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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태평천국과 영국군함

by 중은우시 2012. 6. 4.

글: 살소(薩蘇)

 

승상은 춘하추동으로 나뉘고, 부부는 같이 잘 수 없으며, 홍수전의 정식 후비는 팔십여명이다...태평천국의 혁명을 교육받을 때면 이런 역사라면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태평천국은 우리에게 더욱 놀라운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태평천국은 당시 서양인들과 관계가 아주 밀접했다. 태평군내에는 금발벽안의 '양장(洋將)"이 적지 않았다. 청나라의 저명한 고용군인 "양창대"의 지휘관인 Ward가 죽은 후, 두번째 지휘관인 H. A. Burgevine는 부대를 이끌고 태평군에 투항했다.

 

태평군에 참가한 "양장"은 대부분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모험가였다. 태평군이 그들을 받아들인 것은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홍수전이 의거시에 '배상제교'의 명의로 하였으므로, 태평군은 외국인을 자신들의 '양형제'라고 여겨 아주 열정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태평군내에 일본인은 전혀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인중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양인들은 정말 태평천국이 중국에 기독교국가를 건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이 정권과 접촉해보고나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1854년 6월, 영국의 군함 향미사호(響尾蛇號)와 명하호(冥河號)는 태평천국이 지배하는 난징에 도착한다. 그들은 세상과 단절된 태평천국정권과 모종의 연락을 하거나 혹은 그 허실을 탐색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태평천국은 일반적으로 서양형제들에게 매우 친절했다. 그러나 대포를 장착하고 온 이들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광동광서에서 왔기 때문에, 영국인이 호문을 포격하고 아편을 강제판매한 것에 대하여 매우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상륙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외교적인 측면에서 태평천국은 상당히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집정하고 있던 동왕 양수청은 여전히 이들을 서양형제로 보고 서면으로 교류했다. 그러나 그가 서신에서 제기한 일부 내용은 방문한 향미사호의 선장인 Arther Mellersh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영국해군대장이 되는 Mellersh의 일기를 보면 양수청이 제기한 문제를 하나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Does God write verse(하나님이 시를 쓰는가?)"였다.

 

양수청은 태평천국에서 일류의 외교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서신을 보고 영국인들은 철저히 깨닫는다. 상대방은 소위 기독교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쌍방은 거의 대화의 기초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번 방문이후, 영국측에서는 청정부와 태평천국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킨다(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청정부에 기울어졌다는 말이다)

 

쌍방간의 서신대화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글의 주제가 이니다.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태평천국으로 특수사명을 집행하기 위하여 온 영국의 향미사호는 세계해군사상 기념할만한 유명군함중 하나이다.

 

난징을 방문한 향미사호는 이 이름으로 명명된 네번째 영국해군군함이었다. 이 배는 1843년에 항해를 시작했고, 배수량은 890톤이며, 길이는 56미터, 220마력이며, 12문의 대표를 장착했고, 항속은 10노트이다. 만일 성능과 규모로 본다면 이 배는 평범하다. 범선시대에도 그보다 훨씬 큰 군함을 영국인들은 만들어냈다.

 

향미사호가 유명해진 것은 하나의 시합때문이다.

 

1845년 3월, 런던교외의 템즈강 입구에서, 영국해군부는 두 척의 군함 "향미사호"와 "알리크토"호간에 재미있는 경기를 벌인다. 동력이 비슷한 두 척의 선박은 선미를 서로 묶고, 신호를 받은 후 전속력으로 항해했다. 비록 처음에는 쌍방이 비슷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전자가 우세를 보였다. 후자가 선미를 앞으로 하고 약 2.5노트의 속도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영국인들이 참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사람이라면 신체를 단련하지만, 군함도 그렇게 해야 한단 말인가?

 

기실 이번 경기의 배후는 선박설계상의 기술혁명이 있었다.

 

최초의 윤선은 오늘 날과 많이 달랐다. 특히 그들의 추진장치가 그렇다. 최초의 윤선인 클라이먼트호는 두 줄의 증기기관이 추진하는 노였다. 사람들이 젓는 배를 모방하여 전진한 것이다. 진정 실용적인 초기 윤선은 명륜식 추진기를 사용했다.

 

명륜은 두 개의 거대한 수차모양의 회전바퀴이다. 일반적으로 배의 양측에 장착한다(어떤 경우는 선미에 장착하기도 한다). 보일러에 불을 붙여, 명륜이 구른다. 물을 저어 배에 추진력을 주는 것이다.

