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건강(劉建强)
이것처럼 빠르게 인류가 경영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증명된 사업은 없었다.
소셜커머스는 2010년 중국에 들어왔고, 1년동안 신속히 번식했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신속히 사망한다. 소셜커머스 사이트의 수량은 가장 많았을 때의 6000여개에서 지금은 4000개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여생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 이 업계의 선배는 '예언'했다. 99.9%의 소셜커머스는 올해내로 숨을 거둘 것이라고.
걸핏하면 억달러이상씩 자금조달이 되자, 이 업계의 여러 진입자들은 기업은 원가를 계산해야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그들은 지적유희를 체력노동으로 간단히 바꾸고, 창업과장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조달, 인원채용, 광고를 하다가 전혀 과도기없이 재융자실패, 감원, 도산으로 향했다. 인류의 걸출한 지혜를 모두 모아놓은 인터넷에서, 그들은 마치 허리에 가죽치마를 두른 선사시대의 수렵자와 같다.
금방 죽음에서 빠져나온 퇀바오왕의 창시자이자 CEO인 런춘레이(任春雷)는 그의 속한 업종에 대한 이런 묘사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부분을 먼저 진술하자. 2012년 구정, 퇀바오왕은 위에 언급한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돈은 다 써버리고, 도산위기에 직면했다.
퇀바오왕의 최대주주는 이미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밀린 급여를 달라고 하는 직원과 밀린 돈을 달라고 하는 채권자들이 만들어낸 떠들썩한 분위기는 퇀바오왕의 구정연휴 이후까지도 계속되었다. 런춘레이는 소문에 따르면 '행방불명'이고, '자산을 빼돌렸다' 그러나, 런춘레이에 따르면, 이 때 그는 힘들게 호랑이에게 몸을 던지려는(舍身飼虎) 투자자(반년전에 이미 자금조달채널이 끊긴 소셜커머스업계에 이것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를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 그는 돈을 낼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책임과 이상"에 대하여 토론하고, 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다 내놓고, 집도 담보로 잡혔다.
1개월후, 이 불굴의 창업자는 그의 사무실에 앉아서 우리에게 얘기한다: 찾았다. 계약을 최종체결한 것은 아니고, 퇀바오왕의 직원은 전성기의 2300명에서 200명도 남지 않았지만, 최소한, 이 회사는 마지막 단계 직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서, 이것은 우선 '견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창업자가 만일 파산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떤 곤란을 극복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창업자가 그의 '견지'에 관한 판단에 관련된다: 어떻게 해야 '책임과 이상'이 제 주인을 만나서 빛을 볼 것인가?
2012년 2월 23일, '런춘레이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들려나온지 1개월후, 우리는 퇀바오왕의 북경본사를 찾았다.
사무실의 일부분은 선로고장으로 조명이 없었다. 벽에 걸린 선구가,개척자같은 류의 편액은 마치 침묵하는 듯했다. 먼 길을 달려와서 채무를 갚으라고 요구하던 업체들도 이제는 1개월전처럼 당황하지는 않고 있었다. 마침 그를 맞이한 퇀바오왕의 직원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담배를 내밀며, "작년에 우리는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그냥 도망칠 리가 있겠는가?" 한 EMS 배달원이 프론트데스크로 법원의 속달문서를 하나 전달하고 갔다. 한 여직원이 프론트데스크에서 계속하여 건물관리회사에 전기를 고쳐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사의 PR담당임원과 기자가 있다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아마도 못알아봤을 수도 있다).
런춘레이는 차가 막혀서 30분 늦었다고 해명했다. 20일전, 그는 이 사무실 겸 회의실 안에서, 근 200명이나 되는 급여를 요구하거나, 퇴직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2011년 하반기, 라셔우(拉手), 까오펑(高朋)등 일선의 소셜커머스 사이트가 대규모 감원을 실시한 후, 퇀바오왕은 제1차 자금조달에 실패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런춘레이도 감원행렬에 가담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2012년 1월 20일, 퇀바오왕의 급여지급일에, 직원들은 급여카드의 숫자에 변화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이미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이 업계에서 이것은 위험한 신호였다.
런춘레이는 운이 좋지 못했다. 2012년의 음력섣달그믐날은 전년보다 10일이나 빨리왔고, 1월 22일이었다. 구정은 중국인들에게 의미가 컸다. 그런데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1월 24일, 음력 정월 초이틀, 웨이보에는 "중국에서 랭킹 10위내의 소셜커머스 사이트 최고경영진중에서 처음으로 야반도주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파된다.
