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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화뤼(華銳): 풍력발전 쇠퇴의 길

by 중은우시 2013. 6. 11.

글: 21세기경제보도 

 

성극이쇠(盛極而衰). 산을 올라가면 내려가야 한다. 스스로 이윤조작을 공표하여 증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화뤼풍전(華銳風電)에 있어서, 이 말이 아마도 가장 좋은 설명이 아닐까 한다.

 

2005년말에 성립된 화뤼풍전은 2년여만인, 2008년 22%의 시장점유율로 선두기업인 진펑과기(金風科技)를 추월하여 풍력발전설비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떠오른다. 급속히 발전하는 풍력발전시자에서, 다크호스로 나타나서 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화뤼풍전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시, 화뤼풍전이 '전성기'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몇 개의 배경이 신비스러운 투자기구가 속속 참여한다.

 

2009년, 화뤼풍전의 설비용량은 세계3위로 뛰어오른다. 2010년, 몇몇 자본고수들이 적극추진함에에 따라 성립된지 4년이 돈 회사가 IPO의 길에 나서게 된다. 2011년 새해의 종이 울리자마자, 90위안/주의 A주 최고발행가격기록을 세우면서 메인보드에 상장한다.

 

2011년 1월 13일, 화뤼풍전이 상장하였는데, 이때는 성립5주년기념일에서 단지 1달이 모자랄 뿐이었다. 발행가격으로 계산한다면 성립된지 5년도 되지 않은 풍력발전제조기업의 시가총액이 1000억위안(한화 약 18조원)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여러 전문가들은 속속 '2년내에 이윤이 수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외쳤는데, 그때부터 '쇠락'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이다.

 

2년여가 지난 오늘 날, 일찌기 화뤼풍전의 상장초기 100위안에 가깝던 주가는 2011년, 2012년의 이윤에 대하여 과감하게 예측자료를 내놓았던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이 주가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화뤼풍전이 업계선두에 오른지 2년만에 주가는 중국증시 최고발생가 90위안/주에서 현재는 5위안가량에서 배회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겨우 2년여의 시간만 소요되었다.

 

2013년이래, 화뤼풍전의 '몰락'은 거의 "지난포화(紙難包火, 종이로 불을 싸서 감출 수 없다)"의 지경에 이르렀다. 3월 7일, 화뤼풍전은 공고를 통해서 자체조사를 거쳐, 회사의 2011녀 재무제표의 재무처리에 회계적 잘못이 있었다고 말한다. 4월 12일, 화뤼풍전은 다시 공고를 내어, 북경증감국의 <화뤼풍전과기주식유한회사에 대하여 시정명령조치를 내리는데 관한 결정>을 받았으며, 북경증감국은 조사를 거쳐, 회사의 일부 업무증빙, 관련수치, 재무기록이 사실에 부합되지 않으며, 2011년의 이윤을 증가시키도록 조작되었다고 밝혔다.

 

4월 20일, 화뤼풍전은 공고를 내어 전기회계잘못을 시정하는 공고를 낸다: 회사는 자체조사를 거쳐 회사의 2011년 재무제표의 재무처리에 관련하여 회계잘못이 있었으며, 확인을 거쳐, 회사의 2011년 재무재표상 순이익이 1.77억위안 과대계상되었다고 발표한다.

 

5월 30일, 회사는 공고를 통하여, 당일 증감회의 <입건조사통지서>를 수령했으며, 증권법률법규위반혐의로 입건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창업에서 조사까지 7년동안, 화뤼풍전의 스토리는 마치 황량미몽(黃梁美夢)과 같다. 아마도 꿈을 꾼 사람에게 꿈은 언젠가 깨기 마련인데, 도대체 어떤 원인으로 이 아름다운 꿈은 많은 투자자들을 순장시켰는가? 화뤼풍전은 도대체 어떻게 단기간내에 '성극'에서 '이쇠'하게 되었는가?

 

2004년, 나중에 화뤼풍전의 핵심인물이 되는 한쥔량(韓俊良)은 독일의 Fuhrlander FL 1500시리즈 풍력발전장비 생산허가증을 매입하기로 결정한 때로부터 그 이후의 스토리는 이미 결정된 것이다.

