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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송교인)

송교인암살사건: 무사영은 희생양일 가능성이 크다

by 중은우시 2013. 4. 13.

글: 김만루(金滿樓) 

 

응계형이 '송교인사기사건'을 꺼낸 후, 원세개측에서 아주 중시했다. 그러나 홍술조가 계속 재촉하였지만, 응계형은 사기사건의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다. 내놓을 것이 없어지고 배후에 경제적이익이 얽혀서, 응계형은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고, "훼송"음모를 "거송"모살로 바꾼다. 전체 사건의 또 다른 기획자인 홍술조는 응계형의 의도를 알고난 후에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암중으로 응계형이 실제행동으로 나서도록 부추겼다. 더 이상 예전처럼 큰소리만 치고 실제로 일을 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말라고.

 

이번에 응계형은 헛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흑도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살인에는 확실히 전문가였다. 신고인 왕아발이 법정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응계형은 송교인암살 10일전부터 살수를 물색한다. 바꾸어 말하면, 서신에서 홍술조에게 '송교인살해"결심을 밝히기 전부터, 응계형은 이미 암살할 생각을 했다. 그의 이 행동은 절대로 충동적이 아니고 계산이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 북경으로부터의 여하한 지령도 없었기 때문이다.

 

송교인암살후, 국민당인의 노력하에, 흉수 무사영이 금방 붙잡힌다. 응계형, 홍술조의 음모도 밀전,밀함이 압수됨녀서 드러난다. 밀전밀함에서는 살수 무사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왜 천하의 금기를 어겨가며 응계형을 도와서 이런 음모를 완성시켰는가?

 

현재 장악한 각종 자료를 보면, 무사영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통상적인 견해대로라면, 무사영의 원래이름은 오복명(吳福銘)이다. 그는 산서 평양부 용문현 사람이다. 그는 귀주학당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운남신군 제74표 2영의 관대(管帶)를 지냈다고 한다. 나중에 무슨이유에서인지 상해로 흘러들어왔고, 작은 장사를 하며 먹고 살았다. 생활이 궁핍하여, 나중에 응계형의 수하 진옥생(陳玉生)의 금전유혹에 살인흉악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흔적을 보면, 무사영은 아마도 총을 잘 쓰는 퇴역군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전 역사는 역사학자들이 공백으로 둔다. 특례로서, 혁명당인 채기구가 쓴 <악주혈사>에서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무사영은 어려서 낙백하여 운남까지 흘러들어왔다. 나중에 운남혁명에 공을 세워 74표 2영의 관대가 된다. 얼마후, 무사영은 아름다운 부인을 맞이한다. 한창 즐거워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미모의 처를 직계상사가 빼앗아 간 것이다. 처를 빼앗긴 굴욕으로 무사영은 교외에서 권총을 몇 달간 수련한다. 그리고 백보밖에서도 맞히는 정도에 이른다. 그후 무사영은 옛날의 상사를 찾아가서 친히 죽여버린다. 복수를 하고나서 상해로 도망친다.

 

상해로 온 후에, 무사영은 비록 절기를 지니고 있지만, 수중에 권총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없었다. 어절 수 없이 토계모구, 강도등의 일을 벌인다. 물건은 비슷한 유형끼리 모이고, 사람도 같은 유형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다. 무사영은 그후 흑백양도에서 일하는 우노요(尤老)를 알게 된다. 두사람을 합작하여 큰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일에 성공한 후, 우노요는 혼자서 이익을 독차지하고 순포장과 결탁하여 무사영을 감옥에 보낸다.

 

출옥후, 무사영은 복수를 맹세한다. 그러나 우노요는 흑도의 사람이다. 평소에 손을 쓸 기회가 없었다. 분한 나머지, 무사영은 자주 우노요가 연 공화여관에 가서 소란을 피운다. 기회를 틈타서 손을 쓰기 위함이다. 어느 날, 응계형이 우노요의 여관에 왔다. 무사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리고 권촉을 도박탁자위에 놓고 오백대양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응계형은 이 자가 간단한 자가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그와 교분을 맺는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오백 대양을 준다. 무사영의 원래 뜻은 우노요를 끌어내는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렇게 호협장의하는 거물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응계형의 체면을 봐서 돈을 받지 않고 시원스럽게 떠난다.

