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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삼국연의

삼국지의 무술묘사의 헛점

by 중은우시 2009. 4. 20.

글: 해지룡(海之龍)

 

<<삼국연의>>의 영향력은 사대명저중 가장 높다고 말하더라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삼국연의>>는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의의 형식으로 통속화한 것이다. 그것은 <<홍루몽>>처럼 심오엄근(深奧嚴謹)하지도 않고, <<서유기>>처럼 기환초탈(奇幻超脫)하지도 않다. 그러나 <<삼국연의>>는 역사를 생동감있고 재미있으면서 인구에 회자되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연의에 나오는 인물을 역사인물로 인식한다. 일본에서조차도 <<삼국연의>>를 경전으로 읽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삼국연의>>는 비록 완전히 역사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야기식의 연의는 일반사람들이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삼국연의>>에는 비록 존유억조(尊劉抑曹, 유비를 올리고 조조를 낮추다)의 봉건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지만, 여전히 지금까지 전해지고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주도사상때분에, <<삼국연의>>는 소설로서 혹은 연의로서 헛점이 여러 군데 보이고 있다. 가장 엄밀하지 않은 소설이다. <<삼국연의>>를 자세히 연구해보면, 전후모순되고, 도저히 앞뒤로 말이 되지 않는 곳이 여러 곳이다.

 

그 중의 하나는 <<삼국연의>>에서 무장의 무술고하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는 점이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삼국연의>>를 보아왔고, 많은 어린아이들처럼, 어려서부터 어느 무장의 무술이 가장 뛰어난지, 누가 누구보다 뛰어난지를 가지고 토론했다. 다만, <<삼국연의>>를 자세히 읽어보면, 무장의 무예를 묘사하는데 헛점이 아주 많다고 할 수 있다. <<수당연의>>처럼 첫번째 사나이부터 열몇번째 사나이까지 주루룩 늘어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첫째, 관우장비와 여포의 차이는 도대체 얼마나 큰가?

 

여포를 <<삼국연의>>에서 최고의 무장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반론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포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것은 사실 호뢰관(虎牢關)에서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전체 소설을 살펴보면, 여포의 무예묘사에도 아주 기괴하고 두리뭉실한 부분이 있다.

 

삼영전여포에서 먼저 싸운 것은 장비이다. 장비는 여포와 50회합을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다(不分勝負). 관우가 가담하여 다시 삽십여합을 싸웠지만, 여전히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이 점은 나중에 허저(許)가 여포와 이십여합을 싸우고 승부를 내지 못하고, 나중에 전위(典韋)가 가담하여 둘이 싸워서 여포와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관우장비, 허저전위는 모두 같은 수준의 적수일 것이다. 그래서 2:1로 여포와 싸워서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14회의 여포습서주(呂布襲徐州)를 보면 술에취해 도망치는 장비를 앞에 두고 여포는 "장비가 용맹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핍박하지 못했다"고 한다. 곧이어지는 제16회에서 장비가 여포의 말을 빼앗고, 여포가 도전하여, 두 사람은 100여합을 겨루지만 고하를 가리지 못한다. 이것은 너무나 이상하다. 장비가 여포와 100여합을 싸우고도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면, 어찌 호뢰관에서는 2:1로 싸우면서도 이기지 못했는가? 한가지 해석으로는 일류고수의 비무는 300합가량이 지나야 승부가 갈린다고 한다. 그러나, 관우장비의 수준은 비슷하고 두 사람이 합하여 여포와 평수를 이룰 수 있다면 어찌 한 사람이 100여합을 버틸 수 있겠는가? 하물며 허저, 전위의 두 장군이 여포와 2:1로 싸운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삼국연의>>에는 여러번 허저와 장비가 겨루어서 승패를 가리지 못한 경우가 나온다. 그러므로, 허저, 전위와 관우, 장비의 여포와의 2:1싸움의 효과는 당연히 같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장비는 절대 여포와 100여합을 겨룰 수 없어야 한다. 거꾸로, 장비가 여포와 100여합을 겨룰 수 잇다면, 호뢰관전투나 허유,전위의 2:1전푸때 여포는 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관우의 무예가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둘째, 관우와 장비의 무예는 누가 뛰어난가?

