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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보시라이는 재기할 수 있을까?

by 중은우시 2013. 10. 10.

글: 강유평(姜維平)

 

보시라이사건이 마침내 판결선고되었다. 현재의 문제는 미래이다. 미래 4,5년, 중국에 허웨이팡(賀衛方)이 말한 '거변(巨變)'이 생길 수 있을까?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경제형세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현재의 안정속에서의 미세한 조정상태가 계속되는 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급변, 89년 "6.4"와 같은 동란과 같이, 대규모의 군중항의가 발생한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면 '부패방지, 청렴"과 "민주법제요구"가 주요한 구호와 강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보시라이의 깃발을 들 수 있을까?

 

헛소리는 하지 말자. 보시라이는 독립된 사상체계가 없다. 그는 체제내의 개혁자였던 적도 없고, 이의인사나 인권보호인사도 아니다. 그는 정치적인 실용주의자이다. 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이다. 역사정신 쓰레기의 대잡탕이다. 그는 "창홍타흑"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는 민중의 빈부양극화에 대한 불만정서를 이용하여, 허명을 빼앗았을 뿐이다. "2차혁명"의 방법을 이용하여, "돈을 빼앗고 매관매직했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백성들은 부정부패를 가장 미워한다. 그 자신이 큰 탐관오리이고, 무슨 호소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동산일출(東山日出)"이 아니라, "서산일락(西山日落)"이다. 그가 대표하는 것은 도퇴하고 썩은 사회의 역류이다; 그는 치가(治家)의 수단도 없다. 그런데 무슨 치국(治國)의 방략이 있을 수 있을까? 부하 왕리쥔조차도 마음을 얻지 못했는데, 어찌 더 많은 사람을 단결시켜 천하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다롄에서, 그는 동료와의 관계를 한번도 제대로 처리한 적이 없다. 위쉐샹(于學祥), 차오보춘(曹伯純)과 싸웠다; 성회도시(선양)에서는 원스쩐(聞世震), 천정까오(陳正高)와 싸웠다; 베이징에서는 우이(吳儀), 원자바오(溫家寶)와 싸웠다; 충칭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속좁은 정객이 만일 부친 보이보가 감싸주지 않았더라면, 시골의 소대장도 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지도자가 된단 말인가. 이 말은 필자가 한 말이 아니다. 전 다롄시 부시장 탕치순(唐啓舜)이 한 말이다. 보시라이가 오늘날 몰락한 것은 많은 다롄사람들이 일찌감치 20세기에 예측한 것이다. 그들이 명찰추호(明察秋毫)해서도 아니고, 그를 떠받드는 사람들이 총명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보시라이와 직접 교류한 경력과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상에 의지하여 헛소리와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나는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일반적인 상황하에서, 보시라이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은 대부분 그와 만나본 적이 없다. 그저 공식매체를 통해서 그를 안 사람들이다. 보시라이는 신문을 전공한 관리이다. 자신을 포장하고 잘 연기하는데 능숙하다. 매체를 가장 잘 조작한다. 충칭매체가 "평안충칭"의 좋은 형세를 대거 보도하고 있을 때, 왕리쥔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진실한 서로 다른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성이 어찌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팡디(方迪)와 같이 입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은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었다. 누구도 감히 말을 할 수 없었다. 말해보라. 공안국장도 미국영사관으로 가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데, 이 앵가연무(鶯歌燕舞)의 충칭은 거짓이 아니었던가? 다시 말해서, 만일 리쥔(李俊)이 '흑타"를 당한 진실한 내용이 <중경일보>에 보도되었더라면, 백성들은 그래도 "창홍타흑"을 지지했을까? 만일 현지매체가 앞장서서 쉬밍(徐明)과 보시라이,구카이라이의 권력금전거래이야기를 추적보도했다면, 백성들은 숭배하는 눈빛으로 보시라이를 바라보았을까?

 

당연히, 보시라이를 본 많은 사람들도 그를 추켜세운 바 있다. 이 점은 필자도 인정한다. 필자는 생각한다. 일부 경제적인 이익을 얻은 문인들을 제외하고 그들은 <독점경전>의 소홍서를 출판하면서 약간의 원고료를 받은 외에,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 정도 만나거나, 혹은 몇번 부광약영(浮光掠影) 식의 인상이 있을 뿐이다. 현실생활에서, 남자건 여자건, 사람들은 대부분 용모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 보시라이는 말재주가 뛰어나다. 그래서 처음 본 사람들의 호기심을 붙잡을 수 있다. 다만, 그와 깊이있게 한 두 건의 일을 처리해본다면, 그는 마각을 드러내게 된다. 하나는 위선이고 둘은 패도이며, 셋은 탐욕이고, 넷은 왕법(枉法)이다. 이들 성격특징은 그의 충칭 집권기간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의 일생에서 마지막 모습은 오일간의 재판에 농축되어 있다.

 

공소사실에 대하여 그가 교활하게 변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뜻 들으면 아주 이치에 맞는 것같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아연실소할 수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말을 잘 하더라도, 잘 듣는 사람만 못하다. 부정부패죄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보시라이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어찌 500만의 공금이 구카이라이의 구좌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왜 필자의 마누라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한마디만 물으면 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가지 일을 가지고, 한 두마디 말을 들은 것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의 본질을 통찰해야 한다. 보시라이가 과거에 사람들을 속였던 방법은 먼저 몇몇 심복을 끌어들이고, 고의로 그들이 탐욕을 부리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게 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약점을 잡아서 그들이 그를 위하여 일하게 만든다. 그들은 매체를 충분히 이용하고, 보시라이를 대거 미화한다. 그리고 다시 "정치다단계술"의 기량을 이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끌어들인다. 돌맹이가 물 속에 던져진 것처럼. 일어나는 물결을 가지고 강물을 자랑하는 것이다. 충칭에 있을 때 이 수법을 최대한 활용했다.