 

나중에 응계형이 찾아온다. 그리고 무사영에게 식사를 사고, 기원을 돌아다니게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준다. 무사영도 이로 인하여 응계형의 문하로 들어간다. 얼마후 무사영은 마침내 기회를 잡아 우노요를 죽여버린다. 조계손포가 그를 체포하여 하옥한 후, 다시 응계형이 돈을 쓰고 관게를 동원하여 무사영을 구해낸다. 이렇게 재조지은을 받아서, 무사영은 자연스럽게 그를 위하여 간뇌도지한다. 민국2년이 되어, 응계형은 그에게 송교인을 암살하도록 시킨다. 무사영은 한 마디로 응락한다. "형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면 나는 합니다. 해야할지 말아햐 할지는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응계형은 그에게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도망칠지를 얘기한다. 무사영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안심하십시오. 나의 총은 백발백중이며 권총 두자루에 총알만 가득 있으면 암살후, 도망가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형님이 사람을 보내어 맞아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손발이 안맞아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무사영은 과연 일격에 성공한다.

 

채기구의 글은 마치 무협소설같다. 그의 붓 아래, 무사영은 춘추시대의 자객 전제와 간다. 그의 암살은 보은을 위한 것이고, 재물이나 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무사영이 체포될 때의 모습은 이런 이미지와 차이가 크다. 혁명당인 주남해의 진술에 따르면, 조계순포가 응계형의 집안을 수색할 때, 모 국민당인이 응씨집 상방내에 연금된 의심스러운 인물들에게 농담처럼 한 마디 던진다: "누가 무사영이냐." 생각지도 않게 한 사람의 하류노동자모양을 한 키작은 사람이 급히 일어나서 인정한다. "내가 무사영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간단하게, 무사영은 가볍게 붙잡힌다. 주남해는 무사영을 체포한 과정의 증인이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소위 살수 무사영은 멍청하기 그지없고, 못나기 그지없어 채기구의 견해와 천양지차가 있다.

 

역사학자 채동번은 <민국연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사영이 체포되어 공개재판에서 심리받을 때, 자동차로 태워주는데 무사영은 스스로 득의하여 말한다: "나는 평생 자동차를 타본 적이 없다. 이번에 사건을 저지르니, 공개심리법정에서 특별자동차로 나를 맞이하니, 이것도 즐길만하다." 이 묘사가 정말이라면, 멍청하고 무지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재판과정에서 무사영의 태도는 별로였다. <민립보>의 보도에 따르면, 무사영은 체포된 후 이렇게 진술했다: 그가 상해에 온 후, 한번은 차관에서 차를 마실 때 진씨성의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공진회가입을 요청했다. 진모가 그에게 말한다. 공진회 회장 응계형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무사영은 무슨 원인인지 물었다. 진모가 말했다: "이 사람은 무정부당이다. 우리들은 4억동포를 위하여 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를 죽이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원한을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날, 진모는 그를 데리고 가서 응계형을 만난다. 응계형은 이 사람을 죽이면 명리를 다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사영은 마음이 움직여 응락한다.

 

암살 당일, 진모는 먼저 삼마로 반재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술이 거나해 졌을 대, 진모는 그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성은 송이고 오늘저녁 기차를 탈 것이다. 일이 늦어지면 안된다. 가서 그를 처리해라." 말을 마치고, 그에게 오향권총을 준다. 술값을 낸 후, 진모는 다시 두 사람을 부르고, 같이 자동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도록 한다. 플랫폼표 3장을 사서 기차역으로 들어간다. 나머지 한 사람은 표를 사지 않아서 역밖에서 망을 본다.