 

이것도 이상한 일이다. <<삼국연의>>에 쓰여있는 바에 따르면, 여포가 죽은 후에 천하무적은 관우가 된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바로 전백마(戰白馬)이다. 안량(顔良)이 조조의 몇몇 장수를 물리친 후, 조주는 관우가 공을 세우면 떠날까봐 우려하여, 관우에게 출전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관우를 출전시킨다. 이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조조의 가장 뛰어난 두 명의 장수 허저와 장료(張遼)가 곁에 있는데, 왜 그들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저 한 가지 해석밖에는 없다. 허저, 장료는 안량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허저는 여러번 장비와 싸워서 비긴 바 있는데, 이는 결국 허저, 장비는 관우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관우는 자신의 입으로 삼제(장비)의 무공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한 바 있다. <<삼국연의>>의 다른 부분을 보자. 관우가 원술을 정벌하러 갔을 때, 원술의 제일대장인 기령과 30여합을 싸워서 승부를 내지 못한 바 있다. 그러나, 장비는 기령과 10합만에 찔러죽인다. 이로써 본다면 장비의 무예가 관우보다 뛰어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무예묘사는 아마도 <<삼국연의>>에만 있는 것같다. 그렇다면 안량은 관우에게만 진다는 말인데, 안량이 그렇다면 천하제2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셋째, 조운의 장판파는 그저 뻥인가?

 

조운은 도대체 뭘가지고 100만대군속에서 아두를 구출해 냈는가? 이것도 <<삼국연의>>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삼국연의>>그 자체적인 해석에 따르면, 유선(아두)의 황제명이 보우한 것이다. 사실상, 조운이 장판파에서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것은 바로 장합(張)이다. 그러나, 장합은 조조의 수하에서 그저 이류 장수일 뿐이다. 조운이 구덩이에 빠진 후에 장합에게 찔려죽게 생긴 상황에서 아두의 "용기(龍氣)"의 붉은 빛이 몸을 보호하여 도망칠 수 있었다. 이전의 편에서 우리는 이미 허저와 조운이 싸워서 비긴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조운이 아이를 안고 장합마저도 이길 수 없었다면, 허저는 도대체 어디에 가 있었는가? 허저에게 일이 있었다고 치더라도, 장료, 하후형제등 장합보다 뛰어난 고수들이 모조리 일이 있어 외출갔단 말인가? 사실상, <<삼국연의>>에서 여러번 조조가 서황(徐晃), 장합을 조운과 2:1로 싸우도록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바꾸어 말하면, 조조의 생각으로는 서황, 장합의 둘을 내보내야 조운과 싸울만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조가 조운을 자기의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화살을 쏘지 말도록 명령까지 내려놓고, 조조의 수십명의 뛰어난 장수들은 하나도 나서서 조운과 싸우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조운과 싸운 것은 안명(晏明), 순우도(淳于導)와 같은 쓰레기들 뿐이었는가? 이들은 원래 조홍, 하후형제의 부장(副將), 부장(部將)으로 삼류장수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조운이 이들을 이기는 것은 힘들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해석이라면 그저, 조운의 소위 장판파에서 백만대군을 뚫고 아두를 구해낸 것은 나관중이 만들어낸 스스로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뻥'이라는 것이다.

 

넷째, 장료의 무예는 도대체 얼마나 높은가?

