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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악비)

악비(岳飛)의 등에 새긴 글자는: 진충보국(盡忠報國)? 정충보국(精忠報國)?

by 중은우시 2011. 10. 10.

글: 문재봉(文裁縫)

 

'악모자자(岳母刺字, 악비의 모친이 악비의 등에 글자를 문신으로 새겨넣다)"의 이야기는 중국의 모친들의 자녀교육에서 모범적인 사례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이는 악비의 영웅적인 사적을 칭송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악비의 등에 새겨진 네 글자는 '진충보국'이지 '정충보국'이 아니라고 한다. 글자 한 자가 틀린 것이기는 한데,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악비의 자는 붕거(鵬擧)이고, 하남 낙양사람이다. 중국의 저명한 군사가, 전략가 겸 민족영웅이며, 항금명장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와 은사의 교육을 받아 충후하고 일신에 정기를 품고 있었다. <손자병법>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뛰어난 무예를 익혔다. 악비는 천하를 걱정하는 마음과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악비의 영웅적인 사적을 칭송하는 민간에 여러가지 얘기가 전해진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악모자자'이다. 그러나, 악모자자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근거자료를 찾기는 힘들다. 송나라때 사람들의 필기(筆記)와 야사(野史)에도 이를 기록해놓지 않았다. 그중 악비의 손자인 악가(岳珂)가 저술한 <금타쉐편>에도 악모자자에 관한 기록은 없다.

 

악모자자에 관하여 가장 먼저 나타나는 기록은 원(元)나라때 사람이 편찬한 <송사본전>이다. 거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처음에 하주(何鑄)로 하여금 국문하게 하였는데, 악비는 옷을 찢고 등을 하주에게 보여주었다. '진충보국'의 네 글자가 피부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악비의 등에 새겨진 글자는 네 글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글자가 악비의 모친의 손에 의하여 문신으로 새겨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악비의 등에 글자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역사기록에 따르면, 악비의 등에 새겨진 네 글자는 '정충보국'이 아니라, '진충보국'이었다.

 

<송사.악비전>의 기록에 따르면, 악비가 억울하게 죄를 받았을 때, 당시의 대리사관원인 하주가 그의 사건을 심리했다. 그들의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행동에 악비는 분노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옷을 찢어서, 등에 새겨진 네 글자 '진충보국'을 보여준다. 하주는 그 글자가 피부 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아주 똑똑히 보인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악비의 등에 새겨진 글자는 '진충보국'이지 '정충보국'이 아니다. 다음으로, 왜 이 몇 개의 글자를 악비의 모친이 새겼다고 한 것일까? 북경사범대학 역사과의 교수인 유표에 따르면, 악비는 보통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인 요씨는 그저 보통가정주부에 불과하다. 송나라때, 보통의 가정부녀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모친이 글자를 새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문신을 새기는 것은 전문기술이다. 엄격한 훈련을 받고 절차를 따라야 한다. 절대로 보통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비의 모친은 가정주부인데 이런 기술을 익혔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 '진충보국'의 네 글자는 절대로 악비의 모친 요씨가 새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새긴 것이다.

 

그렇다면, 악비의 등에 새겨진 글자는 누가 새긴 것일까? 명나라 가정31년(1552년) 웅대본의 <무목정충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악비는 탕음의 고향사람들이 쪼들린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는 그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른 사람들도 격려하기 위하여 장인을 시켜 자신의 등에 '진충보국'이라는 네 글자를 깊이 새기게 했다고 한다. 명나라말기에 이매(李梅)가 처음 만들고 풍몽룡(馮夢龍)이 개편한 <정충기전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역사서에는 악비의 증에 '정충보국'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고, 악비가 장헌(張憲)에게 명하여 새긴 것이라고 한다" 글에는 또한 '정충보국' 네 글자는 악비가 대장이 된 후, 부하장수인 장헌에게 명하여 새긴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므로, 악비의 모친이 새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옛날 책에 악비의 등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낸 얘기일 것이다. 악비의 등에 새겨진 글자를 누가 새긴 것인지에 대하여 이렇게 여러하지 학설이 분분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후세인들은 왜 '진충보국'을 '정충보국'으로 바꾸었을까? 이것도 역사적인 원인이 있다. '정충(精忠)'이라는 두 글자는 사실 악비를 자살하게 만든 책임자인 송고종 조구에게서 나온 말이다. 송고종은 일찌기 악비가 항금에 공로가 있다고 하여 악비에게 '정충악비(精忠岳飛)'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깃발을 내린다. 이를 악비의 전기(戰旗)로 삼게 했다. 당시의 백성들에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정충보국의 정신을 발휘하기를 바란 것이다. 원나라때 몽골족들이 지배자가 되고, 한인들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명나라때가 되자, 주원장이 한족통치정권을 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명나라때 외환은 여전히 극심했다. 북방의 몽골세력이 여전히 강대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전체 백성들에게 이런 '정충보국'의 정신을 일깨워 한족정권을 공고히 하고 보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진충보국'은 점점 '정충보국'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