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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세 명의 총잡이" 이론과 전국칠웅의 쟁패

by 중은우시 2013. 8. 15.

글: 과학송서회(科學松鼠會) 

 

이렇게 가정해보자. 두 명의 총잡이 갑과 병이 있다. 그들이 생사결투를 벌이는데, 갑의 사격술을 비교적 정확하여 명중률이 80%이다. 그러나, 병의 사격술은 떨어져서 명중률이 겨우 40%에 불과하다. 만일 두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두고 동시에 상대방을 향하여 총을 쏜다면, 누가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높을까? 말할 것도 없이 사격술이 뛰어난 갑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결투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3인게임으로 바꾸어보자. 또 다른 총잡이 을을 끼워넣자. 을의 사격술은 중간수준이다. 갑보다는 떨어지고, 을보다는 낫다. 명중률이 60%이다. 결투규칙은 3명이 동시에 한 발의 총알을 쏘는 것이다. 그러면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세 명중 생존기회가 가장 큰 사람이 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 다음은 을이고, 승리기회가 가장 적은 쪽이 병이라고. 그러나, 결과를 들으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3명중 가장 쉽게 살아날 수있는 사람은 병이다.

 

이것은 세 사람이 동시에 사격을 가하게 되면, 모든 총잡이의 총구는 다른 두 사람중 한 사람을 겨냥할 수밖에 없고, 만일 세 사람간에 사전협의가 없었다면, 모든 사람은 당연히 다른 두 사람중 더욱 위협이 되는 사람을 향하여 쏠 것이다. 예를 들어, 을이 보기에 갑, 병 두 사람중 첫번째 총알로 갑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실력이 약한 병이 된다. 다음 라운드에서 그와 일대일로 붙으면 자신에게 유리하다. 3인게임의 결과는 을과 병은 모두 사격술이 가장 뛰어난 갑을 향하여 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갑은 을을 향하여 쏜다는 것이다. 계산을 해보면, 1라운드가 끝난 후, 갑이 살아남을 확률은 24%이다. 을이 살아남을 확률은 20%이고, 병이 살아남을 확률은 100%가 된다. 만일 갑, 혹은 을 중 한 명이 살아남는다면 결투는 아마도 나머지 두 사람 사이에 2라운드, 3라운드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1라운드가 지난후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병이 이 결투방식의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갑과 을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했다. 총구를 당연히 겨눠야할 사람에게 겨누었다. 다만 결과는 생각과는 달라졌다. 갑과 을은 아마도 서로 상대방을 맞출 것이고, "방휼지쟁, 어부지리"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원래 가장 약했던 병이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3명이 총잡이" 게임이론모형이다. 거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는 만일 당신이 병이라면, 실력이 아주 약하므로, 강적인 갑과 대적하게 된다면 흉다길소하게 될 것이다. 한가지 방법은 또 다른 강적인 을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양자간 결투를 삼자간결투로 바꾸는 것이다. 국면은 졸지에 어지러워진다. 원래 자신에게 불리하던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3명의 총잡이"와 유사한 사례는 아주 많다. 역사적으로 가장 복잡다단한 투쟁이 벌어진 때는 전국칠웅이다. 한위조제진연초(韓魏趙齊秦燕楚). 우리는 그 시대로 돌아가보자.

 

전국시대는 역사적으로 동주(東周)시대의 일부분이다. 당시에 전국은 이미 여러 개의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 낙양에는 여전히 주왕조(周王朝)가 남아 있었고, 명목상의 중앙정부였다. 그러나 주왕은 단지 명목상으로 한위조제진연초의 맹주였고, 실제로 지배할 수 있는 영토는 낙양주위의 좁은 땅덩어리였다. 전국칠웅은 그 어느 하나도 상대하기 쉽지가 않다. 한위조지진연초는 언제든지 주왕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한번은, 진(秦)나라가 대군을 출동시켜 낙양부근에 이른다. "듣기로 주왕이 계신 곳에 9개의 천하왕권의 대정(大鼎)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좋아한다." 대병력이 무력으로 위협하자 보물을 자기 손으로 내놓고 싶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가진 병력으로는 전국칠웅중 가장 강한 진나라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일시에 곤란에 빠진다. 이때의 주왕의 위의 세 몇의 총잡이중 병의 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진나라는 가장 강력한 갑이다.

