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사황(秦四晃)
일개호한삼개망(一個好漢三個忙). 사나이 한 명은 세 명이 도와준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고조 유방(劉邦)의 수하는 셋만이 아니다. 하늘이 정말 눈에 뭐가 씌웠는지, 오로지 그 사수의 망나니 술귀신에게 한꺼번에 여러명의 광세기재(曠世奇才)를 붙여주었다. 충후근면(忠厚勤勉)한 소하(蕭何), 족지다모(足智多謀)의 장량(張良), 능정선전(能征善戰)의 한신(韓信), 진심갈력(盡心竭力)의 조참(曹參), 그리고 또 한 명이 있다. 바로 궤계다단(詭計多端)의 진평(陳平).
역사서적을 뒤적여보면, 학자명류들은 진평에 대하여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인물을 논의한 사람은 아주 적다. 마치 전염병환자를 보는 것처럼 가까이하면 전염될까 꺼려하는 것같다; 다른 한편으로 아마 이러한 소인득지(小人得志)하고 오로지 꼬리만 흔들줄만 아는 인물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겨서 차가운 눈으로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평은 관직이 비록 한나라의 승상(丞相)에 이르렀지만, 인품으로 보자면 소인(小人)에 속한다. 그에게는 소아과의 모습만 보이지 대흉금, 대모략, 대지혜는 보이지 않는다.그가 잘하는 것은 모두 자잘한 기량이고 자잘한 동작 자잘한 장난이다. 후세학계의 태두나 관료사회의 명숙들은 대부분 그를 평가하려면 별로 할 말이 없고, 그를 폄하하는 것도 신분에 맞지 않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사정은 물론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진평은 원래 천성이 간사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관료사회, 직장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다. 봉산개로(逢山開路), 우수가교(遇水架橋). 좌우봉원(左右逢源), 상하찬등(上下蹿騰). 지도자들은 모두 이 노선을 가야 쉽게 생존할 수 있다. 조건이 성숙되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어, 한 지방을 독패하거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진평이 젊었을 때의 모습은 아마도 현재인들이 말하는 소위 "분청(憤靑)"과 같다. 생긴 모습은 아주 크고 멋있다. 집은 허난 양무(陽武, 지금의 原陽)이다. 집안은 아주 가난했고, 부모는 일찌감치 돌아가셨다. 진평은 형수와 함께 생활했다. 형은 아주 착실한 농사꾼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성실하고 근면하게 농사를 지었고, 동생을 아주 잘 돌봐주어으며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게 해주고 놀고싶으면 놀라고 했다. 고향사람들은 진평이 하루종일 하는 일없이 놀고 있으며, 허여멀겋게 하고서 플레이보이로 지내자, 마음 속으로 이 자는 집안이 그렇게 가난한데 도대체 무엇을 먹었길래 이렇게 건장하고 퉁퉁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진평의 형수는 일찌감치 하루종일 놀고먹는 이 시동생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한번은 "그냥 놀고 먹기만 하다니, 이런 시동생이라면 없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형수가 한 이 말을 큰 화를 불러왔다. 진평의 형은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 말을 듣고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처를 친정으로 쫓아버린다. 지금도 진평과 같은 공자공주들이 적지 않다. 부모나 윗어른들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이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죽겠다고 난리를 치거나 가출을 해버린다. 그저 눈을 멀거니 뜨고 그들이 하루종일 PC방이나 커피숍에서 빈둥거리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한다.
일정한 연령이 되면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들어 혼인을 한다. 이제 진평이 어떻게 돈을 쓰지 않고 마누라를 얻었는지를 보자.
진평이 결혼해야할 나이가 되었다. "부자는 진평에게 딸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은 진평이 부끄럽게 여겼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하루는 진평이 소식을 듣는다. 호패향의 부자인 장부(張負)에게 손녀가 있는데, 5번이나 시집을 갔지만 5명의 남편이 모두 차례로 죽었다는 것이다. "극부(克夫)". 남편잡아먹는 여자로 이름이 높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도 그녀를 취하려 하지 않았다. 진평을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한참을 생각한 다음 웃으며 돌아왔다.
