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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어느 현위서기(縣委書記)의 점진적 부패

by 중은우시 2010. 11. 30.

 

: 신화망

 

2010 11 2, 감숙성 탕창현의 전 현위서기 왕선민의 뇌물수수 및 내력불명거액재산사건이 백은시 중급인민법원에서 개정되었다.

 

검찰은 왕선민이 직무상 편의를 이용하여, 건설공사분야, 간부인사분야, 구정 및 본인의 입원기간동안 대거 뇌물을 받아챙겼으며 1500여만위안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외에, 왕선민의 가족재산중에도 362.2만여위안과 670그램의 황금이 발견되었는데, 내력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11 19, 담당검찰관은 재정지출을 주로 국고의 지원금에 의지하고, 1인당 재정수입이 전체 성에서 끝자리를 차지하는 빈곤한 현에서, 왕선민이 짧은 3년여의 기간동안 천만위안이 넘는 돈을 긁어모았으니, 금액이 큰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그 점진적인 부패특징은 깊은 반성을 요하는 부분이다.”

 

2010 3 18, 왕선민은 뇌물죄로 감숙성 검찰원에 입건되어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3 22, 감숙성 검찰원은 성기율검사위와 공동사건수사팀을 구성하였고, 왕선민은 당일자로 쌍규(雙規, 규정된 장소 규정된 시간에 출두하여 조사받는 것)’를 당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2006년부터 2010 3월까지, 왕선민은 건설공사에서 15명의 건설업체로부터 1108.7만위안과 258만위안의 가치가 있는 주택 3채를 받았다; 투자유치, 광업관리, 시정건설등을 진행하면서, 8명의 기업주로부터 103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인사조정과정에서 8명으로부터 36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구정과 입원기간동안 51만위안의 돈과 금덩이를 받았다. 왕선민의 뇌물총액은 1556.8만위안이며 그외에 집안에 362.2만여위안과 670그램의 황금이 내력을 설명할 수 없는 재산으로 있었다.

 

수백위안에서 수천위안까지 다시 수만위안까지, 그리고 다시 수십만위안, 백만위안이상까지, 명절과 입원때 선물을 받고, 다시 돈을 주지 않으면 일처리를 해주지 않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사양하면서 억지로 받다가 나중에는 오는 것을 거절하지 않을 지경에 이른다. 왕선민의 탐욕은 놀랄 정도였다. 2006년 탕창은 경제증가속도가 감숙남부에서 꼴찌였는데, 2008년에는 전체 시에서 2위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업무능력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현위서기였다. 그가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는것으로 바뀌고, 수중의 권력은 돈을 긁어모으는 수단이 된다. 왕선민의 타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탕창현은 감숙성 농남시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재정지출은 주로 국가의 이전교부금이며, 1인당 재정수익은 전체성에서 꼴찌수준이다. 국가급의 빈곤현이다. 왕선민은 대부분의 뇌물을 이런 빈곤한 현에서 긁어모았다. 재임기간동안 그는 각종 수단을 써서 돈을 모았고, 탕창현의 간부들이 보기에 그는 명실상부한 돈긁어모으는서기였다.

 

왕선민(王先民)은 감숙성 탕창현(宕昌縣) 현위서기로 있던 3년여의 시간동안, 뇌물금액은 매년 증가했다: 2007년의 수뢰금액 42.2만위안, 2008년의 수뢰금액 125만위안, 2009년의 수뢰금액 724만위안, 2010 1월 내지 3월까지의 수뢰금액 476만위안.

 

11 19, 담당검찰관은 왕선민의 뇌물금액은 천만위안이 넘는다고 하면서, 주로 탕창현 현위서기로 재직하는 기간동안 일어났다고 말한다. 2006 11 24일 탕창현 현위서기로 임명된 때로부터 사건발생시까지, 왕선민은 1212일동안 1556.8만위안을 긁어모은다. 평균 매일 1만여위안을 모았다. 입건되는 당일에도 왕선민은 한 건축회사사장으로부터 50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이 천만위안이 넘는 뇌물금액은 왕선민이 122차례에 걸쳐 102명으로부터 받은 뇌물을 모은 것이다. 그중 50만위안이 넘는 건은 8건이고, 100만위안이 넘는 것도 3건이나 된다.

 

담당검찰관에 따르면, 왕선민사건에 관련된 사람은 모두 103명이고, 그중 4명은 입건되었다. 관련인원은 당정간부, 인대대표, 정협위원도 있고, 공사도급업체, 부동산개발상, 대학관리인 및 기타 사회인원이 포함된다. 그 내용에는 빈민구조활동, 재난후재건사업, 광산관리, 교통운영, 인사관리, 간부조정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건설공사분야만 하더라도 왕선민은 19명으로부터 48회에 걸쳐 모두 1315.2만위안을 수령했다. 뇌물수수금액중 93%를 차지하는 분야이다.