 

"와야할 것은 다 왔다." 화뤼풍전의 2011년 회계조작의 자체조사결과를 발표한 후, 회사의 핵심인물이었던 A선생은 이것이 의외도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화뤼풍전이 불에 기름을 붓듯이 고속성장한 배경에는 너무나 많은 비밀이 숨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한 사람과 관련되는데 바로 한쥔량이라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회사의 실제지배자이자 핵심경영인으로서, 한쥔량이 정한 화뤼풍전의 경영포지셔닝은 오늘날의 쇠퇴에 복선을 깐 것이다. 한량쥔의 모델이 취한 것은 성공하지 못하면 죽은 외나무다리모델이다." 5월 30일, 한쥔량의 옛날 통일전선파트너로서 A선생은 그의 업무스타일에 대하여 얘기를 했다.

 

외부에 대하여, 화뤼풍전의 창업자 겸 동사장인 한쥔량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2010년 화뤼풍전이 IPO를 신청했을 때, 한때 화뤼풍전에 실제지배인이 없다는 점에 대하여 추가적인 설명을 하라는 이유로 상장자격이 취소된 적이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모두 한쥔량이 진정한 '오너'라고 알고 있다. 내부인들은 그를 '독단전제'의 '철혈군왕'이라고까지 칭한다.

 

2004년, 다롄중공기전설비플랜트유한공사(이하 "다롄중공")의 총경리를 겸임할 때, 장기적인 안목이 있었던 한쥔량은 독일 Fuhrlander의 FL1500시리즈 풍력발전기의 생산허가증을 매입했고, 그후 국가의 신에너지지원정책에 힘입어 '춘풍'을 만난다.

 

화퓌풍전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은 한쥔량의 독특한 안목때문이다.

 

2011년, 화뤼풍전의 직접적인 경쟁상대방인 진펑과기의 관련책임자는 자신들이 추월당했다는 점을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2005년, 국가는 풍력발전의 메가와트급 기형연구개발을 장려했다. 그러나 1.2메가와트인지, 1.5메가와트인지는 명확히 선택하지 않았다. 진펑과기는 양자가운데 배회하다가 전자를 선택한다. 그러나 사실은 증명한다. 1.5메가와트 풍력발전설비가 5대전력집단의 입맛에 맞았다." 2005년말, 한쥔량이 주도하여 내놓은 첫번째 풍력발전기가 바로 1.5메가와트기종이었다.

 

이를 위하여, 진펑과기는 부득이 1.2메가와트기종을 임시로 방침을 변경하여 1.5메가와트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키게 된다. 이 과정만 3년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화뤼풍전에 많이 뒤떨어지게 된 것이다.

 

"화뤼풍전이 단기간내에 굴기한 배후에는 여러가지 정책적요소가 관건이 된다." A선생의 말이다. 2개의 핵심적이 정책은 화뤼풍전의 발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국가발개위는 일찌기, 풍력발전설비국산화율은 70%이상이 되도록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풍력발전소의 건설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는 화뤼풍전에 발전기회를 부여한다. 풍력발전특허권입찰에서 대용량설비를 환영하므로, 대용량풍력발전기에 주력했던 화뤼풍전이 주문을 대거 받아가게 된다.

 

왜 한쥔량은 매번 관련정책이 나올 때쯤 미리 기회를 선점했을까? 소식통에 따르면, 이것은 한쥔량의 성격과 그의 경영방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쥔량은 메가와트급풍력반전시장에서 고지를 선점한 후, 즉시 저가전략을 채택한다. 역대 국가특허권프로젝트에서, 저가는 낙찰의 중요원인이다. 저가 및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원인에 의하여, 2007년이후 3년간 풍력발전시장이 크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화뤼풍전의 공성략지는 효과가 아주 두드러졌다.

 

"화뤼풍전은 3년내에 거대한 발전을 이룬다. 관건은 제품의 뛰어난 성능때문이 아니다. 한쥔량이 고심하여 엮어놓은 정부관계가 더 크다." A선생의 평가이다. 한쥔량은 주요정력을 정부고위층과의 관계를 맺는데 쏟았다.

 

일찌기 국유기업에서 여러해동안 단련된 그는 정책과 정부자원을 얻는 방법을 잘 알았다. 그가 화뤼풍전을 창립한 초기에, 이것을 회사발전의 근본으로 삼는다.

 

"한쥔량의 정부고위층노선은 국가가 풍력발전을 대거 추진하던 몇년간, 회사에 확실히 많은 이윤을 가져다 주었다." A선생의 말이다. 그의 고급노선과 맞아떨어졌던 것은, 그의 '담대'함과 '과감'한 성격특징이다.

