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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차도

청나라 황족의 작위

by 중은우시 2013. 8. 5.

글: 귤현아(橘玄雅)

 

작위제도는 청나라종실제도의 가장 특수한 점이다. 그것은 명나라의 종번문제의 경험을 흡수하여 제정한 정책이다. "세습체강(世襲遞降)"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청나라종식의 작위는 "종실(宗室)"에 속한다(태조 누르하치 및 그 친형제의 후예)> 즉 "각라(覺羅)"(태조 누르하치의 숙백형제 및 조숙백형제의 후예)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청나라때의 "각라"는 비록 홍색요대를 차고 자신의 독특한 출신을 드러낼 수 있었지만, "유사황족" 혹은 "차급황족"의 단계이고, 이성공신(異姓公臣)의 세습직위, 즉 공,후,백,자,남의 체제로 가고 종실작위를 갖지는 못했다.

 

종실의 작위는 모두 12개이다. 그외에 2개의 특수한 작위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합칭하여 "14등작위"라고 부른다.

 

 작위의 한문명칭

 작위의 만주어명칭

 화석친왕(和碩親王)

 Hosoi cin wang

 세자(世子)

 Sidzi

 다라군왕(多羅郡王)

 Doroi giyvn wang

 장자(長子)

 Jangdzi

 다라패륵(多羅貝勒)

 Doroi beile

 고산패자(固山貝子)

 Gvsai beise

 봉은진국공(奉恩鎭國公)

 Kesi be tuwakiyara gurun be dalire gung

 봉은보국공(奉恩輔國公)

 Kesi be tuwakiyara gurun be aisilara gung

 불입팔푼진국공(不入八分鎭國公)

 Jakvn ubu dosimbuhakv gurun be dalire gung

 불입팔푼보국공(不入八分輔國公)

 Jakvn ubu dosimbuhakv gurun be aisilara gung

 진국장군(鎭國將軍)

 Gurun de dalire janggin

 보국장군(輔國將軍)

 Gurun de aisilara janggin

 봉국장군(奉國將軍)

 Gurun be tuwakiyara janggin

 봉은장군(奉恩將軍)

 Kesi be tuwakiyara janggin

 

위의 도표에서 세자와 장자는 특수한 작위이다. 세자는 친왕작위의 관방이 승인한 계승자의 봉작이고; 장자는 군왕작위의 관방이 승인한 계승자의 봉작이다. 이 두 개의 작위는 명나라때의 종실제도에서 배웠다. 그러나 실제상, 청나라에서 친왕의 계승자중 많은 경우는 조상의 친왕작위를 물려받기 전에 사전에 세자 혹은 장자로 책봉되지 않았다. 그래서 건륭때부터, 세자와 장자의 두 작위는 기본적으로 폐기된다.

 

그외에 진국장군, 보국장군, 봉국장군의 3개 작위는 각자 내부적으로 3등의 구분이 있다. 예를 들어, 1등진국장군, 3등진국장군, 2등봉국장군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등급이지만 양향(糧餉)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명나라종실은 "한 아들이 작위를 승계하고, 나머지 아들은 강등된다'는 원칙을 취했다. 간단하게 한마디로 말하면 한명의 친왕에게 10명의 아들이 있으면, 그중 한 아들은 부친의 친왕 작위를 계승하여 역시 친왕이지만, 나머지 9명의 아들은 1등급을 내려서 군왕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명나라종번은 자식을 많이 낳음에 따라, 명나라종실의 인구가 급증한다. 작위를 가진 자가 너무 많아서 엄청난 경제적 부담으로 된다.

 

청나라때는 명나라때처럼 종실작위가 범람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하여, 강습제도를 제정한다. 간단히 말해서, 친왕이 죽은 후 단지 1명의 아들이 친왕의 작위를 계승하지만 이 계승은 1등급을 내려서 계승한다는 것이다. 즉, 친왕이 서거한 후 단지 1명의 아들만이 계승하는데 등급을 하나 내려서 군왕이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강습에도 최저선이 있다. 친왕에서 봉은진국공으로 강급된 후에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군왕은 봉은보국공으로 내려간 후에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작위의 한문명칭

 강습최저선

 화석친왕

 봉은진국공

 세자

 

 다라군왕

 봉은보국공

 장자

 

 다라패륵

 불입팔푼진국공

 고산패자

 불입팔푼보국공

 봉은진국공

 1등진국장군

 봉은보국공

 1등보국장군

 불입팔푼진국공

 봉은장군

 불입팔푼보국공

 봉은장군

 진국장군

 봉은장군

 보국장군

 봉은장군

 봉국장군

 봉은장군

 봉은장군

 봉은장군

주석: 봉은장군은 3차의 세습후에는 자동으로 취소된다.