런춘레이는 1월 20일의 사태에 일찌감치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퇀바오왕의 기존주주들에게 계속 투자해줄 것을 설득했다. 비록 가능성은 갈수록 적어졌지만. 런춘레이의 말이다. "다만 나는 그래도 기대를 가졌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깨달을 것이라고.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우리의 심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2년간의 운명이 여기 안에 있다. 주식제는 수익을 모두 같이 나누지만, 위난이 있으면 같이 손을 잡아야 한다" 주주들은 설득되지 않았다. 퇀바오왕의 최대주주(투자액은 1억위안이 넘을 것임)의 대표(즉 이 투자자와의 연락인)는 3개월후에 죽으나 지금 죽으나 차이가 없으며, 지금 죽는 것이 돈이 적게 든다는 입장을 표시한다.
22일까지, 런춘레이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주주들이 돈을 송금하면서, 미안하다 늦었다라고 말할 줄 알았다" 구정 연환만회가 끝나면서, 런춘레이는 철저히 실망한다. "다른 사람들도 실망했고, 이 소식은 퍼져나갔다."
런춘레이는 산야(三亞)에서 구정을 보냈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계획이었다. 구정때 하이난(海南)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보기에, 런춘레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당황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사실상, 런춘레이는 전체 과정에서 그가 당황하고 놀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를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산야로 간 중요한 또 하나의 원인은 잠재적인 투자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런춘레이의 중구상학원(中歐商學院)의 동창이다. 런춘레이에 따르면, 그 동창은 그에게 '뒷심'을 갖도록 해주었다. 동창은 만일 모든 방법을 다 써도 안되면, 그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만, 그저 돈을 빌려주지, 지분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이자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것은 아마도 그 동창의 소셜커머스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런춘레이는 계속 찾아다녔다. 1월 26일, 정월 초나흘, 아침 일찍, 런춘레이는 앤젤투자자 쉐만즈(薛蠻子)의 북경 집에 나타났다. 금방 그는 설만자가 투자할 의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가 쉐만즈에게 그와 최대주주간의 의견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점을 얘기하자, 쉐만즈는 이렇게 지적했다. 런춘레이와 최대주주는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 직접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것이다. 쉐만즈의 스타일대로라면,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으면, 매주 창업자와 같이 목욕도 하고, 반달에 한번씩 발안마도 하여야 한다." 그리고 '통역'(주주대표를 가리킴)을 통하여 얘기하면 '통역'의 개인의도가 투자자의 판단을 좌우하게 된다. 왜 직접 허난(河南)으로 가서 최대주주를 직접 만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쉐만즈가 대신 대답한다. "가능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이미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1월 29일(정월 초칠일) 구정연휴가 끝나기 전에, 런춘레이는 5,6명의 투자자들과 연속하여 접촉한다. 그리고 퇀바오왕을 인수합병할 가능성이 있는 2개의 '대기업'도 만났다. 런춘레이는 퇀바오왕의 자산가치에 대하여 믿어의심치 않고 있다: 먼저 도메인이다. 퇀바오왕은 Groupon.cn을 선점했다. 그래서 Groupon이 중국에 진입할 때 '고붕(高朋)'이라는 이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퇀바오왕의 '수백만의 돈을 내는 고객과 수천만의 등록유저'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셜커머스 경험이 축적된 '나와 나의 팀'이 있다.
비록 일부 유명한 투자자들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그들은 공개적으로 퇀바오의 인수합병가치가 거의 0라고 본다. 왜냐하면 쉽게 대체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런춘레이의 자신감의 원천이고, 전혀 의심치 않고 있다. 런춘레이는 1990년대초에 선양항공공업학원(지금의 선양항공항천대학)에서 공부할 때 쓴 메모에 이런 말이 있다: "이런 말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한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이 깨닫는 것은 또 다르다." 이런 격려하는 문구들이 곤경에 처한 창업자에게 얼마나 큰 작용을 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은, 1월 29일 오전 8시 20분, 런춘레이는 평소보다 2시간을 앞당겨 사무실로 갔다. 그는 '자신감'과 문제의 일부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이미 자신의 비장한 이미지까지 생각해 놓았다: 그는 제2의 스위주(史玉柱)가 될 생각을 했다. 파산후 2차창업하여 이전의 모든 채무를 상환한다.