 

화뤼의 초기에 중요한 공급업체는 거의 그와 소송을 벌였던 스웨덴의 SKF회사였다. 한쥔량과 접촉하기 전에, 기실 풍력발전기업종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이전에 그들의 베어링은 주로 전통업종에 사용되었다. 한쥔량이 SKF를 찾아 풍력발전기 베어링을 공급해달라고 하자, 원래 SKF는 신분야에 응용되는 제품은 모두 새로 연구개발했었다. 필요한 시험과 검사과정을 거친 후에 상업화한다. 그러나 한쥔량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친히 SKF의 고위층에 압력을 가해서 하루빨리 제품을 교부해달라고 한다. 그리하여 완공시간은 업계평균소요시간보다 절반을 단축한다. 2008년에만, 화뤼에 1500개의 베어링을 공급했고, 2009년에는 3000개가 넘어간다.

 

아마도 고위층노선이 도와주어서인지, 프로젝트를 수급받은 후, '댓가를 따지지 않는' 성격은 화뤼풍전의 몇년간이윤을 급증시킨다.

 

2007년, 중국정부는 첫번째 해상풍력발전시범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외자풍력발전기가 원래는 우선선택대상이었다. 이런 프로젝트는 국내 풍력발전기업에 있어서 거의 완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해상프로젝트와 풍력발전기의 신뢰도에 대한 요구조건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화뤼풍전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화뤼는 2010년 제1차 100만킬로와트 해상풍력발전특허권입찰프로젝트에서 60%를 낙찰받는다. 그리하여 말그대로 대승을 거둔다. 다른 한편으로, 급하게 압력을 가하여 납품받은 SKF의 베어링의 설계에 결함이 존재한다는 곳도 밝혀진다. 이 품질사건은 업계의 명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2010년이전에, 풍력발전정책으로 인하여, 한쥔량의 정부고위층노선은 화뤼풍전에 동종업계가 따라올 수없는 이윤을 확보하게 해준다. 원래 정부노선이라는 안정적이고 큰 나무에 기대었던 그는 2011년에 이로 인하여 실패하게 된다.

 

2011년, 중국풍력발전업계는 두 번의 큰 사고를 겪는다. 풍력발전설비의 전압이 불안정하여 네트워크에서 벗어난 일이 있고, 그리하여 인원사망사건이 발생한다. 사고는 국가에너지국으로 하여금 풍력발전설비 및 입망을 더욱 엄격히 관리감독하게 만든다. 그리고 풍력발전프로젝트에 대한 인허가를 축소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수년의 급속한 발전을 거쳐, 국내풍력발전시장은 포화상태가 된다. 풍력발전시장의 발전정책의 지지강도는 예상했던 것처럼 낙관적이지 못하게 된다. 2011년이후, 풍력발전을 포함한 여러 신에너지투자는 모두 불경기로 빠져든다.

 

2007년이후의 풍력발전설비투자붐은 정책과 시장의 여러 문제로 '기풍(棄風)'현상이 벌어진다.

 

"확실히, 정부고위층에 의지하는 노선을 걷던 한쥔량 및 그가 이끄는 화뤼풍전은 즉시 심각한 문제에 빠진다.: 2013년 5월말, A선생은 탄식한다. "만일 이뿐이었다면, 화뤼풍전은 지금과 같은 국면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쥔량이 정부노선을 발전시킬 때, 전후방공급업체에 대하여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었다. 그는 중국에서 시장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자원이고 자신이 강대해지기만 하면 공급업체등 고객은 파리떼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기업으로 찾아와서 협력을 부탁하게 되고, 알아서 스스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방공급체인에 대한 통제를 무시했다."

 

그래서 화뤼풍전은 정부고위층과의 관계가 날로 밀접해지는 동시에, 많은 전후방의 업체들과는 소원해지게 된다. 많은 공급업체는 그가 고의로 대금지급을 지연시키고, 가격을 후려치는등의 행위에 불만이 아주 컸다.

