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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송영종: 시정잡배수준의 황제

by 중은우시 2013. 6. 10.

글: 섭지추(葉之秋) 

 

송영종(宋英宗) 조종실(趙宗實)은 재위기간이 아주 짧았다. 앞뒤를 합쳐서 4년에 불과하다. 4년의 기간동안 절반의 시간은 병치료로 보냈다. 송영종은 병약했는데, 한편으로는 원래 체질이 확실히 허약했기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때문이었다.

 

송영종은 송인종의 친아들이 아니다, 송태종의 중손(重孫)으로 송인종 당형(堂兄)의 아들이다. 당시의 친소관계로 보면 송영종의 곤계는 가장 친밀한 것이 아니다. 그가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몇 사람의 덕분이었다.

 

먼저 당연히 감사해야할 사람은 송인종이다. 황위를 누가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결정권은 송인종의 손에 달려 있다. 단지 송인종이 결정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할 뿐이다. 의견을 들은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조정대신, 특히 재신(宰臣)이고, 하나는 후궁이다. 주로 황후비빈이다. 송인종의 말년에, 일찌기 4명의 종실자제가 후보자로 된다. 송영종이 마지막에 선정되었는데, 재상 한기(韓琦)와 송인종의 황후 조씨(曹氏)의 공로가 가장 컸다.

 

한기가 조종실을 선택한 것은 몇 가지를 고려한 때문이었다. 송영종은 일찌기 어려서 궁안에 들어왔고, 황자로 교육을 받았고, 게다가 나이가 이미 들어 있었다. 만일 나이어린 종실자제를 선택한다면, 일단 황제가 사망한 후, 황후가 태후로 되는데,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재신으로서,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여인이 정치를 주재하는 것이다. 조종실 본인의 자실도 괜찮은 편이었다. 평소에 한기를 아주 존중해주었다.

 

조황후는 본심으로 말하자면 조종실의 즉위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조종실은 조정내에 이미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어린 후계자를 내세우면 조정대신의 반대가 불을 보듯 뻔했다. 게다가 조황후와 송인종의 부부관계는 원래 그다지 좋지 못했다. 송인종도 조황후가 장헌태후 유아를 본받아, 수렴청정을 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황후가 일찌기 여러해전에 자신의 앞날을 위하여 준비를 마쳐두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양녀(친외조카. 나중의 고황후)를 조종실에게 시집보내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송영종은 조황후의 양자이면서 조황후의 사위가 된다. 관계가 이처럼 친밀하니, 당연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송영종이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조태후와의 관계가 악화된다.

 

송영종은 발견했다. 자신이 삽십여세의 나이로 즉위했는데, 조태후는 여전히 권한을 내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송영종은 여러번 항쟁을 했지만, 조태후는 황제가 병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송영종은 고민했다. 재상 한기도 불만이 컸다. 그래서 군신이 몰래 어떻게 하면 정권을 탈취할 수 있을지를 모의한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상의한 후 한가지 묘계를 떠올린다. 조정대권을 빼앗아 오려면, 먼저 황제를 대표하는 옥새를 취득해야 한다. 그러나 옥새는 지금까지 조태후의 손에 들어 있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옥새를 써야하면 반드시 조태후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한기는 조태후를 찾아간다. 천하에 오랫동안 가뭄이 들고 비가 내리지 않아서 황제가 마음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해서 교외 태을궁으로 가서 신령에게 기도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령에 글을 올려야 하므로, 반드시 옥새를 써야 한다. 당시 조태후는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아 갈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옥새를 한기에게 넘겨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기우제가 끝난 후, 송영종은 옥새를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조태후는 아주 화가 나서 사람을 시켜 한기를 부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추궁한다.

 