이전에 어느 날인가 웨이보에 런춘레이는 이렇게 썼다: "위난은 인간성의 시금석이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1996년 나는 자신의 창업강령에서 이렇게 말했다: 굴복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다. 뜻을 꺽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모함하지 않는다. 내가 도망친다고? 세계는 비록 크지만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사업은 돈을 벌 때도 있고 돈을 잃을 때도 있다. 잃으면 다시 벌면 되는데 왜 도망을 치는가? 죽음이 오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도망치더라도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 남자의 흉금은 억울함을 참으며 버티는 것이다. 원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런춘레이는 자신이 직면할 혼란한 국면을 충분히 계산한 것같다. 그는 먼저 경찰에 신고를 했다. 소재지 파출소에서 질서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한다. 200여명의 직원과 해직직원(대부분을 차지함)들이 속속 도착한다. 런춘레이가 약속한 대로 나타나자 그들은 의외로 여겼다. 그러나, 급여와 퇴직보상금에 대한 갈망은 감븡 이 사실이 지니는 의미를 신경쓰지 않게 된다.
런춘레이와 그의 부하들은 반복하여 이들 직원들에게 말했다: 런춘레이총재는 버틸 것이다. 그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 만일 반드시 오늘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들면, 그가 버티는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회사는 그저 파산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아마도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수개월 혹은 더욱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반달만 더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런춘레이는 이렇게 보증했다: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나는 여러분의 편에 설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봉급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여러분들의 급여를 주지 못했지만, 내 급여도 지급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맨 마지막에 받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나를 지지해주어야 한다. 나만이 여러분의 권익을 보호해줄 수 있다. 여러분이 오히려 유일하게 여러분의 이익을 보호해줄 사람을 내몰아버린다면 그것은 이성적이지 않다."
이렇게 말로써 이들 무리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말해봐야 그 효과는 뻔할 것이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여전히 몸을 빼지 못하고 있던 런춘레이는 사전에 준비해둔 30만위안의 현금을 내놓는다. '죽어도 오늘 돈을 받아야겠다'는 직원들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가서 돈을 구해야겠다" 런춘레이는 말했다. "여기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30만위안은 런춘레이에 있어서 그 자신의 저축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시 회사의 장부에는 이미 돈이 없었다. 원래 20만위안을 준비했는데, 사람수를 잘못 계산하여, 임시로 10만위안을 추가한 것이다. "(한 사람에) 500위안도 좋고, 1000위안도 좋다. 사람들에게 나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 런춘레이는 이 거동으로 사람들의 이해를 사기를 기대했다. 네가 이미 이렇게까지 한다면, 우리가 조금 기다려 주겠다. "나는 사람들의 문제인식능력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것같다" 일부 돈을 받은 사람들이 떠났다. 원래 죽기살기로 덤벼들지 않던 직원들마저도 자극을 받아, 의지가 더욱 강해지게 된다.
다음 날 새벽 6시, 런춘레이는 마지막 몇몇 직원을 떠나 보냈다. 두 명의 일부 퇴직보상금을 받은 콜센터의 아가씨는 런춘레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런총재께 미안합니다. 오늘 우리 둘이 가장 심하게 떠들었습니다."
전체 과정을 함께한 파출소의 정치위원은 런의 태도에 찬사를 보냈다: "런총재, 내 생각에 당신은 대단하다. 당신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과 절차는 모두 멋있었다."
런춘레이는 평소에 사상공작을 업으로 하는 정치위원에게 말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소란을 피우는데, 모두 내가 큰 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단련하고 자신을 증명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는 나도 과거에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단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자신이 이를 직면하고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2시간후, 런춘레이는 웨이보에 글을 올렸다: "어제 하루, 직원들과 대면했다; 오늘 선전에서 사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녔다; 내일 퇀바오는 개방해야할 것인가? 길에서, 너무 피곤하다. 너무 어렵다. 너무 힘들다. 버티면서, 미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핵심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런춘레이의 말이다. "인터넷소문도 좋고, 욕설도 좋도, 모두 한 가지 물건을 떠나지 못한다. 즉, 돈. 이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치를 따지는 것은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이해해줄 의무는 없다."