 

지금 5일간의 재판과 하루만의 선고를 통하여 사람들은 이미 위군자, 대탐관 보시라이의 진면목을 인식했다.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주택을 짓는다"는 구호를 가장 시끄럽게 떠들 때, 그와 쉬밍의 권력금전거래로 암도진창의 수법으로 프랑스에 호화주택을 구매했다. 화장실의 건설가격만도 몇 채의 염가주택에 상당하는 호화주택이다; 펑쉐이현의 소학생 왕야가 돈이 없어 점심을 먹지 못하고, 찬물을 먹어 배를 채울 때, 펑제현의 소학생이 통학을 할 때 6시간을 걸어가면서 폭죽을 쏘아 멧돼지를 쫓아버릴 때,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는 국외에서 공부하고 잇었다. 1년 학비만으로도 몇 개의 "희망소학"을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구룡파 석평교의 농촌부녀 우웬비가 돈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고, 과도로 배를 갈라 스스로 치료할 때,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돈을 물쓰듯 썼다. 아들 보과과는 호화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아우디거'가 빈곤한 안원진 쥬판촌에 따스한 마음을 전달할 때, 보과과는 상인 쉬밍이 여행비를 대신 부담해주어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가 비행기표 한 장만 아꼈더라도, 충칭의 농민을 한 명 구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번 물어보자. 이렇게 스스로 교묘하게 허위로 청렴한 모습을 포장한 전형적인 인물이 미래 4,5년내에, 사회동란을 틈타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은 그것을 믿는가? 알아야 할 것은 장래의 중국은 반드시 민주와 법제의 세계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관리를 선택하는데 선거를 이용하고, 관리를 평가하는데 행동을 보고, 관리를 감독하는데 제도에 의지할 것이다. 이것을 해낸다면, 첫째, 모든 신문자유가 있어야 한다. 정말 그 날이 오면, 다롄과 충칭의 보시라이의 악행을 아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많을 것이다. 모두 두려움과 위협이 없어진다면 마음놓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보시라이, 구카이라이의 부정부패, 불법행위의 스캔들이 터져나올 것이다. 그들은 더욱 추악해질 것인데, 어찌 재기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보과과가 미국인들에게 투항하여, 미국의 병력을 이끌고 와서 감옥 속에 갇힌 부모를 구한다면 모를까.

 

다만, 나의 말을 기억해라.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중국의 권력자들은 외적의 침입을 의식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보시라이를 이용하여 일을 벌일 것이다. 그저 약간의 움직임만 있으면, 감옥안에 임시로 만든 특별법정에서 즉시 그를 끌어내 총살시켜버릴 것이다. 그가 재기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국민당도 해방전에 옥중의 정치범들을 총살시켜버리지 않았는가? 하물며 중국공산당이야.

 

그래서, 그런 "보시라이의 정채생명은 막 시작되었다"라든가, "그는 정치무대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라거나, "그가 마지막에 웃게 될 것이다"라거나 등등은 2012년의 봄여름의 교체기에, 보시라이의 가족이 옛 동창을 통하여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다시 일본매체를 이용하여 북경반점에서 회담했다고 날조하고, 다시 그 이후에는 누군가 '연착륙'한다는 허위소식을 공개한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명확히 세상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만일 사회급변이 발생하면, 새로운 민중이 받아들일 지도자는 아마도 왕양(汪洋) 혹은 쉬즈용(許志永) 과 같은 류의 전 관료 혹은 변호사, 이의인사, 인권보호인사일 것이다. 절대로 보시라이와 같은 큰 사기꾼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시진핑은 가슴에 큰 뜻을 품은 개혁자일 것이다. 그의 최근 "죄회전"은 미봉책이고,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것이다. 그는 리커창과 잘 협력하여 중국을 다시 5년간 내지 10년간 안정시킬 것이다. 집정의 두번째 5년간 정치개혁을 시작하여, 민주로의 평화적인 전환을 완성할 것이다. 국민당과 경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그는 보시라이와 마찬가지로, 뼛속부터 독재전제의 "홍이대(紅二代)"이고, 인민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부친 시중쉰의 민주이념의 작은 문제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중국을 전면적인 동란으로 몰고 가고, 그 자신은 역사에 의하여 무정하게 도태될 것이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보시라이가 '재기'할 기회는 없다. 이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금년 8월 22일은 보시라이가 비정하게 고별연출을 한 것이다. 그는 다시는 같은 강물을 밟을 수 없을 것이다. 시진핑은 최소한 5년간은 잘 해낼 수 있다. 5년후, 보시라이는 70여세의 늙은이이다. 오늘 무기징역을 받고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포효했다. 이렇게 예견할 수 있다. 그의 심리는 이미 붕괴되었다. 내일이 없다. 이후 2,3년간, 언제든지 화병으로 죽을 수 있다.  천시통과 마찬가지로, 신문에 한줄의 글이 나올 것이다. 보시라이는 죽었다. 그 때, 어떤 사람들은 '재기'의 논조를 회상하면서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그는 '동산재기'할 수 없다. 당연히 "개관정론(蓋棺定論)"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