 

주왕의 수하중 안솔(顔率)이라는 모사가 앞장서서 곤경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는 동쪽의 산동에 위치한 제(齊)나라로 간다. 제왕의 앞에서 먼저 진나라가 반적(叛賊), 불의지도(不義之徒)라고 욕을 한다. 그후에 제나라야말로 진정한 대국의 퐁모를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제나라에게 병력을 파견하여 진나라를 막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그리고 일이 성사되면 보물을 제나라에 하사하겠다고 말한다. 제왕은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뻤다. 출병하게 되면 위신을 세울 수도 있고, 보물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즉시 오만대군을 낙양으로 파견한다. 이렇게 하여 제나라도 발을 담그게 된다. 을로서 이 게임에 참가한 것이다. 갈등의 초점은 더 이상 진나라와 주왕의 사이가 아니라, 진나라와 제나라의 두 나라사이가 된다.

 

진나라는 소식을 들은 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철군한다. 더 이상 주왕에게 대정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골치거리가 생겼다. 진나라는 대정을 달라고 하지 않지만, 제나라는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제나라가 갑으로 되었다.

 

주왕은 또 곤란에 빠졌다. 다시 한번 안솔을 사신으로 제나라에 보낸다. 제왕은 안솔을 보고 말한다: "우리는 사전에 얘기가 되어 있었다. 보답으로 주왕은 대정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했다." 안솔이 말한다. "우리는 당연히 말한 것은 지킨다. 단지 구정은 보통물건이 아니다. 9개의 대정을 운송하려면 만명이상이 필요하다. 낙양에서 제나라까지의 거리가 있으니, 대왕께서는 먼저 노선을 결정해달라." 제왕이 말한다. "북쪽의 위나라를 통과해서 오면 된다." 안솔이 말한다. "위나라사람들도 지금까지 구정을 달라고 했다. 입에 침을 질질 흘릴 정도이다. 만일 위나라를 지나간다면, 분명히 그들이 중간에 가로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쪽의 초나라를 통과하면 된다." 앙솔은 다시 말한다: "초나라도 안된다. 초왕도 구정을 차지할 생각을 품고 있다. 보정을 운송하는 노선이 정말 큰 문제이다. 대왕은 다른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제왕은 "음.....이 일은 그냥 됐다." 이렇게 하여 안솔은 다시 한번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서, 두 명의 총잡이를 3명의 총잡이 상황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위기를 해소시켰다. 원래 실력이 형편없던 주왕실이 병졸 한 명 희생시키지 않고, 열강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두번이나 보물을 성공적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이어서 다시 또 다른 삼자간 게임의 이야기를 보도록 하자. 전국칠웅중, 한(韓)나라는 비교적 약소했다. 그러나 한나라의 지리위치는 진나라에서 다른 여러 나라로 통하는 문호에 위치해 있다. 진나라가 굴기한 후, 한나라가 가장 먼저 부닥치게 된다. 생존을 위하여, 한나라는 반복무상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진나라를 도와서 다른 나라를 치고, 때로는 다른 나라를 도와서 진나라를 친다. 이런 방식에 진나라를 화가 났다. 기원전263년 진왕은 '진짜로 손을 쓰기로' 결정한다. 대군을 출동시켜 한나라를 친다. 한나라는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한 왕은 할 수 없이 한나라가 보유하고 있던 상당지구(上黨地區)를 진나라에 헌상한다. 그렇게 하여 진나라군대가 철군하게 된다. 당시 한나라에서 상당을 지키고 있던 장군은 풍정(馮亭)이었다. 확실히 풍정의 임무는 진군이 오기를 기다려 성을 넘겨주면 된다. 그러나 풍정은 이 토지를 그냥 진나라에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나라와 싸우자니 싸울 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눈길을 또 다른 국가인 조(趙)나라로 돌린다.

