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재봉(文裁縫)
당백호점추향의 이야기는 강소절강지구에서 500여년간 전해져 내려왔다. 내용은 당인(唐寅, 즉 당백호)과 문징명(文懲明), 축지산(祝枝山)은 모두 오중(吳中)의 재자(才子)이고, 당백호는 특히 글과 그림에 능했고, 기도가 시원스럽고, 자잘한 일에 얽매이지 않았다. 무석(無錫)의 망족인 화학사(華學士)의 부인이 노비를 이끌고 화방(畵舫)을 타고 오중에 와서 향을 올리는데, 마침 문징명과 축지산의 요청으로 호구(虎丘)에 놀러 갔던 당백호와 만나게 된다. 이때, 당백호는 화씨집안의 여러 사람들 중에서 자색이 아름답고 뒤어난 비녀(婢女)를 만나게 되고, 당백호는 그녀를 추구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이를 위하여, 당백호는 옷을 바꿔입고 화씨집안에 과외선생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이름은 화안(華安)으로 고치고 나중에 추향(秋香)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전설, 이야기이다. 역사상 진실한 당백호는 전설에서처럼 풍류적이지도 않았고, 생활이 청빈했고, 일생동안 힘들게 살았다. 그가 젊었을 때, 처는 세상을 떠난다. 당백호는 27살때 후처를 맞이하는데 하씨(何氏)이다. 아쉽게도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다음해 회시(會試)때 당백호는 과거부정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다. 이때부터 과거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공명을 얻는 길을 막힌 것이다. 하씨는 당백호가 관직에 나갈 희망이 없어지자, 당백호와 매일 다투게 된다. 당백호는 이혼서류를 써주고 하씨는 친정으로 돌려보낸댜. 나중에 당백호는 청루(靑樓) 여자 심구낭(沈九娘)을 처로 맞이한다. 두 사람은 의기가 투합했다. 당백호는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는데 정열을 쏟는다. 그리하여 그림을 그리는데서 큰 진전을 이룬다. 당인이 31살때부터 "천리장유(千里壯遊)"를 시작한다. 그의 발걸음은 강소, 절강, 안휘, 호남, 호북, 복건, 강서의 7개성에 걸친다. 빈곤한 가운데 그림을 팔아서 생활을 유지했다. 당인은 산수와 공필화를 잘 그렸고, 특히 사녀(仕女)를 잘 그렸다. 필법은 수윤진밀(秀潤縝密), 소쇄표일(瀟灑飄逸)했다. "당백호그림"은 후세 화가들의 스승이 된다. 세상에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기려귀사도>, <추풍환선도>, <이서서도>, <일세인연도>, <산로송성도>등이 있다. 시사산문으로는 <육여거사전집>이 있다.
당백호의 후반생은 도화오(桃花塢)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명나라 정덕4년(1509년) 당백호는 소주성의 북쪽에 도화오를 만든다. 그는 자칭 도화오주(桃花塢主)라 칭한다. 일찌기 <도화암가>를 써서 자신의 생활을 묘사하기도 했다: "도화오리도화암(桃花塢裏桃花庵), 도화암하도화선(桃花庵下桃花仙), 도화선인종도수(桃花仙人種桃樹), 우적도화환주전(又摘桃花換酒錢)......" 당백호의 주요 예술작품도 이 곳에서 탄생한다. 당백호는 고난의 일생을 살았고 말년의 생활도 빈곤하고 처량했다. 향년 54세로 세상을 떠난다.
당백호의 고난의 일생을 보면, 그는 추향이라는 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당백호점추향'이라는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추향은 또 어떤 인물인가?
명나라때의 필기체소설에서 가장 먼저 추향이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명나라때 소설가 왕동궤(王同軌)는 그의 <이담(耳談)>이라는 글에서 또 다른 소주의 재자 진원초(陳元超)에게 당백호점추향과 동일한 이야기가 일어났다고 썼다. "진원초는 어려서부터 장난꾸러기이고 말을 듣지 않았다. 일찌기 손님들과 호구에 올라갔다가 관료집안사람들을 따라온 여자노비가 자색이 뛰어난데, 웃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뒤를 쫓아서 그 집까지 간 다음, 옷을 갈아입고난 다음 낙척서생이라고 말하며, 서동이 되기를 청한다. 그리고 남아서 두 아들의 서동이 된다. 이때부터 두 아들의 글은 날로 발전한다. 부친과 스승이 크게 놀랐으나 아직 진원초라는 것은 몰랐다. 진원초는 곧 발각될 것같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결혼을 해야겠다며 떠나겠다고 한다. 두 아들은 말리며 말했다: '우리집에 있는 여자중에서 그대가 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제서야 못이기는 척하고, "부득이 하다면 추향이면 괜찮다."고 한다. 바로 이전에 만났던 그 여자노비이다. 두 아들은 부모에게 말하여 추향을 그에게 시집보낸다. 진원초는 추향과 결혼했는데, 추향이 물어본다: "그대는 호구에서 만난 사람이 아닙니까" 진원초가 말한다: "그렇소." 추향이 말한다: "그대는 귀공자인데, 왜 이렇게 스스로 미천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진원초가 말한다: "그대가 옛날에 나를 돌아보며 웃어주어서 잊을 수가 없었소."
