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쩌민)

장쩌민은 보시라이를 완전히 포기했는가?

by 중은우시 2012. 2. 19.

글: 대기원시보 2012년 2월 19일자

 

2012년 2월 6일, 왕리쥔이 청두의 미국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미국매체는 미국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왕리쥔이 미국영사관에 보시라이가 중공 정치국 상임위원인 저우용캉과 함께 시진핑을 제거하려했다는 기밀정보를 제공했다고 확인해주었다. 보시라이는 장쩌민계와 관계가 깊기 때문에, 장쩌민계는 '꼬리자리기(斷尾求生)"의 방법을 준비하고 계속하여 조치를 내놓고 있다.

 

2월 13일, 장쩌민계는 정치국의 9명의 상임위원이 보시라이에 대한 전문조사팀을 구성하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하였다고 소식을 퍼트렸고, 전문조사조에는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인 허궈창, 정법위 서기인 저우용캉, 그리고 중앙조직부 부장인 리웬차오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 출판되었고, 장쩌민계의 색채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명경월간(明鏡月刊)>은 '내부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보시라이의 죄상을 열거했다.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는 다롄에서 장쩌민의 개인숭배활동을 하고 보이보와의 관계등으로 인하여, 보시라이의 관운은 만사형통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타흑(打黑)'활동을 하면서 여러명의 중공 정치국 상임위원의 불법자료를 손에 넣었고, 이를 가지고 고위층을 협박하였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최근의 <명경월간>은 '소식통'의 내부정보를 인용하여 보시라이는 상임위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이미 미친 지경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아래에 열거하는 것은 보시라이의 5대죄상이다:

 

첫째, 보시라이는 이미 심각한 망상증을 가지고 있다: 두달 반전에, 그는 왕리쥔으로 하여금 곁에 있는 두 명의 중앙경위국에서 파견한 경위를 체포하도록 시켰다. 그들이 정적에게 매수되어 그의 사무실책상에 있는 글들을 훔쳐 보았다는 것이다. 두 달동안 조사했고, 중앙경위국의 국장인 차오칭이 적극 협조했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여 두 명의 경위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호랑이가 독해도 자식은 잡아먹지 않는다(虎毒不食子)"라는 말이 있지만 그는 왕리쥔으로 하여금 경제범죄혐의를 이유로 그와 전처 사이에 낳은 아들인 리왕즈를 연금시켰고, 그를 진처우(錦州)에 감금시킨다. 그가 '17대"전에 장인을 도와 다단계를 한 사진사건이 정적에 이용되어 그의 승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이를 가지고 전처가 민감한 시기에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셋째, 그는 '부정부패방지', '친척친구의 사업종사금지'를 크게 외쳤고, 여러번 공개적인 장소에서 전처의 아들이 사업을 하는 것을 돕지 못하도록 말했지만, 그의 부인 구카이라이는 다롄에서 대거 상업프로젝트 및 부동산프로젝트의 인허가에 관여하여 변호사고문비의 명목으로 커미션을 취득하고, 이익을 해외에 빼돌리도록 도와주었다. 소문에 따르면 참여한 프로젝트가 삼십여개이고, 수취한 이익이 최소 10억위안 이상이라고 한다.

 

넷째, 그는 대거 '창홍(唱紅, 혁명가요제창)'활동을 벌였지만, 구카이라이는 스더(實德)집단의 쉬밍(徐明)을 도와 대량의 재산을 끌어모으게 했다. 쉬밍은 아들 보과과의 영국 및 미국에서의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부담했다. 대량의 현금ㅇ르 주고, 보과과는 자주 오락장소에 드나들었으며, 보과과의 난잡한 사진이 인터넷에 널리 전파되었다. 쉬밍은 전용기로 보과과를 보스톤에 보내어 유학하게 해주었고, 그에게 페라리 스포츠카도 사주었다. 보과과는 페라리를 타고 John Meade Huntsman Jr.(중문명 洪博培, 전 주중미국대사)의 딸과 데이트하러 나간 사진이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바 있다. 

 

다섯째, 보시라이는 '타흑(打黑, 조폭세력단속)'활동을 대거 벌였지만, 그는 흑도와 관련되고, 흑백양도에 관련된 왕리쥔을 최근심복으로 삼았다.

