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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유여자여소인난양야(唯女子與小人難養也)에 대한 8가지 해석

by 중은우시 2013. 5. 1.

글: zhangzhijun

 

"유여자여소인난양야"라는 문구는 <논어.양화>에 나온다. 역대이래로 공자의 여자들에 대한 차별로 보았다. 그런데 이 문구에 대한 이해는 최근 들어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그런 해석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8가지이다.

 

첫번째 견해: 즉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로, 그들은 "여자"를 부녀로 이해하고, "소인"을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양"은 기르고 먹여살린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이 문구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자와 마찬가지로 기르기 힘들다."

 

두번째 견해: 그들은 "여자"를 나누어 해석한다. "여(여)"는 처나 딸을 말하고, "자(子)"는 아들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소인"을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양"은 기르고 먹여살린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보면 이 문구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처(혹은 딸)과 아들은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르기 힘들다.

 

세번째 견해: 그들은 "여(女)"를 "여(汝)"로 이해한다. "여자"는 "너의 아들" 혹은 "너 이 어린자식"으로 해석한다. 소인은 마찬가지로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이 문구의 대체적인 뜻은 이렇게 된다: "너의 아들(혹은 너 이 어린자식)은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르기 힘들다."

 

네번째 견해: "여자"는 부녀로 해석하고, "소인"은 종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양"은 기르고 먹여살린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아마도 공자가 그의 가정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 말일 것이다: "여자와 종은 기르기 힘들다."

 

다섯째 견해: "여자"는 "여종"으로 이해하고, "소인"은 남자종"으로 이해한다. "양"기른다거나 같이 산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이 문구는 공자가 그의 종들이 일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희 여종과 남종들이 가장 기르기 힘들다(같이 살기 힘들다)"

 

여섯째 견해: "여자"는 남자(南子)로 이해사고, "소인"은 호색한 위령공(衛靈公)으로 해석한다. "양"은 여기서 교육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해석에 따르면: "남자와 위령공은 가장 가르치기 어렵다."

 

일곱째 견해: 이 견해는 어느 정도 억지스럽다. 그들은 "여자"를 부녀로 이해하고, "소인"을 어린아이로 이해한다. 그리고 "양"은 기른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이 이런 견해를 내놓은 이유는 공자는 부녀와 아동이 '가장 기르기 힘들고 몸이 약한' 약자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부녀와 아동은 신체가 허약해서 가장 기르기 힘들다."

 

여덟째 견해: 그들은 전체 문구를 본다. "유여자여소인난양야, 근지즉불손, 원지즉원(近之則不遜, 遠之則怨)". 그들은 "여자"는 부녀로 보지만, "소인'은 우리가 현대에 생각하는 개념 즉 마음씀씀이가 좁고 뒤에서 몰래 수단을 쓰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양"은 같이 지내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들의 견해는 첫번째와 비슷하다. "여자와 소인이 같이 지내기 어렵고 가까이 하면 그들은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이상의 해석을 비교해보면 필자는 마지막 견해가 비교적 타당하다고 본다.

 

첫번째 견해를 보면, 그들은 뒤쪽의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원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견해는 성립되기 힘들다. 이런 원인을 제거하고 우리가 다시 보면 부녀와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은 기르기 힘들다. 문구의 논리관계로 보면, 뒤쪽의 이 두 문구는 '유여자여소인난양야'를 해석하는 것이다. 그것은 즉 부녀와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이므로 그들은 항상 너와 관계가 가까울 때 불손하고, 너와 관계가 멀때는 너를 원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기르는 것과 친근한 때 불손하고 소원할 때 원망한다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 생각에 이 견해는 부정되어야 한다.

 

두번째 견해를 보면, 처(혹은 딸), 아들과 비열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은 기르기 힘들다. 이런 견해는 만일 문구의 논리관계로 보면,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처(혹은 딸), 아들은 모두 자신과 관계가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간의 감정은 친밀하다. 어찌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단 말인가.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말은 부부간 부자간에 있기는 힘든 것이다.