 

여기에서 만일 진나라가 갑이고, 한나라가 병이라면, 조나라는 바로 을이다. 전국시대후기, 진나라는 이미 무적이 되었다. 조나라는 유일하게 진나라와 겨뤄볼 수 있는 나라였다. "조무령왕의 호복기사(胡服騎射)", "인상여와 염파라는 장수와 재상이 서로 화합한 이야기," '인상여의 완벽귀조(完璧歸趙)"는 모두 조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군신이 전국상하에서 혁신을 이루어 조나라는 당시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염파, 조사,인상여등의 인재가 있었다. 진나라는 전투에서 조나라의 염파, 조사에게 격패당한 바 있다. 그리고 화씨벽을 속여서 가져오려던 것도 실패한다. 그러다보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조만간 크게 싸움을 벌일 상황이었다.

 

풍정은 사람을 보내어 조왕에게 말한다. "한나라는 상당을 진나라에 할양하려고 한다. 다만 상당의 백성은 진나라를 미워하고, 조나라에 귀순하기를 희망한다." 조왕은 상당이라는 토지가 험준하며 요지여서 유혹을 참지 못했다. 그냥 들어온 땅을 왜 받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상당의 땅을 접수한다.

 

진나라를 조나라가 중간에 상당지구를 가로채가려 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즉시 병력을 보내어 조나라를 친다. 나중에 조사의 아들 조괄이 염파를 대체한다. 그러나 조괄은 탁상공론, 지상담병하던 인물이어서 맹목적으로 공격하여 포위망을 돌파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조나라는 대패하고, 사십만대군이 모두 갱살당한다. 장평대전에서, 조나라의 병력을 모조리 잃게 된다. 진나라도 사상이 심각했다. 상당한 기간동안 원기를 회복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진나라의 다음 계획은 나머지 병력을 이용하여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한나라는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상당을 헌납함으로써, 진나라와 조나라의 갈등을 촉발시키고, 한나라는 졸지에 위기를 넘기고 안정을 찾게 된다. 갑을병중에서 손실이 가장 적은 병이 된 것이다.

 

우리는 다시 3명의 총잡이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만일 게임규칙이 변하여 3명이 동시에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총을 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상황하에서도 병은 여전히 우세를 가진다. 3사람의 선후순서가 갑을병이라고 보자, 병보다 앞서서, 아마도 갑이 을을 죽이거나 을이 갑을 죽일 것이다. 갑을중 단지 1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후에 병의 차례가 되면, 병은 그중의 한 사람에게 사격하면 된다. 만일 명중하면 병이 승자이고, 만일 명중하지 못하면, 그제서야 병이 당하게 된다. 갑 혹은 을의 명중률도 100%는 아니다. 병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는 것이다. 병이 좋은 점이라면, 먼저 갑,을 두 사람이 서로 싸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후에 주도권을 가지고 나머지를 수습하면 된다.

 

만일 3명의 선후순서에서 병이 첫번째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병은 3명이 동시에 사격할 때처럼 먼저 갑,을중 더욱 강한 갑을 향해 총을 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라. 이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말 갑을 맞혀서 죽인다면(비록 병의 명중률이 낮기는 해도), 이어서 을의 차례가 된다. 결과는 알고 있을 것이다.

 

병이 만일 첫번째 총알을 쏘아야 한다면, 정확한 방법은 누구도 쏘지 않고 하늘을 향해서 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갑, 혹은 을의 순서가 된다. 갑은 분명 을을 쏠 것이고, 을은 분명 갑을 쏠 것이다. 그후에 병이 다시 사격하여 나머지 국면을 수습할 수 있게 되여 여전히 우세를 점한다.

 

이 추리결과는 표면적으로 볼 때 약간 이상하기는 하나, 우리가 다시 전국시대로 되돌아가서, 진나라와 위나라간의 싸움을 보면 병의 이런 전력이 아주 현실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두 가지 사례에서 진나라는 이미 전국칠웅중 가장 강한 나라가 되었다. 다만 기실 진나라도 상앙(商鞅)의 변법이전에는 실력이 보통이었고, 전국초기에는 지리적인 위치가 구석진 곳에 떨어져 있던 진나라는 전국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비교적 하위권의 위치에 속했다. '소병(小丙)'이라고 할 만하다.

