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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중국의 명소 (북부)

고대 황제들은 왜 갈석산(碣石山)을 좋아했는가?

by 중은우시 2010. 9. 14.

글: 진령신(陳令申)

 

갈석산은 그저 해발 70미터도 되지 않은 자그마한 산으로, 산동성 무체현 북부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는 무슨 아주 뛰어난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진,한에서 수,당에 이르는 천년도 되지 않는 기간동안 7명의 제왕들이 갈석산을 찾아왔을까? 7명의 제왕에는 중국봉건사회에서 가장 걸출한 네 명의 정치가 -- 진시황, 한무제, 위무제(조조)와 당태종(이세민)이 들어있다. 그외의 3명은 진이세(秦二世), 북위문성제, 북제문선제이다. 만일 진선제 사마의와 수양제 양광까지 합친다면, 모두 9명의 제왕이 갈석산을 오르거나 지나갔다. 이것은 무엇때문일까?

 

당연히 그중의 몇번은 군사행동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위무제 조조는 오환(烏桓)을 정벌하러가면서 도중에 '동으로 갈석에 가서 글을 남겼다(東臨碣石有遺篇); 사마의는 명을 받아 공손연을 토벌하기 위하여, "고죽을 지나, 갈석을 넘어, 요수에까지 갔다."; 수양제는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하여 병력을 나누어 진군하면서, "갈석도를 지났다"; 당태종은 신라를 정벌하러 가면서, "깃발이 갈석의 사이를 구불구불 지났다". 그러나, 이 4번을 제외한 5명의 제왕이 갈석산을 지난 것은 군사행동과 관련이 없다. 만일 순수하게 파도가 일어나는 장관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갈석산보다 훨씬 보기좋은 곳이 많은데, 왜 하필 갈석산을 들른 것일까? 갈석산에는 사람을 끄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일까?

 

<<자치통감>>권7 진기2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전국시대 후기 연나라사람인 송무기(宋毋忌), 선문자고(羨門子高)의 제자들은 선도, 형해소화지술이 있다고 칭하였다. 연나라 제나라에서는 모두 앞다투어 이를 배우려고 했다. 제위왕, 선왕, 연소왕이 모두 그말을 믿었고, 사람을 보내어 바다로 들어가 봉래, 방장, 영주(삼신산)으로 가게 했다. 이 삼신산은 발해의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그곳에 가본 사람이 있는데, 신선과 불사약이 있다고 한다." 연나라사람인 송무기, 선문자도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송무기는 <<도경>>에 나오는 월중선인(月中仙人)이고, 선문자도의 제자는 갈석산에 거주하는 선인(仙人)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갈석산은 나중에 중국역사에서 웅재대략의 신선을 좋아하는 두 황제, 진시황과 한무제가 찾아간 곳이 되는 것이다.

 

진시황은 장생불로를 추구했다. 그는 서복을 동해로 보내어 신선을 찾아서 불사약을 구해오도록 시켰다. 자신은 궁중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갈석산까지 가서 선문, 고서주 선인을 방문한다. <<사기.진시황본기>>에는 "32년, 시황이 갈석으로 가다. 연나라사람 노생이 선문, 고서를 찾고, 갈석문에 새기다." 진시황이 갈석산에서 신선을 찾지는 못한다. 방사 노생을 바다로 보내어 찾아오게 시킨다. 재미있는 것은 노생이 바다에서 돌아오면서, 신선이 보낸 정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망진자호야(亡秦者胡也)"라는 예언이다. 그리하여 진시황이 장군 몽염으로 하여금 30만의 군대를 이끌고 북방흉노를 공격하게 한다. 나중에 동한의 대경학자 정현은 이렇게 지적한다. 여기서 "호(胡)"는 흉노가 아니라, 진시황의 어린아들 호해(胡亥)였다고. 즉, 조고의 지록위마에 놀아난 진이세인 것이다.

 

한무제도 '선술'에 미친 황제였다. 기원전110년, 한무제는 태산으로 가서 봉선을 한 후 친히 바다로 나가 봉래선산으로 가서 장생불사약을 찾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동방삭의 권고를 받아,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북진하여 갈석산까지 가고, 축대를 세우고, 신선에 기도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한무대(漢武臺)가 남아있다.

 

진시황과 한무제가 갈석에서 신선을 찾은 것은 갈석산의 지명도를 많이 높여주었다. 갈석산의 신비감도 많이 강화시켰다. 그 연쇄반응으로 후대의 많은 제왕들도 앞다투어 이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갈석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신선을 만나거나 혹은 약간의 선기(仙氣)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를 통하여 연년익수, 장생불사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여러 제왕들이 천리먼길을 와서 갈석산을 찾은 연유일 것이다.

 

당나라때 팔선의 전설이 나타난 이래로, 갈석산은 더더욱 알수없는 신비로움이 더해졌다. 그리하여 황제들의 등정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키게 된다.