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사황(秦四晃)
수문제 양견은 큰 뜻을 품고 야심만만한 사내이고, 역사는 그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유방(劉昉)과 정역(鄭譯)의 불궤지심을 이용하여, 고아과부의 손에서 북주의 병권을 빼앗았고, 결국은 북주를 대체하여 수왕조를 건립한다.
일반백성이 보기에 황제가 되면, 무법무천(無琺無天)의 사람이 되어 생사여탈권을 쥐고, 호풍환우할 수 있으며, 천하인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할 것이며, 천하에 그가 두려워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수문제는 개국황제가 아닌가? 그럳데, 이 천자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누가 그렇게 능력이 있는가? 바로 양견의 조강지처인 황후 독고씨였다.
황제를 공처가로 만들려면, 자연히 보통여자는 아니다.
첫째, 그녀는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청년 양견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둘째, 그녀는 온유하고 현숙했다. 아침저녁으로 남편인 양견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에게 잘 맞추어주었다.
셋째, 현모양처로 남편을 잘 모시고 자식을 잘 기르며, 근검절약하며 집안을 일으켰다.
만일 위에 언급한 정도의 여인이라면 그냥 현숙한 부인일 뿐이다. 황제를 화내지 못하게 하며, 황제까지도 말을 듣게 할 정도이니, 독고씨에게는 그 이상의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황제의 주변에 여우같은 여인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았다. 독고씨는 수문제 양견과 결혼할 때 이런 서약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생애에 영원히 사랑하며, 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어문드러지더라도 굳은 사랑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생지자(異生之子)는 갖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이렇게 맹세하게 만든 뜻은 평생동안 나 하나만을 사랑하여야 하고, 특히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 자식을 낳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수문제는 그 자리에서 응락했다. 나중에 이 일을 득의만면하여 대신들앞에서 자랑하기도 했다: "짐의 곁에는 희첩이 없다. 다섯 아들이 모두 같은 모친에게서 낳았다. 진짜 형제라 할 수 있다. 만일 전대였다면, 얼마나 많은 후궁이 있었겠는가?" 이 말을 듣고 독고씨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맹세는 시간의 시험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세월이 흐르자, 후궁들이 많아지고, 수문제는 점점 더 유혹을 막아내기 어렵게 되었다. 하루는 황후 독고씨가 병이 들어 병석에 누워 있는 틈을 타서, 수문제가 식사후 화원을 산보했다. 거기서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하나 만나서, 일시 흥이 동하여 밤에 침실로 불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황제는 기분이 좋아져서 조회에 참석하러 갔다. 수문제와 밤을 같이 보낸 여자가 용상에서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독고씨의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순식간에 칼아래 목숨을 잃었다. 조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수문제는 이 소식을 들었다. "혼자서 말을 타고 궁을 빠져나가, 도로로 가지 않고, 산 속으로 삼십여리를 달려갔다." 그리고 장탄식을 했다. 바람한번 피웠다가 이런 지경에 처하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은 조용히 돌아오고 만다. 이때부터는 바람필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황제를 따라 조회에 참석했다. 출퇴근시 그녀가 항상 따라다녔다. 여러해를 하루와 같이, 독고씨는 여명에 일어나서, 친히 황제의 세수와 의복을 챙겨주었고 그 후에 함께 가마를 타고 조당으로 갔다. 수문제가 조당에서 국사를 논의할 때 독고씨는 대전의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퇴조한 후에는 다시 함께 침궁으로 돌아왔다. 서로 상대방을 공경하고, 함께 천륜의 즐거움을 누렸다. 밤이 깊으면 서로 안고 잠을 청했다.
시국과 정사를 논할 때 독고씨의 견식은 뛰어났다. 독고씨는 보통의 암호랑이나 모야차(母夜叉)가 아니었다. 그녀의 가족에서는 3명의 황후를 배출한다. 명문후예인 그녀는 일찌감치 정치적인 지혜와 재능을 드러냈다. 남편 양견이 "유조를 받들어 보정(輔政)"을 할 때, 북주의 대권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언제 황제의 자리를 빼앗을지를 망설이고 있을 때, 독고부인이 나서서 강력히 주장하고 그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리하여 양견이 앞장서서 천하를 빼앗도록 고무한다: "대세가 이미 넘어왔다.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격이다. 이제 내려갈 수도 없다. 힘을 내라." 양견은 그제서야 왕조교체를 결심하고 수왕조를 건립한다. 그후 부부 두 사람은 국가대사를 논의하고, 집정의 도리를 교류할때, 서로 마음이 잘 들어맞았다. 의견이나 방안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궁중의 상하에서는 황후와 문제를 "이성(二聖)"이라고 나란히 부를 정도였다.
후궁을 다스리는데 음탕하고 안일한 악습을 몰아냈다. 자고이래로 미인으로 인하여 화를 입는 경우가 많고, 배가 부르면 음탕한 생각을 하게 된다. 독고씨는 이 역사의 교훈을 잘 알았다. 그리하여 수시로 문제에게 국사에 집중하고,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도록 권했다. 후궁은 그녀가 관리를 맡기고, 수문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황후는 과감하게 삼궁육원의 옛 제도를 폐지하고 근검절약을 제창한다: 궁중의 여자들이 화장을 하거나 화려한 의복을 입거나 행동거지가 요염한 것도 금지했다. 주방에서 제공하는 매일의 식단은 그녀가 먼저 살펴보았다. 황제가 외출할 때의 복장도 그녀가 친히 조치했다. 그녀는 세심하고 주도면밀하며 엄격하게 관리감독해서, 후궁의 질서는 정연했다.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니게 된다. 비빈들은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법도를 잘 따랐다. 수문제는 성색의 유혹도 받지 않았고, 모든 잡다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곁에 이렇게 아름답고, 현숙하며, 능력있고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부인이 있다면 천자라 하더라도 기꺼이 공처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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