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각조(胡覺照)
악비가 쓴 출사표
후세에 더없이 칭송받는 <출사표>는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고 있을까? 이것은 명확히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후세인들의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칭찬의 말을 배제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갈량이 쓴 문자의 배후에는 또 다른 그의 포부가 숨겨져 있다.
첫째, 촉국(蜀國)이 직면한 형세를 논함.
전국의 형세는 정치가에 있어서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근거이다. 반드시 정확하고 오류없이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에 부합하는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고,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조금만 소홀히 하여 놓치게 되면,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약소국은 더더욱 그러하다. <출사표>는 시작하면서 바로 형세를 분석한다: "당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져 있다. 익주는 피폐했으니, 실로 위급하고 생사존망이 걸린 시기이다(危急存亡之秋)". 이러한 분석은 아주 타당하다. 위, 오, 촉의 삼국가운데, 서촉의 영토가 가장 적고, 인구가 가장 작다. 원래 가장 약한 나라이다. 인구만 본다면, 위나라의 12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동오의 5분의 1이 약간 넘는다. 동오와 서촉의 동삼군쟁탈전, 동오의 형주기습전을 거친 후, 서촉은 많은 물자를 잃었을 뿐아니라, 군사력과 군심도 큰 상처를 입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형주라는 부유한 전략요충지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유비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국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촉오간의 이릉지전을 벌인다. 전군이 전멸하고 유비는 백제성에서 사망하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서촉은 이후 내리막길을 계속 내려간다.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셈이다. 외환과 내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남의 소수민족이 옹개, 고정, 맹획, 주보등의 영도하에 거병하여, 서촉 내부는 다시 분열현상을 보인다. 후세학자들은 제갈량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인하여, 이에 대하여 이중기준을 적용하여, 억지로 이를 '반란'이라고 칭한다. 제갈량이 집권한 후, 3년간 준비를 거쳐, 이 의거들은 진압된다. 비록 칠종칠금의 신화를 남겼지만, 남방은 평온하지 않았고, 소수미족의 어거도 끊긴 적이 없다.
기괴한 일은, 같은 날 쓴 같은 글에서, 제갈량은 형세에 대하여 완전하 상반되는 입장을 적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갑옷과 병사도 이미 충분하니 삼군을 이끌고 북으로 중원을 평정할 때이다(北定中原)...." 서촉의 '북벌'시기가 이미 성숙했고, 형세는 아주 좋다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서촉은 도대체 '생사존망지추'의 위기에 놓인 것인가? 아니면, '북정중원', '한실부흥'의 호기를 만난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앞뒤가 맞지 앟는다. 이처럼 거대한 차이가 나타난 것은 제갈량이 유선(劉禪)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세가 위급하다고 한 것은 그를 겁주는 것이고, 자신이 권한을 황제에게 돌려주지 않는 이유를 만든 것이다(당시 유선은 이미 20살이었다). 형세가 아주 좋다고 말한 것은 북벌이라는 명분하에 승상부를 한중(漢中)으로 옮기고, 황제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궁중다툼의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황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한중(漢中) 면현(勉縣)의 제갈씨정부에 실권을 두고, 성도의 유씨정권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다.
둘째, 유선을 마비시킨다.
전제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종의 의탁과 피의탁의 관계이다. 마지막에는 모두 황제에 의탁한다. 그 형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포도나무와 같다. 신하는 황제에 의탁하며, 표면적으로 충군(忠君)하지만, 뼛속으로는 개인의 앞날을 도모하고, 개인의 명리와 지위를 도모한다. 황제는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을 주고, 처와 아들에게 명예와 관직을 주면서 끌어들이고, 다른 한편으로 잔혹한 수단으로 불충하거나 배신하는 신하들을 타격한다. 서촉에서 권력을 장악한 제갈량도 마찬가지였다. 유비가 신경써서 뽑아놓고 각종 시험을 거친 탁군출신, 익주출신의 관리들에 대하여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제갈량은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온갖 방법을 써서 그들을 배제하고 타격을 가했다. 유선에 대하여 그는 이중도덕기준을 취한다. 유선에게, 그 자신 및 자신이 신뢰하는 관리들은 모조리 "선제의 특수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당연히 사람을 속이는 말이다. 그 자신조차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조차 믿지 않는 말을 가지고 유선에게 말했다는 것은 유선의 경계심을 마비시키고 흐트리려는 목적이다.
