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재봉(文裁縫)
토템(Totem)은 인디안말에서 왔다. 원래 북미 Algonkian 부족의 Ojibwa족방언에 나오는 ototeman에서 왔다고 한다. 그 의미는 ‘그의 친족’이라는 뜻이다. 즉, 한 씨족의 표시 혹은 휘장을 가리킨다. 토템은 원시인들이 특정 동물이나 식물등 특정한 물체를 자신 씨족과 친족관계 혹은 기타 특수관계가 있다고 보고 숭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람들은 토템이 특정 씨족의 상징이자 보호자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이를 특별히 좋아하고 각종 숭배활동을 거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류의 가장 오래된 종교활동은 토템숭배라고 할 수 이싿. 사람들은 존경하는 태도로 토템을 대한다. 그리고 그들을 해치는 것을 금지한다. 고대의 씨족, 가족등 사회조직은 토템으로 명명되었고, 토템을 표지로 삼았다. 이들 씨족 표기 또는 휘자인 토템이미지는 모두 특정 영적인 혹은 신비한 역량이 있어, 자신의 씨족의 생존과 지속 및 발전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토템이 되는 동물은 모두 원시인류가 현실에서 생활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어획 수렵활동을 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중 가장 만은 것은 사람들이 생존을 의지하는 것들 예를 들면, 사슴, 소, 양, 물고기 및 일부 새등이다. 사람들은 일정한 토템의식을 진행했고, 그들의 대량번식을 기원했다.
일부는 인류의 생산,생활에 유익한 동물이거나 원시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동물이었다. 에를 들면, 사자, 호랑이, 곰, 악어등이 그것이다. 이외에 늑대도 토템으로 모셔졌다.
늑대와 같은 동물은 역대이래로 한족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문화에서는 ‘외모가 추악하고, 성격이 탐욕스럽고 흉악하다’는 것으로 늑대를 표현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중국이건 외국이건 일부 고대민족중에서 늑대의 이미지는 서로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애정이 깊고, 인류의 유아를 길러주는 선량한 동물로 묘사되기도 하고, 어떤 민족은 심지어 이들을 조상으로 보아 숭배하기도 한다. 돌궐인들도 늑대를 부족의 토템으로 모신 예중의 하나이다.
돌궐인이 발전한 곳은 개략 지금의 러시아경내인 예니세이강 상류일대이다. 5세기경, 이 지역의 강국인 유연(柔然)이 돌궐을 핍박한다. 압력을 못견딘 돌궐인들은 할 수 없이 지금의 신강의 알타이산 남부로 이주한다. 6세기, 돌궐인들은 강해지기 시작하고, 종전의 설욕을 하여, 유연을 멸망시킨다. 그후에 중앙아시아를 정복하니, 영토가 동으로는 몽골고원에서, 서로는 페르시아제국의 변경에 이르게 된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동,서돌궐중 서돌궐의 2 부락, 셀주크와 오스만이 선후로 부족민을 이끌고 서아시아로 이주한다. 이들은 계속된 전투를 거쳐 각각 방대한 셀주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을 건설한다. 돌궐인은 행군하거나 전투할 때 군기에 금색의 늑대머리를 그렸고, 이를 낭기(狼旗)라고 불렀다.
돌궐은 늑대를 부족의 토템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돌궐인들은 추장의 천막 앞에 늑대머리가 그려진 깃발을 꽂아두었다.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중에 돌궐국의 칸의 깃발에도 금색 늑대머리를 그린다. 칸중에 “부리(附離)”라는 자가 있고, 시위도 ‘부리’라고 불렀다. 부리는 바로 돌궐어의 “bori”, 즉 늑대를 의미한다.