며칠이 지난 후 호패향의 한 노인이 사망하여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진평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급히 상가로 달려가서 일을 도운다. 장례를 치르는 며칠동안 진평은 항상 제일 먼저 가고 가장 나중에 떠났다. 장부도 이 집에서 장례를 도왔는데 항상 진평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 부지런한 젊은이를 눈여겨 보게 된다. 진평은 장부가 그를 주목하는 것을 보고, 일부러 더 늦게까지 일했다. 매일 새카맣게 어두워져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하루는 장부가 몰래 진평을 따라서 그의 집앞까지 온다. 진평의 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골목안에 있었다. 방문도 찢어진 자리로 막아놓았다. 그러나, 문앞에는 신분있는 사람의 수레자국이 적지 않게 있었다. 이것은 진평이 머리를 써서 미리 조치해놓은 것일 것이다. 장부는 집으로 돌아온 다음 아들 장중(張仲)에게 손녀를 진평에게 시집보내면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장중은 일찌감치 진평에 대하여 들었다. 그래서 부친을 말렸다: "진평은 집안이 가난하면서도 아무런 일도 안하면서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고 있는데, 어찌 귀한 딸을 그런 자에게 시집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장부는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 손녀를 진평에게 시집보내자고 고집부린다.
진평의 집안은 가난했다. 무엇을 가지고 처를 맞이할 것인가? 장부는 돈과 재물을 진평에게 주어서 혼인에 쓰도록 했다. 혼례의 술자리에 쓰이는 돈마저도 한푼의 에누리없이 진평에게 보내주었다.
진평은 이렇게 하여 한푼도 들이지 않고 부인을 맞이한다. 그저 얻었을 뿐아니라, 장씨집안과 혼인함으로써 진평의 집안은 장씨집안의 도움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생활은 하루하루 좋아지게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진평식의 사고방식이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서 회피하는 일에 대하여 너희가 감히 못하는 일이지만 나는 하겠다. 너희가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가 남편을 잡아먹는다는 것때문에 두려워서가 아니냐. 내가 감히 하겠다는 것은 이건 원래 밑천이 들지 않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부자집 딸을 손에 넣으면서 돈한푼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집안의 생활도 개선될 수 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는가? 그렇다고 직접 가서 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 직접 가서 하겠다고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만일 장씨집안에서 우리집안의 처지를 알아내버리면 모조리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먼저 할아버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한걸음 한걸음 미끼를 물게 하는 것이다. 나중에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혼인후에 살 집이나 예물을 준비하기 어렵다든지 등등은 모두 문제될 것이 없다. 가난한 사람은 체면이랄 것이 없다. 그러나 장씨어르신이야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이나 재물은 그냥 받아오면 된다.
지금 직장에서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진평도 계속하여 몇번 직장을 바꾸었다.
진승오광의 난이 발발하자, 각지의 의군이 조직되었다. 진평은 이 난세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이 크게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고향에서 사람들의 미움이나 사고 멸시나 당하느니, 차라리 의거에 참여하여 일생의 도박을 걸어보는 것이 좋다. 진평은 위왕구(魏王咎)의 의병에 가담한다. 그리고 참여하자마자 바로 태복(太僕)의 직위를 받아, 위왕과 직접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진평은 조용히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는 달랐다. 그저 창을 들고 무작정 돌진했다. 그는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했고, 그래서 그는 자주 위구에게 가서 계책들을 내놓았다. 유감스럽게도 위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마도 진평이 내놓은 계책이라는 것이 위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들이고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어서 감히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진평은 위왕구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역할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찾는다.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누군가 위구의 앞에서 그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진평은 바로 방향을 바꾸어 항우에게로 간다.
항우의 휘하에서,진평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의 직장에서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와 같다. 항상 다른 사람이 그를 기용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울하게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이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겠다고 생각한다. 진평인 이 때 흘리파외(吃裏爬外, 안에 있으면서 바깥을 위하는 일을 하다)의 일을 한다.
항우는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어가서 칭왕하려한다는 말을 듣자, 급히 군대를 이끌고 홍문(지금의 섬서성 임동)으로 간다. 그리고 유방에 대하여 군사적으로 진공하여 유방을 없애려는 태도를 취한다. 홍문연에서 유방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겨우 기회를 잡아 패상으로 도망치고 군사 장량 한 사람만을 남겨서 대응하게 한다.
장량은 이 위기를 어떻게 풀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돌연 진평을 생각해낸다. 진평이 이를 도와줄 수 있을줄 몰랐다. 장량은 몰래 진평을 찾아갔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너무나 순조롭게 풀렸다. 진평은 장량이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너희가 철저하게 패공을 구하고자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범증을 항우의 곁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장량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유방을 죽여야한다고 가장 강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바로 이 아부 범증이었다. 그러나 누가 범증을 항우의 곁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 진평은 자신이 하겠다고 한다. 진평은 다음 날 항우를 만나러 간다. 항우에게 초회왕에게 의제(義帝)라는 존호를 올리고, 침주로 옮기게 하라고 건의한다. 그렇게 되어야 대왕의 일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항우는 일찌감치 초회왕이 간섭하는 것이 싫었다. 요 며칠 그 일로 고민하고 있었다. 진평의 이 말을 듣자 즉지 범증에게 가서 이 일을 처리하라고 말한다. 범증이 떠나자, 유방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된다.항우는 더 이상 유방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는다. 그뿐아니라, 진평은 이어서 항우에게 이렇게 건의한다. 대왕이 제후왕을 나누어 봉하면 그들에게 각각 자신의 영지로 가도록 하라. 그래야 대왕의 말에 신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항우가 응락한다. 유방은 이로 인하여 항우의 곁에서 도망쳐 함양으로 간다. 한중으로 가면서 나중에 전략적 반격을 할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된다.
