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채문희(蔡文姬): 동한의 재녀. 3번에 걸친 혼인

중은우시 2011. 12. 28. 14:45

글: 장계합(張繼合)

 

"혈전"이후, 저명한 도시 장안성이 무너졌다. 무고한 백성들은 그저 쇠말발굽아래 신음하고 유랑할 수밖에 없었다. 장안이 함락된 약간 이후인 개략 한헌제 흥평연간(194-195년), 19살의 채씨소저도 난민대열에 휩쓸렸다. 그녀도 봉두난발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금기서화, 시사가부를 모두 잃고, 천금소저의 존엄과 풍도마저도 모두 버렸다. 불행히도 채문희는 적병에 붙잡힌다. 그리고 금은보화와 마찬가지로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는 '전리품'이 되었다.

 

채문희는 천성적으로 미인이다. 낡은 옷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했다. 그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주 호화로운 장봉(帳蓬)으로 끌려갔다. 남흉노의 좌현왕은 한눈에 이 중원여인에게 반한다. 약탈해온 부인에게 무슨 애정이 있겠는가? 그저 이불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부부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채문희에 대하여, "오랑캐에 욕을 당하고, 오랑캐의 자식을 낳았다. 글재주는 뛰어나지만, 절개는 말할게 없다"라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서서 말하면 허리가 아픈 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에 경륜도 있고, 당당하던 도학자들 중에 그 누가 외족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여 목을 매달았던가? 그저 외롭고 쓸쓸한 한 약한 여자를 가지고 정절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짓이다.

 

남으로 중원을 바라보면 향수가 솟아 오른다. 이것은 치유할 수 없는 병이다. 채문희가 꾹 참고 일생을 살아서, 남흉노에서 수십년간 잘 살았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늘은 단지 12년만을 주었다. 방해자들은 연이어 나타난다. 곧이어 그녀에게는 더욱 참담한 재난이 시작된다.

 

채문희가 가슴을 찢으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때, 중원도 전쟁에 휩싸인다. 부친의 옛 친구인 조맹덕이 횡삭을 휘두르며 남북으로 전투를 벌였다. 장강이북의 대부분의 땅은 그가 장악하게 된다. 괴뢰황제 유협은 그에게 코가 꿰여서 끌려다녔다.장안에서 허창으로 다시 허창에서 낙양으로...조조는 병력을 장악한 실권자였고, 그는 황제의 입을 이용하여 천하의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북방을 평정한 후, 중원에는 태평성대의 국면이 나타난다. 조조는 돌연 선생뻘인 채옹(蔡邕)을 생각한다. 아쉽게도 그 광세기재의 집안에는 후손이 없었다. 채씨집안은 제사를 올릴 사람마저도 없어졌다. 들려오는 소문으로 채씨집안 소저는 흉노에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조조는 이때 마음이 움직여, 돈을 써서 그녀를 되사오려고 한다. 그는 일처리가 시원스럽다. 그래서 사람을 남흉노에 사신으로 보낸다. 예물은 아주 풍성했다. 누가 그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겠는가? 금방 채문희는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지를 받는다. 이 좋은 소식은 꿈 속에서도 바라던 것이다. 그러나 타향에 유랑하던 재녀에게는 무한한 번뇌를 가져왔다.

 

중국역사상, 어느 권력자가 조조만큼 '문재(文才)'를 지니고 있었겠는가> 여기서 문재는 많은 경우 나라를 안정시키는 계략과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채문희의 문재는 풍화설월(風花雪月), 제시작부(題詩作賦)의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재주는 응용학과가 아니고, 실용성이 없다. 거의 아무런 '단기적 가치'가 없는 것이다. 조조는 그럼에도 비용을 아끼지 않고 그녀를 데려온다. 이것이야 말로, '재능있는 사람을 아끼는 병'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문사를 길러서, 국가의 현명한 사람을 모은다.

