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우동(張宇東)
노래가사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전세계가 모두 중국말을 하네. 공자의 말이 갈수록 세계화하네….” 많은 사람들의 관념 속에는 보통화(普通話)가 중국의 표준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보통화는 공자의 말과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보통화는 “북경어음을 표준음으로 하고, 북방화를 기초방언으로 하며, 모범적인 백화문 저작의 어법을 규범으로 하는” 현대 한족의 공통언어이다. 이는 1955년 전국문자개혁회의와 현대한어규범문제학술회의상에서 확정된 것이어서, 수십년전에 비로소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다.
사실, 현대한족의 공동언어와 표준어로서, 보통화는 나름대로 형성과 발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회교류의 도구로서 각 왕조에는 각각의 공인된 표준언어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하, 상, 주, 선진시대에는 ‘아언(雅言)’이라고 칭했고, 그 후에는 ‘정음(正音’)이라고 불렀으며, 명나라때는 ‘관화(官話)’라고 불렀다. 청나라말기에는 ‘국어(國語)’라고 고친다. 이것은 모두 고대의 ‘보통화’라고 할 수 있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시, 서, 집례는 모두 아언으로 한다” 공자는 ‘아언’으로 제자들과 교류했다. ‘아언’은 춘추시대의 보통화인 셈이다. 춘추시대에 사신들이 왕래하거나 제후들이 회맹하여 교류할 때는 모두 아언을 사용했다.
한나라때 ‘보통화’는 한단계 더 발전한다. 당시에는 ‘통어(通語)’라고 불렀다. 각 지역의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통어를 가지고 교류했다. 진,한나라때부터, 황하연안의 중원인들이 계속하여 남으로 이주하면서, 하락(河洛)의 고어가 남방으로 전해진다.
대체로 당나라말기부터, 문언(文言)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지만, 북방어를 기초로 한 새로운 서면어가 탄생하니, 그것이 바로 백화(白話)이다.
원나라때 수도인 대도의 말을 기초로 하여, <<중원음운(中原音韻)>>을 표준음으로 제정한다. 이렇게 하여 중국북방의 방언은 대도화를 따라가는 추세를 나타내게 된다. 어떤 전문가에 따르면, 원나라때의 표준음은 몽골식 한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전통적인 한어의 특색을 잃어버리게 된다. 명나라이후, 주원장은 남경화를 기초로 <<홍무음운(洪武音韻)>>을 표준음으로 정한다. 남경화는 남방관화를 대표한다. 특히, 송, 원 이래로, 백화문학이 발전함에 따라, 당시 구어와 가까운 백화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문언과 병존하고 있었다. 이것은 송, 원의 문학작품의 언어풍격에서도 나타난다.
명,청 양대에는 북방화를 기초방언으로 하여, 북경어음을 표준음으로 한 ‘관화’가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방면에서 널리 보급된다. 이리하여 전중국에서 공인하는 표준어와 공통언어가 된다. 신해혁명이후 국어운동과 신문화운동은 철저하게 문언의 지배지위를 동요시킨다. 보통화는 구어와 서면어를 기본적으로 통일한다. 1955년, 보통화는 명확한 규범을 갖게 되고, 현대한족공통언어의 법정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1955년의 문자개혁회의에서, 중국의 다민족국가의 성격을 강조하고, 각민족 언어문자는 평당하다는 원칙하에서, 한어가 국내의 다른 민족을 압도한다고 오해하게 할 수 있는 ‘국어’라는 명칭을 버리고, 보통화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보통화를 기초방언으로 표결하여 결정된다. 당시, 북경관화는 52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서남관화(성도)는 51표를 얻었다. 1표 차이로 결정된 것이다; 3위는 오어(吳語, 상해)로 46표를 얻었다. 월어(粤語, 광주)는 25표를 얻어 4위를 차지한다. 이리하여 보통화가 확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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