 

장료는 <<삼국연의>>에서 아주 기괴하게 무술이 묘사되어 있다. 삼국지에서는 그저 용맹하기로 유명한 이 장군은 삼국연의에서는 지혜와 용기를 모두 갖춘 장수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관우와 친한 친구라는 점과 관계될 것이다. <<삼국연의>>에서 장료의 무예를 묫한 것은 허실을 구분하기 힘들다. 먼저 관우가 장비에게 "이 자(장료)의 무공은 너나 나의 아래가 아니다"라는 말(제18회)이 있고, 나중에 관도지전에서, 장합은 장료와 44합을 버틴 일 때문에, 조조로부터 '속으로 뛰어나군이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장합을 제외하면, 원소의 수하에 장료와 44합을 싸울만한 자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무예는 정말 상당하다. 실제적으로 원소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전공이 가장 높은 것은 장료이다. 불가일세의 원상도 장료의 손아래 3합을 버티지 못하고 대패해서 도망쳤다.

 

그런데, 기괴한 것은 바로 이 장료, 손권을 혼자서 여러해동안 막아내고, 강동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밤에 울지못하게 만들었던 이 장료가 여러번 손권 후하의 아주 평범한 장수들과 평수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괴하지 않은가? 태사자(太史慈)가 비긴 것은 말이 된다고 치자. 그러나 능통(凌統)과 같은 류까지도 그와 수십합을 겨루고도 승부를 내지 못한다. 만일 정말 그러하다면, 장료가 어떻게 십수년간 합비를 지키면서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만일 나관중이 장료는 병법으로 손권에게 이긴 것이라고 말한다면, 장료가 하북에서 천하무적이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보기에 나관중은 "봉건정통"을 위하여 마음대로 조조의 장수들의 무공을 써버렸다. 비겨야 할 때는 비기게 하는 것이다. 만일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장료가 800기를 몰고 손권을 무찔렀다는 내용이 되어버리면, 조조가 너무 강해지지 않겠는가?

 

다섯째, 장합은 어떻게 천하무적이 되었는가?

 

장합은 상술한 필요에 따라 천하무적이 된다. 장합의 전반기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장료와 44합을 겨룬 외에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오히려 마초(馬超)가 진격할 때 마초와 20합을 싸우다가 패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한중에서는 장비와 싸울 때 장비와 평수를 이루는 '사람들마다 무서워하는' 고수가 되어 버린다. 장비는 원래 마초와 며칠을 싸워도 승부를 내지 못했었다. 만일 나관중이 전후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면, 장합이 중간에 무슨 무공비급을 익혔어야 한다. 다시 세월이 더 흐르면, 장합은 천하무적이 된다. 당연히 그때는 뛰어났던 무장들이 거의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석이라면, 장합의 무예를 끌어올린 것은 장비, 황충, 제갈량등이 그를 이겼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를 이긴 것이 얼마나 뛰어난 전공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니, 당신도 천하제일고수가 될 수 있다.

 

여섰째, 방덕(龐德)은 어떻게 고수가 되었는가?

 

방덕이 누구인가? 마초의 수하의 한 부장이다. 관우, 장비, 조조, 마초, 황충과 최소한 나관중이 보기에는 모두 같은 등급의 무예고수이다. 그런데, 왜 방덕의 무공이 이처럼 강한가? 이치대로라면, 방덕은 그저 마초 수하의 한 편장인데, 편장의 무공이 정장의 무예와 큰 차이가 없단 말인가? <<삼국연의>>에는 이렇게 말한다. 서황의 부장인 사환(史渙)이 원상과 3합을 싸워서 원상에게 화살을 맞고 죽었다; 원상은 장료와 3합을 버티지 못하고 대패했다. 이로써 볼 때, 편장과 정장의 차이는 아주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초의 부장은 어찌 관우와 평수를 이루고 심지어 관우에게 화살을 하나 맞칠 정도인가? 이것이 정상인가? 사실, 당시 관우는 이미 육십이 다된 노장이다. 관우의 수엄칠군(水淹七軍)의 능력을 뛰어나다고 묘사하기 위하여 방덕의 무예를 이렇게 높게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씀에 따라 관우의 재주가 오히려 저평가되었다. 마초가 투항할 때, 감히 마초와 비무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부장마저도 이기지 못한 주제에. 나관중의 이 부분 처리는 농교성졸(弄巧成拙)이 아닐 수 없다.