 

채문희가 한나라로 되돌아오는데 조조가 귀인이었다. 흉노를 떠나자, 그가 방해자가 된다. 채문희의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두 가지 주제이다: 하나는 전쟁의 잔혹함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정말 기이한 것은 그녀와 같이 12년간을 살았던 좌현왕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상이몽이었던가? 그렇다고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천하에 이렇게 사는 부부도 수없이 많다. 그저 두 아들이 흉노에 남아 있으니, 채문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조조는 사람을 구하려면 끝까지 구하라는 신조를 지키지 않았을까? 하필 이 골육을 서로 떨어뜨려놓아 생이별하게 만들었는가? 아예 온 식구를 데려오면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좌현왕과 그 골육은 절대 가볍게 낙양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원래 남흉노는 국력이 취약했는데, 스스로 인질이 되고자 하겠는가? 두 어린 왕자는 뿌리가 흉노에 있다. 좌현왕비는 '외국인'이다. 지금 친정인 국가가 문밖에 서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데, 이 가정이 찢어지지 않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채문희는 일찌기 울며불며 한나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날이 오기를 목놓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고양이를 얻으면서 소를 잃었다. 천하에는 만물을 잴 수 있는 저울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강한가, 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강한가. 채가 소저는 이 복잡한 감정의 무게를 계산할 도리가 없었다.

 

208년 초봄,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른 채문희는 귀로에 오른다. 만일 가족관계를 생각한다면, 채문희는 이미 두 명의 남편이 있었다. 곧이어 세번째 혼인이 있을 것이다. 조조가 나서서 그녀를 둔전도위이며 진류(陳留) 고향출신인 동사(董祀)와 결혼시킨다. 분명히 여기에는 무슨 이익교환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정략결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승상 조조가 좋은 마음으로 채문희에게 고향을 떠난 고독감을 달래주고자 했을 뿐이다. 한나라에 돌아온 것은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혼자서는 천륜의 낙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결혼후에야 깨달았다. 조조도 친근한 얼굴 뒤에 차가운 엉덩이를 가졌다. 하급관리인 둔전도위는 이 여시인을 눈에 두지 않았다. 그는 채문희와 같은 잔화패류(殘花敗柳)는 그와 같이 멋진 젊은이와 어울리지가 않았다. 승상의 체면을 봐주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결혼하고 살아주는 것이다. 이런 혼인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채문희의 <비정시>는 바로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눈물로 종이위를 적셨다.

 

나중에 동사가 일을 저질러 죽임을 당하게 생겼다. 채문희는 그래도 부부의 정을 생각하여 아무런 망설임없이 일어나 그를 도와준다. 그녀는 미친 것처럼 머리를 흐트리고 맨 발로 승상부로 뛰어들어 남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녀는 이미 부끄러움이나 체면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가족이다. 일단 잃어버리면, 그 자신은 행시주육(行屍走肉)으로 전락한다. 채문희는 소저, 시인, 재녀 및 명류의 겉옷을 벗고 확실하게 '동사의 처'로서 행동했다.

 

채문희가 여러 신하들이 있는 가운데 조조에게 '도하유인(刀下留人)'을 애걸하였다. 그 감동적인 호소, 애절한 눈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방안의 여러 신하들은 속속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조조도 코가 시큰했다. 그는 몇번 망설이다가 마침내 손을 흔들어 동사를 사면해준다. 이때 눈물에 젖은 채문희는 얼어서 사지를 바들바들 떨고 입술이 새파랗게 되었다.

 

동사는 그녀의 은혜에 감격하여 채문희를 아껴주게 되었다고 한다. 부부는 산맑고 물좋은 곳으로 옮겨가서,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나중에 채문희는 1남1녀를 낳는다. 그중 딸 휘유(徽瑜)는 나중에 사마의(司馬懿)의 아들 사마사(司馬師)에게 시집간다. 이 점은 <진서.열전>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