셋째, 유선을 혼내다.
624자에 불과한 <출사표>에서 제갈량은 13번이나 '선제'를 들먹인다. 이것은 그의 유비에 대한 심후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선제 유비의 부탁을 받았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즉, 선제인 유비를 대신하여 말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유비를 참조로 해서 유선을 혼내고 유선을 왜소화시키고, 유선의 자신감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와 유비와의 대와가 진실인지 여부는 유비가 죽었으므로 확인할 길이 없다. 설사, 유비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중요한 말이라면 유비가 당연히 아들인 유선에게 반복하여 주지시켰을 것이다. 굳이 제갈량이 나서서 주절이주절이 읊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갈량은 "마땅히 성스러운 덕을 펼쳐서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내야 하고...함부로 망령되게 스스로 덕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의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비유하며 충성스러운 간언을 할 길을 막아서는 아니됩니다" "궁중과 부중은 모두 일체이니,.... 서로 차이를 두어서는 아니됩니다....치우치거나 사사롭게 처리하여 안과 밖의 법이 달라서는 아니됩니다'; 너는 당연히 '소인을 가까이 하고, 현신을 멀리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현신을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해야 한다'는 등등의 말을 한다. 당시 유선은 아직 친정을 하기 전이다. 모든 업무는 제갈량 혹은 제갈량의 심복인 동윤, 장완, 곽유지, 비위등이 처리했다.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가르친다기 보다는 오히려 혼내는 것에 가깝고, 치욕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제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것이다. 아랫사람이 기세등등하게 윗사람을 멸시하는 것이다.
넷째, 추천방식으로 유선의 포위, 연금을 합법화하다.
<출사표>에는 제갈량이 '현신을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하라'는 명목하에, 유선에게 곽유지, 비위, 동윤, 향총등 형주출신 제갈량의 심복들을 대거 추천한다. 그리고 선제 유비가 일찌감치 선발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가까이 두고 믿으라고 말한다. 기실 이들은 제갈량에 의하여 조정에 들어온 사람들이고, 유선에 대하여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 군사등 군국대사는 모두 이들이 제갈량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고, 유선은 그저 도장찍는 황제에 불과하다. <출사표>에는 이 기정사살을 다시 한번 언급한다. 이것은 불법수단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유선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아니라, 제갈량이 그의 심령을 속이고 위안하는 것을 놔둘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자신의 결백함을 드러내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탁고(托孤)할 때, 일찌기 중대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제갈량에게 탁고하며, 이엄(李嚴)을 보좌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엄을 중도호(中都護), 도통내외군사(都統內外軍事), 주절영안(駐節永安)"하게 한다. 이런 배치는 실제로 경성을 보위하고 제갈량을 감독하게 하는 것이다. 남정때, 제갈량은 핑계를 잡아 다른 장수들의 재능이 모두 자신만 못하다고 하여, 이엄의 군권을 빼앗기에 이른다. 남정에서 돌아온 후 다시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며,승상부와 총사령부를 한중 면현에 둔다. 이것은 유비의 유언에 배치된다. 감히 배반의 '죄명'을 안을지도 모르는 일을 벌인 것은 이 죄명보다 더욱 큰 기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유선은 당연히 불만이 많았다. 불만이 당시에 일단 폭발하면 결국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갈량의 일족이 멸문당할 위험까지 포함된다. 이런 리스크를 해소시키기 위하여, 유선의 경계심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출사표>에서 제갈량은 "신은 원래 포의(평민)로 남양에서 밭을 갈면서 난세에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제후들에게 이름이 알려져서 공명을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선제는 신이 미천함에도 친히 몸을 낮추어 왕림해서 초가집을 세번이나 찾아주셨으며, 신에게 당금세상의 일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감격하여 비로소 선제를 위하여 일하겠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갈량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 쳐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리며 남양에서 밭을 갈고 있었던 것에서 공리적인 특성을 숨기고, 어쩔 수 없이 선제를 따라나선 것으로 말했다. 거짓말의 배후에는 당연히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여섯째,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다.