진평과 같은 몰염치한 방법은 언젠가 마각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도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평은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했다. 기원전205년봄, 유방이 관중으로 쳐들어오고, 다시 병력을 이끌고 동진하며 항우와 승부를 겨루고자 했다. 은왕 사마앙(司馬卬)은 유방의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보고, 유방에게 투항한다. 항우는 아주 화를 낸다. 진평으로 하여금 인마를 이끌고 은왕을 토벌하게 한다. 진평은 성공적으로 토벌하고 개선한다. 항우는 그에게 황금20익(鎰)을 하사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은왕이 다시 유방에 투항하고, 항우는 분노한다. 그래서 이전에 누가 은왕 사마앙을 수습하러 갔는지, 그리고 왜 일을 엉망으로 처리했는지를 추궁하고 화가난 나머지 지난번에 은왕을 토벌하러 갔던 장수의 목을 베라고 지시한다. 진평은 그 소싯을 듣고는 골치아프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잔번에 은왕을 토벌하러 간 사람은 바로 그이다. 그래서 항우에게 하사받은 황금은 사람을 시켜 돌려보니고, 혼자서 샛길로 도망쳐 버린다.
도망가면서도, 진평은 자그마한 일을 꾸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진평은 황급히 황하도구에 도착한다. 뱃사공은 그와 같은 사람이 혼자서 보망쳐 오는 것을 보고 분명히 무슨 일을 보러 가는 사람이고, 몸에 금은보화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뱃사공은 그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을 생각을 한다. 진평은 눈치가 아주 빠른 사람이다. 일찌감치 뱃사공이 눈빛에 살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진평은 고의로 옷을 벗고, 웃통을 드러내고 뱃사공과 함께 노를 젓는다. 뱃사공은 그가 옷을 벗고, 또한 자기를 도와 배를 젓는 것을 보고는 그가 몸에 귀한 물건을 지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강탈할 생각을 포기한다. 진평은 이렇게 또 한번의 생명위기를 넘긴다. 한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미묘하다. 그는 항상 음초(陰招)를 쓰고, 밤길을 걸으니, 호랑사갈들이 그를 노리는 것이다. 당당하게 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고, 길에서 악마가 막을 이유도 없다.
진평은 최후로 수무현(修武縣)까지 도망친다. 거기서 옛친구인 위무지(魏无知)를 만난다. 그리고 위무지에게 자신을 한왕 유방에게 천거해달라고 부탁한다.
진평은 유방에게 가서 금방 유방이 신임을 얻는다. 유방은 항우가 그에게 도위를 주었다고 말하자, 나도 너에게 도위를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자신과 함께 마차를 타게 하고, 대오를 감독하는 것을 돕게 한다.
어찌하여 유방은 짧은 시간내에 진평을 이렇게 신뢰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진평이 남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장면을 설계한다. 그리하여 바로 유방의 마음을 얻는다. 당시 진평과 함께 유방을 만난 사람은 모두 7명이었다. 유방은 동시에 접견한 후, 식사를 하라고 하고, 식사하고나서는 쉬도록 분부한다. 모두 인사를 마치고 머리를 숙여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진평만이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떠나자, 진평은 유방이 앞으로 가서 말한다. "대왕, 나는 그들과 다릅니다. 나는 급한 일때문에 당신에게 투신하러 왔고,그 일은 오늘 밤을 넘기면 안됩니다." 유방은 그를 다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방은 자연히 그를 남도록 하여 얘기를 나누게 된다. 얘기하면할수록 기뻤다. 진평이 한왕 유방에게 얘기한 급한 일은 무엇일까? 사서에 아무런 기록이 없다. 태사공은 진평이 뱃사공의 위험으로부터 도망친 일을 자세하게 사서에 기록하면서, 밥도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할 급한 일이 무엇인지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곱명이 한꺼번에 새로운 주군을 만나는데 나머지 6명에 대하여는 유방이 모습조차 희미하게 기억에 없을 것이다. 진평은 그러나 한왕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였을 뿐아니라, 모습도 분명히 기억하게 했다. 게다가 말솜씨까지 선보이고, 충성심도 나타낸다. 그리하여 한왕은 얼굴 가득 미소짓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의 차이이다. 처음부터 진평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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