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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초기)

다이샨(代善)은 왜 칸에 오르지 못했는가?

by 중은우시 2012. 6. 5.

글: 자일(子逸)

 

1615년, 명나라 만력43년, 추잉(諸瑛)이 죽은 후, 다이산은 누르하치의 눈에 다음번 후계자로 떠올랐다.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차남이고, 추잉의 친동생이다. 누르하치의 아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고, 공훈이 탁월했으며, 양황기(兩黃旗)를 통솔했다. 다음 해, 누르하치는 스스로 칸에 오르고, 후금정권을 건립하며, 다이샨은 화석패륵(和碩貝勒)에 봉한다. 그리고 4대패륵중에서 우두머리가 된다. 누르하치는 일부 정치업무를 다이샨에게 위임하여 처리하게 한다. 그리고, "내가 죽은 후, 나의 어린 아들과 다푸진(大福晋, 큰부인)은 대아거(大阿哥)가 맡아서 길러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르하치가 다이샤을 후계자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곧이어 발생한 하나의 사건은 다이샨의 '태자' 지위를 뒤흔들었다.

 

천명5년, 누르하치의 소첩인 다이인차(代音察)가 대비(大妃) 아바하이(阿巴亥)를 고발한다: "다푸진은 일찌기 두번 음식을 준비하여 대패륵에게 보냈습니다. 대패륵은 이를 받아서 먹었습니다. 또 한번은 사패륵에게 음식을 보냈습니다. 사패륵은 받았지만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푸진은 하루에 두 세번 사람을 대패륵의 집에 보냅니다. 이렇게 왕래가 많은 것은 무언가를 공모하는 것입니다. 푸진 자신도 깊은 밤에 집을 나간 것이 2,3번이나 됩니다." 누르하치는 바로 사람을 보내어 조사시킨다. 결과 이는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 그리고, 여러 패륵들이 이렇게 말했다: "매번 칸이 패륵, 대신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거나 정사를 논의할 때, 대비는 항상 정성껏 화장으ㅡㄹ 하고, 다이샨과 눈길을 주고 받았습니다."

 

다이샨과 아바하이는 나이가 비슷했다. 젊고 아름다운 아바하이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만 했다. 하물며 칸이 이미 말을 해놓지 않았는가. 아바하이가 다이산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것은 그리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누르하치가 건재할 때, 자신의 아들과 처가 애매한 관계인 것은 그를 분노하게 했다. 다만, 동시에 그는 집안의 추한 일을 크게 떠들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누르하치는 이 사건을 공개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아바하이가 재물을 몰래 숨겼다'는 것을 빌미로 삼아 그녀를 버린다. 비록 이 일에서 누르하치가 다이샨에게 처분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다이산은 그에게 모욕을 주었다. 이로 인하여 누르하치는 다이샨에게 실망한다. 다이샨의 '태자' 지위는 흔들리게 된 것이다.

 

대비를 버린지 며칠 후, 다시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여 누르하치는 다이샨에게 더욱 실망한다.

 

천명5년 사월, 누르하치는 후금국의 수도를 계번성(界藩城)에서 살이호성(薩爾滸城)으로 옮길 준비를 한다. 그는 이 곳을 시찰한 후, 각 패륵에게 저택을 지을 부지를 지정해준다. 다이샨은 장남인 웨퉈(岳托)의 부지가 자신의 것보다 좋고, 누르하치의 부지가 자신보다 작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제기한다. 칸이 자신의 부지에 거주하도록. 누르하치가 응락한 후, 다이산은 다시 망구얼타이와 아민을 시켜서 부황에게 얘기한다. 자신의 부지가 너무 좁으니, 웨퉈의 부지를 가지고 싶다고. 결국, 누르하치는 이렇게 결정한다: 나는 원래의 부지에 건물을 지어서 살겠다. 다이산은 가족을 데리고 더 넓은 부지로 가서 거주해라. 누르하치는 이 일을 아주 담담하게 처리했고, 아무런 파란도 일지 않았다. 그리고 다이샨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질책을 하지 않았다. 그가 다이샨을 질책하지 않은 것이 그가 불만을 갖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이 부지사건을 통하여, 누르하치는 다이샨이 허위적이고 탐욕스럽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를 질책하지 않은 것은 이미 누르하치가 이 '태자'에게 극히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얼마후 아들학대사건은 다이샨을 '태자'의 보좌에서 철저히 밀려나게 만들었다.

 

천명5년 구월, 어떤 사람이 칸에게 고발했다: 다이샨의 차남인 슈퉈(碩托)이 후금을 배신하고 명나라에 투항하려 했다. 슈퉈가 붙잡혀 온 후에, 다이샨은 칸에게 자신이 친히 아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한다. 누르하치는 허락하지 않는다. 조사를 해보고 누르하치는 알게 되었다: 다이샨은 후처의 요사한 말을 믿고, 전처소생의 아들인 슈퉈를 학대했다. 슈퉈는 살아서 희망이 없다고 보고, 나라를 배신하고 명나라에 투항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누르하치는 그 말을 듣고, 슈퉈를 풀어주었을 뿐아니라, 그를 자신의 곁에 남겨둔다. 나중에 누르하치는 이 일을 깊이 조사한 후, 다이샨의 전처소생 자식들은 모두 가난하게 살고, 후처소생 자식들을 모두 부유하게 사는 것을 발견한다. 이뿐아니라, 누르하치는 슈퉈가 망명하려고 한 것은 다이샨이 소첩의 참언을 들어, 슈퉈가 자신의 소첩과 간통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누르하치는 철저히 격노한다. 그는 다이샨을 질책한다: "너는 내 전처가 나은 아들이다. 왜 내가 너를 어떻게 대하였는지를 생각하지 않느냐? 너는 어찌 후처의 참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느냐? 너는 감히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나중에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대하겠는가? 이렇게 한쪽 말만 듣고 한쪽 말만 믿는 사람이 어찌 일국의 지존의 대임을 맡을 수 있겠느냐." 그리하여 사람들 앞에서 선포한다: "다이샨을 서인으로 폐하고, 그의 모든 권한을 박탈한다. 그의 막료, 부하는 모조리 회수한다. 다이샨은 폐해진 후, 친히 이 화를 불러온 처를 죽인다. 이를 통하여 자신이 회개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이런 회개행위에 누르하치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그의 막료, 부하를 돌려주고, 그의 '화석패륵'의 직함을 회복시킨다. 그러나 그를 '태자'로 세우지는 않았다.

 

누르하치는 잔인하고 포악한 사람이다. 평소에 그가 형제와 우의있게 보내거나, 자식들을 아껴주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는 동생을 죽이고, 아들을 죽였다. 이런 행위는 다이샨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다. 그러나, 왜 다이샨의 아들학대행위를 이렇게 용납하지 못했을까? 이 사건은 바로 누르하치가 '태자를 폐위시키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이샨이 '태자'로 세워진 때로부터 권력과 지위를 얻었을 뿐아니라, 그는 모든 사람의 표적이 되었다. 반년동안 발생한 세 가지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다이샨이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잘못이지만, 그 배후에는 여러 아들들간의 잔혹한 후계다툼, 칸위쟁탈의 피비린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