 

세번째 견해를 보면, 그들의 서론은 전편문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논여.양화>편에 공자는 먼저 양화의 희롱을 받는다. 그 후에 "자유질의(子由質疑)", "자로불열(子路不悅)", "향원패덕(鄕願敗德)", "사객불견(辭客不見)", "재여불인(宰予不仁)"등 일련의 사건이 있다. 그리고 공자는 일찌감치 "시야우(柴也愚), 참야로(參也魯), 사야피(師也辟), 유야언(由也彦)"이라는 말을 했다. 그 뜻은 고시는 멍청하고, 증참은 거칠고, 욱손사는 편격(偏激)하고, 중유는 노망(魯莽)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은 재주를 지니고도 기회를 만나지 못했고, 사람들의 이해도 받지 못하고 임용되지도 못하는 처지를 생각하자, 마음 속으로 불쾌해졌다. 다시 말해서, 스승은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불쾌와 갈등중에 마침 자공이 스승에게 묻는다(혹은 더 많은 제자들의 앞에서). 그래서 대답한 것이다. 공자는 "너희들과 같은 자들과 소인들은 기르기 힘들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 뜻은 "너희들 같은 자들은 가르치기 어렵다. 너희들에게 얕은 지식을 가르쳐주면 겸손을 잃어버리고, 깊은 지식을 가르쳐주면 원망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은 학생들에 대하여는 가능하다. 그러나 소인들에게는?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소인'을 '종'으로 이해한다. 나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 공자가 지식을 자신의 종에게 전수한단 말인가? 뭘하기 위해서? 공자는 종의 생명을 경시하지는 않았다. 이 점은 <논어.향당>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마굿간이 불탔다. 공자는 퇴조한 후 말했다. '사람이 다쳤는가?' 말에 대하여는 묻지 않았다." 공자가 사람의 생명을 아주 중시한 것은 알 수 있다. 다만 공자는 '등급개념'이 명확한 사람이다. 그는 귀족들이 한 여러가지 일들을 지지하고 학생들이 한 일에 대하여는 반대했다. 공자에게 이런 '소인'들을 그라치라고 하면 그것이 말이 되겠는가. 기실 또 하나 있다. 공자는 아주 총명하고 아주 원활한 사람이다. 그는 종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주왕주이 예약이 붕괴되는 것을 보았고, 사,경대부들이 한 행위를 보았다. 이가위국(以家爲國). 그는 자신의 종들에게 지식을 늘여주어서, 마지막에는 사,경대부들이 주왕실을 위협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위협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외에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논어>는 공자제자가 다시 제자들에게 전수하면서 기록한 공자어록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판본은 확실히 그들이 시간순서에 따라 정리한 것일까? <논어.양화>편은 분명히 분리할 수 없는 완벽한 체계일까? 내가 <논어>를 읽은 경험으로 말하자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네번째 견해라면 여인을 기르는 것은 바로 자신의 처자식을 기르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우리는 두번째 견해를 반대한 논거로 보면, 그것은 성립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여인을 공자의 모친으로 이해한다면 무릇 공자의 성장경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자가 자신의 모친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공자는 3살때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가 그를 길렀다. 그는 효도를 아주 중시했고, <논어>를 보면, 공자의 '효'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다. 공자는 모친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다섯째 견해를 보자. 공자가 "너희 여자종과 남자종은 함께 하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하다. 우리는 세번째 견해를 반대한 논거로 볼 때, 공자는 그들에게 가까이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예약이 붕괴되는데, 이 "예'는 무엇을 의미한가. 사람과 사람들간의 등급존비(等級尊卑)가 아닌가, 공자는 몰락귀족의 후예이다. 자신이 종은 노예이다. 존비유서를 지지하던 공자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가까이 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여섯째 견해에 대하여, 전체 구절을 보았다면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남자와 위령공이 무슨 공자가 가까이 하거나 멀리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자로가 공자에게 남자에 관한 일을 물었을 때, 공자는 화가나서 저주했다: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공자가 이 일을 대하는 것은 분명히 피휘하는 것이다. 아무도 다시는 언급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시는 이 이야기를 꺼내어 후인들이 듣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 견해에 대하여 필자는 또 다른 감상이 있다. <시경.관조>에는 분명히 요조숙녀는 군자호구라고 하였다. 왜 굳이 글허게 많은 사람들이 "후비지덕(后妃之德)"이라고 하였을까? 아마도 이것은 그 시대의 일종의 유행이 아니었을까? 다만, 몇천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좀 더 성숙할 수 없을까? 눈이 좀 더 예쁠 수 없을까? 내가 믿기로, 이것은 우리가 일을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곱째 견해에 대하여, 내 생각에 이것은 아예 해석이 필요없다. 공자가 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나타낸 적이 없는 뜻이다. 우리들 후인은 바로 그의 얼굴에 금을 바르려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헤겔을 말한 바 있다: "아름다움과 진실은 하나이다. 즉, 아름다움 자체는 반드시 진실이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진실만이 믿을 수 있다.

 

여덟째 견해에 대하여, 필자 본인은 완전히 찬동하지는 않는다. 이 견해로 말하자면, 공자는 여전히 여성을 경시한다. 필자는 공자에 대한 기존견해를 뒤집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앞에서 필자가 얘기한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 우선, 우리는 볼 수 있다. "여자와 소인"은 공자가 보기에 "양(養)"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