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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부호

후슈줸(胡淑娟)의 창업사

by 중은우시 2013. 9. 14.

글: 경화시보 

 

 

 

중국의 첫번째 죽체인점인 홍좡웬은 일찌감치 주인이 바뀌어 필리핀 졸리비그룹(快樂蜂, Jollibee Group)의 산하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이 죽집의 창업자는 후슈줸이라는 여인이라는 것이다. 공개된 정보에서 개인자료를 찾기 어려운 그녀는 4년간의 경업금지기간이 끝난 후 "스리팡(食立方)"이라는 브랜드로 다시 음식체인점업에 뛰어들었다.

 

창업

 

1993년, 베이징의 한 상업업체에서 회계를 보고있던 후슈줸은 돌연 사직한다. 그녀는 자신이 밖에서 겸직하는 일로 버는 돈이 회사내에서 회계로 버는 돈보다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직후, 그녀는 이 소식을 부모에게 알린다. 부모는 어쩔 수가 없었다. 후슈줸이 사직한 후 자동차운전학원에 가서 운전을 뱅ㄴ다는 말을 듣고, 부친은 약간 안삼하며 말했다: "음. 운전을 배우는 것은 괜찮다. 나중에 일자리를 찾을 때 택시를 몰 수도 있으니까."

 

겸직업무는 후슈줸으로 하여금 여러군데 서로 다른 기업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그녀가 계속 회계업무를 해서는 앞날이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예쁜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 자주 스스로 예쁜 치마를 만들고, 스웨터를 짰다."

 

후슈줸은 말한다. "나는 당시에 생각했다. 만일 기업이 있으면 나는 더 많은 돈으로 스스로를 모양낼 수 있을 것이다고." 그래서 후슈줸은 10만위안의 모은 돈을 가지고 베이징우전대학의 부근에 사천요리집을 낸다.

 

"재료구매에서 장부정리 및 관리까지 모조리 혼자서 했다." 후슈줸의 식당은 베이징우전대학의 직원들에게 모조리 할인헤택을 주었고, 선생님을 모셔서 식당앞에서 토플강의도 했다. 이런 광고효과로 장사는 잘 되었고, 매달 2만위안 이상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을 벌게 된 후슈줸은 너무 바빠가 예쁜 의복을 사서 입을 시간이 없었다. "점포안의 장사는 모두 내 손으로 해야 했다. 점포를 떠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1년여후 나는 점포를 팔기로 결정한다." 후슈줸은 말한다. 이렇게 하여 3,4십만위안의 밑천을 확보하게 된다.

 

성공

 

그러나, 수십만의 현금을 가진 후슈줸은 일안하고 노는 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다시 사람을 구해서 하는 식당을 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홍좡웬의 전신이다.

 

"당시 공상부서에서는 나에게 5개의 이름을 후보로 가져오게 요구했다. 나는 '좡웬(狀元)'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해서, 장원루(狀元樓), 장원홍(狀元紅)....등의 이름에 마지막에 홍좡웬(宏狀元, 굉장원)을 넣었다." 후슈줸의 말이다. 공상부서에 가니 앞의 4개는 다른 사람들과 겹치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여, 홍좡웬으로 결정한다.

 

홍좡웬은 처음에 오리구이, 솬양러우(샤부샤부), 산동요리를 경영했다. 나중에는 사천요리로 자리잡았다. 점포를 개설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임신을 한다. 출산기간동안 점포를 형부에게 맡겨놓는다. 아이를 낳은 후, 후슈줸이 생각한 첫번째 일은 점포를 하나 더 여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죽원(紫竹園) 부근에 좋은 위치를 봐놓았다. 그러나 건물주는 죽어도 식당을 여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식당을 하게 되면 연기도 많이 나고, 음식쓰레기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때 후슈줸은 아이를 낳은 후 출산도우미가 그녀에게 매끼 죽을 끓여준 바 있다. 그래서 자신은 몸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죽집을 열려고 생각한다. 죽집은 당시 베이징이 식당업내에서 공백이었다. 그리고 죽을 만드는 것은 다른 식당보다 깨끗한 편이다.

 

건물주를 설득하기 위하여, 후슈줸은 301의원의 영양사도 초빙하여, 8가지 죽, 8가지 전, 8가지 끓인 음식과 8가지 냉요리를 준비하고, 죽마다 영양가치를 표시했다. 결국 건물주의 동의를 받나낸다. "그래서, 내가 죽집을 열게 된 것은 완전히 건물주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죽집을 열자, 장사는 아주 잘되었다. "원래는 매상을 매일 4,5천위안으로 예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7,8천위안에 달했다." 당시 고객들이 줄을 서서 죽을 사던 광경을 생각하면서 후슈줸은 자부심을 나타낸다: 가수인 차이궈칭(蔡國慶)이 한번은 우리 집에 식사를 하러 왔다. 아쉽게도 그 날 자리가 비어있지 않았다."