30만위안은 '핵심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퇀바오왕의 '휴가'는 부득이 연장되었다. 모든 빚을 해결하려면, 개략 1000만위안이 필요하다. 런춘레이는 주주들에게 건의했다. 모두 비율에 따라 출자하여 난관을 넘기자고. 그러나 그다지 호응이 없었다.
2월초, 런춘레이는 자신의 북경 집을 담보로 잡히고, 산야의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그 동창에게 수백만위안을 빌렸다. 대다수의 주주는 런춘레이의 행동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런춘레이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너희들은 모두 부자이고, 나는 가난뱅이이다(그들은 일찌기 나를 가난뱅이라고 풍자한 바 있다). 요 몇년 창업하여, 급여를 가져가는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가난뱅이도 집을 담보로 내놓는데, 너희들은 아직도 내놓지 않느냐. 너희들은 내놔야 한다. 안내놓으면 너희들을 멸시하겠다."
주주들은 이미 믿음을 잃었다. 채무변제문제를 초보적으로 해결한 후에도 런춘레이는 최대주주의 대표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받는다: '너는 버티는구나'. 그 뜻은 '런총재, 우리는 모두 더 버틸 수 없다. 너도 그냥 그만두면 이렇게 고생할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런춘레이는 회신에서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표시한다: "청산이 남아 있는데, 땔감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은 당연히 계속투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회사는 3개월이 지나서 죽으나 지금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어찌 3개월이 지나면 반드시 죽을 줄 아느냐는 것이다."
런춘레이는 상대방이 고의로 자신과 대적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문제를 상대방이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너는 3개월후에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믿느냐
2월 7일부터, 런춘레이가 부동산담보로 구한 돈과 일부 주주들의 출자로 급여와 소비자반품비를 먼저 해결하고, 퇴직보상금과 업체는 후에 해결하는 원칙에 따라 차례차례 빚을 갚았다. 돌아와 일하는 직원수량은 이미 200명에도 못미쳤다(런춘레이는 잠시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
런춘레이는 막무가내는 아니다. 그가 부동산담보를 결정했을 때, 그는 다시 자금조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신비한 투자자를 언급하기 전에,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런춘레이는 주주들에 대한 실망부터 말을 꺼냈다. 그의 주주에 대한 실망은 우리가 이미 쓴 바 있다. "다른 창업자들도 자금조달할 때 투자자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아도 된다" 런춘레이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만일 어느 날인가 퇀바오왕이 오늘날의 이런 상황이 되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그가 네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봐라고 한다면, 그를 고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런춘레이가 잊지 못하는 것은 직원의 배반이다. 처음에 '런춘레이가 야반도주했다'는 소식을 퍼트린 것은 퇀바오왕의 직원들이었다. 그리호 한 사람, "내가 비교적 중시했고, 과거 크고 작은 회의에서 그를 칭찬한 바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앞장서서 나에 반대했다. 거의 코를 가리키며 나에게 욕을 해댔다. 마치 나를 욕하고, 내 명성이 바닥에 떨어지는게 즐거운 것처럼."
런춘레이는 아마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창업회사에 있어서 투자자이건 직원이건, 최초에는 모두 이익을 위하여 모였다는 것을. "핵심문제는 돈이다" 창업자 및 그의 이상에 동의하고 충성하라는 것은 2년동안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돈만 써댄다고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소개로 런춘레이는 퇀바오왕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베이징 궈마오 부근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자리에서, 런춘레이가 자신보다 2살이 어리다고 말한(런춘레이는 39살이다) 선전, 상해, 베이징에 전통기업이 있다는 기업가는 이렇게 물었다. 퇀바오에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교. 런춘레이는 수천만위안이라고 말했다. 그후, 그 사람은 두 번이나 물었다. '수천만'이면 지분 얼마를 가질 수 있는지. 런춘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주주들과 협의해야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런춘레이는 이 기업가에게 상의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이때가 분명 가장 쌀 때이다" 상대방은 동의했다. 그리고 투자하기 전에 기존주주와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만일 서로 협조할 수 없다면, 지분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투자할 수 없다"
주주들은 이 구원자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어보였다. 런춘레이는 말한다. 그들은 일부 계약조항을 놓고 하나하나 따졌다. 런춘레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간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들이 이미 투자한 2억위안에 가까운 회사를 파산시키려 한단 말인가? 그 최대주주의 대표는 자주 대놓고 말했다. 파산하려면 파산해라. 비록 런춘레이로서는 투자자들이 손실츨 최소화하려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지만, 많은 경우에, 그는 그들의 방식은 '도의로 보나 기회포기라는 점에서 보나 모두 옳지 않았다."