 

표를 산 후, 송교인등은 이미 기차역에 도착해 있었다. 진모는 그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자가 송모이다." 역에 들어가 잠복한 후, 송교인이 초대실에서 검표구로 걸어갈 때, 무사영은 총을 쏜다. 그 후에 도망쳤다. 문앞에 도착했을 대 사람이 오자 붙잡힐까 우려하여 하늘에 대고 총을 두 발 쏜다. 그리고 역을 급히 빠져나간다. 바로 응계형의 집으로 숨어든다. 집을 들어가니 진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에게 말한다: "지금 좋다. 4억동포를 위하여 해를 제거한 것이다." 응계형도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그가 과연 능력있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방법을 강구해서 해외유학을 시켜주겠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진술하자 법관이 무사영에게 묻는다. "너는 암살한 후, 보수를 받기로 했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아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는 무사영이 다시 말한다: "당시에 나에게 일천대양을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삼십원만 가졌다."

 

이 진술을 보면, 무사영은 사지는 발달하고 아이큐는 낮은 무부이다. 그가 말한 송교인암살과정은 간단한 바보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또 다른 보도를 보면, 무사영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은 것같다. 그는 일찌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육계를 팔 때 세개중 두개는 훔치고, 그중 1개의 가격이 백이면 수십원은 자신이 먹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고발한 후 프랑스조계에 붙잡혀 1달간 구금되었다. 그외에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자주 남경, 상해를 왔다갔고 어떤 때는 자칭 참모원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자칭 참의원이라고 하고, 자랑하고 다니며 사기를 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무사영이 멍청하다는 이미지는 아마도 고의로 가장한 것인지 모르겠다.

 

놀라운 일은, 무사영이 제2차예심때 돌연 진술을 다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당시 먼저 순포방 검사원 간극 변호사가 묻는다. 암살사건의 소개인인 진모에 대하여 묻자, 무사영은 돌연 흉맹한 모습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이번에 송교인을 죽인 것은 나 한 사람이 생각한 것이고, 다른 사람은 없다." 이어서 무사영은 응계형을 만난 것도 부인한다. 이전에 응씨집에서 본 사람은 몸이 왜소했고, 자신은 회장 응계형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말을 들으니 회장은 키가 크다고 했다. 그래서 본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응계형을 만난 적이 없다. 결론적으로 송교인을 죽인 것은 그 한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피고 옥패변호사가 나중에 묻는다. "너는 이전에 정치에 관심을 가졌느냐?" 무사영이 말한다: "나는 귀주에 있을 때 관심이 컸다. 선통원년, 귀주관리가 수갑을 풀어주어서, 나는 여전히 진원관에서 도주중이었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당시 무슨 죄를 지었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나는 학교볼업후 사사로이 1개영을 징병했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나중에 너는 어디로 갔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사천에서 운남으로 갔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언제 상해로 왔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자주 남경, 상해를 오갔다."

 

옥변호사가 계속 묻는다: "송교인은 네가 죽였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나 혼자서 죽였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왜 송교인을 죽였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송은 4억동포의 죄인이기 때문이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왜 그가 4억동포의 죄인이라고 말하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그는 농림총장으로 있을 때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지금 총통이 되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내가 죽이려 했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송교인이 국민당의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무사영이 대답한다: "송은 국민당 회장이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어디의 회장인가?" 무사영이 말한다: "국민당전국총회 회장이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국민당이 어떤 종지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2차혁명이다 중앙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어떻게 중앙정부를 무너뜨리려는줄 알았는가?" 무사영이 대답한다: "지금 현재 강서에서 아직 중앙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중앙정부와 무슨 관계인가?" 무사영이 답한다: "나는 중앙정부를 아주 사랑한다."

 

여기까지는 완전히 '애국의사'의 모습이다. 방청석에서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어서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응계형과 언제부터 알았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몰랐다." 옥변호사가 묻는다: "너는 자주 응계형의 집에 가지 않았느냐. 왜 응계형을 모른다고 하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비록 응계형의 집에 있었지만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송교인을  암살한 것은 내 혼자 생각이고 아무도 지시한 바 없다."