 

전국초기, 칠국중 가장 실력이 강했던 나라는 위(魏)나라였다. 이는 당시 위나라에 두 명의 대단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文)으로는 이리(李悝)가 있고, 무(武)로는 오기(吳起)가 있었다. 두 사람은 국가를 개혁하여, 위나라가 제후국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한때 패자로 군림하게 만든다. 위나라는 주위국가들과의 전쟁에서 계속하여 승리를 거둔다. 칠국중의 "갑중의 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도 위나라가 나날이 강성해지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동쪽의 제나라도 그중의 하나였다. 제나라는 전기(田忌)와 손빈(孫臏)을 보유하고 있었다(경마시합을 벌인 그 두 사람이다). 한번은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했고, 제나라가 와서 "위위구조(圍魏救趙)"한다. 위나라에 위세를 한번 보인 것이다. 나중에 위나라의 방연(龐涓)과 제나라이 전기, 손빈이 여러번 싸우게 된다. 양릉(襄陵)전투에서, 위나라는 제나라를 이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마릉(馬陵)전투에서는 손빈이 계모를 사용하여 방연이 매복에 걸리고, 제나라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 역사시기에, 위나라의 이웃인 진나라는 상앙변법을 막 시작했다. 국가실력은 여전히 약했다. 가장 강대한 위나라에 못미칠 뿐아니라, 위나라의 적수인 제나라나 조나라와도 겨룰 정도가 못되었다. 위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진나라도 끼어들어서 이익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상앙이 진왕에게 간언하여 말한다. 현재 진나라는 강대하지 않다. 만일 위나라를 도운다면, 위나라가 이들 국가를 이긴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려서 우리를 해결하려 들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를 도와서 위나라를 친다면, 그들 국가들은 위나라를 이긴 후에 아마도 기세를 틈타 우리를 해결하려 들 것이다. 우리의 가장 좋은 전략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도광양회하는 것이다. 그들 국가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놔두는 것이다. 좌산관호투(坐山觀虎鬪).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손을 쓰면 된다. 그리하여 진왕은 위나라에 밉보이지 않기 위하여, 위나라를 왕(王)으로 높여부른다. 동시에 다른 나라들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한다. 이때의 진나라는 병으로서 강대한 갑과 을간의 결투에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시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는 마치 병이 순서대로 사격할 때의 세 명이 총잡이중 첫번째가 된 상황인 것이다.

 

나중에 마릉지전후, 위나라의 실력이 하락하고, 여러해동안 발전을 거쳐 진나라의 실력은 상승한다. 만일 위나라가 여전히 갑이었다면, 진나라는 최소한 을이 된 셈이다. 이때 곁에서 보고만 있는 것은 이미 좋은 전략이 아니다. 이 때 마침 제나라, 조나라의 연합군이 위나라를 공격한다. 진나라군대도 여기에 가담한다. 위나라는 얻어터져서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다. 진나라도 위나라에게서 적지 않은 이득을 챙긴다.

 

그 이후, 진나라가 더욱 발전하여 전국칠웅중 최강국이 된다. "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나라는 갈수록 쇠약해져서, 당년의 패주는 이제 제3세계국가로 된다 "소병(小丙)"의 지위로 전락했다. 갑을병의 다툼과정에서 을과 병은 자주 갑을 향하여 동시에 총구를 겨눈다. 갑에게 있어서 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아주 유리하다. 그래서 진나라는 위나라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된다. 이때 진나라의 주요한 적수인 "을"은 제나라, 초나라같은 국가이다. 위나라는 이미 더 이상 거족경중(擧足輕重)의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진나라는 더 이상 위나라를 주로 공격하지 않고, 위나라를 자신의 동맹으로 끌어들인다. 함께 다른 나라를 치는 것이다. 전국시대 후기에, 기타 육국이 연합하여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합종(合縱)"이라고 했고, 진나라가 육국중 비교적 약한 국가를 끌어들여서 연맹을 와해시키는 것을 "연횡(連橫)"이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합종"은 계속 "연횡"에 파괴되고, 진나라는 하나하나 육국을 멸망시키게 된다.

 

전국칠웅의 쟁패과정에서, 진나라가 최후에 육국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이외에, 병,을,갑의 서로 다른 실력을 가진 단계에 정확한 전략을 취하였던 것이 바로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