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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삼국연의

관우와 방덕: 유사성격의 충돌

by 중은우시 2013. 2. 16.

글: 염호강(閻浩崗) 

 

관우의 장점과 약점에 대하여는 <삼국연의>의 연구자들이 이미 많이 얘기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관우성격의 최대특징은 바로 "지나친 자신감"이다. 이 특징은 그가 몇 가지 기적을 만들어내게 했다. 예를 들어 순식간에 화웅의 목을 벤 것이나, 안량, 문추를 벤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적을 창조한 것은
또 다시 그의 자신감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의 실제수준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실패를 불러온 핵심요소중 하나이다.

 

만일 무사로서의 관우의 평생을 본다면 가장 화려했던 때는 백마파에서 안량, 문추를 벤 때일 것이다. 그렇다면 총사령관으로서의 관우에게 사업의 전성기는 수엄칠군(水淹七軍)이다. 화웅을 베고, 안량,문추를 벤 때 그는 남의 밑에서 일했다. 형주에 있을 때는 그가 한 지방을 차지한 총사령관이었다. 수엄칠군이전에 그가 천하에 이름을 떨친 장거가 있었다. 단도부회(單刀赴會).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성공은 원래 자만심이 크던 관우를 더욱 자만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천하제일임을 항상 증명하고 싶어했다: 유비가 새로 거둔 마초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자, 멀리 형주에서 관평을 촉으로 보내어 하전서를 보내 그와 비무하고자 한다. 다행히 제갈량이 중간에 끼어들어, 급히 서신을 그에게 써서 보낸다: "마초와 장비가 비슷한 수준이니, 당신 관이야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서신은 전문가증명자료와 비슷하다.  관우는 이 서신을 본 후에 득의만면하여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자리에 있던 손님들에게 하나하나 보여준다. <위성>의 삼려대학의 육자소는 매일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서 행정원에 근무하는 친척이 보낸 서신을 펴놓는다. 관우의 경지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때문에 성인으로 추앙되는 관우에게도 인간미가 묻어난다. 어느 정도는 귀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수준과 지위가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은 다른 사람을 무시했을 뿐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언사도 모욕적이었다. 이것은 귀여운 점이 아니다. 이 방면에서 두 개의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첫째 사건" 제갈근이 손권, 유비의 관계를 개선하게하기 위하여 형주로 와서 정략결혼을 제안한다. 관우의 딸을 손권의 아들에게 시집보내자는 것이다. 관우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아니라, 크게 욕을 한다: "나의 호녀(虎女)를 어찌 견자(犬子)에게 시집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딸은 '호랑이의 딸'인데, 동오의 손권아들은 '개의 아들'이 되어 버렸다. 책에서 관우의 딸이 얼마나 예쁜지는 적혀 있지 않다. 혼인을 거절하면 그만이지, 상대방을 개새끼로 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중매장이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으니,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 짓이다.

 

둘째 사건: 황충이 그와 나란히 오호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대노하여 말한다: "장비는 나의 형제이다. 마초는 귀족출신이다. 조운은 나의 큰형을 따른지 오래되었다. 나와는 형제와 같다. 이 황충은 뭐하는 자인가. 감히 나와 나란히 불리다니. 나는 이 늙은이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 황충을 무시하는 이유를 보라. 하나는 개인친소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출신이다. 만일 출신으로 따진다면, 그는 도망범이다. 그리고 그의 집안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친소관계로 직함을 주고, 관작을 내린다면 그것은 더더욱 안될 말이다. 그가 이렇게 대국을 돌보지 않으니, 지도자로서는 얼마나 골치아프겠는가. 그래도 큰형이 천하를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늙은이'가 뭐가 나쁜가. 예전에 호뢰관에서는 '마궁수(馬弓手)'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너도 나중에 늙지 않겠는가?

 

이를 보면 이때의 관우는 개인적으로 자신감이 극도로 팽창해 있었던 것같다. 곧이어, 조인, 우금과 대진한다. 그리고 단계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러자 그는 더욱 득의양양하여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달도 차면 기울고, 해도 중천에 오르면 내려가는 법이다. 산꼭대기에 올라갔으면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이다. 운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과연 "수엄칠군"이후 "패주맥성"이 일어난다. 즉 개인무력대결로 보면, 관우의 좋은 시절은 더 이상 없다. 그는 연이어 두번 화살을 맞는다: 첫번째 화살은 방덕이 쏜 것이고, 그다지 깊이 박히지는 않았다; 두번째 화살은 조인이 궁노수로 하여금 쏘게 한 것으로, 화살촉에 독이 발려 있었다. 후자는 관공 과골료상의 마지막 아믈다운 이야기를 남긴다. 이것은 그의 운이 철저히 끝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엄칠군때, 관우와 대진한 조조측의 주장은 우금이다. 선봉장은 방덕이다.