 

사건기록에는 이런 범죄사실도 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왕선민은 4회에 걸쳐 농남화업건축회사의 사장인 양모로부터 640만위안을 수령한 후 탕창현체육센터, 현당교교학빌딩, 이천중학교학빌딩등 총 5000만위안의 공사를 그 회사가 수급하도록 해주었다.

 

2007년말부터 2010 3월까지, 왕선민은 탕창용해건축공사 사장 염모씨가 보내온 165만위안을 받은 후 염모로 하여금 총공사도급금액 1600만위안의 공사를 받도록 돌봐주었다. 그리고 농남금흠건축공사 사장 이모가 보내온 258만여위안의 주책 3채를 받은 후, 이모로 하여금 6건 총합계7000여만위안짜리 공사를 따도록 해주었다.

 

간부인사도 왕선민이 돈을 긁어모으는 수단중 하나였다. 그가 탕창현 현위서기로 있는 3년동안, 모두 연구간부 13차례, 과장급간부 263/회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일부간부는 과장급자리에서 근무한 후 1년가량이면 바뀌곤 했다. 매번 간부의 임면, 이동은 왕선민에게 돈을 긁어모을 기회가 되었다.

 

탕창현 성관진의 전 당위서기인 양모는 현의 직속기관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왕선민에게 5만위안의 뇌물을 주고 현양식국 국장으로 전보되었다. 2009 9, 탕창현의 전 농목국 부국장인 나은은 농목국을 농업국과 축목국으로 나눈다는 소식을 듣고는 축목국 국장을 하기 위하여 직무상 편의를 이용하여 16만위안의 공금을 유용한 후, 그중 10만위안을 왕선민에게 바쳤다.

 

사건담당검찰관에 따르면, 왕선민이 받은 뇌물은 현금, 주택, 금괴, 옥기, 구매카드, 현물카드, 은행카드, 술담배, 의류등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주택, 현금, 은행카드가 위주였다.

 

무도의 모 노교회사 사장은 연속 2번이나 고급술담배를 보냈다가 왕선민과 그 처에게 퇴짜를 맞은 후, 업계에 이런 내용을 퍼뜨렸다: “물건을 보내는 것은 안된다. 왕서기는 돈을 달라고 한다.” 과연 40만위안의 현금을 보내자, 그는 바라던대로 탕창의 여러 도로교량공사프로젝트를 딸 수 있었다.

 

당초에 스스로 뇌물수수는 1:1로 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뇌물을 받는데 일을 처리한 후에 돈을 받으며,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돌려준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면 뇌물을 제공한 자도 고발하지 않을 것이고, 백성이나 당조직에서도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선민은 36세에 농남시위 조직부 상무부부장을 지낸다. 39세에 탕창현 현위서기가 된다. 당시에 감숙성에서 가장 젊은 현위서기중 한 명이었다.

 

2007 1 9, 중공 탕창현 제14기 제2차전체위원 확대회의석상에서, 왕선민은 현위서기가 된 후의 첫번째 시정연설을 한다. 그의 주제는 인민들이 만족해하는 현위서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막 부임하였을 때 큰 뜻을 드러낸 때로부터 검찰에 수사를 받기까지 겨우 3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을 줄은.

 

왕선민이 탕창의 지방정치를 맡은 2007, 예현의 전 현위서기 임등굉의 부패사건이 발발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거울로 삼지 않았다. 왕선민은 수사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임등굉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잘못 생각했다. 현재 사회는 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부패방지는 벽에 벽돌을 던지는 것이고, 누구든지 맞고 나자빠지면 그건 그가 재수없는 것이다. 임등굉이 수사를 당하는 것은 그의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당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건발생후 왕선민 자신도 인정했따. 당초 뇌물수수는 범죄행위라는 것을 알았고, 처음에는 뇌물을 받은 후 내심으로 갈등을 많이 했다고. 그러나 결국은 요행심리가 우위를 점했다.

 

백회가 넘는 뇌물을 받게 되자, 탕창현에서는 왕서기가 돈을 좋아한다는 것이 공개된 비밀이 되어버렸다. 담당검찰관에 따르면, 구정때, 간부이건 일반 백성이건, 돈을 주는 사람이건 돈을 받는 사람이건, 모두 인정교류라는 핑계를 댄다. 이렇게 하여 일부 간부들의 반부패에 대한 심리적 방어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일단 사건이 발생하여 인정의 겉옷을 벗기고 나면, 적나라한 뇌물수수만 남는다. 2010년 구정에만 왕선민이 명절명목으로 받은 돈이 187만위안에 이른다.

 

이런 배금주의와 요행심리의 영향하에, 왕선민의 정치실적은 왜곡된다. 지방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게 된다.

