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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광윤)

송태조는 왜 아들이 아닌 동생에게 황위를 넘겼는가

by 중은우시 2012. 8. 15.

글: 역사상나사사(歷史上那些事) 

 

태평흥국4년(979년) 송태종(宋太宗) 조광의(趙光義)는 북한(北漢)을 평정한 후 친히 군대를 이끌고 요(遼)나라를 정벌하러 가지만 불행히도 대패하고 만다. 그래서 조정으로 돌아온 후 북한을 평정한 공신들은 모두 작위나 상을 받지 못한다.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의 아들인 조덕소(趙德昭)가 입궁하여 진언한다. 그러자 조광의는 벌컥 화를 내고 조덕소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조덕소는 왕궁으로 돌아온 후 자결한다. 2년후, 조광윤의 또 다른 아들인 조덕방(趙德芳)은 잠을 자던 중에 급사한다. 이제, 조광의의 곁에 그의 황위를 위협하는 사람은 동생 조정미(趙廷美)만 남았다.

 

태평흥국7년 삼월, 어떤 관리가 조광의에게 조정미가 모반을 꾀한다고 밀고한다. 조광의는 그 자리에서 조정미의 개봉윤(開封尹) 직위를 파면하고, 서경유수(西京留守)로 보낸다. 사월, 재상(宰相)에 복직한지 얼마되지 않은 조보(趙普)는 다시 밀주(密奏)를 올린다. 조정미가 모반을 꾀한다는 것이다. 조광의는 바로 조서를 내려 심리하게 한다. 그 결과 조정미는 사저로 돌아가게 된다. 오월, 조광의는 다시 한번 조정미를 부릉현공(涪陵縣公)으로 강등시키고, 방주(房州, 지금의 호북성 방현)로 귀양보낸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밤낮으로 감시한다. 옹희원년(984년), 38살의 조정미는 유배장소에서 우울하게 생을 마감한다.

 

조광의의 즉위초에 조정미를 개봉윤으로 삼았다. 그리고 조덕소와 조덕방은 나란히 '황자(皇子)'로 불리웠다. 이것은 조야에 착각을 불러왔다. 즉, 그가 송태조 조광윤이 남긴 관레에 따라, 동생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실행할 것이라는 것이다. 조정미등이 모조리 죽은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조광의가 이전에 한 것들은 모두 정치적 쇼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조광윤이 왜 황위를 아들이 아니라 동생에게 물려주었을까? 이것은 통상적인 사리에 반하는 일이다. 그게 정말 그의 본뜻이었을까? 답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모친 두태후(杜太后)의 뜻이었다.

 

건륭2년(961년) 육월, 조광윤이 황제에 오른 두번째 해, 두태후는 임종직전에 돌연 조보를 입궁하라고 한다. 조보가 가자, 두태후는 조광윤에게 그가 어찌하여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묻는다. 조광윤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듣기 좋은 말로 대답한다: "이것은 모두 조상과 태후가 쌓은 덕때문입니다." 그러나 두태후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것은 시영(柴榮)이 황제위를 어린아들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주나라에 나이든 군주가 있었더라면, 어찌 네가 황제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너와 광의는 모두 내가 낳았다. 장래에 황제위를 동생에게 물려주어라. 사해는 넓고 억만의 백성이 있다. 나라에는 어른인 군주가 있어야 사직의 복이다." 조광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두태후는 조보를 불러서, 그에게 이 정치유언의 증인이 되도록 한다. 조보는 태후의 침상앞에서 이 맹약을 쓴다. 그리고 말미에, "신보기(臣普記)"라고 세 글자를 적는다. 그후에 맹서를 금궤(金櫃)에 넣어둔다. 그리고 믿을만한 궁인을 시켜 보관하게 하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금궤지맹(金櫃之盟)"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많은 사서에 비슷한 내용의 기록이 있다. 천여년동안, 아무도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청나라때에 이르러,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 맹약의 내용은 허구라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더 많은 학자들이 속속 글을 써서, '금궤지맹'은 순전히 위조한 것이며, 나타난 시기는 태평흥국 6년이고, 위조자는 조보라고 밝힌다. '금궤지맹'의 진상은 과연 그러할까?

 

기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먼저, 두태후는 일생동안 당말오대를 거쳤다. 이는 왕조교체가 빈번한 특수한 역사시기였다. 오대의 13명의 제왕은 한 사람도 재위기간이 10년을 넘은 경우가 없었다. 평균재위기간은 겨우 4년이다. 그중 7명으니 비명에 죽는다. 생각해보라. 이런 시대배경하에서, 누가 조광윤이 그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두태후의 일생의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반드시 나이든 후계자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 대송왕조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면, 송나라입국초기에, 기반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하에서, 만일 조광윤에게 불측의 일이 발생하면, 나이 겨우 10여세의 조덕소는 절대로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이미 스물몇살이 되고, 정치경험이 풍부한 조광의가 가장 이상적인 황위후계자였다.