유비는 백제성에서 탁고할 때, 비록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만일 아들이 보좌할 만하면 보좌해주고, 그가 재주가 안되면, 그대가 자리를 취해도 좋다." 기실 이것은 단지 효웅(梟雄)의 아언(雅言), 듣기좋은 말일 뿐이다. 본뜻은 유선의 황제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제갈량에게 탁고하는 동시에, 이엄에게 '보좌'하다록 하고 그의 직무와 임무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그 목적은 제갈량은 감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유선의 황제지위가 동요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황제를 미혹시키기 위하여, 제갈량은 자신의 여러가지 업적을 언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전투에서 패전한 때에 임무를 맡게 되었고, 나라가 위난할 때 명을 받들었으며 이미 이십하고도 일년이 되었습니다." 이 이십일년의 개괄은 '수임(受任, 임무를 맡다)'과 '위난(危難)'이라는 두 마디이다. 그러나 가리키는 바는 한가지이다. 즉, 장판파의 실패이후, 명을 받들어 노숙을 따라 동오에 사신으로 간 일이다. 이것은 성공적이지 못한 외교활동이었다. 손권이 가지고 논 외교활동이다. 그후 이십하고도 일년이라고 개괄한 것은 확실히 과장의 측면이 있다.
제갈량이 외교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에, 유비는 그 이후 오랜 기간동안 제갈량을 관우의 휘하에 두고 냉대했던 것이다. 익주를 탈취할 때는 방통(龐統)을 기용하고, 익주를 탈취한 후에는 법정(法正)에 더욱 의지했다. 제갈량은 이릉지전 이전에 이견조차도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저 법정이 너무 일찍 죽은 것을 유감이라고 한다. 이를 보면 그가 당시 불우한 정치지위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출사표>에서는 제갈량이 21년의 서촉할거정권의 성공역사를 모조리 묶어서 그 자신의 공로로 삼았다. 자신을 유씨집단을 구원해준 영웅으로 포장했으니, 이는 확실히 과장된 측면이 크다.
일곱째, 자신의 충성을 드러내다.
제갈량은 앞에서 보았듯이 이미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즉, '선제의 특수한 대우를 받아서, 이제 폐하에게 그 보답을 하고자 한다" 이치대로라면, 이런 말까지 썼다면, 더 이상 동어반복을 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스스로도 찔리는게 있었는지, 더 나아가 자식의 북벌은 바로 선제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고, 유선에 충성을 다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스스로 사심이 없고, 유일한 목적은 한실을 부흥시키는 것이며, 유선을 낙양의 황궁으로 들어가서 즉위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제갈량은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냄으로써 유선이 자신에 대하여 권력찬탈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병권을 이엄에게 돌려주지 않은 유일한 원인도 결국 '북벌'대업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덟째, 유선이 자신에게 복종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세 가지 방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국가정무의 일은 곽유지, 비위, 동윤의 책임에 속한다고 한다. 그들이 자세히 이해득실을 분석하고, 모든 언행은 후주에 대한 충성의 각도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한다. 그 속에 숨은 뜻은, '너는 걱정말라. 안심하고 그냥 명목상의 황제로 있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후주는 북벌사업을 안심하고 자신에게 맡겨주기를 희망했다. 만일 예견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그것은 후주가 제갈량에게 책임을 묻고 선제의 하늘에 있는 영혼에 알리고 위로하면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길을 신하들에게 물어서 취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서 받아들이고, 선제가 남기신 유조를 깊이 따르십시오" 유비가 유선에게 남긴 유조(遺詔)는 이러하다: "너는 승상과 함께 일을 하면서, 승상을 부친 모시듯이 하라" <출사표>의 마지막에 제갈량은 결국 자신의 패를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너는 너의 부친이 말한대로 해야 한다. 아들이 부친을 대하는 것처럼 나의 말을 들으라. 모든 것은 내가 처리하겠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황제에게 자신을 존경하라고 하고, 자신에 복종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중국역사에 유일무이한 경우이다.
이상이 바로 <출사표>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제갈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갈량의 황제꿈 (0) | 2012.08.15 |
---|---|
제갈량의 약점 (0) | 2012.07.15 |
제갈량은 어떻게 신격화되었는가? (0) | 2012.01.07 |
모택동은 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0) | 2012.01.01 |
칠종칠금(七縱七擒) 배후의 진실 (0) | 2011.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