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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경제

"중국모델"은 무엇인가?

by 중은우시 2011. 2. 17.

글: 유앙(劉仰)

 

"중국모델"은 날로 이슈가 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중국모델'은 여전히 사회이슈, 정치이슈 및 학술이슈가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은 바뀔 수가 없다.

 

현재 "중국모델"에 대한 토론은 대체로 몇 가지 층면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중국모델'이 존재하는가? 비록 일부 사람들은 소위 '중국모델'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중국의 최근 수십년의 고속발전은 확실히 서방교과서의 방식을 완전히 따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세계가 주목할만한 성취를 거두었다. 이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중국모델'을 인정하지 않는 관점은 실제로 무력하다. 말끝마다 그리스 학자들을 들먹이는 책상머리들은 현실의 앞에서는 항상 허약하다.

 

"중국모델"의 또 다른 층면의 문제는 만일 '중국모델'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임시적 단계적인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국모델'은 그저 현대화발전의 초기단계에 효과가 있느냐, 아니면 현대화수준이 높은 단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것이다. 상당한 숫자의 '중국모델'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현실에서는 부득이 '중국모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 속으로부터 '중국모델'이 장기적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단계적이라고만 인정하려 한다. 심지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한다. 그중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중국모델'이 이미 거대한 영향을 나타내고 있어, 서방교과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만일 서방교과서를 수정해야한다면, 그들도 수정을 조금만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저 특수한 사례로 하여, 한마디만 하고 지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결국 서방교과서의 경전이론으로 되돌아간다.

 

"중국모델"이 임시적이냐 아니면 장기적이냐하는 것은 또 다른 층면과 관련된다: 소위 '중국모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서방교과서의 차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하여 현재 세계에서 논으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그러나 사람들이 받아들일만한 답변은 많지 않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 의문의 여지없이, 일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슈를 토론하면서 학술과 이론으로 접근하며 비교적 객관적이다. 그들은 '중국모델'이 가치가 확실이 있다고 발견하면 진정으로 자신의 이전 견해를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찌기 '역사종말론'으로 유명한 미국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들어 이 문제에 대하여 비교적 크게 바뀌었다. 후쿠야마와 같은 학자들에 대하여는 객관적으로 토론하고,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렵다.

 

현재 사회의 일부 사람들, 특히 중국국내에서 '중국모델'이 단지 단계적이라고 인정하고, '중국모델'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있게 검토하지 않고, 그저 하루빨리 '중국모델'의 임시단계를 벗어나서, 서방교과서의 전형적인 설계를 향하여 달려가려고 한다. 그들이 연구분석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론적으로는 '중국모델'이 장기적이라고 도출해낼 수 있고, 이치에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감정, 신앙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익의 문제이다.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은 경우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중국은 최근 몇년동안 탐관오리와 간상(奸商)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붙잡히지 않은 자들도 많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들에 있어서, '중국모델'은 실제로 그들에게 적지 않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엄청난 돈을 움켜쥔 탐관, 간상이 될 수 없었을 테니까. 바꾸어 말하면, '중국모델'의 존재는 그들로 하여금 돈을 벌게 해주었다. 만일 '중국모델'이 없었다면, 이들은 돈을 벌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들에게 가장 큰 우려와 걱정은 '중국모델'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단 '중국모델'이 오래 가게 되면, 오늘은 철도부 부장 류즈쥔을 붙잡았지만, 내일은 장즈쥔, 리즈쥔이 붙잡힐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그래서 만일 중국모델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에게는 그들이 재산과 생명이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들을 도와서 곳곳을 다니면서 얘기한다: 중국의 부자들이 왜 이민을 가는가? 왜냐하면 중국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어떤 안전을 원하는가? 설마 모든 부정부패를 사면해달라는 말인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에게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에 '중경모델'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중경모델'은 이미 이론과 실천에서 '중국모델'의 세부사항을 풍부히 하고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전의 '중국모델'에 여러가지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면,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이 미친듯이 돈을 긁어모을 수 있고, 대거 권력과 돈간의 거래가 있을 수 있었다면, '중경모델'은 현재 이전의 '중국모델'의 결함을 수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모델'이 더욱 성숙하고 완비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중경모델'이 일단 진위를 구분할 수 있고, 정교하게 된다면 진정으로 장기간 유효할 '중국모델'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들에게 이는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서방교과서에서 가볍게 묘사하는 것처럼 자잘한 문제를 수정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목숨이 관련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반드시 '중국모델'을 반대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이전에 '중국모델'의 결함을 이용하여 큰 돈을 벌었지만, '중국모델'이 자신의 결함을 보완한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로 '중국모델'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은 어떤 정치제도를 원하는가? 당연히 미국식이다. 미국식의 정치제도는 그들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국대통령은 기업인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시 일가가 그렇다; 미국부통령도 기업가와 정치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체니가 그렇다; 미국군대의 지휘관도 상계와 군대를 오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국방부장관 맥나마라는 이전에 포드자동차의 사장을 지냈다. 전 국방부장관 램스필드도 군권을 이용하여 비지니스에서 큰 돈을 벌었다; 미국정부의 경제분야 관리는 정부고위층과 월스트리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재무장관 폴슨이 그렇다; 심지어 미국농업부는 산토와 회전문을 달아놓은 것처럼 오간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정치제도는 자본가와 정계, 군계, 경제계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따진단 말인가? 만일 이런 제도를 중국에 도입한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들은 철저하게 안전해지는 것이다.

 

만일 중국이 하루빨리 미국과 같은 정치제도를 받아들인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탐관오리와 간상들은 활보하면서 큰 돈을 벌고 큰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의 일부 자용문인(資用文人)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현정부를 공격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문제를 '권력남용' '체제폐해'로 몰아간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인식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혹은 이런 말을 지지하는 사람은 약간은 권력남용, 체제폐해로 인하여 득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권력남용, 체제폐해로 인하여 그들 자신이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들이 권력남용, 체제폐해를 이용하여 거대한 자본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불안해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권력과 체제의 개혁방향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때, 그들은 서둘러 권력방식을 바꾸고 체제방식을 바꾸고자 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현재 공개할 수 없는 부를 합법화하고 싶어했따. 더 나아가 권력과 재물을 모두 얻고자 한다. 그리하여, '중국모델'이 존재하는지, 장기적인지,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등의 문제를 우리는 이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주목해야할 점은 누가 말하느냐는 것이다. 거대한 이익이 거기에 관련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객관적 이론연구이지만, 왕왕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