 

변호사의 힐문이 끝난 후 법관이 묻는다: "너는 송교인을 죽이려고 한지 오래되었다는데 언재부터인가? 1년전인가 아니면 두 달 전인가?" 무사영이 대답한다: "두달 전입니다." 법관이 묻는다. "너는 자신의 전후 진술이 맞지 않는 것은 알고 있는가?" 무사영이 말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말한 것이 진실입니다. 저번에 말한 것은 거짓이 많습니다." 법관이 묻는다: "이전에 한 것이 모두 거짓인가?" 무사영이 말한다: "많은 부분이 거짓입니다."

 

이제 무사영은 완벽하게 진술을 뒤집었다. 송교인 암살의 죄행을 모조리 자신이 뒤집어 쓴 것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무사영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암살사건과 응계형의 관계를 끊는 것이다. 이와 대응하여, 상해 <시보>에서는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응계형은 체포된 후 외국인 변호사 나례사를 선임하여 변호하게 맡겼다. 나 변호사는 공공조계 순포방에서 응계형과 만난다. 응계형은 말한다. 그는 평소에 송교인과 아무런 원한이 없고, 암살을 교사하지도 않앗다. 정객을 암살하려는 사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송교인이 어떤 사람에게 암살당했는지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국민당에 입당한지 여러해 되었다. 송교인은 같은 당의 동지이다. 송교인의 장례식때 나는 친히 병원으로 가서 영구를 들어 호남회관까지 갔다. 무슨 고발인 왕아발은 이전에 그와 교류하거나 알지 못한다. 만일 그가 일부러 암살했다면, 이런 기밀을 어찌 외인에게 누설할 수 있단 말인가. 흉악범 무사영은 더더구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이때, 응계형은 아마도 전보가 이미 압수되어 해독되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임을 깨끗하게 미뤄버린다.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이것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응계형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무슨 수단을 쓰는지 그리고 얼굴은 얼마나 두껍고 마음은 얼마나 시커먼지.

 

무사영을 보면, 그의 진술번복은 더욱 믿을 수 없다. 정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궁금할 것인다. 도대에 무엇때문에 무사영이 돌연 진술을 번복했을까? 그 배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응계형이 시킨 것이 아닐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무사영이 난세의 비극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배후에는 일종의 신비한 역량이 통제하고 이끌고 있는 것같다. 그의 여러가지 행위는 모두 각종 모순과 불가사의한 점으로 가득하다. 그의 신세, 그의 체포, 그의 진술, 하나같이 여러가지 의문을 안고 있다. 그러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기를 기다릴 때, 무사영은 돌연 4월 24일 새벽 아무런 징조도 없이 급사하고 만다.

 

4월 16일, 사법권관할분쟁으로, 무사영은 프랑스조계 대자명종포방구류소에서 상해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된다. 응계형도 같은 날 강소해운국으로 이전된다. 진기울의 부대 61단에 갇힌다. 이틀후, 무사영은 다시 응계형이 있는 강소해운국으로 압송된다. 다만 4월 24일, 무사영이 돌연 사망한다. 다음 날은 제1차 중외공동예심일이었다.

 

<민립보>의 보도에 따르면, 무사영이 강소해운국으로 이송된 후, 먹는 것이 약간 줄었고, 식사량이 좋지 못했다. 23일에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돌연 발병하여, 위병이 단장 진기울에게 보고한 후, 진기울이 친히 가서 상황을 살펴본다. 그러나 무사영은 자신이 감기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심장이 아픈데 이것은 옛날부터 있는 고질병이라고 했다. 때때로 생겼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장은 안심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진기울을 그 말을 듣고 돌아간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새벽 2시, 무사영의 기침은 더욱 심해진다. 위병이 보고한 후, 진기울은 군의를 보내어 진료한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날이 밝은 후, 진기울은 강소도독부 참의 황부에게 보고한다. 두 사람은 함게 도독 정덕전에게 양의를 부를지 여부를 물어본다. 그러나 양의가 오는 도중에 무사영은 이미 사망했다.

 

이 보도는 61단을 취재한 관련인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중에 책임을 미루려는 혐의가 있다. 후속보도에 따르면, 무사영을 해부한 후, 부검인원은 무사영의 키는 왜소하지만, 체질이 단단하고, 살도 튼튼하다고 말했다. 병이 들어도 하루만에 급사할 것같지 않다고 했다. 외부에서 소문난 무사영이 독살되었다는 설에 대하여, 내장과 위장을 검사했지만 중독현상은 볼 수없었다고 한다.

