은 운남군인들에게 높은 위신을 지니고 있었다. 의심이 많은 원세개가 어찌 그를 방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채악이 북경을 도망쳐 빠져나가 반기를 들고자 할 때, 확실히 곤란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봉선을 이용한다. 다만, 전체 도망나가는 미혼진에서 소봉선이 차지한 비중은 아주 적다. 그리고 그녀는 이에 대하여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연히 도와주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채악이 빠져나갈 계획을 세울 때, 마침 총통부의 합(哈)씨성의 군사고문이 그의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연회를 열었다. 채악은 합씨의 집으로 가서 몇몇 친구를 만나 밤새도록 타패(打牌)를 즐긴다. 새벽 7시까지 놀다가, 채악은 합씨의 집을 떠나, 직접 총통부로 출근했다. 감시하던 자는 채악이 총통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안심하고 떠났다. 이때는 출근시간이 아직 일렀다. 총통부내의 사람은 채악이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는지 의아해 했다. 채악은 자신의 시계에는 이미 시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서 바로 소봉선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때 12시에 모식당에서 같이 식사하자고 말한다. 그 후 그는 총통부의 사무실을 한바퀴 둘러본 후, 뒷문으로 도망쳤다. 3등기차를 타고 천진으로 간다. 천진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고 다시 월남을 거쳐 운남으로 들어간다.

 

전체 과정에서 소봉선이 관련된 것은 단지 전화를 받은 것뿐이다. 다만, 채악이 빠져나간 후, 소봉선은 이 전화때문에 연루되어 하루종일 심문을 받는다. 수사관들은 아무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도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소봉선이 나차(騾車, 노새가 끄는 가마)를 타고 풍대(豊臺)기차역까지 갔고, 채악을 안에 숨겨서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이야기는 풍류가 있다. 그래서 외부 사람들도 많이 전파한다. 이렇게 하여 소봉선은 협기라는 이름을 얻고 그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된다. 나중에 채악이 죽은 후, 소홍선의 이름으로 만련(挽聯)이 하나 보내진다, "불행주랑경단명(不幸周郞竟短命), 조지이정시영웅(早知李靖是英雄)". 그러나 이 만련은 기실 호사가가 대필한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