 

다음으로, 만일 금궤지맹이 철두철미한 정치적 가짜라면, 조광윤이 시종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앉히지 않고,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왕의 작위조차 봉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두태후가 죽은 후 1달만에, 조광윤은 조광의를 개봉윤, 동평장사(同平章事)에 앉히고, 나중에 진왕(晋王)에 봉했다. 그의 지위는 재상보다 위였다. 오대의 관례에 따르면, 이는 기실 조광의에게 준황태자의 지위를 부여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조광윤이 두태후의 유언에 따라, 동생 조광의를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맹약을 공개하지 않고 늦춘 것은 아마도 언제든지 후계자를 지정하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혹은 필요시 그가 아들에게 전할 수도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금궤지맹'의 진실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면, 이어지는 문제는 바로 조보의 몸에 집중된다. 맹약의 유일한 증인으로서, 왜 조광의의 즉위시에 바로 공개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태평흥국 6년까지 기다려서 공개했을까? 그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20여년이나 지난 후에 비로소 맹약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나아가, 그와 조광의에게 무슨 남에게 말못할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공동으로 맹약을 임의로 뜯어고친 것은 아닐까?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신비한 유언이 나타난 경위를 살펴보자.

 

조보는 조광윤시기의 재상이다. 일찌기 조광윤이 왕조를 개창하고, 정권을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큰 공로를 세운다. 그러나, 조보는 여러번 조광의를 후계자로 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조광의의 심복신하인 노다손(盧多遜)과 사이가 좋지않았다. 그래서 조광의는 즉위한 후 그를 파면하고, 단지 태자태보라는 허직만을 준다. 그후 몇년간 조보는 뜻을 펴지 못하여 우울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상 노다손의 배척과 억압을 받았다. 불만을 참으면서 조보는 반격의 기회만을 노렸다.

 

태평흥국 6년 구월, 조정에서는 누군가 조정미의 반역도모를 밀고하기 시작한다. 조보는 즉시 그가 재기할 때가 도래했다고 의식한다. 그래서 조정회의에서 앞장서서 말한다: "원비추축, 이찰간변(願備樞軸, 以察奸變)" 원컨대 중추적인 권력기관에 들어가서 간사한 자들의 변고를 살펴보도록 해주소서. 실제로 이것은 조광의에게 관직을 달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처럼 일찌감치 세력을 잃고 황제와 깊은 은원이 있는 인물이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조보의 수중에 든 에이스카드는 바로 20년간 묵혀두었던 '금궤지맹'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날 조정에서 물러난 후, 조보는 즉시 조광의에게 밀주를 써서 올린다. 먼저 억울함부터 토로한다. "신은 개국의 옛신하인데, 간사한 자에 의하여 저지당하였다." 그리고 '금궤지맹'의 사정을 꺼내놓는다. 조광의는 즉시 조보가 말한 금궤를 찾아낸다. 열어본 후 이 맹약을 본다, "그러자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조보를 입궁하라고 불러서, 미안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며칠 후 조보는 사도 겸 시중으로 승진한다. 다시 제국의 권력중추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조광의는 돌연 조보에게 한 가지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를 꺼낸다. 황제위는 어떻게 전해야겠는가? 조보는 단정적으로 말한다: "태조께서 이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폐하께서 어찌 잘못을 또 저질러서야 되겠습니까." 조광의는 아주 만족한다. 다시 한번 조보를 재상에 임명한다.

 

겨우 반년후, 조정미의 모반사건이 발발하고, 노다손도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다. 조보는 원하는대로 이루었다. 재상의 자리로 되찾고, 적수도 죽여버렸다. 그리고 조광의와의 불화도 해소되었고, 전례없는 신임을 얻는다. 조광의도 마침내 뒷걱정을 덜 수 있었다. 자신의 적계자손을 위하여 모든 잠재적인 황위쟁탈자들을 제거하여 황제위가 일맥으로 전승되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금궤지맹"이 나오기 전후에 발생한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조광의가 금궤지맹을 열었을 대, 얻은 것이 겨우 두태후가 조광윤으로 하여금 그에게 전위하라는 유언이었다면, 그것은 이미 황제위에 앉은지 5년여가 지난 조광의에 있어서, 뒤늦은 합법성이 근거는 현실적인 의미가 별로 없었다.

 

만일 조보가 제공한 맹약이 이것뿐이라면, 황제인 조광의가 이전에 자신이 황제에 오르는 것을 계속 방해했던 그에게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었을까? 만일 그가 황제가 된 것이 두태후의 유언이라면 조광윤조차도 위배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거꾸로 당초 조보가 조광의의 즉위를 극력 반대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사과해야할 사람은 당연히 조보이다. 그런데 어찌 조광의가 사과했단 말인가?

 

관료생활을 오래한 노정객 조보가 여러해동안 은인자중하였는데, 만일 이때 내놓은 것이 단지 이 미적지근한 맹약이었다면, 그가 어떻게 다시 재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무엇을 가지고 조광의의 고굉대신 노다손을 일거에 무너뜨렸을까? 그가 아예 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조광의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불합리한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바꾸어 말하면, '금궤지맹'의 원시적 내용은 설마 조광의와 조보가 공개한 것 뿐일까?

