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조서교(趙舒翹): 10시간이 걸린 청나라관리의 자살

by 중은우시 2011. 9. 5.

글: 수은하(水銀河)

 

자살은 힘이 들까? 일반인들은 아마도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태후시대의 군기대신인 조서교에 있어서 자살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자살을 개시한 때로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모두 10여 시간정도를 소모했다. 자살을 감독하러 나갔던 대신 잠춘훤(岑春暄)이 오히려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조사교는 사실 좋은 관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봉양지부를 맡고 있을 때, 현지의 날씨가 좋지 않았다. 연이어 재해가 끊이지를 않았다. 홍수가 나지 않으면 가뭄이었다. 그러다보니 현지백성들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재임하는 동안 열심히 재난구재에 앞장섰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백성들을 살렸다. 그는 자신의 부인까지도 가뭄과 맞서 싸우는 전선으로 내보냈다. 고귀한 점은 그가 시종일관 이러했다는 것이다. 그가 나중에 군기처에 들어가서 지금으로 따지자면 부총리급의 고관이 되지만, 여전히 자신의 주머니를 시시때때로 털어서 백성들을 구하곤 했다.

 

그와 같이 좋은 관리이면서 서태후에 대하여 충성심이 있다면 당연히 평안하게 살았어야 한다. 불행한 점은 서태후의 성깔로 1900년에 팔국연합군에 동시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팔국연합군이 공격해 들어오자, 서태후는 백성과 관리들을 버리고, 자기만 서안으로 도망쳐서 화를 피한다. 팔국연합군은 상대하기 쉽지가 않았다. 그들은 서태후를 붙잡으려 했다. 아니면 다른 고관이라도 붙잡으려고 했다. 서태후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사람을 보내어 그녀 대신 죽도록 했다.

 

그녀를 대신하여 죽은 사람중에 조서교가 있다. 조서교는 실제로 의화단이 팔국연합군과 전쟁을 벌일 때 비교적 분수를 지켜서,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서태후가 그를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혹시 명령을 내리더라도 그냥 겉으로 가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조정내에 인맥이 괜찮았다. 많은 조정의 신하들이 그를 위하여 서태후에게 말을 해주었다. 이런 광경을 보자 그는 더더욱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감독하러 온 잠춘훤과 감옥에 앉아서 집안일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얘기를 하면서 그는 잠춘훤에게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여러가지 이유를 말해준다.

 

두 사람은 정오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서태후에게 부탁하러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실패했다고 말한다. 자결할 준비를 하자고 말한다. 조서교는 자신의 귀를 믿지 않았다. 그는 서태후의 사면령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잠춘훤의 재촉하에 한주머니의 금을 삼키고도 즉시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오히려 흥분제를 먹은 것처럼 날뛰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충신인지, 얼마나 공로가 많은지를 크게 떠들었다. 그가 흥분해 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찾아왔고 갈수록 많아졌다. 그는 더더욱 흥분하여, 3시간을 버텼다. 그래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활기가 넘쳤다.

 

잠춘훤이 급해졌다. 서태후는 시간을 정해주엇다. 그에게 오후 5시에는 반드시 숨을 거두게 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도록 시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아편을 대거 꺼내서 조서교에게 삼키게 한다. 그리하여 빨리 숨을 거두게 하려 했다. 그러나, 조서교는 그래도 버텼다. 아편이 가득 뱃속에 들어갔고, 온 몸에 열이 나서 그는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을 다 마시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 잠춘훤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렇게 해서 안된다면 어쩔 수 없이 악독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는 비상을 먹인다. 그런데, 비상을 한 줌 먹이자, 조서교는 더 이상 뛰지는 않았지만, 구르기 시작한다. 2시간을 더 구르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

 

이때 이연영이 도착한다. 시간이 된 것을 보고는 잠춘훤에게 주의하라고 알려준다. 잠춘훤은 이제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급히 좌우에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지 묻는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내는데, 마분지에 물을 적셔서 코와 입을 막고, 다시 가슴을 누르면 숨이 끊어질 것이라고 한다. 잠춘훤을 그대로 한다. 그래도 조서교는 여전히 반항했다. 어떻게 해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잠춘훤은 할 수 없이 더욱 악독한 방법을 계속 쓴다.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조서교가 죽었다.

 

조서교가 죽은 후, 민간에는 그가 억울하다는 말이 많이 돌았다. 그가 부임한 강소지역에서는 백성들이 수천냥백은을 모아서, 그의 후사를 처리해주려 한다. 그러나, 조서교는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다. 돈을 한푼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그래서 가족들은 시종 그 돈을 받지 않는다. 나중에 서태후도 마음 속으로 후회한다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서교는 내가 보기에 그들(재의, 재훈, 강의등)과 한패거리가 아니었다. 너무 가련하게 죽었다." 그리고 서태후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