 

무사영이 "송교인암살사건"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돌연한 죽음에 대하여 각계인사와 여론이 의문을 제기했다. 사람들은 아마 물을 것이다. 왜 프랑스조계에서는 잘 구금되어 있었는데, 중국측 관할지역으로 옮기자마자 이런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는지. 이로 인하여, 프랑스조계 총영사도 즉시 상해교섭사 진이범에게 서신을 보내어, 무사영이 프랑스 순포방에 있을 때 아무런 질병이 없었는데, 이송후 돌연 급사하니, 이는 의심스럽다.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게 해달라. 진이범은 정덕전에게 보고한 후, 정덕전도 동의한다. 4월 25일 오후, 프랑스 총영사는 외국인 정탐총장으로 하여금 통역과 중국인 형사 각 1명을 데리고 61단의 주둔지로 가서 관을 열어 살펴본다. 시체가 무사영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3명은 떠나간다.

 

무사영이 옥중에서 급사할 때 나이 겨우 22살이었다. 그의 사인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어떤 사람은 무사영이 음독자살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위에서 성냥의 유황을 발견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무사영이 다른 사람에게 독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시결과에 따르면, 음독이나 독살이라는 설은 기본적으로 배제된다. <민립보>는 무사영이 원래 질환이 있었고, 심장병 혹은 페결핵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의 양의가 공동해부한 후에 무사영은 신체가 강건하고 설사 급병이라도 하루밤만에 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견해가 있어서 수수께끼로 남는다.

 

채기구는 <악주혈사>에서 이렇게 썼다: "분명히 응계형의 일당 소행이다. 살인멸구한 것이다." 무사영의 진술번목에서 피살까지, 채기구의 이 말은 비록 증거가 없지만, 직관은 왕왕 어느 정도 진사을 드러낸다. <민립보>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에 소문이 있었다. 무사영은 일찌기 다른 사람에게 진술번복은 응계형이 교사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시과정에서의 한가지 세부적인 사항도 주목할 만하다. 무사영이 죽을 때, "인후에거 약간 어혈이 쌓여 있었다." 흑도의 사람으로서 응계형이 무사영의 진술번복을 교사했다면, 그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그를 죽이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흑도의 수법, 무림비술살인은 무형이다. 이것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만일 무사영이 정말 다른 사람에게 모살당했다면, 그의 구금지도 의심스럽다. 당시의 상황하에서, 누가 이런 대단한 능력이 있었을까? 군영내에서 한 범인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었을까? 만일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또 다른 거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바로 전 호군도독 진기미이다.

 

진기미는 응계형과의 관계가 복잡하다. 무사영, 응계형의 구금장소를 지키는 진기울이 이끄는 부대 61단은 원래 호군제2사단에서 개편된 것이고, 이 부대는 진기미가 만든 것이다. 그중 핵심간부인 황부, 장개석과 진기울은 모두 진기미의 심복이다. 만일 무사영을 죽이려 했다면 진기미의 묵인이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더욱 궤이한 점은 무사영의 진술번복시, 응계형과의 관계를 부인했을 뿐아니라, 일부러 화를 원세개정부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만일 진기미가 막후에서 이번 모살에 관여했다면, 무사영의 진술번복과 피살이 응계형과의 거래와 공모가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무사영은 사명을 완성한 후, 어떤 측에서 보기에, 무사영은 이미 이용가치가 없다. 혹은 만일 무사영이 다시 진술번복하여 그 배후에서 교사한 사람을 말해버린다면, 그들에게 더욱 불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사영을 죽이는 편이 낫다. 어쨌든 죽은 사람은 다시 말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송교인암살사건"이 이 지경에 이르니, 이미 더 이상 간단한 형사사건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사법관할권 논쟁으로 무사영이 조계에서 중국측에게 넘긴 것이 바로 이번 정치투쟁의 희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