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구(吳鉤)
사회구조변천의 각도에서 보자면, 중국역사는 4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봉건귀족사회 - 사족(士族)사회 - 사신(士紳)사회 - 공민사회.
춘추이전은 귀족사회이고, 한나라때부터 당나라때까지는 사족사회이다. 송나라때부터 청나라때까지는 사신사회이고, 그 중간에 3번의 대전환기가 있었다. 즉, 춘추에서 진에 이르는 기간이 제1차전환기로 주진지변(周秦之變)이다. 당오대는 제2차 전환기이다: 당송지변(唐宋之變). 철말에서 지금까지가 제3차전환기이다. '고금지변(古今之變). 이 전환기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중국사회의 제1차전환기인 '주진지변'(봉건귀족사회에서 사족사회로)은 대체로 600년이 걸렸다. 제2차전환기인 '당송지변'(사족사회에서 평민사신사회로)은 대체로 400년이 걸렸다. 제3차전환기인 '고금지변'은 청말부터 계산하면 지금까지 이미 150년이 지났다.
이 역사시기분류의 기준은 구식사회구조가 해체되고, 구식구조에서 '유동성'이 갈라져 나와서 천천히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여 사회의 중견역량이 되는 것이다. 춘추시대, 사(士)가 봉건구조에서 갈라져 나와서, 최종적으로 한,위의 문벌사족(門閥士族)이 된다. 당,오대에 사족이 쇠망하며 문벌이 해체되면서 평민사신이 나타난다. 이들은 사대부게층(士大夫階層)을 형성한다. 청나라말기에 사신계층이 해체되고, 역사의 추세대로라면 새로운 공민사회가 나타나야 한다.
봉건귀족사회 - 사족사회 - 사신사회 - 공민사회는 명확한 변화의 추세가 있다: 즉 사회의 고정된 구조가 계속 타파되고, 예교가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사회의 중심이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봉건귀족시대에 사회중심은 각계층의 군주였다. 사족시대의 사회중심은 세가대족(世家大族)으로 내려간다. 사신시대의 사회중심은 평민사신으로 내려간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하나하나 등급속박을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봉건귀족사회에서 사족사회로 다시 사신사회로 그리고 다시 가상중의 공민사회로 가는 것은 잠재적인 리스크가 있다. 즉 하나의 개체가 계속하여 등급의 속박을 벗어나면서, 사회의 기존구조가 계속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개인의 지나친 고립, 사회의 분산현상을 불러오고, 이로 인하여 전제통치의 장애가 사라지게 된다. 진나라의 제도는 봉건귀족의 와해라는 상황하에서 건립된 것이다. 문벌이 존재하였더라면, 주원장의 중앙집권은 아마도 성공하기 어려웟을 것이다.
비록 필자가 이렇게 역사시기를 구분했지만, 확실히 공민사회는 역사 자신이 설정한 미래의 방향이 아니다. 사신이 해체된 폐허에서 현대공민이 반드시 탄생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오히려 진나라제도에 유사한 리바이어던이다. 공민사회가 도래할 것인지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어떻게 전통과 사화자신의 재발육을 연결시킬 것이냐에 달렸다.
P.S. 필자는 공민사회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합한 대칭을 찾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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