 

왕선민이 쌍규를 당하는 날, 일찍이 울분을 참고 있던 탕창현의 백성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어떤 사람은 폭죽을 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왕선민이 이처럼 대담하게 뇌물을 수수할 수 있었을까?

 

전체사건을 살펴보면, 왕선민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돈을 긁어모은 것은 자신의 탐욕이 커진 것과 심리적으로 요행을 바라는 주관적 요소이외에, 권력에 대한 감독이 결핍되어 있었다는 객관적 요소도 있었다.” 담당검찰관의 말이다.

 

현위서기는 현위의 집단영도체제의 반장으로서 상부의 명을 하부에 전달하고, 지도협조하며, 전체국면을 통할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관리체계상 직책이 불분명하고, 권한이 불명확한 측면이 있어, 왕왕 현위서기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곤 한다. 왕선민은 바로 이런 권력집중의 틈을 노린 것이다. 그리하여 공공권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탕창에서, 간부의 승진, 조정, 프로젝트결정등 권력의 운행은 주로 왕선민의 개인의지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는 거의 완벽하게 탕창현의 정치, 경제, 인사, 자원, 기율,검찰,사법, 재정대권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중대한 의사결정, 중요한 간부임면, 중대한 프로젝트, 거액의 자금운용등에서 왕선민은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그의 말한마디로 결정하는구조를 만들었다. 집단권력을 개인화했고, 정부에 속한 의사결정권을 자신이 가져가버렸다. 그는 현위서기로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다. 바로 이런 권력의 온상에서, 왕선민의 권력독점과 패도는 순식간에 팽창한 것이다.

 

왕선민이 남긴 한 마디는 수사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탕창에서, 아무도 현위서기인 나를 감독할 수 없었다. 기율,검찰,감찰기관도 못했다. 본현의 감찰기관이 못하니, 상금의 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처럼 감독이 결핍된 권력으로 인하여 왕선민은 대권을 독단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그가 결정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그는 한걸음 한걸음 범죄에 빠져들게 된다.

 

최근 들어, 정부투자가 경제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연구논증, 심사허가절차, 조직실시, 프로젝트감독 및 공개입찰제도등이 완비되지 못함에 따라, 여러가지 헛점이 노출된다. 이는 바로 왕선민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담당검찰관이 말이다.

 

2008년이래, 문천대지진의 재해와 국제금융위기로, 정부는 대량의 자금을 재난후 재건 및 인프라건설에 쏟아부었다. 탕창은 국가급 빈곤현이자 지진재해지구였다. 국가의 빈곤퇴치 침 재난구조의 중점지역이었다. 국가에서 거액의 자금이 투입되었고, 그 목적은 인프라건설을 통하여 발전을 촉진하고, 민생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왕선민은 이를 사리사욕을 채울 더없이 좋은 기회로 삼았다.

 

효과적인 감독을 받지 않는 절대권력하에서 왕선민의 한마디는 낙찰자를 결정했다. 공개입찰제도는 탕창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공사건설분야는 그가 돈을 긁어모으는 가장 중요한 분야가 된다.

 

찾아다니지 않고 돈을 주지 않으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1천을 주면 1만짜리를 딸 수 있다. 어떻게 계산해도 이득이다이것은 바로 탕창에 투자하는 기업가들의 구두선이다. 공사프로젝트를 따는 과정에서의 잠규칙(숨은 규칙)’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농남시 성태치업공사의 사장인 나강은 탕상의 산수아원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였다. 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그는 담량이 컸다. 그리하여 고리대금으로 60만위안을 끌어모아서 왕선민에게 뇌물로 주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따게 된다. 고리대금을 갚기 위하여, 이 프로젝트에 투자자를 유치했고,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고리대금을 갚았다.

 

나강처럼 통이 큰 건설업자들은 많이 있었다 .그들은 폭리를 취하기 위하여, 걸핏하면 수십만 심지어 백만이 넘는 뇌물을 가지고 왕선민을 회유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개별기업의 책임자는 인대대표나 정협위원이라는 것이다. 왕선민에게 뇌물을 제공한 8개 기업대표중에서, 인대대표, 정협대표의 신분을 지닌 사람이 4명이나 되었다.

 

법정에서, 왕선민은 자신이 일개 당원에서 간부까지 오르고 다시 죄인이 되었다고 얘기하면서 오열했다: “가장 직면하기 어려운 것은 내세이고, 가장 메꾸어지지 않는 것은 송구함이다. 나는 나를 낳아주고, 나를 길러주고, 나를 신경써주고 내가 좋은 길을 가도록 당부해준 부모에게 미안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의지하고 나를 정신적 지주로 삼은 처자식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지금 영어의 몸이 되었고, 하루를 일년처럼 보내고 있으며, 통심질수(痛心疾首), 후회막급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