 

예외로서, 청나라초기의 몇몇 저명한 기주(旗主)인 왕공은 세습망체(世襲罔替)의 권리를 가졌다. 그들 일맥의 종주작위(입팔푼의 작위)는 세습되면서 강급되지 않는다. 다만 종주작위외는 다른 왕공과 마찬가지로, 세습되면서 강급된다. 세습망체의 왕작위는 12개의 철모자왕이다. 각각 예친왕(禮親王), 예친왕(睿親王), 예친왕(豫親王), 숙친왕(肅親王), 정친왕(鄭親王), 장친왕(庄親王), 극근군왕(克勤郡王), 순승군왕(順承郡王)의 여덟명의 청나라초기 왕공과 나중에 추가된 네 명이다: 이친왕(怡親王), 공친왕(恭親王), 순친왕(醇親王), 경친왕(慶親王). 그외에 몇 개의 청나라초기에 군공을 세운 입팔푼공(入八分公)은 나중에 세습망체된다. 예를 들어 츄잉(褚英)의 후인은 봉은진국공의 작위를 세습망체한다.

 

'세습체강'이건 '세습망체'이건 종주작위를 계승하는 사람은 어쨌든 1명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가? 청나라때는 자신이 고시를 통과하여 스스로 불입팔푼의 하급작위를 얻어야 했다. 이 "고시를 통하여 작위를 얻는 것"을 "고봉(考奉)"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작위는 그의 아들 1명이 계승한다. 나머지 아들은 고시를 통하여 불입팔푼의 작위를 얻어야 한다. 이런 봉작방식을 '고봉'이라고 한다. 고봉의 종실은 그 부친의 작위 및 그 모친의 지위에 따라 하나의 '기준치'가 있다. 

 

 부친작위

 적실소생

 측실소생

 별실거주,첩,잉소생

 화석친왕

 불입팔푼진국공

 2등진국장군

 3등보국장군

 세자

 1등진국장군

 3등진국장군

 3등봉국장군

 다라군왕

 1등진국장군

 3등진국장군

 3등봉국장군

 장자

 2등진국장군

 1등보국장군

 봉은장군

 다라패륵

 2등진국장군

 1등보국장군

 봉은장군

 고산패자

 3등진국장군

 2등보국장군

 봉은장군

 봉은진국공

 1등보국장군

 3등보국장군

 한산

 봉은보국공

 2등보국장군

 1등봉국장군

 한산

 불입팔푼진국공

 3등보국장군

 한산

 한산

 불입팔푼보국공

 3등보국장군

 한산

 한산

 진국장군

 3등보국장군

 한산

 한산

 보국장군

 3등봉국장군

 한산

 한산

 봉국장군

 봉은장군

 한산

 한산

 봉은장군

 한산

 한산

 한산

고시에서 종실이 아무리 고시를 잘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기준치'를 초과할 수 없었다.

 

종실고봉의 고시내용은 번역, 마전(馬箭), 보전(步箭)의 3가지이다. 매 고시결과는 우, 평, 열의 3개등급으로 나뉘어진다. 3가지항목을 모두 "우"를 받으면 그에게 전제상 부여할 작위, 즉 기준치를 고봉한다. 두개는 우 하나는 평일 경우 한 등급을 낮춘다; 한개가 우, 두개가 평이거나 두 개가 우 한개가 열일 경우, 2등급을 낮춘다; 삼평, 일우일평일열인 경우 3등급을 낮춘다; 일우양열, 양평일렬, 일평양렬 및 모두 열인 경우에는 작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청나라대 종실에서 20세가 되면 고봉에 참가할 수 있다. 만일 그해의 고봉에서 작위를 얻지 못하면, 다음 번 고시에 더 참가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청나라때 종실은 4,5십세까지 시험을 쳐도 작위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종실 A의 부친은 친왕인데, 이미 사망했다. 작위는 A의 형이 승계했다. 모친은 친왕의 적푸진이다. 금년 종실A는 이미 20세가 되어서 고봉에 참가하는데, 마전, 보전은 우를 얻었다. 그러나 만주어를 할 줄 몰라서 번역은 열로 평가받았다. 2우1열. 2등급을 내린다. 그러면 2등급을 내린다. 그의 기준선은 친왕의 적실소생이므로 "불입팔푼보국공"이다. 1등급을 내리면 1등진국장군이 되고, 2등급을 내리면 2등진국장군이 된다. 그래서 그는 최종적으로 2등진국장군의 작위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종실의 고봉이다. 청나라때는 세습체강과 고봉제도를 통하여, 청나라종실에서 작위가 있는 사람의 비율은 6.3%로 축소된다. 그중 입팔푼(친왕에서 보국공까지)의 비율은 6.3%중에서도 1/4에 불과했다. 93.7%의 황족후예는 작위가 없는 "한산종실(閑散宗室)"이다. 이것은 청나라 종번제도가 명나라의 종번제도처럼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