한기는 조태후를 만나서는 담담하게, 송영종이 즉위한 이래 성덕이 얼마나 완비되었는지, 이번 기우제를 지내는데, 경성의 백성들이 성상의 용안을 얼마나 숭앙했는지 모두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는 얘기를 한다. 한기는 또한,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아주 번잡하고 중요한데, 오랫동안 태후를 귀찮게 해드렸는데, 더 이상은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태후는 한기의 뜻을 알아듣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초 한상공이 여러번 나에게 국정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어찌 다시 이런 소리를 하는가?" 당소 한기는 다른 종실자제가 황위를 노릴까 우려하여, 조태후의 수렴청정을 극력 주장하여 조정대신을 탄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 송영종의 황위가 안정되었으니 나이든 할머니는 필요없게 된 것이다. 한기는 아주 무례했다. 조태후가 불만을 얼마나 가지든 말든 "태후는 이미 수렴청정을 그만둘 것에 동의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주변의 심복, 환관들에게 주렴을 걷으라고 지시한다. 조태후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조태후가 옥새는 내놓았지만, 조정에는 여전히 강대한 세력이 있었다. 대권을 빼앗아오기 위하여, 송영종은 심복대신들과 상의하여, 자신의 생부인 복왕(濮王)을 가봉(加封)하고자 한다. 이 조치에 대하여는 천하가 요동치게 된다. 송영종에 가까운 대신들은 천자의 생부이므로 복왕은 당연히 황제로 책봉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당초 모모황제도 양자의 신분으로 즉위했으나, 자신의 생부를 황제로 봉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예법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대신들은 극력 반대한다. 그들은 송영종이 송인종의 양자라는 신분으로 즉위한 것이므로 당연히 송인종의 후사이다. 자신의 생부에 대하여는 그저 백부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예법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책봉에 반대하는 측이 고대의 계승예법에 더 부합한다. 송영종이 즉위한 때로부터 서거할 때까지, 전후 3년여의 기간동안, 송영종은 주로 부친을 추봉하는 일에 매달린다. 많은 대신들이 몇번이나 승진하고 몇번이나 좌천되었다. 권력투쟁이 아주 격렬했다. 송영종이 이처럼 열중한 것은 바로 이를 빌어 대권을 탈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친을 황제로 책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조태후의 합법적인 모친 지위를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명에 열중한 일부 관리를 제외하고, 다수의 명신들은 추봉에 반대한다. 통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추봉운동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송영종은 만족하지 못했다. 송영종은 한기를 찾아 논의한다. 그리고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만일 조태후가 공개적으로 복왕을 황제로 추존하는데 동의한다면, 천하관리들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조태후는 가장 큰 반대자인데, 어떻게 동의를 받아낼 수 있단 말인가,

 

송영종의 방법은 그래도 많았다. 며칠동안 송영종은 고의로 매일 조태후에게 문안인사를 가서, 조태후에게 잘 보인다. 조태후는 비록 불만이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황제와 등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송영종은 조태후를 천장각(天章閣)으로 요청하여 복숭아꽃을 감상한다. 그후 황제와 태후 두 사람은 같이 식사를 한다. 식사자리에서 송영종은 모후(조태후)에게 술을 올린다. 모친의 신체건강을 축수하면서. 조태후는 약간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억지로 한 잔을 마신다. 송영종이 무슨 약을 탔는지, 아니면 술이 아주 독했던지, 술 한잔이 들어가자, 조태후는 취해서 어지러워진다. 시종은 조태후를 부축하여 침궁으로 데려가 쉬게 하려고 했다. 송영종이 급히 말한다.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모후가 비준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송영종은 미리 준비한 복왕을 황제로 추봉하는 조서를 올려, 태후가 친히 서명하기를 부탁한다. 조태후는 정신이없는 와중에 붓을 받아들고는 서명한다. 송영종은 급히 사람을 시켜 조태후가 친필로 서명한 조서를 중서성에 내려보내어 백관들에게 보게 한다. 백관들은 모두 하나같이 깜짝 놀란다.

 

다음 날, 조태후가 술에서 깨어나자, 송영종이 이렇게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를 참지못하고, 조태후는 재신을 부른다. 그리고 이 조서는 자신이 취한 후 황제에게 속아서 내린 것이니 자신이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송영종은 이미 생쌀이 익어 밥이 되었으니 걱정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태후는 보통부인이 아니었다. 손해를 보고도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조정의 관리들과 경성의 백성들도 송영종이 이렇게 시정잡배의 수단을 써서 태후를 속였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분노한다. 송영종을 따르던 자들마저도 체면이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추봉에 반대하는 상소가 송영종의 서탁위로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송영종은 멍해진다.

 

생부를 황제로 추봉하는 조서를 내린지 22일만에, 송영종은 조서를 내려 이를 취소한다.

 

송영종이 병석에 눕고, 치료가 힘들게 되자, 서로간의 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하여, 조태후가 한발 양보하여, 복왕을 황제로 추봉하는데 동의해준다.

 

송영종과 한기는 스스로 사기수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실 사기술은 일시의 성공만 가져다 줄 뿐이고,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저 상대방으로부터 더욱 강력한 반격을 당할 뿐이다. 송영종은 즉위 4년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번뇌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양자인 송영종이 양모인 조태후를 대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성의조차 결핍되어 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