 

이런 추진방식은 중국의 송나라때 있었다. 우윤문은 채석대전에서 금나라의 황제 완안량과 싸울 때, 사용한 것이 바로 명륜선이다. 다만 증기기관이 없을 뿐이다.

 

명륜이 추진하는 배는 외관이 보기 좋다. 운전하기 쉬웠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첫째, 명륜 그 자체가 무게가 많이 나간다. 추진효율이 높지 않다. 둘째, 명륜은 체적이 크다. 현의 측면의 위치가 분명하다. 군함의 동력장치로서는 쉽게 파괴될 수 있다. 셋째, 명륜선은 해상상황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사용하기 적절하지 않다. 자주 한쪽 명륜이 수면에서 공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추진방식으로 명륜을 대체하고자 했다. 그들이 찾은 방법은 나선형 노이다.

 

나선형노의 원리는 중국의 노(櫓)와 관련있다고 한다(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전문가중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또한 나사못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이것은 외관상 보아서 그럴 듯하다). 어쨌든 계산을 거쳐 이론적으로 명륜에 비하여 우수한 추진방식으로 증명되었다. 향미사호는 바로 영국해군이 나선형노를 추진방식으로 사용한 군함의 비조중 하나이다. 그것은 1843년에서 1845년의 사이에 서로 다른 나선형노를 바꾸어 장착한 바 있다. 그렇게 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설계를 골랐다.

 

나선형노는 물 속에 숨겨진다. 추진효율도 명륜보다 좋다. 그러나 이를 보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물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특히 영국해군부의 원로들은 그러했다.

 

어떻게 그들을 설득할 것인가?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험을 하는 것이다. 소위 사실이 웅변보다 낫다. 당호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쇠구슬을 떨어뜨이고서야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믿었다. 이런 선전효과가 가장 좋은 것이다.

 

향미사호와 알리크토호의 경기는 이런 하나의 실험이었다. 왜냐하면 양척의 동력과 톤수가 비슷하고, 추진방식만 달랐기 때문이다. 향미사호는 나선형 노를 사용했고, 알리크토호는 명륜을 사용한다.

 

시험의 결과는 나선형 노가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후, 세계의 대다수 해군함정은 나선형노의 추진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군함은 우리가 오늘날 보는 모양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원래 평범하였던 향미사호는 이로 인하여 역사책에 기록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배가 태평천국을 방문한 것과 같은 기괴한 경력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실, 향미사호를 난징으로 보내어 태평천국을 방문하게 한 것은 기술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이것은 장강이 내하에 속하고, 향미사호는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항해하기로 설계된 군함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장강의 수계조건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내하를 항해할 수 있는 군함을 보내어 이번 임무를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온당했다. 통상적인 조건하에서 이런 내하의 포함은 명륜으로 추진하는 선박이다. 예를 들어 태평군의 비래복래호(飛來復來號)이다.

 

비록 추진효율등 방면에서 명륜선은 나선형노선에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의 분야에서는 더 낫다. 그것은 바로 내하(內河)에서이다. 이것은 명륜선은 흘수선이 낮고, 동작이 신축성있으며, 좌우의 두 개 명륜은 심지어 반대방향으로 회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최소의 회전반경을 확보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나선형노 배는 내하에서 쉽게 나선형 노가 바닥에 닿아서 파괴되는 등의 사고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미국의 미시시피강이든, 일본의 비파호이건, 각국의 내하 내호에는 대량의 명륜선이 항행하고 있다. 열국의 이후 '장강포함'중에도 명륜선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영국인은 왜 향미사호를 보내고 명륜선을 난징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당시의 자료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은 혹시 돛도 보이지 않고, 노도 보이지 않는 괴이한 배를 몰고가면 태평천국을 놀라게 해줄 수는 없을까? 태평군이 이런 논리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배를 몰고 가면 분명히 놀라자빠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혹시 잉카인들이 스페인인들에게 그랬듯이 바로 고개를 숙이고 신하를 자처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영국인들이 중국의 상황을 너무나 몰랐다고밖에 할 수 없다. 배상제교의 성원으로서, 태평천국의 형제들은 모두 도창불입(刀槍不入), 백일참귀(白日斬鬼)의 연극을 보았다. 운이 좋으면 하나님이 하강한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냥 돛과 노가 없이 움직이는 배? 이런 자잘힌 신통력은 동왕 북왕이 콩을 던져서 병사를 만드는 것이나 산을 옮겨 바다를 메우는 재주와 비교하면 정말 별 것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