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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진)

진이세(秦二世) 호해(胡亥)는 어떻게 죽었는가?

by 중은우시 2012. 9. 19.

글: 왕개림(王開林) 

 

 진이세 호해는 도대체 어떻게 죽었는가? 만일 나에게 물으면, 나도 확실히 말하기 힘들다. 비록 내가 <사기>를 통독해보았지만. 문제는 바로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에게 있다. 그가 명확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기>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판본을 남겨놓았다. 첫번째 판본은 <진시황본기>이고, 두번째 판본은 <이사열전>이다. 먼저 첫번째 판본을 보자:

 

진승, 오광의 난 이후, 거국적으로 대란이 일어났다. 진이세는 먼저 조고(趙高)에게 한동안 속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종이로 불을 쌀 수는 없다. 그가 실제상황을 알게 된다. 그래서 갈수록 화가 나고, 즉시 환관을 보내어 조고가 관외의 도적을 소탕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질책한다.

 

조고는 진나라법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죄명은 조정에서 책임을 묻자면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다. 중하게 처벌하면 목을 잘리고 멸족을 당하며, 가벼우면 그냥 혼만 난다. 조고는 원한을 쌓은 적들이 너무 많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껍질을 베고 자려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두려웠다. 그래서 함양령 염락(그의 사위)과 낭중령 조성(그의 동생)을 불러서 독계를 꾸민다: 낭중령 조성이 내부에서 호응하고, 대적이 황제를 치려고 한다고 거짓으로 고하며, 그 후에 염락이 천여명의 관병을 이끌고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쫓아가서 망이궁의 입구까지 간다. 그리고 신속하고 비밀스럽게 위대장을 제거하고 궁으로 진입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궁중에서는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 염락이 이끌고 간 관병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전혀 힘을 들이지 않은 상태로 진이세의 침궁까지 쇄도해 들어간다. 화살을 그의 휘장에 쏜다. 호해는 화가나서 칠교생연(七生煙)할 정도였다. 수하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했지만, 평소에는 말을 잘 듣던 자들이 이 지경이 되니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모조리 흩어져서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저 환관 1명만이 호해의 곁을 지켰다. 호해가 내실도 도망쳐 들어가서 질책하는 말투로 그에게 말한다: "너는 왜 좀더 일찍 조고의 비위를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나를 오늘날 이런 비참한 처지에 처하도록 만들었느냐." 이 멍청한 자는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신변의 사람들이 진언하지 않았다고 질책하는데, 그가 얼마나 많은 충신들을 죽였던가. 염락은 빨리 절차를 끝내고 조고에게 돌아가서 보고하려고 했다. 그는 호해의 죄악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그에게 자살하도록 허락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호해는 여전히 자신의 요구조건을 계속 끌어내렸다: 조고를 한번 보면 안되겠는가? 안됩니다. 군왕으로 강등하면 안되겠는가? 안됩니다. 만호후로 내려도 안되겠는가? 안됩니다. 서인으로 살아도 안되겠는가? 안됩니다. 그의 애절한 요구는 염락이 하나하나 거절한다. 어쩔 수 없이 호해는 칼을 꺼내서 자결한다.

 

진이세 호해의 죽음에 관하여, 태사공 사마천이 내놓은 두번째 판본은 더더욱 역사전기소설같다. 많은 허구와 상상의 성분이 들어갔다. 그리고 신비한 양념도 쳤다. 그리하여 읽을 재미는 더욱 풍부해진다.

 

진이세가 망이궁(望夷宮)에 들어간 세번째 날, 조고는 궁밖의 위사들에게 모두 백의(白衣)로 갈아입고, 손에 무기를 들고, 궁궐의 벽을 향하여 서 있으라고 명령한다.  그는 궁으로 달려들어가서, 아주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진이세에게 말한다: "관동의 도적이 이미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진이세가 누각에 올라가서 보니, 모조리 흰색 옷을 입은 사병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서 있고, 자신의 위사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고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졸지에 대경실색한다. 조고는 급히 진이세 호해에게 칼을 꺼내서 자결할 것을 권유하며 핍박한다. 아마도 그는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폐하는 만승지존으로 절대 적병의 수중에 떨어져서 천자의 존엄을 욕보여서는 안됩니다" 진이세 호해는 정말 말을 잘 들었다. 그리고는 시키는대로 자살을 한다. 그는 '충신' 조고를 자기보다 먼저 죽으라고 할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호해가 죽은 후, 조고는 즉시 최고황권을 대표하는 옥새를 풀어서 자기의 몸에 차고는 함양궁으로 돌아와서 급히 등극한다. 그러나, 백관들이 따르지 않았다. 그가 대전을 올라가자, 대전은 마치 지진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흔들렸고, 마치 곧 무너질 것같았다. 조고는 하늘의 뜻이 자신의 찬위에 찬동하지 않고, 여러 신하들도 그가 황제를 칭하는데 따르지 않자, 할 수 없이 포기한다.

 

태사공이 내놓은 첫번째 판본은 염락이 진이세를 핍박하여 죽였고, 두번째 판본에서는 조고가 진이세를 속여서 죽게 만들었다. 공인된 사서로서 <사기>는 이렇게 명백하게 모순된 내용을 남긴 것이다. 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뭐가뭔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만일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의 첫번째 판본을 더욱 좋아한다. 특히 진이세가 협상할 때의 바보같은 표현을 좋아한다. 그것은 생동감이 있고, 인간성의 가장 진실한 일면을 드러내준다. 설마 피를 좋아하는 마왕에게도 인간성이 있단 말인가? 맞다. 그들의 인간성은 왕왕 큰 화가 닥쳤을 때 아주 바보같은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후, 자영이 조고를 죽이는데, 사마천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시간을 제시한다. 하나는 자영이 등극하기 전(<진시황본기>)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영이 즉위한 후(<이사열전>)라는 것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방법이 없다. 그저 눈을 감고 그 중의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역사는 엉망진창인 장부이다." 이 말의 유래는 오래되었지만, 함부로 한 말은 아니다. 태사공 사마천은 글을 쓸 때 엄격하고 조심했다. 그가 글을 쓸 때는 진나라가 멸망한 때로부터 백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이지만, 많은 사실은 이미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난마처럼 되어 버렸다. 확인되지 않는 설들이 나뉘고 있었다. 그는 그저 그런 경우에 개인의 억측과 무단을 하지 않고 둘 다 남겨두었다. 더욱 오래된 역사는 누가 제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굵은 선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세부적인 점을 따진다면 그건 스스로 골치거리를 찾는 일이다.

 

풍우란은 호적의 말을 고쳐서, "역사는 마치 말잘듣는 여자아이와 같다"고 했다. 마음대로 분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앞의 절반만을 한 것이다. 진이세, 조고의 예를 보자.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 언제 죽었는가? 아마도 서로 다른 판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해는 폭군이고, 조고는 간적이다. 이 평가는 아주 명확하다. 논쟁의 여지가 없다. 죽고 난 이후에도 마음대로 분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