 

죽집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후, 후슈줸은 규모를 늘인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먼저 점포를 열어서 성숙되면, 다시 점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보니, 1년에 기껏헤야 3,4개 점포밖에 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나 바빴다. 자신은 관리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아는 후슈줸은 대외경제무역대학에 가서 MBA와 EMBA과정을 수료했다. "내 논문의 글자 한자 한자는 내가 직접 쓴 것이다. 공부하는데 절대 설렁설렁하는 법이 없었다." 후슈줸의 말이다. 공부는 자신의 사업에 도움을 주었다. 그후, 그녀는 제도화, 인성화 관리방법을 추진한다. 이렇게 하여 홍좡웬의 개점속도가 빨라진다. 2000년에는 겨우 3개 점포밖에 없었는데, 2005년에는 30개에 가까워지고, 연매출액이 1억위안을 넘었다.

 

퇴진

 

죽집이 인기를 끌자 누군가로부터 후슈줸에게 홍좡웬을 구매하겠다는 말이 들려온다. "나는 그게 농담인 줄 알았다. 나는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얘기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성격이 직선적인 후슈줸은 바로 거절한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찾아갔다. "남편은 당시 북경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자본운용을 할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후슈줸의 말이다. 나중에 자기에게 팔라고 권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래서 그녀는 2006년부터 일부 투자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한다. 그중에는 기금회사, 투자회사도 있고, 국유기업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그녀는 2008년 용허대왕(永和大王)을 인수한 필리핀 최대의 패스트푸드업체인 졸리비와 인수계약을 체결한다.인수자금은 5,050만달러에 달했다. 베이징 본토 패스트푸드브랜드로서 외국자본에 거액에 인수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양도대금을 손에 넣은 후 후슈줸이 처음으로 한 일은 그중 1000여만위안을 오래된 직원. 회사경영진과 점장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받은 돈으로 아우디 승용차를 샀다. "이들 직원, 점장, 경영진은 모두 직접 졸리비의 산하로 들어갔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순전히 내가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후슈줸의 말이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을 많이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오래된 직원들은 홍좡웬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의 "넷째언니(四姐, 후슈줸은 집안에서 넷째이다)"를 찾아온다.

 

재출도

 

한번은 후슈줸이 오래된 직원들을 초청해서 쉐리이팡(水立方, 워터큐브. 베이징올림픽수영경기장)의 부근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들은 속속 그녀에게 음식점브랜드를 하나 다시 창건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때의 후슈줸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졸리비와의 계약에서 인수완성후 4년동안 식당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후슈붼이 말이다. 당시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의견을 내놓을 때, 건너편의 쉐이리팡을 보고 돌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스리팡(食立方)". "'10' 이 로고는 간단하면서도 눈에 띈다. 그 뜻은 1000개의 점포를 내겠다는 것을 포함한다."

 

스리팡의 포지셔닝에 대하여, 후슈줸은 그 이름과 마찬가지로, 천남지북(天南地北)의 샤오츠(小吃)를 모조리 망라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들 홍좡웬의 원로들을 데리고 각지로 가서 샤오츠를 맛보았다. 지금 스리팡의 메뉴판에는 충칭 완저우의 짜장면도 있고, 광시 난닝의 라오여우펀(老友粉)도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당시에 배운 것들이다. 각양각색의 전병도 스리팡의 특색중 하나이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점포를 여는 것은 방대한 공정이다. 졸리비와 체결한 경업금지조항때문에, 후슈줸 본인이나 직계친족은 음식업에 종사할 수 없다. 이들 오래된 직원들은 자금과 표준화생산등의 각종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점포를 개설하기로 결정한다." 후슈줸의 말이다. 홍좡웬을 매각한 후,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중앙주방은 남겨두었다. 자신의 식당도매업은 금지에서 해제된 후 이 중앙주방은 스리팡의 주방이 된다. 30%의 반제품은 이곳에서 각 점포로 배달되고, 스리팡이 짧은 3년여의 시간만에 30여개의 점포로 확대되는데, 큰 공헌을 한다.

 

그러나, 스리팡의 주방만을 맡는 것이 후슈줸의 뜻은 아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그녀는 졸리비와의 경업금지기간이 이미 끝났다. 이미 스리창의 원주주에게서 지분을 매수하여 지배주주가 되었다."내 생각에 나의 가장 이상적인 직업이 사장인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