 

2011년, 국가의 풍력발전정책이 바뀌면서 공급업체와의 관계가 화뤼풍전에서는 설상가상이 된다. 그해 3월, 화뤼풍전은 미국초도(美國超導)가 주문에 따라 준비한 일부 풍력발전기 부품을 인수하기를 거부한다. 그후, 미국초도는 북경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제기하여 화뤼풍전에 미지급화물대금 및 위약손실을 지급할 것을 청구했다. 9월, 쌍방의 갈등은 업그레이드되어, 미국초도는 지적재산권 및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가지고 제소했다.

 

이전에 미국초도는 핵심기술분야에서 화뤼풍전의 발전을 도와주었었다. 그러나 나중에 화뤼풍전은 미국초도의 전직원을 채용하여 기술을 절취한다.

 

화뤼풍전의 이런 조치는 합작파트너를 배신한 것이어서 회사의 명성이 일패도지한다. 소문에 따르면, 바로 이것때문에 화뤼와 초도의 몇 개 대형프로젝트협력은 무산되었고, 브라질, EU의 회사도 화뤼와의 합작을 회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회사와 모든 공급업체와의 관계가 난감한 상태에 처했다. 그리고 이전에 이런 것은 돈만 있으면 살 수있었고, 간단하게 화뤼풍전이 발전하기만 하면, 공급체인에서 발언권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시장이 분산되며, 공급업체의 화뤼에 대한 의존성이 점차 낮아졌다. 이런 잘못에 더하여 2010년 한쥔량은 시장형세를 오판하여 재고를 늘이고, 미수금을 늘인다. 그리하여 2011년이후 화뤼풍전은 쇠퇴하는 것이 필연적이 된다.

 

2011년, 화뤼풍전에 있어서 극적인 한 해였다. 국내최고가 IPO를 성공시켰으나, 여러가지 불리한 영향하에, 실적은 일락천장한다.

 

"버텨봐야 아마도 봄까지일 것이다." A선생도 이때를 전후하여 한쥔량의 팀을 떠난다. "한쥔량은 단순하게 관련정책의 제한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장기업은 펀더멘털도 유지해야하지만, 더더욱 자본시장의 논리도 배워야 한다."

 

"회계를 조작하여 이익금액을 과대계상한 다른 상장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목적은 아마도 조작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업에 문제가 터지니 난관을 넘기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예상했던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보았다. 그때가 되어 과대계상된 구멍을 메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왕왕 아름다운 국면이 도래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구멍은 갈수록 커지고 통제불능이 된다." 5월 30일, 선전의 한 증권사의 인사가 한 말이다.

 

어찌되었건, 90위안의 미친 듯한 발행가에서 지금의 5위안가량의 주가는 모든 사람에게 의문을 품게 만든다. 발행초기, 곧 닥칠 업계의 역전을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이후의 업계의 부진이 없다고 하더라도, 화뤼풍전 당시의 태세로 설사 '성극'이라고 하더라도, 90위안.주의 발행가격은 예상을 훨씬 초과한 것이다.

 

더욱 전문가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주식공모가격과 가격태핑과정에서 리스크에 대한 언급은 주로 풍력발전기의 품질문제였고, 당시 막 변화하고 있던 정책리스크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이처럼 정책에 의존하는 업종에서는 정책이야말로 최대의 리스크이다" 상술한 선전의 증권사인사가 솔직하게 한 말이다. 같은 사건은 고속철투자업종에서도 일어났다. 정책리스크를 제외하더라도 당시에 화뤼풍전의 발행가격을 90위안까지 끌어올린 주범은 누구인가?

 

2010년 12월 27일, 안신증권이 주간사를 맡은 화뤼풍전은 베이징에서 로드쇼의 서막을 열었다. 그후 "풍력발전선두기업'이라는 광환을 머리에 쓰고있는 화뤼풍전은 기관투자자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세 지역의 로드쇼이후, 60개가 넘는 기관투자자들이 가격을 제시한다. 주간사인 안신증권에서 공고한 기관투자자들의 초보적인 인수의향가격은 80위안에서 90위안이었다.

 

배정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화뤼풍전의 발행가격을 끌어올린 최대공신은 증권사 자체영업부서였다. 관련데이타를 보면, 60개의 인수가격을 제시한 기관투자자중에서 24개가 증권회사이고 평균제시가격이 90.44위안이었다. 14개 기금회사의 평균 제시가격은 80.33위안이었다.