이 이야기는 명나라말기에 풍몽룡의 손을 거쳐 <경세통언>의 <당해원일소인연>으로 바뀐다. 희곡에 당백호가 나타나는 것은 명나라말기 맹칭순의 잡극 <화전일소>이다. 후세인들이 "일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일소"는 "삼소"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왕백곡의 <삼소연>탄사, 탁인월의 <당백호천금화방연> 잡극이 나타난다. 건륭, 가경이후, 소주 평탄예인들의 입에서 자주 부르던 탄사(彈詞)는 <삼소인연>, <삼소신편>, <삼소팔미도>, <소중연>등등이 있다. 청나라말기에 이르러, 민간에서는 탄사창본 <구미도>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당백호가 9명의 꽃처럼 아름다운 미녀를 부인으로 취했다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당백호는 비록 추향을 처로 맞이하지 않았지만, 그와 동시대에 확실히 추향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 추향은 대갓집의 여자노비가 아니였다. 당시 남도 금릉의 명기(名妓)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추향의 본명은 임노아(林奴兒)이다. 자는 금란(金蘭)이며, 호는 추향(秋香)이다. 그년느 금.기.서.화에 모두 정통했고, 당시에 오중여재자(吳中女才子)로 불린다. 추향은 어려서 청루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양갓집에 시집가면서 기적에서 빠진 후에도 옛날의 손님들 중에는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거절했을 뿐아니라, 부채에 <신류도(新柳圖)>를 그렸고, 시를 지었는데, 이런 내용이다: "석일장대무세요(昔日章臺舞細腰), 임군반절눈지조(任君攀折嫩枝條), 여금사입단청리(如今寫入丹靑裏), 불허동풍재동요(不許東風再動搖)" 명나라때의 <화사(畵史)>의 기록에 따르면, "추향은 그림을 사정직, 원원보 두 사람에게 배웠고, 붓이 가장 청윤(淸潤)했다." <금릉쇄사>에는 추향이 일찌기 당백호의 그림스승인 심주(沈周)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말도 기록되어 있다. 심주는 명나라때 상당히 유명한 대화가이다. 일찌기 추향을 위하여 단청화를 1폭 그려준 바있고, 시를 한 수 써주었다. 추향과 당백호는 비록 동시대에 살았지만, 고증에 따르면, 추향은 명나라 경태원년(1450년)에 태어나서 당백호보다 20살이 많았다. 당백호가 16살에 세상애 나왔을 때, 금릉 진회하의 추향과 애정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백호점추향의 야이기는 아마도 후세인들이 억지로 끼워맞춘 것일 것이다.
추향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있었다. 화태사도 역사상 출현한 바 있다. 그러나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화태사는 당백호보다 27살이 적다. 그의 원명은 화찰(華察)이며, 자는 자잠(子潛), 호는 홍산(鴻山)이다. 명나라 가정5년(1526년)에 진사에 급제하니 당시 30살이었다. 화홍산은 나중에 병부랑중이 되고, 한림원수찬이 된다. 일찌기 명을 받아 조선에 사신으로 간 적도 있다. 1품복을 하사받았다. <삼소>에 묘사된 상황과는 전혀 상반되게, 화홍산은 평상시에 생활이 아주 검소했다. 음식도 아주 간단했다. 집안에 시비도 없었다. 그가 나이가 들어 은퇴하였을 때, "집안은 원래 잘 살았고, 집도 지역에서 좋았지만, 식불삼두(食不三豆)하고, 집안에 시녀를 두지 않았으며, 문사청삭(文詞淸削)했다." 그리고 화홍산의 두 아들도 멍청하지 않았다. <서신객화>에 따르면 그 아들은 "어려서 뛰어난 재주가 있었고, 약관이 되자 과거에 급제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당백호점추향"은 원래 "진공자점추향"이었다. "진공자점추향"의 원형은 진원초이고 명나라때 소주사람이다. 당백호와 마찬가지로 재자이며, 명말의 풍몽룡이 두 사람의 신분을 혼동한 것이다.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 > 역사인물 (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문장(徐文長): 세번이나 자살미수한 명나라의 화가 (0) | 2013.11.23 |
---|---|
왕진(王振): 명나라 환관전횡의 효시 (0) | 2013.11.18 |
명장 척계광(戚繼光)의 처량한 말년 (0) | 2013.08.05 |
엄숭(嚴嵩)의 여러가지 얼굴: 서생에서 간신까지 (0) | 2013.07.12 |
주매신(朱買臣): 마음속이 바늘끝처럼 작은 사람 (0) | 2013.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