돌궐은 왜 늑대를 토템으로 삼았을까? 단순히 원시 유목민족인 늑대를 경외하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늑대가 선량한 마음을 발휘해주기를 바라고, 늑대의 보호를 기도하기 위해서였을까? 원인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심층적인 원인을 분석해보려면, 돌궐족의 시조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여 돌궐족의 혈연내력을 알아보아야 한다. 돌궐족의 조상을 알게 되면, 돌궐족이 왜 늑대를 부락의 토템으로 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돌궐족의 시조에는 누구인가? 그들의 혈연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가?
첫번째 전설: 돌궐인의 시조는 원래 흉노북부에 생활했고, 아방보(阿謗步)가 부락의 수령이었다. 아방보에게는 17명의 형제가 있었다. 그중 한 형제의 이름은 이즈 니스두였다. 부락의 수령인 아방보가 우둔하여, 부락이 점점 쇠락한다. 암늑대가 낳은 이즈 니스무는 특별한 영기를 받아 호풍환우할 수 있어, 천신과도 같았다. 그는 두 명의 처를 취하는데 각각 여름신과 겨울신의 딸이다. 한 처가 4명의 사내아이를 낳는데, 큰 아들이 다른 여러 아들보다 부락의 백성들이 입는 고통에 관심이 컸다. 자주 부족인들을 구해주어 모두가 그를 군주로 모셨고, 국호를 ‘돌궐’이라고 하게 되었다.
두번째 전설: <<주서>>권50 <<돌궐전>>에 기록된 것이다. 돌궐인은 원래 흉노족의 별종이었고 성이 아사나(阿史那)씨였다. 부락의 전투에서 한 흉노부락이 인근국에 패배하고, 부락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나중에는 나이 10살된 사내아이만 하나 살아남는다. 추격해온 병사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린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복수를 막기 위하여 그의 두 발을 잘라버린다. 그리고는 황야에 버린다. 그런데, 암늑대 한마리가 그를 구해주고, 사내아이에게 고기를 먹여서 키운다. 사내아이가 어른이 된 후에 암늑대와 결합하여 암늑대가 그의 아이를 갖는다. 나중에 암늑대는 사내아이 10명을 낳는다.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 결혼을 하고 가족을 가진다. 후대는 각각 성을 가졌는데, 아사나씨가 그 중의 하나이다.
세번째 전설: 당나라때 단성식의 <<유양잡조(酉陽雜爼)>>권4에 기록된 것이다. 돌궐의 조상은 해신 “사마(射摩)”이고, 해신 사리(舍利)가 ‘아사덕굴’에 거주했다. 그는 한 여자 해신과 사랑에 빠졌는데, 여자해신은 매일 저녁에 흰 사슴을 시켜 ‘사마’를 데리고 바다로 들어오게 하였다. 다음 날 날이 밝은 후에야 그를 돌려보냈다. 이렇게 수십년을 산다. 하루는, 부락에 큰 사냥행사가 있다. 해신은 사마에게 말한다. “내일 사냥때, 그대의 조상이 태어난 굴에서 흰 사슴이 뛰어나올텐데, 그것을 활로 쏘아잡으면 나와 오랫동안 왕래할 수 있고, 만일 맞추지 못하면 우리 둘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다”라고 말한다. 다음 날 사냥때, 굴에서 과연 금색 뿔을 가진 흰 사슴이 나타난다. 사마는 좌우의 부하들에게 명하여 사슴을 포위하게 하였는데. 사슴은 좌충우돌하다가 포위망을 뛰어넘고, 부하가 활로 쏘아 죽인다. 사마는 대노하여 부하를 죽인다. 저녁에 해신은 사마에게 “그대는 사람을 죽여서, 냄새가 강하니, 인연이 끝났다”고 말한다. 이 전설을 보면, 돌궐인 사마의 배우자는 사슴을 토템으로 하는 부락에서 왔고, 늑대와 사슴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몽골족에는 이와 유사한 전설이 많다. 이는 유목문화의 어떤 공통된 특색인 것같다.
이 세 가지 전설은 서로 내용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즉, 늑대가 돌궐인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돌궐족의 전설을 이해하면, 우리는 돌궐족이 왜 늑대를 토템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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