 

발행가격을 최고로 끌어올린 것은 창성(長盛)기금이었다. 창성 산하의 4개의 기금이 제시한 인수가격은 모두 90위안이 넘어다. 창성적극배치채권, 창성중신전채권지수증강채권, 전국사회보험기금405조합은 모두 96.5위안의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전국사회보험기금603조합은 90위안의 가격을 제시했다. 사실상, 창성기금 풍력발전연구원 양페이롱이 내놓은 가격범위는 73.3위안 내지 87.9위안이었다.

 

화뤼풍전이 사건화된 후, 시장의 눈길은 IPO종개기구인 안신증권, 리안다회계사무소 및 북경글로벌로펌에 쏠렸다. 데이타를 보면, 추천인 겸 주간사인 안신증권, 그리고 또 다른 주간사인 중덕증권 및 부주간사, 기타증권사들이 1.28억위안의 주간사보수를 나눠가졌고, 회계감사비와 변호사비는 각각 100만위안과 50만위안이었다.

 

완푸생과의 조작상장사건후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사건이 되자, 많은 시장의 인사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아마도 안신증권은 책임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이번 입건사건은 안신증권에는 미치지 않았다." 5월 30일 관리감독기관에 가까운 소식통의 말이다. "이 사건은 완푸생과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현재 조작상장의 문제는 아니다."

 

상술한 소식통은 화뤼풍전의 2011년 재무문제는 상장이전과 관련이 없다. 비록 관련규정에 따르면, 안싱증권은 현재도 화뤼충전에 대하여 지도감독을 계속하고 있지만,

 

"기업상장전에 주간사는 기업의 재무에 대안 원시증빙을 검토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도감독기간에, 증권사의 직책은 주로 회게감사보고서를 체크하는 것이다." 상술한 선전의 증권사 인사의 말이다.

 

<증권발행상장추천업무관리방법>에는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추천기구는 발행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증권발행상장후 지속적으로 지도감독할 내용을 확정하고, 발행인이 상장회사의 규범에 맞게 운용하는지, 약속사항을 준수하는지, 정보공시의무를 이행하는지에 대하여 지도감독하여야 한다. 정보공시문건, 증감회와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기타 문건을 검토하고 아래의 업무를 수행한다: (1) 발행인이 지배주주, 실제지배인, 기타 관련당사자들이 발행인의 자원을 위법하게 점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를 완비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지도감독해야 한다, (2) 발행인이 이사, 감사, 경영진이 직무상의 편의를 이용하여 발행인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내부통제시스템을 완비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지도감독하여야 한다, (3) 발행인이 관련거래의 공정성및 합법성을 보장할 제도를 완비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지도감독하고, 관련거래에 대하여 의견을 발표하여야 한다; (4) 발행인의 모집자금의 구좌예금, 투자프로젝트의 실시등 승락사항을 지속적으로 주목하여야 한다; (5) 발행인이 타인에게 담보를 제공하는 등의 사항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의견을 발표하여야 한다; (6) 증감회, 증권거래소의 규정 및 주간사계약에서 약정한 기타 업무.

 

"현재의 조사결과를 보면, 안싱증권에 어떤 법규위반의 점은 없다." 관리감독기관에 가까운 소식통의 말이다.

 

아마도, 화뤼풍전이 스스로 내부문제를 공개한 것에는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화뤼풍전 내부에서는 한쥔량의 강퍅자용과 독단전횡으로 다른 투자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그가 2011년이후 잘못된 경영방침으로 기업의 실적이 신속히 붕괴된다. 2급시장에서의 실적도 여러 당사자의 비난을 받았다." 화뤼풍전에 가까운 사람의 말이다. "알아야 할 것은, 화뤼풍전의 주주는 아직도 옛날의 '상해탄증권삼맹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웨이원위안(尉文淵)과 깐즈동이었다."

 

동시에 화뤼풍전의 인사도 큰 조정이 있었다. 3월 10일, 회사는 재무조작의 내부문제를 폭로한지 3일후, 화뤼풍전의 공고에서 전동사장 한쥔량이 서면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개인원인으로 동사장직무를 사임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동사이외의 겸임하고 있던 회사 및 자회사의 다른 직위도 모두 사임한다고 하였다. 그후 웨이원위안이 동사장을 맡는다.

 

5월 14일, 회사의 회계조작금액이 1.8억위안에 달한다는 것이 확인된 후, 취임한지 2달밖에 되지 않은 웨이원위안은 '전격적으로 사임'한다. 5월 30일, 회사는 증감회에서 입건조사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