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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거정)

장거정(張居正)의 권력탈취계획

by 중은우시 2013. 6. 26.

글: 신룡과삼강(神龍跨三江)

 

 

 

장거정(1525-1582) 자는 숙대(叔大), 아명은 백규(白圭), 호는 태악(太岳), 시호는 "문충공(文忠公)", 호광 광릉(현재의 호북성) 사람이다. 명나라때의 걸출한 정치가, 개혁가이다. 그가 집정한 10년의 기간동안, 정치, 경제, 군사등 분야에서 중대한 개혁을 했고, 국가안정, 경제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 활동반경이 넓은 개혁가는 당시 수보(首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여러가지 비열한 수단을 썼다. 특히 그는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두 사람에게 뒤집어씌운 것은 실로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명세종 융경제가 죽은 후, 명신종 주익균이 즉위한다. 당시 나이 10살이었다. 융경제는 내각삼학사인 고공(高拱), 장거정과 고의(高儀)로 하여금 보정(輔政)을 하게 한다. 실제로 조정대권은 다음 세 사람이 나누어 장악했다: 궁내에는 태감 풍보(馮保)가 있었고, 궁외에는 내각대학사 고공과 장거정이 있었다.

 

명나라는 명성조(영락제)이후 태감이 권력이 아주 강했다. 사례감의 장인태감, 병필태감은 특히 중요했다. 황제가 무책임하게 노는데만 열중할 때, 주장을 비열(批閱)하는 권력은 태감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리고 황제의 주필(朱筆, 황제만이 붉은색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음)에 의지하여, 권한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그리하여 사례감의 태감에게는 내상(內相)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황제는 구체적인 일에 상관하지 않았지만, 정무는 대부분 내각에 위임하여 처리했다. 융경제가 죽은 후, 일련의 문제가 나타난다. 병필태감 풍보는 장인태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공의 반대에 부닥친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원한을 맺는다. 융경제의 사후, 황제의 나이가 어렸고, 두 태후는 풍보를 아주 신임했다. 그리하여 풍보는 장인태감으로 발탁될 수 있었고, 동창을 장악하게 된다.

 

풍보가 병필태감에 오르자, 원수지간이던 고공은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긴급히 조정의 관리들을 동원하여 풍보를 탄핵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자 가장 즐거워한 사람은 장거정이다. 당시 고공이 수보였고, 장거정은 자신보다 서열이 앞서는 고공에 밀려나 있었다. 자신이 대권을 독점하기 위하여, 그는 일석이조의 계책을 마련한다.

 

그는 먼저 풍보와 가까이 지내고, 관계를 맺고 서로 형제로 부르며 지낸다. 풍보는 재물을 참했다. 장거정은 그의 욕망을 채워준다. 자신의 아들 장간수(張簡修)를 보내어 진귀한 예물들을 보내어 풍보의 환심을 산다. 풍보가 대량의 재물을 써서 자신의 묘혈을 만들 때, 장거정은 느끼하게도 친필로 <사레감병필태감풍보예작수장기>를 쓰는데, 글에서는 그를 찬송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알아야 할 것은, 명나라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당송양대 환관난정의 교훈을 받아, 초기에는 태감에 대한 제한이 아주 엄격했다. 태감의 명성은 좋지 않았다. 풍보는 장거정이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것을 보자, 자연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지기로 생각하며, 일이 있을 때마다 장거정과 상의한다. 그리고 이태후의 앞에서 고공을 대거 공격하고, 장거정을 대거 칭찬한다. 이렇게 하여 장거정은 제1보를 성공적으로 내딛는다.

 

장거정은 신속히 제2보를 준비한다. 그는 자신의 심복을 태감으로 변장시켜 궁으로 들여보내고 조회에 나가는 길에 명신종을 암살하는 것처럼 하다가 태감들에게 붙잡힌다. 그러나 어떻게 심문을 해도, 그 자객은 누가 시켰는지를 자백하지 않았다. 풍보는 어쩔 수 없이, 장거정에게 가르침을 구한다. 장거정은 일부러 이렇게 말한다: "이 자객은 태감으로 변장하였으니 분명히 당신에게 화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이었다. 고위대신들 중 누가 당신과 사이가 안좋은가?" 풍보는 생각해보니 고위대신이라면 장거정과 고공이다. 이때 풍보는 바로 고공이 자신을 능멸하는 눈빛과 비난을 떠올린다. 분명히 그가 자신을 해치려 한 것이다. 그래서 돌아가서 계속 심문한다.

 

풍보는 자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고공이 보낸 것을 알고 있다. 네가 고공이 주모자라고 불기만 하면,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뿐아니라 너의 관직도 유지시켜 주겠다." 자객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진술서에 서명한다. 양궁태후와 명신종은 자객의 진술서를 보고는 모두 격노한다. 그래서 고공을 축출하기로 결정한다. 다음 날, 양궁태후가 영을 내려 신하들에게 입궁하도록 한다. 그리고 조서를 선포한다. 고공은 자신이 풍보를 탄핵한 상소문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여겼으므로 속으로 득의하고 있었다. 조서가 선포될 때 비로소 날벼락을 맞은 것같았다. 축출되는 것이 자신이었던 것이다. 즉시 두 무릎에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장거정은 거짓으로 그를 보살피는 척하며 그를 부축해 일으키고, 대전으로 데려간다. 이렇게 하여, 고공은 해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장거정이 내각 수보가 된 것이다.

 

다시 장거정은 자객에게 진술을 번복하게 한다. 명신종은 자객이 진술을 번복한다고 하자 친히 심문한다. 자객은 말했다: 원래 진술한 내용은 태감이 자신에게 가르쳐준대로 한 것이다. 그는 명신종의 곁에 서 있는 풍보를 가리키며, "바로 저 자이다."라고 말한다. 명신종은 풍보가 황제암살사건을 가지고 장난치며 정적을 함정에 빠트린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를 싫어하게 된다. 그후에는 풍보를 멀리한다.

 

이를 보면, 장거정은 먼저 암살사건을 가지고, 이간계를 써서 풍보로 하여금 그 사건을 고공에게 책임묻게 만들고, 고공을 쫓아낸 후에는 다시 진술을 번복시켜, 문제를 풍보에게 돌려버린다. 이렇게 하여 그의 탈권계획은 실현된다. 이 이야기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고대의 관료사회에서 상연된 갖가지 비위사실은 많다. 현재도 물론 적지 않게 벌어진다. 관료로서, 덕을 근본으로 해야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고, 백성들에게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