 

이 방덕은 미국의 이미지스트 시인과 비슷하다. 그도 대도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처음에 그는 마초 수하의 부장이었다. 마초가 장로를 대신하여 서천으로 출병할 때, 방덕은 병으로 따라가지 못한다. 이렇게 얽히는 바람에 원래 함께 전장에서 피를 뿌리던 두 사람은 철저히 갈라지게 되고 적대하는 상대방이 된다. 마초는 억울하게 유비에게 투항한다. 방덕은 계책에 걸려 조조에 투신한다.

 

이 방덕은 바로 관우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지나친 인물이다. 그는 조조진영에 들어간 후 하루빨리 공을 세우고 싶어했다. 조조가 우금을 주장으로 정하여 번성을 구하도록 했을 때, 방덕은 스스로 나서서 선봉장을 맡는다. 사수관의 전투이후, 어떤 장수이든 관우의 이름을 들으면 우선 삼푼을 겁을 먹었다. 문추는 바로 이렇게 겁을 먹은 것 때문에 졌다. 그러나 방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조조로부터 명을 받을 때, 관우를 생포하여 조조에게 바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자신은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관을 들고 전투에 나서게 하여, 적군에 생사의 결전을 벌일 결심을 나타낸다.

 

누군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관우는 불쾌해진다. 자신의 개인명성이 훼손될 리스크를 막기 위하여 그는 친히 칼을 들고 출전한다. 두 사람은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한다. 제1전후 서로 상대방을 인정한다. 제2전에서 관우는 약간 소홀하여, 방덕의 화살을 맞는다. 우금은 방덕이 공을 세우는 것을 우려하여, 철수를 명한다. 방덕은 관우를 생포하는 것에 실패하고, 나중에 자신의 건의가 주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오히려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관우방덕의 싸움은 다시한번 자신금이 사람의 능력을 충분히 혹은 실력이상으로 발휘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찌기 <삼국>을 읽었을 때, 원저가 유비를 치켜세우고 조조를 깍아내리는데 영향을 받아, 방덕이 죽어도 촉한에 항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두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나는 마초는 그의 옛주인이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불쾌한 일도 없었는데, 마초는 명주 유비에게 투항했는데, 그는 왜 관우가 유비를 찾아간 것처럼 마초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또 다른 하나는 관우가 방덕의 투항을 권했을 때, 방덕의 태도가 아주 결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조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는 바로 투항했을까? 지금 자세히 읽어보니 이런 것들도 모두 정리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방덕은 어려서부터 인생의 신조를 떠들썩하게 죽을지언정 조용히 살아가지는않겠다. 그는 일찌기 마초를 따랐는데, 마초는 유용무모(有勇無謀)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멀리 서경에 떨어져 있어 더 좋은 집단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그를 계속 따른 것이다. 시기를 기다린 것이다. 나중에 마초를 따라 장로에 투항한다. 그는 장로도 대사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삼국연의>에는 이렇게 말한다: 방덕은 장로가 어질지 못함을 생각했다. 사료에 따르면, 장로는 한중을 통치할 때 잘 통치한 편이다. 이를 보면 장로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조조가 어진 것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렸던가. 방덕이 맹덕에게는 투항하고, 현덕에게는 투항하지 않은 것은 맹덕이 대사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소인이 중간에서 이간질했지만, 조조는 방덕을 비교적 신임했다. 만일 서촉에 투항하였다면, 첫째, 조조가 가볍게 그를 놓아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와 마초의 관계는 관우와 유비의 관계에 못미쳤다. 둘째, 그는 술에 취해서 형수를 죽인 적이 있는데, 그의 형인 방유가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천에서 형과 함께 신하로 있기는 불편했다. 셋째, 그는 원래 마초의 수하이다. 마초는 오호장에 올랐다. 이를 관우가 억지로 인정했다. 그러나 방덕은 일선의 주장이 되는 것은 가능성이 없었다.

 

하루빨리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리기 위하여, 그는 명성이 가장 큰 관우에 도전하는 것을 선택한다. 지금 인터넷이나 축구계나 랭킹이 앞선 상대방을 이길 수록 자신의 점수는 더욱 올라간다.

 

다만 방덕이 실패한 것은 직장을 너무 자주 바꾼데 있다. 어느 곳에도 자신은 뿌리가 없다. 그래서 공을 세울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모함을 받고 압박을 받으나 아무도 그를 위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다행히 최고지도자 조조가 영명했으니 망정이다.

 

같은 성격, 비슷한 재주이지만 관우에게는 어떻게 하더라도 신임하는 큰형이 있다. 소설의 글만으로 보면 관우의 실패는 그 자신의 성격상 약점때문이다.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풀어준 것은 그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결점도 장점이라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간의 "의"를 위하여 "대의"를 잊었다.

 

이렇게 약점이 분명한 사람이 중국의 '무성"에 오르다니, 이는 중국민간도덕문화심리 혹은 가치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개인간의 의리가 사회의 공덕보다 중요하다. 개인에 대한 충성이 단체,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 중요하다.

 

개인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그래도 도덕적으로 인정할만한 부분이다. 문제는 소위 '개인의리'가 실질은 '개인이익'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