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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

마오신위(毛新宇) 출생의 비밀

by 중은우시 2013. 10. 9.

글: 오소리(烏蘇里)

 

중국 국내의 민주파의 간행물 <염황춘추>의 금년(2013년) 9월호에는 해방군 전 총참모장 황용성(黃永勝)의 장남인 황춘광(黃春光)이 부친을 회고하는 글을 실었다. 거기서 마모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칭(毛岸靑)은 정신병환자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손자인 해방군 소장 마오신위는 원래 해방군301병원이 인공수정의 방법으로 만들어냈다고 폭로했다. 황춘광의 글은 중국민간에서 오랫동안 논쟁되어 오던 마오신위 출생의 비밀을 풀어주었고, 인터넷에 인기리에 퍼져갔다. 마오집안은 이에 대하여 상당히 분노하였고, <염황춘추>를 프라이버시침해로 고발하겠다고 하였다.

 

마오신위는 1970년 문혁의 와중에 태어났다. 당시 어떤 사람은 마오신위가 마오안칭의 아들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했다. 왜냐하면 샤오화(邵華)는 1960년에 요양원에 있던 마오안칭과 결혼할 때, 마오안칭이 이미 정신분열증을 앓은지 여러 해가 되어서, 결혼후 12년간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돌연 아들이 태어났단 말인가? 그리고, 마오안칭이 성무능력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서 마오신위에게는 다른 부친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심지어 마오신위는 마오안칭의 동생이지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었다. 즉 마오쩌둥이야말로 마오신위의 부친이라는 말이다. 인터넷에는 마오쩌둥과 며느리인 샤오화와 같이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돌아다니고 있는데 모습이 아주 친밀하고 열손가락을 꼭 끼고 있다. 그중 한장에는 마오쩌둥이 한 손을 샤오화의 넙적다리에 놓고 있다. 게다가 장칭(江靑)은 문혁때 샤오화와 그녀의 모친인 장원츄(張文秋)를 공개적으로 크게 욕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장원츄 모녀와 마오쩌둥간에 애매한 관계에 있다고 믿었다.

 

현재 <염황춘추>의 글은 마오신위가 마오쩌둥의 손자가 확실하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인공수정을 통한 것이라는 것이다. 글에 따르면,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마오쩌둥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마오안칭과 샤오화간에 결혼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식이 없어, 후손이 단절될 상황에 놓이자, 아주 조급해 했다. 그리하여, 전문가들에게 방법을 강구하여 마오쩌둥의 후사가 이어지도록 방법을 찾게 하였다.

 

황춘광에 따르면, 9대(九大)를 전후하여, 저우언라이는 사적으로 당시 총참모장을 맡고 있던 황용성에게 말했다: 너희 군대는 마오안칭의 생활을 돌봐줄 수 있겠는가? 그는 중앙편역국에 있고 다른 사람이 그의 글을 써준다. 그의 몸도 좋지가 않다. 군대에서 돌봐주면 나의 짐을 좀 덜 수 있겠다. 황용성은 그리하여 마오안칭 일가를 서산의 원래 부총참모장 한 사람이 거주하던 큰 주택에 옮겼고, 지금까지 그 곳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의료관계를 301병원으로 옮겨거 그로 하여금 군급간부 대우를 받게 해준다. 저우언라이는 황용성으로 하여금 마오안칭의 모든 관계를 군대로 옮기게 했고, 이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군인신분을 부여했다.

 

나중에 저우언라이는 황용성에게 또 이렇게 말한다: "301병원에서 방법을 강구하여 샤오화를 임신시킬 수 있겠는가. 마오주석의 후손이 있도록." 황춘광은 이 작업이 "극도의 보안"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저우언라이가 어레인지하여, 301병원의 차오건후이(曹根慧) 부원장이 앞장서서, 산부인과, 신경과, 비뇨기과 및 내과의 최고 전문가와 간호사로 전문소위를 만든다. 마오안칭과 샤오화는 301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엄격한 전신검사를 받고, 매일 두 사람의 신체상황, 예를 들어, 체온, 혈압등은 황용성의 사무실로 보내어졌다. 황춘광의 기억에 정자를 채취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제1차 인공수정은 실패했었고, 제2차때 비로소 성공했다고 한다.

 

1970년 1월, 마오신위가 마침내 세상에 태어난다. 모든 사람이 흥분한다. 다만 마오쩌둥은 손자에 대하여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처음 손자가 태어난 것을 보고한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두번째로 간호사가 그에게 보고했을 때는, 그가 손에서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한 마디 던졌을 뿐이다: "세상에 밥먹는 입이 하나 더 늘어났구만." 황춘광은 말했다. 그가 죽기까지의 6년간 마오쩌둥은 한번도 그의 이 유일한 손자를 만나지 않았다. 이것은 마오쩌둥에게 아부하여 잘보이려고한 저우언라이와 이 일을 처리했던 황용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