 

글에서는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1월 31일 면담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수수께끼라고 했다. 다음 날, 보시라이는 상무회의를 소집하여 왕리쥔을 공안국장에서 면직시켰다. 사전에 아무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당시에 두 사간에 얘기가 잘 되지 않았다고 추측한다. 혹은 보시라이가 왕리쥔에게 하라고 한 일을 왕리쥔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혹은 왕리쥔의 요구조건이 너무 높아서, 보시라이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왕리쥔이 즉시 고발자료를 보낸 것으로 보면, 왕ㅇ리쥔은 일찌감치 보시라이에 대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사망파'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글에서는 "보시라이는 이미 최고위층에 의하여 당내 최대의 위군자로 일컬어지며, 그는 '상임위원'이 되기 위하여 거의 미친듯이 날뛰는 지경에 이르렀다."고도 말했다.

 

2월 15일, <빈과일보>는 <명경망>의 폭로자료를 인용하여 정치국의 9명의 상임위원이 보시라이에 대한 전문조사팀을 구성하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하였다고 소식을 퍼트렸고, 전문조사조에는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인 허궈창, 정법위 서기인 저우용캉, 그리고 중앙조직부 부장인 리웬차오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명경망>의 원시보도에서는 이런 말도 퍼트렸다. 중공전총서기인 장쩌민도 보시라이에 대한 입건조사를 '강하게 요구'하였다고 한다. "전당과 전국인민에게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9명의 상임위원이 동시에 동의하고 보시라이에 대하여 당내절차에 따라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보시라이는 원직을 유지하고, 정치국위원, 중경시서기의 직무를 계속 이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기율검사위의 내부소식통은 "지금 보시라이는 정치적인 큰 떡이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중에서 자신이 한 몫을 챙기려고 한다."

 

미국매체는 최근 들어 미국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중공의 공안,검찰,법원을 책임지는 정치국상임위원 저우용캉이 보시라이를 대체하여 충칭의 업무를 주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만, 저우용캉은 북경의 국가안전당국이 보시라이를 직접 조사하거나 체포하도록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평론에 따르면, 저우용캉은 장쩌민이 나서서 달성한 "보시라이숙청'의 협조방안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보시라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가 보시라이와 깊은 관계와 관련이 있어, 상호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우용캉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사천성위 서기를 지냈다. 보시라이는 충칭에서 타흑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저우용캉의 불법관련자료를 적지 않게 확보했다. 충칭의 전 공안국장 원창도 일찌기 저우용캉과 깊은 교분이 있었다. 보시라이가 원창을 제거하여 광동성위서기 왕양에 대응하고자 했을 때, 저우용캉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시라이와 장쩌민간에도 많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는 장쩌민 가족의 여러가지 불법관련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보시라이가 상무부에 있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구든지 장쩌민 아들의 회사에 인허가를 주면(특히 전기통신분야), 그를 면직시켜버리겠다고 하였다. 정칭홍(曾慶紅)가족은 주로 군수산업과 석유에 종사하는데, 그들은 충칭에 대량의 군수산업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보시라이는 정칭홍에 관한 여러가지 약점도 잡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는 장쩌민을 극력 도와주었다고 한다. 2001년을 전후하여 장쩌민이 파룬공을 진압하는데 크게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보시라이가 앞장서서 이를 추진하여 장쩌민의 총애를 받았다.

 

90년대 중반, 당시 다롄시장이던 보시라이는 정치자본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쩌민에게 잘보이기 위하여, 다롄의 길거리의 광장에 장쩌민의 대형화상을 세웠다. 이는 전국에서 최초였다. 보시라이는 장쩌민에 대한 개인숭배를 추진하여 장쩌민의 총애를 받는다.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천시통이 장쩌민을 고발한 서신이 덩샤오핑의 손에 들어갔을 때, 덩샤오핑은 서신을 보이보에게 보여준다. 보이보는 그 서신을 직접 장쩌민에게 보여주고, 장쩌민은 놀라서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고 한다. 그후 장쩌민은 보씨일가에 대하여는 잘 대해주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