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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삼국연의

삼국연의: 아편인가, 담배인가

by 중은우시 2010. 6. 18.

: 이중천(易中天)

 

삼국연의 드라마가 다시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이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인들은 삼국연의를 좋아할까? 어떤 사람은 권력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나관중의 <<삼국연의>> '정치계몽서'이다. 왜냐하면 책은 '유사이래 중국의 정치투쟁과 권력운용' 대하여 '가장 상세하고 생동감있는 해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평가들을 만일 원저에서 슬쩍 덮어 감추려고 했지만, 독자들이 즐겁게 찾아내는 것들을 신판 티비드라마 <<삼국>>에서 확대재생산하여 중국인들을 다시 자극하고 있어, 우려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확실히 중국인은 권력을 좋아하고, 권모술수를 좋아한다. 권력과 권모술수를 좋아하는 것은 난세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노우선생이 말한 것처럼, 난세가 되어야, 문명과 제도가 붕괴되어야, 권력은 정치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때만이, 권력투쟁은 첨예하고 복잡하여, 끝간데까지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삼국은 바로 이런 시대이다. 기껏해봐야 100년을 넘지않는 역사의 에피소드이지만, 문학예술작품에서 계속하여 등장하여, 찻집 술집에서 오랫동안 얘기되는 꺼리가 되었고, 식후에 차를 마시면서 얘기하면 피곤한 모르는 화제가 되었다. 근본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우리가 '아편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알아야 것은 권모와 술수는 근본이 마약이라는 것이다. 일단 권력이라는 아편대에 집게 되면 갈수록 중독이 되고만다. 결국은 사람이 귀신으로 바뀐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 귀신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조조, 유비, 손권이 모두 그러하다. 그저 제갈량만이 달랐다. 그러나, 정파인 제갈량도 <<삼국연의>>에서는 '권모술수' 쓰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금낭묘계' '삼기주유' 마치 무슨 마약밀매업자같이 그려졌다. 단지 도덕적인 경향의 이유로 이런 권모술수가 '지혜' 묘사되었고, 정정당당하게 숭상을 받았을 뿐이다. 이것은 드라마 <<잠복>> 비슷하다. 비록 주제가는 '진정한 사랑은 영원하다' '진정한 충성은 영원하다'이지만, 사람들은 속에서 '직장요령' 얻고, '사무실정치' 알고, 여칙성(잠복의 주인공) 전술을 활용하게 된다. 중국인은 재주가 있는 것같다. 항상 권모와 지혜간에 서로 전환할 있는 능력을. 마약의 독성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는 이를 보아도 수가 있다.

 

방법이 없다. 중국인들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건 처치곤란이다. 먼저, 권모술수라는 것은 문예작품에서 쓰지 않으려면 실제생활에서 없어야 한다. 문학예술은 실제생활을 반영한다. 못본척 하는 것은 거짓이다. 하물며, 생활의 곳곳에 이런 것이 있는데, 문학예술만 깨끗할 있겠는가? 그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지 않을 뿐아니라, 성실하고 천진난만한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그들의 면역능력과 방어기교를 익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부러 나쁜 짓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삼국연의나 잠복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생활중에서 충분히 학습할 있다. 조금 듣기 싫은 말로 하자면, 생활이 진정한 살아있는 것을 배울 있는 대강당이다. 생활을 못하게 수는 없지 않겠는가?

 

금지하지 못하고, 금지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은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수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수완을 구경하려는 사람도 있다. 세계에 그렇게 많은 경찰드라마가 있지만, 보려는 사람은 수두룩하다그들이 모두 도적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삼국연의나 삼국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모두 아편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물며, 우리에게 그런 도적이 마음이 없다고 해서, 그런 도적의 마음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도적이 되기는 어렵다. 권세가 없는 사람은 권모술수를 부릴 수도 없다.

 

당연히, 당신이 이런 극을 보기를 즐긴다면,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격조가 높지 못하다고 수는 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중국인의 국민성때문이다. 말에는 동의한다. 단지 일깨워주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궁중정변과 다툼을 그린 극을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중국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당신은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보지 못하게 수는 없다. 어쨌든 권모술수극을 본다고 하여 위법한 것은 아니다. 권모술수극을 만드는 것은 언론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국민의 권리이다. 역사에 대한 액세스권이라고도 있겠다.

 

사실상, 권모술수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권력이 제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조, 유비, 손권의 문제점이다. 특히 그들의 만년의 문제점이다. 비교하여 말하자면, 그들의 권모와 술수는 오히려 '소아과'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 것은 먼저 권력의 남용이다. 다음으로 권모술수의 악용이다. 다음이 바로 일반 백성이 권모술수를 즐기는 것이다. 하물며 중국역사만 얘기하면, 특히 중국정치사의 경우에는 이것이 피해갈 없는 주제이다. 무대와 은막을 권모술수로 가득차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깨끗하게 하고 권모술수가 전혀 없게 필요는 없다.

 

결국, 권모와 술수와 권력투쟁은 은막으로 옮겨올 있다. 무대로 옮겨올 있다. 단지 조심하면 된다. 먼저 편극도 좋고, 감독도 좋다. 모두 '단정한 태도' 지녀야 한다. 어떻게 해야 '단정'한가.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제한받지 않는 권력'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권모와 술수가 나쁜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여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상승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즐길 수도 감상할 수도 없다. 이것이 최저선이다. 최저선을 무너뜨리면,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독자와 관중에 대하여는 심리조정을 권하고 싶다. 무엇이 조정인가? 위는 '비판에 참가'하는 것이고, 아래는 '교재로 삼지않는 '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권모술수를 지능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극을 보는 것을 교과서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진짜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극은 극이다. 재미는 있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그냥 구경거리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편은 담배가 된다. 담배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금연은 공공장소나 미성년자에게만 가능하다. 그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체에 있어서, 왕왕 선도 있고 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