런춘레이는 자신의 '견지'를 위하여 댓가를 치렀다. 잠도 자지 못하고, 혈압도 올라갔다. 최근에는 상하이에서 혈압이 너무 높아, 응급전화를 한 적도 있다. 런춘레이는 자신이 고혈압으로 혈관파열될까봐 우려할 정도였다.
투자협의는 현재 아직도 체결되지 못했다. 하나의 문제는, 그 '수천만'을 받더라도, 소설커머스업계의 돈을 팍팍 써대는 스타일로 볼 때,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반년전에 런춘레이는 매체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는 월별 결손이 2000만위안이 넘지 않으면 용인할 수 있다고.
런춘레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새로 개업하는 퇀바오왕은 이미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없다고.
1월 29일 아침, 본사로 가서 퇀바오왕이 도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러 가는 중에, 런춘레이가 사라지지전 몇시간전에 런춘레이는 돌연 해답을 찾았다. 구정기간동안,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런춘레리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명절 이후에 당신을 따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봐라. 런춘레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이런 상태하에서 어느 누구든 나를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원한다면, 나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나 한 사람만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버텨낼 것이다. 그날 아침, 런춘레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일 오늘 정말 한 사람도 없으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가?
그것은 소셜커머스 프로젝트가 알프오 0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케팅인원이 없는 상황하에서 어떻게 업체들을 소셜커머스에 참여하도록 끌어들일 수 있을까? "나는 당시에 생각했다. 모든 업체에서 1위안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1위안이 문턱이라고 생각되면, 장애라고 생각되면, 나는 실제로 1위안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케팅과 고객서비스는 불필요하다. 업체가 스스로 찾아오면 된다; 재무인원도 불필요하다. 퇀바오왕은 이런 류의 직원이 가장 많을 때는 200며명에 달했다. 소셜커머스 프로젝트의 인터넷편집과 설계인원도 불필요하다,업체들이 스스로 설계하여 올리면 된다, 그리고 퇀바오왕이 제공하는 설계사(그들은 기본급여만 받는다)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설계사의 수입은 일정한 한도를 초과하면 퇀바오왕이 그들과 이익을 나눈다.
이어서, 업체서비스태도가 좋지 않은 것은 소비자들이 현장에서 지급하지 않은 것과 관련있다, 소비자들이 미리 지급하지 않으면, 환급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업체도 더 이상 소셜커머스업체에 대금을 달라고 청구할 필요가 없다. 업체들이 소셜커머스업체를 통하지 않고 우회하여 고객을 빼앗아 가는 '잠규칙'도 방지할 수 있다. '개방과 분점은 인터넷의 기본가치이다." 런춘레이의 말이다. "퇀바오는 무료로 통과하는 교량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업체에서 환영하지 않을 리가 없다."
'돈을 달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퇀바오왕은 '원가가 높고, 이익은 낮은' 악성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거래액이 최대인 소셜커머스웹사이트'가 될 수 있다.
비록 런춘레이는 퇀바오왕 웹사이트의 현재 비지니스모델을 '단기간내에 희망을 볼 수 없'지만, 만일 누군가 퇀바오왕이 일찌기 손을 마구 써버렸고, 경영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면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혼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일정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어떤 기업이건 세계 500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경영에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나는 돈을 마구잡이로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돈을 썼을 뿐이다. 인터넷기업으로서 우리는 기실 그렇게 돈을 많이 쓴 것도 아니다. 2,3천만달러는 인터넷기업에게 많은 돈이 아니다. 우리의 동종업체와 비교하면, 우리같은 규모로 만들려면 그 정도 돈을 쓴다. 인터넷기업이 원래 그렇다. 돈을 그만큼 써야 계속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어찌되었건, 현재, 퇀바오왕은 완전 무료이다. "소규모의 소셜커머스는 감히 이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영향력이 우리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의 기업들은 모두 상장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
보기에는 아름답다. 그러나, 퇀바오왕은 공익웹사이트가 되려는 것인가? 도대체 뭘로 돈을 벌려는 것인가?
런춘레이는 말한다. 그는 이미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나 현재는 아직 공개할 수 없다. 만일 다행히 성공한다면, 내가 총명해서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몰렸기 때문이다."
런춘레이가 성공할 것인지 여부는 몇 개월 후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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