 

일곱째, 서황은 두뇌에 문제가 있는가?

 

서황의 무예는 일류가 아니다. 이것은 <<삼국연의>>에서 여러번 나타난다. 분명한 사례는 조조는 허저로 하여금 그와 40합을 싸우게 하고 병력을 거둔다. 이는 허저가 그를 상하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안량과 20합을 싸우고 바로 패배한다; 그는 조운과 싸울 때 반드시 장합과 함께 출전했다; 그는 맹달의 화살 하나에 죽는다. 그리고 관우는 서황이 병력을 물리지 않으면 즉시 참해버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관우의 오른팔에 힘이 없어서, 서황과 80합을 싸웠지만 물리치질 못했다. 그러나, 서황은 이러한 인물이지만, 그는 당시에 이미 병력으로 관평을 격패시켜서 번성의 포위를 풀고, 이상하게도 관우를 찾아가서 1:1 전투를 신청한다. 그의 머리에 문제가 있는가? 혹으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는가? 확실히 둘 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석은 그저 하나이다. 관우의 실패가 우연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여덟째, 위연(魏延)은 무엇으로 일류고수가 되었는가?

 

위연은 삼국시대에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각도에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연의>>를 보면, 위연은 더욱 억울하다. 위연이 싸움에 나서자 마자 문빙(文聘)에게 패배한다. 그후 유비가 서천을 차지할 때 황충과 공을 다투다가 무명의 사천장수에게 거의 죽을 뻔한다. 다시 그 후에 한중에서도 그저 장비를 도울 뿐이다; 맹획을 사로잡는 남만과의 전투에서도 고생을 하고; 나중에 왕쌍을 죽이는 것도 제갈량이 계책을 쓴 후의 일이다. 많은 경우에, 위연은 제갈량이 계책을 쓸 때 거짓으로 패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말하자면 위연의 무공이 보통이어야 한다. 그도 분명이 촉에는 장수가 없어서 선봉을 맡아야 한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그를 좋게 보지 않고, 그에게는 반골이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를 활용한 것은 제갈량의 흉금이 넓다고 보아야 한단 말인가?

 

아홉째, 강유(姜維)는 일류인가? 삼류인가?

 

강유가 나타날 때는 대단했다. 제갈량의 말을 빌리자면 "봉황"이 나타난 것같았다. 제갈량의 계책을 깨트렸을 뿐아니라, 조운과 겨울 때에도 '창법에 조금의 헛점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머리싸움에서는 등애(鄧艾)를 이기지 못하고, 무력싸움에서도 등애의 아들을 이기지 못했다. 역사상의 강유는 그다지 드러낼 것이 없다. 나관중은 제갈량의 적계제자를 끌어올렸는데, 그것은 제갈량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사실 강유는 시종 무슨 큰 재주를 보여주지 못했다. 곽준을 활로 쏘아죽인 것도 도망칠 때 요행히 그렇게 한 것이다. 나관중이 그에게 이렇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그저 삼류고수를 잠시 일류고수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것일 분이다.

 

열째, 다른 의문도 많다.

 

이들 뿐아니라, <<삼국연의>>의 무장에 대하여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문제점은 많다. 주유가 손권의 무예는 어떠했는가? 하후연은 거의 패전을 하지 않았는데 정군산을 위하여 남겨둔 것인가? 감녕은 왜 일류장수와는 싸운 적이 없는가? 등등.

 

이상의 도저해 해명되지 않는 헛점들을 볼 때, <<삼국연의>>의 무장들의 무예에 대한 묘사는 헛점투성이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작자의 봉건정통사상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의 사상속에서의 정통인물, 주인공, 혹은 정의의 사도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그는 마음대로 각종무장의 무예를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했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삼국연의>>의 패필(敗筆)중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