 

<송사.조정미전>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혹은 말하기를 소헌(두태후) 및 태조(조광윤)의 본 뜻은 태종(조광의)이 정미(조정미)에게 전하고, 정미가 다시 덕소조덕소)에세 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송태종이 즉위하면서, 조정미를 개봉윤에 앉혔고, 덕소는 실제로 '황자'로 칭했다." <속자치통감장편>에도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조광의와 조보가 공표한 '금궤지맹'은 사람들이 '독전약(獨傳約)'이라고 부른다. 즉, 조광윤이 조광의에게 전하는 한번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송사>와 <속자치통감장편>에 기록한 것은 "삼전약(三傳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조광윤이 조광의에게 전하고, 조광의가 조정미에게 전하고, 조정미가 조덕소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번을 전하면 황위는 여전히 송태조의 일계로 돌아온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 어른인 군주가 있도록 할 수도 있고, 조광윤의 자손들이 황제위를 잇게 할 수도 있다.

 

이제, 금궤지맹의 진상은 마침내 수면위로 떠올랐다. 모든 불합리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이것으로 풀린다.

 

원시맹약은 '삼전약'이었기 때문에 조광의의 즉위초기, 노련한 조보는 이 에이스카드를 쉽게 내놓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조광의가 막 즉위했는데, 즉시 동생과 두 조카를 제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쇼를 할 필요가 있었다. 권력을 공고히 할 시간이 필요했다. 동시에 손을 쓸 시간도 필요했다. 조보는 이것들을 보고서, 지나치게 일찍 이 패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의 후반생의 운명을 결정할 유일한 정치적 밑천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꺼냈다가는 아마도 잠시 잘보일 수는 있지만, 일생의 부귀를 보장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은인자중하는 것을 선택한다. 조광의와 마찬가지로 묵묵히 최선의 시기가 도래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기회는 마침내 태평흥국6년에 온다. 조광의가 조정미를 제거하겠다고 결정한 그 순간, 조보는 20년간 숨겨두었던 '삼전약'을 꺼내서 던진 것이다.

 

진실한 '금궤지맹'이 이때 나타나니, 이는 잘보이려는 것뿐아니라, 협박의 뜻도 들어 있다. 생각해보라. 만일 조보가 모든 것을 걸고 '삼전약'을 공개해버린다면, 조광의는 완전히 피동적인 입장에 몰릴 것이다. 어찌되었건 황위를 조정미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조보는 당연히 이런 양패구상의 결과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밑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광의가 금궤를 연 후 그에게 극히 불리한 '삼전약'이 발견되자, 얼마나 놀랐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조보에게 감격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조보는 이 하늘도 놀랄 비밀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하에서 황제인 조광의는 주도적으로 숙적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성의있게 사과하고 그를 승진시켜준다. 바로 이를 위하여, 조광의는 조보에게 탐색하는 말을 던진다. 네가 나에게 이 맹약이 '삼전약'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네 뜻은 앞으로 황위를 어떻게 전하면 되겠는가?

 

조보의 대답은 아주 깔끔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입장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확실하게 자신은 절대로 조광의의 동맹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래서 조광의는 아주 만족하고 다시 한번 감격한다. 그래서 참지못하고 조보에게 마음 속의 말까지 털어놓는다. "짐은 몇 번이나 그대를 죽이려 했었다." 이제 여러해동안 원수지간이던 얼음은 녹아버렸고, 둘은 서로 손을 잡고 화해한다.

 

두 사람이 모두 '삼전약'은 불합리하다고 보았으니, 이제 어떡할 것인가? 고치면 된다. 그래서 '삼전약'의 금궤지맹은 조광의와 조보의 손에 의하혀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는 이미 '독전약'으로 바뀌어 있었다. 즉, 가장 중요한 원시내용이 삭제된 것이다.

 

반년후, 조광의와 조보는 공동으로 조정미를 타격하는 행동을 전개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당연히 이익교환으로 조광의는 부득이 자신의 심복이자 조보의 적수인 노다손을 포기한다. 그를 조정미와 함께 순장시킨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금궤지맹'은 철두철미한 거짓말이 아니다. 개조를 거친 정치적 변조품이다. 이 맹약은 건륭2년에 만들어졌고, 원시내용은 '삼전약'이다. 목적은 나라에 나이든 군주가 있도록 하고, 마지막에는 조광윤의 일계에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태평흥국 6년에 공개한 '금궤지맹'은 조광의와 조보의 임의수정을 거쳐, 중대한 변경이 있게 되는데, '삼전약'이 '독전약'으로 바뀐 것이다. 목적은 조광의 즉위의 합법성을 부여하고, 다시 잠재적인 황위계승자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황제위가 조광의의 일맥에 의하여 승계되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